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87)
288화. 상급 관리자
“내기라고요? 수수료를 걸고 말씀입니까?”
“수수료만 걸고 하면 재미없으니 조금 더 추가를 하도록 하는 게 어때요? 제가 지면 수수료를 2배로 지급하겠습니다. 또한 릭 씨의 질문에 한 가지 대답해 드리도록 하죠.”
“호오. 그건 꽤나 흥미롭군요.”
릭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닳고 닳은 중간 관리자에게 있어 변칙이란 언제나 즐거운 법.
하물며 그것이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플레이어에 관한 거라면 더할 나위 없는 오락 거리다.
수수료야 둘째치더라도.
궁금한 거야 산더미만큼 있다.
가령, 중층부 최강의 보스 몬스터 중 하나인 야차를 잡고 얻은 세트 아이템을 어째서 생소한 무기로 바꿨다든지.
어떻게 처음 탑을 오르는 플레이어가 오히려 거주자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다든지.
그리고 가장 궁금한, 이번에 닥치게 될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 건지에 대한 질문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떤 내기입니까?”
릭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제가 지금부터 게이트 하나를 열 건데, 이게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아맞히기만 하면 됩니다. 릭 씨가 지면 앞으로 평생 거래 수수료를 면제해 주는 조건으로요.”
“하하하. 이거 농담이 지나치시군요. 설마, 제가 모르는 게이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러니 내기를 하자는 거죠.”
진혁이 생긋 웃었다.
적당한 도발로 호기심을 유발하는 건 덤이다.
“……좋습니다. 일부러 이 릭 헤네시에게 자산을 기부해 주신다고 하는데, 수수료 2배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바로 그 순간.
파츠츠!
두 사람 앞에 푸른빛에 가까운 녹색 게이트가 열렸다.
“이, 이건……?”
릭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겠지.
이런 게 존재한다는 건 과거 탑의 정상을 보았을 때도 몰랐으니까.
하물며 중급 관리자인 릭이 아무리 수완이 좋고 정보력이 뛰어나다고 한들 알아볼 리가 없다.
검은색 테두리를 따라 보라색 룬어들이 나타났다.
상급 관리자들의 방으로 가는 게이트.
바로 ‘그림자 게이트’다.
우우우웅!
게이트의 표면이 완전히 개방되고 나서야 릭은 이 게이트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눈치챘다.
“거래 수수료를 면제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진혁 님…… 당신은 대체…….”
릭이 말을 더듬었다.
그러다 이내 자조 섞인 실소를 내뱉었다.
“여전히 간과하고 있던 건 저였나 보군요. 다른 사람도 아닌 진혁 님을 상대로 하는 내기였는데 말이죠.”
역시나, 재미있는 플레이어다.
아마, 이 남자라면 그분들을 상대로도 주눅 드는 일이 없겠지.
아니, 오히려 몰리는 쪽은 상급 관리자들이 될지도 몰랐다.
“부디, 이야기를 잘 하고 오시길 바라겠습니다. 탑을 오르는 자시여.”
릭이 중절모를 벗으며 허리를 깊이 숙였다.
“다녀올게요.”
진혁이 발걸음을 옮겼다.
***
저벅…….
일렁이는 표면을 통과했을 땐.
눈에 보이는 모든 광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앙상한 나뭇가지와 쌓여 있는 눈 그리고 숲속 한가운데 있는 작은 오두막.
마치, 북유럽을 연상케 하는 장소가 나타났다.
[상급 관리자 ‘벤디비아’의 영역에 입장하셨습니다.]‘드래곤이라도 날아다니는 곳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외견은 평범하네.’
진혁이 천천히 주위를 살폈다.
이곳에 온 건 처음이다.
솔직히 말해 상급 관리자 중 하나의 거처에 오게 될 날이 오리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빠르게 고동쳤다.
문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전신의 감각이 극도로 곤두섰고 몸은 언제라도 튀어나갈 수 있게 수축됐다.
‘상급 관리자라면서 마력이 아예 느껴지지도 않는 건가.’
물론, 마력이 없는 게 아니다.
인간이 초음파를 듣지 못하듯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마력은 체감할 수조차 없는 것뿐이지.
바로 그때.
“들어와. 문 열려 있으니까.”
오두막 안에서 얇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일단은 시작이 나쁘진 않다.
적어도 남에 집 안방에 들이닥쳤다고 공격부터 날려대는 건 아니었으니까.
덜컹!
진혁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후욱하고.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모닥불을 피워 놓은 오두막 내부엔 검은 피부가 인상적인 여성 엘프가 앉아 있었다.
다크 엘프. 정확히는 다크 엘프들의 시초 격이라 할 수 있는 존재다.
“이야. 길을 잃어버려서 한참 헤매고 있었는데, 덕분에 따뜻하게 불을 좀 쬘 수 있게 됐네요. 하마터면 얼어 죽을 뻔했습니다.”
“하…… 넉살도 좋군. 아주 뜨거운 수프에 담요라도 달라고 하지 그러냐?”
“음? 그것까진 바라지 않았는데, 정 그러시다면. 전 소시지를 엄지 두께로 썰고 완두콩을 넣은 크림수프에 사슴 모피로 만든 담요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피부가 예민한 아기 피부라 수사슴 말고 암사슴으로 만든 모피로 부탁드려요.”
“…….”
진혁의 말에, 관리자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중간 관리자 놈들이 골 때리는 플레이어가 한 명 들어왔다고 하더니. 네놈이었나 보군. 젠장. 아주 기가 막힌 놈이 들어왔어.”
벤디비아가 혀를 찼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있는 와인을 잔에 콸콸콸 부었다.
“헛소리는 이쯤에서 집어치우고 상급 관리자들 중에 왜 날 골랐는지나 말해 봐. 시간이나 질질 끌면서 간보는 건 딱 질색이니까.”
그림자 게이트는 선 지명식.
다시 말해 원하는 상급 관리자를 정한 다음 그곳으로 가는 방식이다.
게이트를 활성화시킨 순간, 진혁의 눈앞엔 7명의 관리자들이 나타났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고른 이가 바로 다크 엘프 ‘벤디비아’였다.
여기서 첫 질문을 잘 넘겨야 한다.
상급 관리자들이란 워낙에 변덕이 심한 놈들이었으니까.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어차피 상급 관리자분들에 관해 주어진 정보는 이름과 종족뿐. 그렇다면 가장 합리적인 종족인 다크 엘프 분하고 대화를 나누는 게 가장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벤디비아 님이라면 같은 편이라고 감싸거나 하진 않을 테니까요.”
“같은 편을 감싸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뜻이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쪽 분들 중에 한 명이 선을 넘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세게 말이죠.”
“…….”
와인을 홀짝이던 손놀림이 멈췄다.
설마, 이런 것까지 알고 있으리라곤 예상하지 못한 얼굴이다.
“제가 아는 관리자들은 탑의 규율을 수호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특정 세력과 결탁한다면 그건 더 이상 관리자라 부를 수 없지 않겠습니까?”
“원하는 게 뭐야? 빙빙 돌리지 말고 말을 해.”
“관리자가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다 할 수 있게 만들겠습니다. 그러니 도와주세요.”
관리자가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만든다라…….
꼬집는 말이 아프다.
이건, 도와주지 않으면 벤디비아 역시 관리자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말이었으니까.
“건방져. 플레이어 주제에 우리의 역할에 대해 함부로 논하다니.”
벤디비아의 입에서 뾰족한 송곳니가 보였다.
순간, 오두막 전체의 온기가 사라진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났다.
상급 관리자가 층계에서 벗어난 본거지에서 살기를 드러냈으니, 당연히 뼛속까지 시릴 수밖에.
하지만, 압박감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당돌한 게 마음에 들어.”
벤디비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래 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우리는 개입하지 않아. 허나, 그건 자연스러운 흐름일 때의 이야기긴 하지.”
“도와주겠다는 말씀입니까?”
“도움이라…… 날 너무 과대평가하네. 지금 균열에서 나오려는 존재는 상급 관리자들도 어떻게 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야. 우리도 어거지로 한 층계에 묶어 두고 있는 게 고작이거든. 때문에, 그 녀석이 막상 튀어나온다면 정해진 시간이 지날 때까지 방치할 수밖에 없어.”
그렇겠지.
그래서 시스템도 단지 ‘살아남으라’는 퀘스트를 부여했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몇 가지 조건만 충족된다면, 벤디비아 님이 말씀하신 ‘시간’을 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이와 같은 일을 겪은 적이 있었다.
그때에도 지독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갖은 고생을 하긴 했지만…….
살아남았다.
살아남아 다음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겪어 보지 않았으니 그리 자신만만하게 할 수 있는 거야. 아니, 그보다 대체 어떻게 이토록 차분할 수 있는 건데? 보통은 말도 안 되는 일이 닥치면 분개하거나 절망하는 게 인간의 본성 아니었어?”
“시련의 탑이 제멋대로인 데다 불친절한 건 맞습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을 시키는 건 아니에요.”
“정말 특이한 인간이긴 하네. 역대 탑을 등반했던 거주자들 중에서도 그런 식으로 생각한 놈은 한 명도 없었는데……. 그럼,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도 들어볼 수 있을까?”
마지막 질문.
진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탑은 누군가 정상에 오를 수 있기를. 이 세계의 마지막에 도달할 수 있기를 그 누구보다 바라고 있으니까요.”
이것이 맞는 대답인지 모른다.
벤디비아의 마음에 들었는지 아닌지 역시 모른다.
그렇기에 속에 담은 진심을 담담하게 말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기에.
“16층 하루 클리어.”
“……!”
“뭘 놀란 표정을 지어? 만약 네 말대로 자신이 있다면 16층의 보스를 하루 만에 처리해 봐. 그렇게 한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이걸 주지.”
벤디비아의 품에서 오묘한 빛을 뿜어내는 보석이 튀어나왔다.
‘갈망의 영혼석’.
혼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특수 아이템.
크기로 보면 대략 중급 사이즈다.
적어도 몇 시간은 미친 듯이 싸워대도 충분한 양이라는 뜻.
“필요한 게 이거지? 품에 지닌 그 무기에 쓰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상급 관리자 ‘벤디비아’의 자격 증명 시험]내용: 홀로 16층의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고 17층으로 가는 길을 해방시키십시오.
조건: 솔로 플레이(보스를 잡는 데 한정함) / 23h:59m:59s
보상: 갈망의 영혼석(4h)
눈앞에 나타난 상태창.
멸망의 좌에게 살아남을 수 있는 첫 번째 관문이 시작되었다.
“하루. 알겠습니다.”
진혁이 퀘스트를 수락했다.
오두막을 나서기 전. 벤디비아가 한 마디 덧붙였다.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등반자들을 봐 왔어. 제국도 무림도 각 신화의 속한 신격들도. 정령계와 마족 그리고 천족들도 모두 탑의 정상을 볼 거라 자신했었지. 그래서 꽤 기대했었어. 누군가는, 어떤 세력은 탑의 정상에 오를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씁쓸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금 꼴을 보면 알겠지만, 그 모든 세력과 랭커들은 정상을 보는 데 실패했어. 이제는 각자의 영역이나 지키고 확장하면서 땅따먹기를 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지.”
그렇기에.
관리자들 역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타협한 거다.
이제는 기대를 버리고 시스템과의 계약에 따라 매일같이 같은 삶을 반복해 나갈 뿐.
“하지만, 어쩌면…… 너는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
시련의 탑 16층은 층계 전체가 거대한 열대 우림 지대로 구성되어 있다.
층계 자체의 크기는 50층 중에서도 가장 작은 편에 속했으나, 각종 식인 식물과 곤충형 마수들은 물론, 덥고 습한 환경까지.
모든 것들이 플레이어들의 생존을 위협했다.
때문에, 몇날 며칠을 헤매도 16층의 보스 몬스터가 있는 곳까지 도달하기 힘든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도전자가 있을 줄이야.’
진혁이 유적의 입구를 바라봤다.
다수의 인원이 보스가 있는 유적 내부로 들어간 흔적이 보였다.
‘스무 명 정도인가.’
유적 밖에는 타이탄 길드를 상징하는 거대한 바위 거인 문양이 새겨진 깃발이 꽂혀 있었다.
자신들이 이곳에 먼저 입장했으니, 레이드가 실패하기 전까지 다른 길드의 입장을 금한다는 표시다.
15층을 클리어한 이후, 줄곧 중층부의 제국과 무림에 신경을 집중하느라 몰랐었는데.
‘그래도 완전히 놀고 있던 건 아닌가 보네.’
이곳까지 올 정도면 꽤나 탄탄한 공격대를 갖췄다는 뜻이다.
물론, ‘탄탄하다’는 정도로는 유적의 끝에 도달할 수 없다.
중간의 네임드 몬스터들까지는 몰라도 보스에게 만큼은 무리리라.
‘보스는 혼자서 쓰러뜨려야 한다고 했으니 조금 서둘러야겠어.’
그런데 바로 그때.
“키릭!”
“쉿! 쉿!”
쇳소리와 함께 거대한 뱀 한 마리와 거미 한 마리가 나타났다.
‘유적 주위에서 배회하던 놈들인가.’
군침을 뚝뚝 흘리며 다가오는 게 그냥 보내 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때마침 잘됐다.
그렇지 않아도 손을 풀 거리가 필요했는데, 이렇게 된 김에 연습 게임을 한다고 생각해야지.
진혁이 ‘아공간 인벤토리’를 활성화시켰다.
“오랜만에 사용하는 거라 깔끔하게 끝내 주긴 힘들 것 같아. 제어가 잘 안 될 것 같거든.”
일렁이는 공간 너머, 기존에 쓰던 무기 대신 꽤나 이질적인 무기가 나왔다.
철컥!
철컥!
독특하게 생긴 두 자루의 권총이 장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