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79)
280화. 고인물이 수련하는 법 (3)
‘찰그락…….’
쇠사슬 소리.
‘후우…….’
희미한 숨소리.
마지막으로 피부에 닿는 마력까지.
이곳이 바로 천마신교의 죄수들이 갇혀 있는 ‘뇌옥’의 심층부다.
진혁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좌우로 늘어져 있는 철창살과 그 안에서 중얼거리고 있는 인간들이 보였다.
‘밥도 제대로 안 먹이나 보군. 두 다리 쭉 뻗고 자는 것도 불가능하겠어.’
나갈 수 있는 기약 따윈 없이 죽는 날까지 이곳에서 머물러야 하는 형벌은 생각보다 더 처참했다.
바로 그때.
콰아앙!
진혁의 바로 앞에 있는 감옥에서 수염이 덥수룩한 노인이 괴성을 질렀다.
“내, 내보내다오!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내보내달란 말이다!”
그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킥킥킥!”
“크하하, 뭐야. 이게 얼마 만의 손님이야?”
“누군가 왔나 보군. 이젠 기감도 완전히 죽어 버렸어.”
“누군지 몰라도 여기서 탈출시켜 준다면 무림 전체를 주마! 부와 명예 그 모든 걸 약속하겠다!”
쾅! 쾅! 쾅!
콰아앙!
철창을 걷어차는 소리와 미친 듯한 광소가 뒤섞였다.
이 사람들도 한때는 강자의 위치에서 모두의 경외와 존경을 받았을 텐데…….
이래서 죄를 짓지 말고 살아야 하는 법인가 보다.
이런 녀석들을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어차피 뇌옥에 온 목적은 이 끝에 있는 상급 도깨비를 처리하기 위해서였으니까.
히든 퀘스트 역시 그곳에서 특정 단서를 찾으라는 뜻이 틀림없었다.
“이봐. 무시하지 말고 멈춰!”
“내가 누군 줄 아느냐? 찢어 죽이기 전에 당장 이거 열지 못해?”
얼씨구.
니들 같으면 멈추겠냐?
“저기, 어르신들. 괜히 목에 핏대 세워 봤자 성대만 나갑니다. 가뜩이나 피죽도 못 잡수시는 것 같은데……. 괜히 무리하시다가 고혈압으로 요단강 건너지 마세요.”
이거 보니까 만년한철을 섞어서 만든 특수 감옥인 데다, 심마사령이 직접 봉인한 듯한 부적까지 붙어 있다.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데.
덜컹!
“응……?”
감옥의 문이 동시에 개방되었다.
***
“마, 말씀하신 대로…… 마수 구역을 제외한 전 구역의 봉인……을 풀었습니다.”
뇌옥을 관리하는 뇌령단의 단주가 입을 열었다.
그의 앞에 놓인 거대한 옥구슬에선 현재 뇌옥 내부의 모습이 그대로 비춰지고 있었다.
“정말…… 괜찮은 겁니까?”
단주의 시선이 독고룡에게 향했다.
아무리 좌호법의 명령이라고 해도 이런 미친 짓을 하게 될 줄이야.
상식적으로 말이 되질 않았다.
“뇌령단주.”
“예, 예!”
“그대는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 천마께서 자리를 비우신 이때. 그분의 뜻을 대행하는 자가 누구인지 말이야.”
“그, 그거야 당연히…….”
뇌령단주의 눈빛에 공포가 스쳐 지나갔다.
폐관 이후 모습을 감춘 천마와 제멋대로 행동하는 암황.
사실상 천마신교를 이끄는 지배자는 정해져 있었다.
게다가 독고룡 옆에는 천마신교의 또 다른 10대 고수인 화룡자창(火龍紫槍) 채홍아까지 있지 않은가?
아무리 뇌령단주라고 하더라도 두 명의 10대 고수를 상대로 반발할 만큼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진 못했다.
“아무래도 저는 직접 내려가 봐야겠어요.”
채홍아가 적색 창을 어깨에 기댔다.
“직접? 죄수들로도 충분할 텐데?”
“지켜보는 것보다 직접 몸을 쓰는 게 낫거든요. 좌호법께 받은 패가 있으니 입구의 문만 열어주면 나머진 알아서 하죠.”
“흐음. 원한다면 그렇게 하게.”
독고룡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채홍아가 직접 나서준다면 이제는 아예 변수 자체가 없었다.
“뇌령단주. 문을 개방해라.”
목숨을 부지하려면 의문을 가져서도.
질문을 해서도 안 된다.
“……존명.”
말 잘 듣는 개만이 오래 살아남는다는 걸. 뇌령단주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 과연 어떻게 할 테냐?”
독고룡이 감옥에서 나오는 죄수들과 진혁을 바라봤다.
오랜 세월 갇혀 있어 쇠약해지긴 했으나, 이들은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무공을 보유한 고수들이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놈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을 터.
남은 건 죽음뿐이다.
***
콰아아앙!
동시에 공격을 받은 진혁의 몸이 한참이나 튕겨나갔다.
“푸하하하! 자유다, 자유라고!”
“이게 얼마 만에 몸을 푸는 건지 모르겠군. 킥킥킥!”
희번덕거리는 눈동자.
광기에 중독된 죄수들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진짜 가지가지 하네. 이젠 아예 막 나가 보자, 이런 뜻이냐.”
진혁이 재빠르게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조금 전까지 철창을 단단하게 봉인하던 부적들이 갈가리 찢긴 채 떨어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봉인을 풀어버린 것처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떤 놈들이 이런 일을 벌였는지 짐작이 갔다.
좌호법 사마자와 그를 따르는 떨거지들.
천마전에서 있던 일을 빌미 삼아 뇌옥에 있는 자들을 모조리 묻어버리려고 계획한 거다.
순순히 당해줄 생각은 없다.
[고유 능력 ‘검의 무덤’이 발동합니다!]우우우웅!
송곳니와 쌍룡검에 검은색 기운이 깃들었다.
칼날을 타고 무시무시한 검강이 완벽하게 그 형을 갖췄다.
“호오. 검강까지 쓸 줄 아는 놈인가?”
“무간지옥에 올 만한 놈이로군. 아주 재밌겠어.”
검강을 보고도 죄수들은 조금도 주눅 든 표정이 아니다.
오히려 익숙하게 자리를 잡으며, 포위망을 좁혀왔다.
‘전부 베어버리는 수밖에 없겠어.’
머뭇거리거나 어설프게 손속을 뒀다간 이쪽이 당한다.
결정을 내린 진혁이 먼저 움직였다.
횡으로 그은 검격이 단숨에 죄수 하나의 목을 노렸다.
콰아앙!
송곳니가 막혔다.
칼이 아닌 주먹에.
“강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너뿐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크나큰 오산이다.”
권강(拳罡).
주먹을 완전히 뒤덮은 묵빛 강기가 맹렬하게 타올랐다.
물론.
“그쪽이야말로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강기라고 해서 다 같은 강기는 아니야.”
힘의 균형이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갇혀 있던 죄수의 강기로는 검마의 강기를 버텨내기에 역부족이었다.
“……크으읍!”
자신만만하던 죄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 잠깐!”
다급하게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서걱!
송곳니가 목을 훑고 지나갔다.
깔끔하게 잘려나간 머리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동시에.
“덮쳐!”
나머지 죄수들이 움직였다.
전후좌우.
정면 승부로는 안 된다는 걸 알았기에, 합격진을 통해 틈을 찌르는 방식을 취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능구렁이들답게 치고 빠지는 솜씨가 일품이다.
“……골치 아프군.”
진혁이 어금니를 깨물며, 등 뒤에서 날아오는 각을 받아쳤다.
이번엔 목.
다음은 허리.
무기가 없어서 망정이지. 폭풍처럼 이어지는 연격에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숨 한 번 고를 새도 없이 진혁이 몸을 옆으로 날렸다.
콰아앙!
방금 전까지 있던 자리가 산산 조각났다.
‘……이건!?’
공중에 있던 진혁이 재빨리 송곳니를 휘둘렀다.
소리 없이 다가온 돌조각들이 그대로 쪼개졌다.
무음 암기술.
그러고 보니 여기엔 암살 계열에 특화된 죄수들도 있었지.
근접전만으로도 벅찬데, 거기에 원거리까지.
더불어 시간이 갈수록 몸이 제대로 풀리기 시작하면서 공격의 정확도와 날카로움이 처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예리해졌다.
하지만, 놀라고 있는 건 진혁만이 아니었다.
“이걸 전부 다 받아쳤다고……?”
“말도 안 돼. 이렇게까지 했는데, 상처 하나 못 입히다니.”
“천마신교에 11대 고수라도 나타난 건가?”
무려 서른에 가까운 고수들이 합을 맞췄다.
그런데도 죽이기는커녕 사소한 성과 하나 내지 못할 줄이야.
아니, 그뿐이면 말도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서로 간에 단순히 합을 주고받은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죄수들 측의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팔과 다리에 검상을 입고 전투가 불가능하게 된 자만 벌써 일곱이 넘는다.
이대로 간다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겠지.
무엇보다 간신히 얻은 자유를 이런 식으로 허망하게 날려먹고 싶지 않았다.
“……이봐.”
“그래.”
피를 보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했으나, 굳이 저 인간일 필요는 없었다.
뇌옥을 벗어나 무림으로 나간다면 얼마든지 손쉬운 먹잇감들을 찾을 수 있었으니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모두가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이거, 일이 꽤나 쉽게 풀릴지도 모르겠는데?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후후…… 당신, 생각보다 더 괴물이네요. 만약 위에서 얌전히 구경만 했다간 일이 완전히 꼬여버릴 뻔했어요.”
통로를 따라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다.
긴 생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여자.
일전에 천마전에서 본 기억이 있다.
‘갈수록 태산이네.’
숨겨진 통로라도 있던 모양이다.
정상적인 루트로 왔다면, 엘리스와 먼저 마주했을 테니까.
“채홍아라고 합니다.”
“정답게 자기소개나 하기엔 분위기가 너무 살벌한 거 아닌가? 너희들이 뭔가 장난질을 할 거라곤 생각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후후. 너무 차갑게 말하지 마세요. 이 중요한 때에 본교에 찾아온 당신이 잘못한 거니까.”
촤르르륵!
채홍아가 들고 있던 보따리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안에 있던 각종 무기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우리가…… 썼던…….”
“내 검이……다. 내 검이야!”
“흑조. 너를 다시 보게 되다니.”
죄수들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오랜 세월 손에 익었던 애병기를 다시 찾게 되었다는 사실에, 무인으로서의 감정이 꿈틀거렸다.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겠습니다. 저 인간을 죽인다면 그토록 원하던 자유를 드리죠. 평생 추격을 받지 않아도 되는, 완전한 의미의 자유를 드리겠다는 뜻입니다.”
“지, 진짜로? 그게 정말인가?”
“자유…….”
“크크크…… 죽이면 된다 이거지. 죽이기만 하면.”
갑자기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꼬리를 말던 사냥개들의 눈빛에 살기가 스며들었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게 이런 일인가 보다.
죄수들이 각자가 사용하던 무기를 쥔 채 진혁을 바라봤다.
음.
맨손이었다면 몰라도 이건 무리다.
채홍아까지 합세한 지금이라면 더욱더.
진혁이 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도망갈 생각인가요?”
“도망이라니! 작전상 후퇴라고 해 주면 고맙겠어.”
엘리스나 고구마가 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
하지만.
“지원을 기다리는 거라면 헛수고일 겁니다. 일행 분들이 있는 곳엔 조금 까다로운 도깨비들을 잔뜩 풀어놨거든요. 적어도 몇 시진 정도는 이곳에 오기 힘들 거예요.”
“이야. 완전히 외통수라는 건가.”
“서로 힘 빼지 말고 곱게 죽어 달라는 뜻입니다. 우호법께는 불의의 사고라고 잘 포장해 드리도록 할 테니 너무 아쉬워하진 마시고요.”
스승님한테 걸리든 말든 상관없다는 말투.
혹시나 했는데, 역시 이 자식들. 아예 천마신교를 송두리째 뒤엎을 계획을 하고 있다.
“뭐 하세요? 어서 시작하지 않고, 다들 자유가 그립지 않은 겁니까?”
채홍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쳐라!”
“이번에는 다를 거다. 아예 단숨에 쪼개주지!”
콰아앙!
카카캉!
검과 검이 격돌했다.
아까 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매서운 공격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진혁이 전신의 감각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채 방어에 몰두했다.
‘자상이야 별의 가호로 치유할 수 있다고 해도 다리만큼은 지켜야 해.’
포위되기라도 한다면 정말로 끝장이다.
진혁이 사각을 최소화할 수 있는 벽을 향해 도약했다.
그런데.
툭!
재빠르게 물러서던 진혁의 등이 벽에 닿았다.
정확히는 벽이라고 생각했던 철창에.
“뭐지?”
진혁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감옥 문은 전부 다 열린 것 아니었나?
가장 안쪽에 있는 곳으로 도망치려다 보니 잘 몰랐었는데, 자세히 보니 아직까지 닫혀 있는 철창들이 몇 개 있었다.
바로 그때.
“크르르…….”
감옥 안에서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포효소리가 들렸다.
이 녀석들은……?
호오.
이거 꽤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