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71)
272화. 의義와 협俠의 세계. 무림(武林) (1)
천유성은 예상했다는 듯이 아공간 인벤토리를 열었다.
우루루루!
눈부신 빛과 함께. 형형색색의 마정석들이 쏟아졌다.
“모기?”
고구마가 살짝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허나, 당황스러움은 아주 잠시뿐이었다.
“모오오기이이이…….”
큼지막한 마정석들이 고구마의 호박색 눈동자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저건 탐욕이다. 욕망과 탐욕이 한자리에 공존하고 있다.
이대로 두면 위험하다.
그렇게 판단한 진혁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구, 구마야! 넘어가지 마! 마정석은 나도 갖고 있어. 잊은 건 아니지? KDS에서 개런티로 받기로 한 마정석. 그것만 먹어도 배 터져 죽을걸?”
“글쎄. 거기서 주기로 한 것 중에서 이런 것도 있는 건가?”
천유성이 보관하고 있는 마정석 중에선 평범한 마정석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 있었다.
“소, 속성 마정석!? 너…… 어떻게 그걸?”
진혁의 입에서 헛바람이 흘러나왔다.
아이템에 속성 마법을 부여하기 위해선 여러 가지 방법이 존재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최고의 효율을 자랑하는 게 바로 저 속성 마정석을 사용하는 거다.
망해 가던 깡촌 대장장이도 황실 대장장이의 뺨을 후려갈길 수 있었으니…….
그 성능이야 말해 봤자 입만 아프다.
“구마야?”
“모기!”
고구마가 걱정 말라는 듯 힘차게 대답했다.
그런데 어째서 천유성 품안에 쏙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다.
브레스의 빛이 이쪽으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마스터. 걱정 마라. 마스터의 생명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지켜 주겠다.”
“티본……?”
그래. 너밖에 없구나. 충실한 소환수는.
진혁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으려고 할 때였다.
“너는…… 저 녀석이 데리고 있던 언데드 소환수로군.”
“달그락! 그렇다. 나는 마스터의 소환수. 데스 나이트 티본이다! 충성심 하나로 이 자리에까지 왔……,”
티본이 당당하게 말을 이어가려는 찰나, 천유성이 크리스탈 잔에 우유 한 잔을 꼴꼴꼴 따랐다.
“너에게도 줄 게 있다. 7층, 천년 빙(氷) 목장에서 가져온 최고급 우유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목장 주인 말로는 그윽한 향이 탑 전체에서 제일로 치는 상등품이라고 하더군.”
“달그락. 냄새만 맡아도 골밀도가 올라가는 기분이다. 마스터가 주던 오우거 밀크와는 비교도 할 수가 없다.”
티본의 동공에 이채가 번뜩였다.
“그리고 아마 정령수들이라면…… 각 원소에 맞는 것들을 선호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만, 내가 틀렸나?”
천유성이 계속해서 아이템들을 늘어놨다.
운디네에게는 미용에 좋은 에트리앙 물을.
실피드에게는 바람의 가호가 깃든 드레스를.
살라맨더에게는 몰소몬 화산의 미지근한 불꽃이 주어졌다.
“주인. 그동안 고마웠다.”
“얼마 전에 인간들의 TV를 봤는데 거기서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을 들었다.”
“주인은 정말 좋은 주인…… 후우. 차마 뒷말을 못 하겠다.”
“죽어. 아니, 미안. 본심이 나와 버렸네.”
“다들 조용히 해. 머리 아파.”
정령수들이 1초의 고민도 없이 등을 돌렸다.
이럴 수가…….
저 지독한 검성 놈. 대체 언제부터 이런 밑 준비를 해 둔 거냐?
그렇게 잘해 줬는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때리려고 하다니.
탑 밖에서 생방송을 켜는 건 코인을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해서 거금을 투자해 이번 일을 계획했는데.
이대로 끝난다면 오히려 득보다 실이 더 많다.
그러나 가장 걱정되는 건 코인의 손실 따위가 아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했겠지? 응? 눈 피하지 말고 대답 좀 해 줘.”
“걱정 마라. 내가 전에 한 번 말했지? 수술을 하는 데 있어 사적인 감정은 끼워 넣지 않는다고.”
분명, 홍대에 있는 술집에서 그런 말을 한 적 있긴 한 것 같은데.
어째서 메스에 검강을 불어 넣는 건데?
무엇보다 메스를 그렇게 높게 치켜들면 완전히 찔러 버리겠다는 뜻 아니냐?
“집도는 완벽하게 해낼 거다. 칼질 한 번으로 끝내 주지.”
천유성이 보는 사람의 마음이 녹을 정도로 화사한 미소를 머금었다.
지금껏 쌓인 체증이 한 번에 가시는 듯한 그런 미소였다.
“언니.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 원래 독한 놈은 잘 안 죽거든.”
“유성아아아!”
진혁의 입에서 구슬픈 비명이 울려 퍼졌다.
***
눈부신 달빛이 비추는 정원.
탑의 규칙에서 벗어난 이곳엔 6명의 그림자가 모여 있었다.
신격들마저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탑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존재들.
바로 ‘상급 관리자들’이었다.
음영에 가려진 터라 들리는 것이라곤 오직 서로의 목소리뿐이었지만, 모두들 익숙한 듯 대화를 나눴다.
“오늘 전원이 다 모인다고 하지 않았나? 한 명이 비는데?”
7개의 돌로 만든 의자에 앉아 있는 이들은 6명뿐.
한 자리가 공석이다.
“북유럽 신격들과 이집트 신격들 사이에서 소규모 국지전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자벨 님은 그 사후 처리를 위해 자리를 비우셨고요.”
하스팅이 입을 열었다.
“전쟁인가? 하긴, 그 두 세력들은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긴 했으니까.”
“후우. 조용히 좀 살지. 해야 할 일이 또 산더미처럼 늘어나겠군.”
“상층부의 거대 세력들 중에서도 가장 호전적인 두 세력이 붙은 거니까요.”
여기저기서 불평 섞인 음성이 터져 나왔다.
탑의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상급 관리자들로선, 이런 대형 이벤트가 달갑지 않을 수밖에.
바로 그때.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가장 큰 그림자가 무거운 단어를 꺼내들었다.
“이번에도 이유는 ‘왕관’ 때문인 겁니까?”
왕관.
그렇다.
모든 분쟁의 이유이며, 탑에서 가장 중요한 성유물 중 하나.
탑의 정상으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7개의 왕관들을 모두 모아야만 한다.
하지만, 탑에 흩어져 있는 왕관들을 모두 모은 이는 없다.
7개의 왕관들 중 소유자가 정해진 왕관조차 5개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2개 이상의 왕관을 소유한 이는 단 한 명뿐이었다.
그렇기에, 무관(無冠)의 왕들은 탑을 부유하며 다시 한 번 정상에 오를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그렇겠지. 오딘이 왕관을 잃어버린 뒤로 북유럽 신격들의 영향력은 추락했으니까.”
“관리자가 7명인 것도 사실, 7개의 왕관을 수호하기 위한 거니까요. 정확히는 그 왕관이 자격이 있는 자들에게 가게 하기 위함이지만요.”
“뭐, 사실 누가 왕관을 갖든. 그 과정이 탑의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문제될 건 없다.”
“그래. 우리는 방관자이며 수호자이니까. 지켜보며 그 규칙을 어기는 자들에 대해서만 개입하면 될 뿐이지.”
그림자 하나의 시선이 하스팅에게 향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더군. 안 그런가? 하스팅.”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50층의 ‘그자들’이 움직인 흔적이 발견되었다. 마력의 잔향으로 미루어 보건대, 봉인이 깨지고 어딘가 틈이 벌어졌다는 뜻이겠지.”
“태고의 존재들이? 그 말이 정말입니까?”
“……분명, 그자들의 개입은 금지되어 있을 텐데요.”
“약속을 어겼다는 말인가?”
그림자들 사이에서 커다란 동요가 일어났다.
“마력의 잔향만으로 50층에 균열이 벌어졌다는 건 억측입니다. 너무 강대한 마력 때문에 결계 너머로 마력이 배어나온 것뿐. 그곳은 지금도 확실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제 이름을 걸고 약속드리죠.”
하스팅이 어깨를 으쓱했다.
“……정말인가?”
“아무렴, 제가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어차피 왕관을 모두 모을 수 있을 만큼 위협적인 존재는 없습니다. 신격도 거주자도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지요. 여러분들이 걱정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테니,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리 터무니없는 괴물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막강한 실력자들을 거느린 세력이라고 하더라도.
결코 7개의 왕관을 모두 모을 수는 없다.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영…….
“확실히…….”
“그런 이변을 만들 수 있는 자는 없긴 하지.”
“맞는 말이에요.”
그건 모든 상급 관리자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대전제였다.
***
탑 중층부에 위치한 무림.
제국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강력한 전력을 갖춘 이곳은 수많은 문파들로 구성된 하나의 거대한 연합체다.
현실의 중국과 거의 유사한 지역을 옮겨다 놓은 만큼, 과거에도 중국에 소속된 플레이어들이 주요 거점으로 삼은 곳이기도 했다.
20층대까지 올라온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지만.
며칠간 휴식을 취한 진혁은 드디어 이곳을 찾았다.
‘여기도 오랜만에 오니 굉장하긴 하네.’
수많은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룬 거대한 마을.
시끌벅적한 거리를 보자 비로소 새로운 층계에 진입했다는 게 실감났다.
“꽤 번화한 곳이군. 이쪽으로는 거의 와 본 적이 없었는데, 네 말대로 나쁘지 않구나.”
“주군, 여기서부터 꼬박 달포를 더 걸어야 십만대산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물론, 경공을 사용한다면 그 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고요.”
천유성과 월영이 각각 한 마디씩 덧붙였다.
진혁은 곧장 천마신교가 있는 십만대산으로 갈 계획이었지만, 천유성은 화산파로 가 추혼사영을 만난다고 했다.
검을 가르쳐주는 스승이 다르니, 목적지 역시 다를 수밖에.
‘가서 열심히 배워라.’
강해지고 강해지고 또 강해져라.
그래야 다음에도 먹음직스러운 스킬을 복사해 낼 수 있을 테니까.
[칼날의 호흡 – 패시브]입수 난이도: SS
내용: 검을 다루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검 역시 특유의 호흡을 갖고 있습니다. 이 스킬을 습득할 경우 자신이 소유한 검의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단, 스킬의 완성도와 수련의 경지에 따라 끌어올릴 수 있는 잠재력의 한계가 달라집니다.)
무기 자체의 랭크업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기적인 효과.
이번에 천유성을 만나서 얻게 된 스킬이다.
‘내가 통곡의 마녀와 싸우는 동안, 저 녀석은 이걸 얻기 위해 떠났지.’
검에 관련된 스킬을 최소한 10개 이상 보유해야 하며, 1만 시간 이상 검술을 익혔어야만 배울 수 있는 특징.
때문에 ‘칼날의 호흡’은 정상적인 루트로는 굉장히 입수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복사 조건을 통해 날먹이 가능하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말이다.
이렇게 보니 이 얄미운 검성 녀석도 꽤나 예뻐 보였다.
90일 뒤에는 또 다른 스킬을 헌납하러 찾아와 줄 테니까.
앞으로 세 번 정도만 좋은 스킬을 갖다 바치면, 한국대에서의 원한도 눈감아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말이지.
그때였다.
“다 좋은데, 어디 가서 뭐 좀 먹고 가면 안 돼? 어차피 이 층계에 있으려면 그 신분패인지 뭔지를 얻은 다음에 움직여야 한다며?”
기하학 무늬가 그려진 가면이 투덜댔다.
언노운, 아니 언노운 역할을 도맡기로 한 엘리스였다.
꼬르륵.
엘리스의 배에서 타이타닉이 출항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넌 조금 전에 주먹밥을 30개나 먹어 놓고 그런 말이 나오냐? 후식으로 우리 몫으로 둔 바닐라 아이스크림까지 혼자 다 해치운 거. 벌써 잊은 건 아니지?”
“바, 밥은 마음껏 먹어도 된다고 했잖아. 그리고 아이스크림은 가볍게 입가심한 거고.”
“아이스크림 4통이 입가심이라고?”
“원래 밥이랑 간식은 따로 먹을 수 있어. 그 달달한 캐러멜 마끼아또라는 것과 티라미수 케이크도 맛있더라고. 아 맞다. 다음엔 카페 같이 가 주기로 한 거 잊지 마!”
이쯤 되면 이 녀석은 뱀파이어인지 걸신인지 구분이 잘 안 간다.
하지만, 잠깐 쉬어야 한다는 건 동의한다.
이곳이 아니라면 당분간 맘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없을 테니까.
‘겸사겸사 신분패 확보도 해야겠지.’
무림이 지배하는 층계에선 반드시 ‘신분패’가 필요하다.
현대의 주민등록증 개념으로…….
이게 없다면 오대세가와 구파일방의 공적이 되며, 그 외에도 시스템 상 각종 페널티를 산더미만큼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곳은 곤륜파가 관할하는 곳인데, 어떻게. 역시 무관에서 가서 신분 증명 시험을 치를 거냐?”
천유성이 가장 기본적인 방법을 꺼냈다.
3급, 2급, 1급, 특급.
시험 결과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신분패의 종류도 달라졌고. 당연히 그 권한 또한 달라졌다.
높은 인정을 받을수록 편안하게 무림에 머물 수 있을 터.
“시험이라…… 물론, 봐야지.”
당연히 시험을 볼 생각이다.
단, 통상적인 시험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너…… 또 무슨 계획을 세우려고 그러는 거냐? 난 급수는 상관없으니 아무 신분패나 받기만 하면 된단 말이다. 설마, 이상한 짓으로 나에게 까지 피해를 줄 생각이라면…….”
“응? 아아. 걱정하지 마. 내가 너한테 피해를 입힐 리가 없잖아. 평범하게 볼 생각이야 아주 평범하게.”
진혁이 생긋 웃었다.
세상에서 가장 불안해 보이는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