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88)
289화. 속사(速射)의 랭커 (1)
시련의 탑에는 수많은 무기들이 존재한다.
검, 칼, 창, 활, 둔기 등을 시작으로 각종 마도구와 성유물까지.
그야말로 온갖 것들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까다롭다고 정평이 나 있는 무기가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가 바로 ‘총기류’였다.
실제로 수많은 플레이어들 중 ‘총기류’를 주력으로 쓰는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반 탄환은 마수에게 먹히지 않았기에, 마력을 이용한 탄환만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마력탄은 가격도 무척이나 비쌀 뿐더러 재장전에 시간도 걸린다는 단점까지 있었다.
물론, 한국의 게임 페인들 덕분에 체내의 마력을 합성해 마력탄을 만드는 방법이 반짝 유행하기도 했었지만.
마력 합성 과정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까다로웠던 탓에 유행은 얼마 가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두 번째가 바로 연검의 일종인 사복검(蛇腹劍)이다.
예측 불허의 궤도.
사용자마저 다치게 할 수 있는 위험성.
무림인 중에서도 이걸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일반 플레이어들이 이 무기를 사용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대부분 멋에 취해 골랐다가 마수보다 스스로의 검에 베여 죽는 경우가 더욱 많았으니까.
하지만.
남들이 치를 떨며 선택하지 않는 무기를 고집한 랭커가 있었다.
저벅.
주력은 양손에 쥔 한 쌍의 권총. 그리고 이를 보조하는 건 허리춤에 찬 사복검이다.
진혁이 두 마리의 마수 앞으로 걸어갔다.
“키에에에!”
거미의 벌어진 아가리에서 녹색 액체가 뿜어졌다.
산성 액이 시큼한 냄새를 풍기며 일대를 휩쓸어버렸다.
치이익!
그러나 녹색 액체가 땅을 녹이고 있을 땐 이미 진혁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키에?”
나타난 곳은 거미의 가슴 아래.
타앙!
권총에서 붉은 섬광이 뿜어졌다.
[파랑색 등급 ‘크루거(권총형)’의 특수 효과 ‘초정밀 사격’이 개방되었습니다.] [내용: 동일한 지점에 동일한 힘의 공격을 가할 경우 크리티컬이 100% 확률로 발동됩니다.(오차 범위 0.015%)]극한의 곡예를 요구하는 조건.
크루거는 실전용이 아닌 장식용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무기였다.
물론, 진혁에게 있어 그런 조건들 따윈 있으나 마나 한 거였지만.
게다가 릭이 특별히 파랑색 등급까지 강화시켜 줬기에, 무기의 기본 데미지 자체가 1만이 넘었다.
퍼억!
단단한 외피를 뚫고 튀어나온 붉은 빛줄기가 반대편으로 솟구쳤다.
“키에에에!”
몸의 일부가 사라져버린 상황에서도 거미는 곧장 앞발을 휘둘렀다.
어지간한 상처에는 계속해서 공격할 수 있는 곤충형 몬스터들은 완전히 숨통을 끊지 않으면 안 된다.
날카로운 발톱이 날아오는 각도에 맞춰.
카가가각!
권총에 달린 칼날이 그 궤도를 틀어 버렸다.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찰나.
거미의 턱 바로 아래 총구가 닿았다.
퍼퍽!
이번엔 섬광이 거미의 머리통을 완전히 박살내 버렸다.
‘후우.’
진혁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꿈틀하고.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 손끝을 타고 권총에까지 이르렀다.
[빙결탄(氷潔彈)이 완성되었습니다!] [화염탄(火焰彈)이 완성되었습니다!]체내 마력 합성.
순식간에 2종류의 속성 탄환이 만들어졌다.
바로 그때.
부우웅!
날카로운 꼬리가 진혁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빠른 움직임이다.
“인간…… 녹여…… 먹어 준다.”
도검을 연상케 하는 날카로운 이빨에선 투명한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보통 뇌가 있으면 도망부터 갈 텐데, 뭐, 그 호전성 때문에 이곳을 지키고 있는 거겠지만.”
양손에 하나씩.
권총이 동시에 불을 뿜었다.
파아아앙!
불과 얼음이 한 자리에 뒤섞이면서 자욱한 수증기가 일어났다.
“이런…… 눈속임……으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가려진 시야 속 코브라가 본능적으로 혓바닥을 내밀며, 체온을 감지하려 했다.
저 번쩍이면서 빠른 섬광은 위력적이긴 했으나, 특유의 유연한 움직임으로 흔든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다.
그 사이에 이빨을 박아 넣고 독액을 주입할 수만 있다면…….
가능하다.
‘열 번 정도만 피하면…… 돼.’
분명, 인간들이 주로 사용하던 무기 중 하나인 ‘화살’이라는 것과 유사한 무기였다.
공격과 다음 공격 사이에 공백이 존재한다는 치명적인 약점.
그 틈을 파고드는 것쯤이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멍청한 거미 녀석 따위와 똑같이 생각한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촤촤촤촤촤!
코브라의 몸이 지면을 스치듯 움직였다.
퍼벅!
땅에 박히는 탄환.
한 발.
퍽! 퍽! 퍼퍼퍽!
두 발. 세 발…… 여섯 발…… 열두 발.
이걸로 끝이다!
그런데.
퍽!
총격은 끝나지 않았다.
수증기를 뚫고 또 다시 섬광이 빗발쳤다.
아까보다 더욱 굵고 선명한 빛이 폭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무슨……?”
노란 동공에 셀 수 없이 날아오는 탄환들이 맺혔다.
“나름대로 지성이 있는 것 같으니 한 가지만 알려 주지.”
생소하고 불리한 무기라도 최강의 자리에 오를 수 있던 이유.
그것은 각종 속성 탄환을 만들 수 있는 능력 때문도.
관통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취약점을 찾아내는 것 때문도 아니다.
“나한테 딜레이 따위는 없어.”
속사(速射).
마력을 합성해 탄환으로 변환시킨 뒤, 그걸 발사하기까지 과정이 채 1초가 걸리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과거, 검성의 칭호를 받은 천유성조차 쩔쩔매게 만들었던 바로 그 능력이었다.
콰콰콰콰!
올 크리티컬.
빛줄기가 마치 가시처럼 비늘을 뚫어 버렸다.
그런데.
[블랙 코브라가 Lv18 ‘탈피(脫皮)’를 사용합니다!]벌집이 되기 바로 직전, 코브라가 껍질을 벗고 뒤로 도망쳤다.
지성체답게 포기하는 것도 빠르다.
비겁하다기 보단 상황 판단이 좋은 거겠지.
그러나.
진혁은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놈을 순순히 놓아 줄 생각이 없었다.
츠츠츠츳!
권총 대신 이번엔 허리춤에서 장검 한 자루가 뽑혔다.
[사복검 ‘적린(赤鱗)’이 깨어납니다!]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던 장검에 마력이 깃들자, 검이 순식간에 쪼개지며 늘어났다.
지면을 가로지르며 잔영을 남기는 칼날들은 마치 한 마리의 뱀과 같았다.
뱀이 뱀을 쫓는다.
흙과 바위가 모조리 잘려나가더니 순식간에 코브라의 뒤를 따라잡았다.
“겨우 검…… 따위에 잡힐 것…… 같으냐!”
코브라가 방향을 급회전했다.
유연한 뱀의 특성답게 그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츳!
사복검 역시 궤도가 틀어졌다.
살아 숨 쉬는 움직임.
오히려 뱀보다 더욱 뱀 같은 방향 전환이 이루어졌다.
그걸로 끝이다.
무언가 반응하거나 피할 새도 없이 수십 개의 칼날이 코브라의 전신을 옭아맸다.
“이젠 탈피도 할 수 없을 거다.”
잘린 비늘에서 붉은색 피가 배어나왔다.
조금이라도. 눈동자 한 번이라도 움직였다간 그대로 인수분해해 버릴 생각이었다.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게…….”
“됐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지금 유적 안에 있는 놈들 중에 날개 달린 벌레 녀석이 있지?”
“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건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야.”
서걱! 콰득!
사복검이 살 속을 파고들었다.
“크아아아!”
코브라가 전신을 마구 비틀었다.
“너 같은 지성체가 유적 입구에 있는 걸 보면 네임드 중에서 ‘녀석’이 고치에서 나왔을 거다. 맞아, 아니야?”
완전히 본능에만 따르는 몬스터들에게 약간이지만 지성을 부여할 수 있는 네임드 몬스터가 있다.
이 녀석 역시 그 벌레가 지성을 집어넣은 거겠지.
“마, 맞다. 맞다고!”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다.
중요한 건 녀석이 고치에서 나온 지 얼마나 됐느냐는 건데…….
“부화한 지 며칠째야?”
“6일…… 6일이다!”
6일이면 이미 비행 능력까지 완전히 갖춰 놨을 시기다.
하지만, 아직 일주일이 안 되었기에 분진을 이용한 최면 능력까지 개화하진 못했으리라.
이걸로 서둘러야 할 이유가 또 한 가지 늘었다.
“좋은 정보야. 아주 많은 도움이 됐어.”
“그럼 이걸 좀…… 풀어 줘. 빨리. 아프단…… 말이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돼.”
혹시라도 쪼르르 달려가서 새로운 적이 오고 있다고 경고하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유적 내에 있는 놈들은 타이탄 길드가 침입자의 전부라고 착각해 줘야 했으니까.
진혁이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콰직! 우두둑!
사복검이 단칼에 코브라의 몸을 조각내 버렸다.
‘두 마리 잡는 데 1분 38초라…….’
아직 본래 컨디션이 되돌아오려면 멀었다.
속사도 전성기 때보다 20%가량 떨어졌고 사복검도 원하는 궤도에서 3도가량 어긋나게 움직였다.
오늘 내로 보스까지 죽이려면 조금 더 감을 되살려야 한다.
그래도.
‘좋은 기분이긴 하네.’
권총과 연검.
너무나 오랫동안 익숙하게 다뤄 왔던 주력 무기들이다.
이번 등반에는 가능하면 사용하고 싶지 않아 숨겨 뒀었는데, 막상 써보니 옛 생각도 나고 손에 착착 감긴다.
기존에 보유한 스킬들과 연계해 사용할 경우 엄청난 시너지를 낼 게 틀림없으리라.
그나저나.
‘슬슬 출발해야겠군.’
그 나비 녀석이 날뛰기 시작하면 시간을 잔뜩 끌릴 위험이 있었다.
특히나 내부에 플레이어들이 들어가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더.
‘바람의 영역’과 ‘검마천령보’가 동시에 발동했다.
츳.
진혁의 신형이 사라졌다.
곧이어 한 줄기 바람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유적 내부를 주파하기 시작했다.
***
“후우…….”
“허억. 허억. 허억.”
“죽을…… 뻔했네.”
유적 내부에서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상처투성이가 된 채 몸을 가누고 있는 이들은 바로 미국의 대형 길드인 ‘타이탄’에 소속된 플레이어들이었다.
“…….”
거구의 사내가 전투 도끼를 어깨에 기댄 채 주위를 살폈다.
이번 레이드의 공대장을 맡고 있는 랭커 ‘에이단’이었다.
‘아직 얼마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고전하게 되다니.’
탐지 마법으로 살핀 유적의 크기는 약 15km.
당연히 뒤로 갈수록 강력한 마수들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1km도 가지 않아 공격대가 치열하게 싸워야 될 정도로 난이도가 올라갔다.
‘이 앞은 더 어려워진다는 뜻이겠지.’
에이단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층계의 보스 몬스터가 있는 곳이라 쉽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곤충과 파충류 그리고 식물로 이루어진 연합 군체는 생각했던 것 그 이상으로 까다로웠다.
분명, 일주일 전에 유럽 쪽 공격대가 도전했을 땐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된 건지 정보와 현실과의 괴리가 생겼다.
바로 그때.
“에이단 씨. 이거…… 정말로 계속하실 건가요?”
에이단 옆에 긴 지팡이를 든 여성이 다가왔다.
광역 딜러이자, 또 하나의 S급 플레이어인 ‘메이 링’이었다.
중국계 미국인답게 검은색 머리카락과 선이 둥근 외모가 눈에 들어왔다.
“자네도 느꼈나 보군.”
“예. 딜러진의 마력이 소진되는 속도가 너무 빨라요. 힐러들 역시 마찬가지고요. 이대로라면 1열에 있는 탱커들이 버티기 쉽지 않을 거예요.”
말투에서 걱정과 염려가 묻어나왔다.
“그렇겠지.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순 없어. 2주가 넘게 준비했는데 제대로 해 보지도 못 하고 물러난다면 우리 길드의 명예는 땅에 떨어질 거야.”
하루에 수백 개씩 새로 생겨나는 신생 길드들.
대부분은 얼마 못 가 사라졌지만, 몇몇은 낭중지추처럼 빛을 내며 떠오르고 있었다.
지금이야 타이탄이 아메리카 대륙을 꽉 잡고 있다고 하나, 안주한다면 언젠간 도태될 것이다.
“어그로 튀지 않게 소규모씩 상대한다. 전위는 나 혼자서 맡도록 하지.”
에이단이 전투 도끼를 움켜쥐었다.
가장 선두에서…….
……모조리 쳐부순다.
쿠쿠쿠쿠쿠!
마력이 주입되자 전신에서 무시무시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정신없이 전투를 펼치며 앞으로 나아가던 공격대가 잠시 자리에 멈췄다.
“에이단 씨!”
메이링이 손짓을 하며 에이단을 불렀다.
“뭔가?”
“여기, 이것 좀 보세요.”
통로에 지름 4m 크기의 동굴이 나타났다.
“이건…….”
“예. 보스까지 이어진 통로예요. 마력의 파장으로 볼 때 최단 루트가 분명해요.”
“과연, 완전히 불행만 있는 건 아닌 모양이군.”
에이단이 유적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전력을 최대한 보전한 채 보스와 싸울 수 있게 됐으니. 부담감이 한결 줄어들게 된 것이다.
“들어가실 거죠?”
“그래. 바로 준비하게.”
에이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들어가시면 후회할 겁니다.”
공격대 사이로 낯선 목소리가 끼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