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81)
282화. 야차(夜叉) (2)
“안 돼! 멈추거라. 멈추란 말이다!”
한 발 늦게 도착한 독고룡이 고함을 질렀다.
저 할아버지도 생긴 것과 다르게 목소리 한번 참 우렁차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봉인이 풀렸습니다!] [야차(夜叉)가 깨어납니다!]짧은 상태창과 함께.
콰콰콰콰콱!
야차의 양팔을 봉인하던 쇠사슬이 쪼개졌다.
“후우…….”
기둥에 묶여 있던 야차가 서서히 첫 호흡을 내뱉기 시작했다.
태산과 같이 느껴지는 거대한 압박감.
과연, 좌호법 사마자가 천마를 잡기 위해 준비한 히든카드답다.
‘이거…… 스승님이랑 비슷한 수준인 것 같은데?’
진혁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정제가 끝난 ‘도깨비 불’을 주입하지 못했기에 망정이지.
만약 놈들이 이 괴물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면 상황이 엄청나게 골치 아프게 됐을 거다.
물론, 야차가 도깨비 불에 세뇌당하든 당하지 않든, 놈이 가지고 있는 힘이 규격 외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지만.
“이, 이럴 수가…….”
“봉인이 풀……리다니.”
독고룡과 어느새 합류한 채홍아가 절망이 짙은 탄식을 내뱉었다.
지금까지 살얼음판 걷듯 준비해 온 대업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한 데다…….
과거의 악몽까지 재연되게 생겼으니 당연히 허탈할 수밖에.
“무슨 멍청한 짓을 한 거냐! 저 녀석을 잡아 넣는 데 우리가 얼마나 개고생을 한 줄 알고…… 빌어먹을! 야차가 날뛰면 또 다시 십만대산이 쑥대밭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거냐?”
십만대산이 쑥대밭으로 변한다라.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서 어쩌라고요?”
“뭐…… 뭐라고?”
“개판이 되든 산이 폭발하든. 그건 너희들 사정이지. 내가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합니까? 그리고 그렇게 걱정이 됐으면 애초에 죽이려고 수작질을 부리지 마시든가요.”
양심에 융털이라도 났으면 저런 말을 할 수가 있나?
죽이려던 놈한테 자기 집 안방까지 보호해 달라고 하네.
“하, 하지만 우호법도 본교의…….”
“이야. 하다하다 이젠 애먼 남의 스승님까지 파시려 하네. 그거 아십니까? 제가 아는 스승님 성격이라면 자기 목숨 죽이려는 놈을 당장 죽여 버리지 뭔 대화를 하고 있냐고 혼내실걸요?”
“…….”
구구절절 옳은 말에, 독고룡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딴 놈 말에 일일이 말려들지 마세요. 저 녀석이 나가기 전에 막는 게 우선입니다.”
채홍아가 창을 앞으로 뻗었다.
“그래…… 알고 있다.”
독고룡이 진혁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그리고 품속에 감춰 두었던 푸른색 불꽃을 움켜쥐었다.
화르륵!
숨 막힐 듯, 영롱한 빛을 내며 타오르는 불꽃.
바로, ‘도깨비 불’이다.
정제가 완벽한 건 아니었어도 효과가 아예 없지는 않을 터.
어떻게든 이걸로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
바로 그때.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야차를 묶어 둔 기둥이 통째로 박살났다.
“캬아아아!”
쩌렁쩌렁 울리는 굉음.
자유를 되찾은 야차가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탄성을 내뱉었다.
아직까지 양팔에는 쇠사슬이 묶여 있었지만, 그런 것 따위는 짐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촤르르륵!
쇠사슬이 지면을 휩쓸어버리자 뿌연 먼지가 일어났다.
풍압만으로도 내상을 입을 만큼 무지막지한 기지개다.
야차의 시선이 독고룡과 채홍아에게 향했다.
“오오! 일어나자마자 먹잇감 발견! 두 놈은 그 버러지 자식을 따르는 졸개들이잖아? 이름이 뭐였더라? 사하…… 사마. 그래. 사마자. 그 자식.”
이미 한 번 싸워 본 적 있는 상대.
동시에.
자신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겨 준 원수다.
“여전히 좌호법인지 뭔지 하는 그 재수 없는 놈의 밑구녕이나 핥아대고 있는 거냐?”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네놈 따위의 마수가 함부로 입에 담을 분이 아니시다.”
“그래그래. 너흰 참 한결 같아서 좋네…… 응?”
이죽이던 야차의 시선이 또 한 명에게 향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천마신교의 고수들이라면 야화의 밤 때 전부 봤을 텐데?
뭐지, 새로운 놈인가?
야차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뭔가…… 달라.’
단순히 강하고 약하다는 측면이 아니다.
표현하자면 그렇다.
위화감.
짙은 위화감이 본능을 기분 나쁘게 자극하고 있었다.
“너…… 재밌는 놈이로군.”
야차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이렇게나 흥분이 되는 건 오랜만이다.
좌호법…… 아니, 천마와의 대결 이후 처음이지.
“부탁인데, 내 기대가 틀린 게 아니었으면 좋겠군.”
촤르르르륵……!
쇠사슬이 하늘 높게 솟구치는가 싶더니.
이내 진혁의 머리를 박살낼 듯 내리 꽂혔다.
콰아아앙!
지면이 걸레짝마냥 갈라졌다.
단순한 공격만으로도 대형종이 날뛰는 것 같은 충격이 느껴졌다.
이거에 맞았다간 사람 하나쯤은 형체도 남기지 못하고 으깨져 버릴 거다.
그런데.
“호오?”
정작 중요한 손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두개골이 쪼개지는 그 맛이.
카가가각!
‘흑천마황공’을 발현한 진혁이 맨 손으로 쇠사슬을 움켜잡고 있었다.
너무나 태연한 얼굴을 한 채.
“좋아. 실망할 일은 없겠어.”
더 이상의 미사여구 따윈 필요 없다.
강하다.
“어이, 이 녀석은 뭐냐? 천마신교에 새롭게 입교한 자인가?”
“입교라니! 웃기지 마라! 그 자식은 우리를 방해하는…….”
“아니, 저희가 새로 영입한 고수가 맞아요.”
채홍아가 독고룡의 말을 끊었다.
“채홍아 단주, 그게 무슨……?”
독고룡이 물었지만, 채홍아는 자신에게 맡겨 달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정도는 손쉽게 제압할 수 있는 후배이니 아마, 상대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거예요. 물론, 당신이 예전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죠.”
“예전만큼의 힘을 갖고 있다면? 하! 그딴 말로 날 도발하겠다는 거냐? 대체 날 뭘로 보는 거지?”
야차가 대번에 혀를 찼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저 녀석이 저런 말에 속아 넘어갈 정도로…….
“당연히 딱 봐도 내가 더 강하구만 어디 그런 말로 날 흔들려고. 아무리 심리전을 걸어 봤자 나에겐 안 된다.”
……멍청했지.
잊고 있었다.
단순무식하게 힘만 세고 지능이 부족해서 과거에도 사마자의 계략에 속아 생포당했다는 걸.
시간이 지나서 뇌가 굳었으면 굳었지, 말랑말랑해지진 않은 모양이다.
진혁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잠깐 어째서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는 건데? 딱 봐도 저 녀석들 시간 벌려고 그러는 거잖아. 날 상대하는 동안 지원 병력이든 아니면 다른 준비한 게 있을 거라고.”
“흠.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군.”
“그치? 그러니까…….”
“하지만, 나는 지금 당장 너와 놀고 싶다. 무엇보다 귀찮은 날파리들이야 아무리 몰려와도 다 쳐죽이면 될 뿐이야.”
“…….”
말이 안 통한다.
아니, 처음부터 안 통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본능이 먼저 꿈틀대는 놈에게 대화를 시도한 것 자체가 잘못된 거겠지.
욕설이 목구멍까지 솟구쳤지만, 이미 대화를 주고받을 시간은 끝났다.
촤르르륵!
잔뜩 흥분한 야차가 재차 쇠사슬을 움직였다.
“신명나게 놀아보자꾸나. 그동안 참고 참아온 내 몸이 만족할 때까지!”
“간신히 천유성을 떼어 놨더니. 마초 버전의 천유성이 튀어나오다니. 내가 무슨 업을 이리 많이 쌓은 건지…….”
“크하하하!”
이어진 것은 미친 듯이 몰아치는 쇠사슬의 폭풍이었다.
보통이라면 사슬의 시작하는 손목부터 끝에 있는 쇳덩이까지 순차적으로 궤적이 보여야 정상이지만…….
야차의 쇠사슬은 아예 그 움직임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질량 자체를 무시해버리는 듯.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른 속도다.
콰앙!
진혁이 반사적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저릿저릿!
마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음에도, 뼛속까지 울린다.
이번엔 옆.
부우우웅!
이건 피하지 못한다.
“흡!”
콰아앙!
진혁이 어깨를 꺾어 옆에서 날아오는 두 번째 쇠사슬을 받아냈다.
아니, 받아냈다고 생각했다.
순간, 몸이 지상에서 몇 십 센티미터 떠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반대쪽 벽을 향해 날아가 버렸다.
후두둑…….
반파된 벽에서 바위조각이 떨어졌다.
‘두 번 받았다간 어디 한 군데 부러지겠네.’
진혁이 툴툴대며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마지막 순간, 검마제왕보를 통해 충격을 흡수하지 못했더라면 새우등이 되어 버렸을 거다.
그나마 먼지로 인해 시야가 흐려진 탓에 숨을 고를 시간을 번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그런데 바로 그때.
감각에 무언가 잡혔다.
야차가 아닌 후방에서다.
‘이건 설마?’
독고룡의 소매 안자락에서 느껴지는 뒤틀린 마력.
‘도깨비 불’이다.
처음에는 워낙 희미해서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선명해지는 마력에 심증은 확신으로 변했다.
그런 거였나.
지원을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놈들에게 그런 선택지는 없었다.
‘리스크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어떻게든 야차를 손에 넣으려는 생각이었어.’
혹여나 정제가 불완전한 도깨비 불로 야차를 세뇌할 수 있다면 완전히 거저먹는 장사다.
실패해봐야 잃는 것도 없을 터.
‘내가 피똥 싸는 동안 너희는 뒤에서 날로 먹겠다 이거냐?’
그렇게 놔둘 순 없지.
이렇게 된 이상 아예 난전으로 끌고 간다.
툭!
‘진혁이 재차 몸을 날렸다.
눈을 부라리며 진혁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던 야차가 곧바로 반응했다.
“어딜!”
쇠사슬이 마력의 잔향을 쫓아 움직였다.
그런데.
“헉!?”
“이 망할 애송이가!”
진혁이 향한 곳은 독고룡과 채홍아가 있는 사이였다.
“혼자선 힘든데 같이 좀 싸우죠. 뒤에서 구경만 하지 말고.”
진혁이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1초 남짓한 찰나 뒤.
콰콰콰콰콰콰!
쇠사슬이 세 사람이 있는 장소를 그대로 쓸어버렸다.
***
콜록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독고룡과 채홍아가 갑작스러운 공격에 노출되었고 덕분에 난데없는 날벼락을 그대로 얻어맞아야 했다.
“이, 망할 놈이…….”
“정말 명예나 긍지 같은 건 손톱만큼도 없군요.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이야.”
채홍아가 창으로 공격을 상쇄시키긴 했지만, 충격까지 완전히 흡수하진 못했다.
덕분에 독고룡이 애써 준비하던 ‘도깨비 불’의 기운이 흐트러졌다.
화가 난 건 야차도 마찬가지였다.
“짜증나는 놈이네. 어이, 재미없게 굴지 말고 제대로 싸우지 못해? 왜 힘을 숨기면서 김빠지게 구는 거야? 엉? 내가 우스워?”
야차가 뾰족한 치아를 드러냈다.
그러자.
“널 우습게 본 건 아니야. 나도 이것저것 시험해 볼 게 있었거든.”
파편 속에서 진혁이 나타났다.
“시험해 볼 게 있다고? 날 상대로?”
“그래. 무림에 왔으면 무공 수련을 해야지.”
고유 능력과 스킬을 동원해 싸울 수도 있겠지만, 글쎄.
그렇다면 애써 천마신교에 올 필요는 없었을 거다.
스승님의 독문 무공 ‘흑천마황공’.
그걸 대성하기 위해.
그리고 스승님조차 가지 못했던 마지막 영역에 들어가기 위해.
이곳에 왔다.
단순히 적을 쓰러뜨리고 난관을 넘어서는 것 외에도, 탑의 정상을 보기 위해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는 이야기다.
“일부러 무공만 사용한다라……. 기가 막히네. 그런 어중간한 힘으로 날 상대하겠다니 진심이냐?”
“솔직히 말하면 쉽진 않을 것 같은데, 내가 쉬운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말이야.”
진혁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신호탄이 되었다.
“하하하. 염병할. 이게 도깨비 인내심 제대로 긁네, 이거. 좋아, 그렇다면 내가 제대로 놀게 만들어 주지.”
계속해서 장난기를 보이던 야차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본격적으로 할 셈이다.
[야차가 Lv?? ‘이매망량(魑魅魍魎)’을 발동합니다!]시야가 변한다.
짙게 물든 보라색 구름이 피어오르면서 흉흉한 기운이 내부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킥킥킥!”
“캬하하!”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들린 건 바로 그때였다.
운무 사이로 샛노란 한 쌍의 눈동자들이 점멸했다.
이매망량(魑魅魍魎).
“도깨비 나라에 온 걸 환영한다.”
최하급 도깨비부터 거대한 덩치를 지닌 상급 도깨비까지.
군대를 연상케 하는 수많은 병력들이 야차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이 빌어먹을 인간 놈들아.”
이것이 도깨비들의 왕.
동양의 신비를 재현하는 마수.
야차(夜叉)다.
동시에.
“왕 치곤 초라한 수준의 군대로군.”
[흑천마황공(黑天魔皇功) ‘제1식(第一式)’…….]검은 식(式)이 진혁의 부름에 따라 그 형(形)을 갖춰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