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9)
29화 타락한 회랑의 주인 (3)
검은 까마귀 길드에 소속된 플레이어.
박하진이었다.
“마, 말도 안 돼.”
박하진의 목소리가 격하게 떨렸다.
“여기서 만나다니 이것 참 인연이네. 그래서 이 먼 곳까지는 무슨 일로 오셨을까?”
생긋 웃은 진혁이 번개같이 박하진의 목을 움켜쥐었다.
“켁! 케엑! 그…거야 당연히……!”
“유적을 공략하러 왔다고?”
“그, 그래.”
“개소리하고 있네.”
진혁이 손에 힘을 더욱 줬다.
“끄으윽. 이것 좀 놓고 말하자, 제발. 수, 숨이…….”
“짧게 말할 테니까 예, 아니오로만 대답해. 보초를 죽이고 가디언을 깨운 놈들. 너네 맞지?”
“그, 그게 무슨…….”
우드득!
“끄아아아악!”
박하진이 몸을 마구 뒤틀었다.
엄지로 쇄골을 압박하자, 끔찍한 고통이 찾아왔던 것이다.
“맞아! 맞다고!”
역시.
보초들의 목 뒤에 난 상처를 봤을 때 확신했었다.
이 상처는 암살계열의 능력자가 한 짓이라고.
그리고 이번 유적 공략에 필요 없는 암살계열이 왔다는 건.
박하진.
그래, 네놈밖에 없지.
“이곳에 온 목적은 보나마나 날 죽이려는 것일 테고.”
“그, 그건!”
박하진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서 아니라고 했다간 상대가 믿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맞다고 했다간 죽는다.
“대답이 느리네?”
진혁의 이맛살이 구겨졌다.
동시에 마력을 실은 손가락이 박하진의 어깨로 파고들었다.
우득! 우드득!
쇄골이 박살나는 섬뜩한 소리.
“으아아악! 그만, 그만! 말할게. 그러니까 그만해!”
박하진의 몸이 아까보다 더욱 격하게 뒤틀렸다.
“기다려 봐, 잠깐만. 나는…… 그래! 그 우리 길드장 놈이 시켜서 그런 거야. 안 된다고 했는데 그놈이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그랬어!”
검은 까마귀 길드의 길드장이라면…….
“신건수인가 하는 그놈?”
TV에서 본 적 있다.
‘떠오르는 신흥 길드 특집’이었나 뭐였나 하는 프로그램이었지.
고급 양복에 검은색 선글라스까지 끼고 꺼드럭거리는 모습은 쉽게 잊으려야 잊기 힘들었다.
“맞아! 신건수! 그 개잡놈이 시킨 거야. 제발 믿어 줘.”
“…좋아. 믿어 줄게.”
진혁이 손에서 힘을 뺐다.
“후우.”
박하진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도하지 마. 살려 줄 생각은 없으니까.”
푸욱!
단검이 살 속으로 파고들었다.
“커……억?”
박하진이 멍하니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봤다.
정확히 심장이 있는 위치였다.
“원래 내 목숨을 노리는 놈들은 편하게 보내지 않는데, 네놈 덕분에 판을 짜기가 수월해졌으니 특별히 인심 써 준 거야. 고마워하라고.”
차갑게 말을 내뱉은 진혁이 박하진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를 빼 냈다.
[브라함의 반지]입수 난이도: A
마법 저항력: +10
이동 속도: +5%
고유 능력 억제: +20
죽은 사람이 갖고 있기엔, 지나치게 아까운 아이템이다.
진혁이 반지를 검지에 꼈다.
서걱!
그리고 가차 없이 나머지 검은 까마귀 길드의 암살자들을 베어버렸다.
[냉혹한 심장]의 효과 때문인지는 몰라도 진혁의 손속엔 일말의 자비도 없었다. 게다가 자신의 목숨을 노린 녀석들을 상대로 인간미를 발휘할 만큼 멍청한 짓 또한 없었고.피가 낭자한 현장 속.
진혁이 고개를 돌려, 엘리스를 바라봤다.
“이 정도면 제가 마인이라는 게 증명됐다고 생각합니다만?”
뱀파이어들이 가장 상대하기 꺼리는 테레사와, 붙잡아 둔 인질들까지 죽였다.
뒷일을 생각한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교감’을 통해 상대의 경계심을 완화시킨 것도 엘리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했다.
“좋다. 만약 내가 그대를 믿는다 치고.”
엘리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긴 은발이 어깨를 따라 흘러내렸다.
“어떤 방법으로 우리에게 자유를 준다는 거지?”
……좋아.
진혁이 빠르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침착하자.
흥분하지 말고 차분하게…….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으니, 이제 천천히 낚시 줄을 당길 시간이다.
“7성급 주문을 준비해 뒀습니다. 아이템 안에 엘리스 님의 혼을 봉인한다면 유적의 결계를 잠시 속일 수 있습니다.”
“혼을 봉인한다고? 처음 들어보는 말이구나.”
그렇겠지.
이 방법은 탑의 40층에서나 나오는 거니까.
“솔직히 말해 꽤 운이 따라 준 덕분이었죠. 기본 골자가 될 수식에…… 각 회로에 공급해야 하는 정확한 마력의 양을 알아내는 게 쉽지 않았거든요.”
진혁이 손가락에 마력을 끌어 모았다.
우우웅!
손끝에 푸른빛이 맺혔다.
글자를 쓰듯 손가락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하나의 단어.
[signácŭlum]그리고 또 하나.
[immortálĭtas] [sanctuárĭum]…….
여섯 개의 단어로 된 육망성을 그렸다.
각각의 단어에 각기 다른 양의 마력을 주입하자, 푸른빛이 더욱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육망성이 심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냈다.
“호오.”
엘리스가 조금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저런 식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니.”
지켜보던 혈족들도 입을 벌렸다.
처음 보는 광경에 압도당한 듯, 입술이 달싹였다.
그사이 진혁은 육망성 한가운데 ‘브라함의 반지’를 갖다 댔다.
[시전자 ‘강진혁’의 레벨 조건(1레벨)이 인정되었습니다.] [7성급 ‘영혼이전(靈魂移轉)’의 영창이 발동됩니다!] [대상의 승인을 얻을 경우 주문이 완성됩니다.] [한 번에 데리고 나갈 수 있는 영혼은 한 개입니다.] [영창의 쿨타임은 365일입니다.]유적에서 나갈 수 있는 건 한 명뿐.
다음 차례는 일 년 뒤에나 가능했다.
불사의 축복을 받은 뱀파이어에게 있어 시간은 문제될 건 없었지만…….
‘처음 보는 주문을 덥석 승낙하는 것도 썩 내키지 않는군.’
엘리스의 고운 눈매가 꿈틀거렸다.
그러나 아주 잠시뿐이었다.
구겨졌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 영창의 허점을 발견한 것이다.
‘영창의 근간이 되는 육망성을 부수면 술식 자체를 파훼할 수 있다.’
만에 하나, 놈이 무슨 수작을 부렸더라도…….
벨루스를 비롯한 혈족들이 있는 한, 언제든지 인간을 죽이고 봉인을 깨 버릴 수 있다는 뜻이다.
이로써 안전장치가 마련됐다.
찜찜한 느낌은 여전히 있었지만.
‘단순히 석연찮다는 것만으로 이 기회를 차 버릴 순 없어.’
너무나 오랫동안 갇혀 있던 삶이었다.
그렇기에,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지금이 아니면…….
어쩌면 영원히 이 지하 왕궁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알겠다. 받아들이마.”
엘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 순간.
[브라함의 반지가 진조 ‘엘리스’의 영혼을 흡수합니다.]눈부신 빛이 엘리스의 전신을 휘감았다.
***
“하하.”
진혁이 육망성에 있던 반지를 회수했다.
두근! 두근!
심장이 거칠게 두방망이질 쳤다.
……성공했다!
그동안의 고생이 모두 보상받는 기분.
단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엘리스를 이 안에 봉인시키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다.
실제로 과거에 수십 번도 넘게 실패한 적이 있기도 했고.
‘테레사라는 변수 덕분에 일이 훨씬 더 수월하게 풀렸어.’
[흐음. 생각보다 나쁘지 않구나. 답답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늑해.]손바닥에 놓인 반지에서 엘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부가 꽤나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다행이네.
앞으로 살 집이 마음에 들어서.
바로 그때였다.
“으으…….”
바닥에 쓰러져 있던 테레사로부터 가냘픈 신음이 흘러나왔다.
“저, 저 여자가 어떻게!”
“죽은 것 아니었나?”
혈족들이 두 눈을 부릅떴다.
분명, 호흡이 멈춘 걸 확인했다.
혹시나 해서 마력 반응까지 살펴봤었지만, 느껴지는 건 없었다.
틀림없는 죽음.
그런데.
대체 어째서?
“아…… 깜빡했네요. 저 친구, 죽어도 한 번 부활하거든요.”
‘별의 가호’라고.
즉사하지만 않으면 다시 살아난다.
진혁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테레사를 보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캬. 진짜.
보면 볼수록 좋은 능력이다.
성퀴벌레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라니까?
[네놈! 감히 나를 능멸한 것이냐!]엘리스가 고함을 질렀다.
속은 걸 깨달았으니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반면, 정신을 차린 테레사는 복잡한 얼굴을 한 채 중얼거렸다.
“이런…… 계획이었군요.”
별의 가호가 있었기에, 심장이 멎은 와중에도 모든 광경을 지켜볼 수 있었다.
능글맞은 화술로 진조를 구워삶고.
결국 봉인시켜 버린 것까지. 전부.
이래서 무조건 믿으라고 한 거였구나….
“묻고 싶은 게 많지만, 지금은 참아야겠죠?”
“한가하게 이야기나 나누고 있을 때는 아니니까요.”
그래.
담소를 나누는 건 나중의 일이다.
아직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었으니까.
[테레사가 Lv4 ‘성호(聖號)’를 발동합니다.]테레사의 검이 좌우로 움직였다.
툭!
투욱!
사람들을 구속하던 재갈과 안대가 벗겨졌다.
“헉…….”
“허억!”
감각이 차단됐던 사람들이 거친 숨을 토해냈다.
“사, 살았다. 살았다고!”
“우와아아아!”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죽을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다시 자유를 맛보게 된 것이다.
“와 줬군요.”
송천화가 테레사를 향해 짧게 목례했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테레사가 송천화를 일으켜 세웠다.
“구조대는 몇 명이나 온 겁니까?”
대형 길드의 메인 공격대가 셋 이상은 투입되어야 한다.
최소한으로 따졌어도 그 정도 전력은 필요했다.
하지만.
“저를 빼면 한 명뿐이에요.”
테레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송천화의 기대를 완전히 짓뭉개 버렸다.
***
“차라리 마인 행세를 했으면 목숨이라도 건졌을 것을.”
“멍청한 인간 같으니…….”
혈족들이 어금니를 드러냈다.
수작을 부리면, 인간들을 모두 제거하란 명령을 받아 둔 상황.
더 이상 봐줄 필요는 없었다.
쏴아아아아!
혈액으로 구성된 각종 마법들이 주위를 잠식해 나가기 시작했다.
핏방울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파도를 만들었고.
만들어진 파도는 왕궁 전체를 집어삼킬 듯 높이를 더해 나갔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강력한 마력이다.
“트, 틀렸어.”
“간신히 살았나 했는데…….”
“난…… 난 죽기 싫어!”
이미 한 번, 저 스킬에 박살이 났었다.
대형종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탱커들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고.
각종 딜러들의 마법은 상위 마법에 의해 지워졌다.
악몽과 같았던 기억이다.
문제는 그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송천화가 분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까지인가.”
테레사가 왔다 한들 소용없다.
혈족은 그때보다 11명이나 더 많았으니까.
전력 차이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Lv13 ‘블러드 웨이브’가 발동됩니다!]콰콰콰콰콰콰!
선혈의 파도가 밀려왔다.
막을 수 없다.
피할 수도 없다.
“…….”
송천화가 눈을 감았다.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떨구거나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면서.
하지만.
“……?”
파도의 충격은 느껴지지 않았다.
고통 또한 없었다.
송천화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러자 그곳엔.
기묘한 가면을 쓴 남자가 서 있었다.
화르르륵!
거대한 불의 장벽이 파도를 막아 냈다.
아니, 단순히 비등하게 막아 내는 수준이 아니다.
수분이 증발하며, 핏방울이 점차 사라져 갔다.
어느 쪽이 더 밀도 높은 마력을 구사하는지 말해 주는 것처럼.
누구지?
‘가면에…… 단검을 사용하는 랭커는 들어본 적 없어.’
처음 보는 인물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게 말이 되나?
이토록 강력한 화염 마법을 사용하는 플레이어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저, 저 사람은 대체 누굽니까?”
송천화의 질문에, 테레사의 입가에 잔잔히 미소가 걸렸다.
“반드시 믿어야 하는 사람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