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92)
293화. 사그라드는 시간
퍼퍼퍼퍽!
[크리티컬이 발동되었습니다!]폭풍처럼 이어진 총격에 므르시엘리오의 이마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같은 자리를 정확하게 연격해 ‘초정밀 사격’ 효과가 발동한 덕분이었다.
“크아아아!”
므르시엘리오가 분노에 찬 비명을 질렀다.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자신이 이런 식으로 수모를 겪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건, 여왕의 수족으로서 수많은 군집체를 진두지휘하던 사령관에 대한 모독이다.
“그러게 벌레들 뒤에 숨어 있지 왜 혼자 날개를 쫙 펴고 날아다녀? 쏴 달라고 시위하는 것도 아니고.”
진혁이 혀를 찼다.
바보랑 연기는 높은 곳을 좋아한다고 했던가.
그 말이 딱 이걸 두고 하는 말이리라.
“인간 놈…… 가만두지 않겠다!”
[므르시엘리오가 ‘황색 분진’을 사용합니다!]파츠츠…….
나비의 날갯짓에 입자가 굵은 노란 가루들이 흩날렸다.
아군에겐 지성을 불어넣어 주는 신비한 가루지만, 적에게는 이성을 잃고 미쳐버리게 만드는 악마 같은 가루다.
분진이 넓게 퍼져 진혁의 주위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환각 성분이 듬뿍 들어 있는 가루야. 이걸로 널 철저하게 조교한 다음 매일 밤마다 가지고 놀아주지. 가루를 달라고 아무리 애걸해도 쉽게 주지 않을 테니 기대해도 좋아. 후후.”
으음. 그건 꽤나 위험한 발언인데.
게다가…….
“그 느려터진 속도로는 무리야.”
아무리 강력한 공격이라고 한들 피해버리면 그뿐이다.
진혁이 가볍게 몸을 움직여 가루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그러자.
“누가 그렇게 말했지? 내가 느리다고?”
부우웅!
날아오는 분진의 속도가 한 단계 빨라졌다.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하며 포위망을 좁혀 오는 게 빠져나갈 틈 따위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가루가 진혁의 몸에 닿기 바로 직전.
진혁이 날아오는 가루를 향해 폭풍 같은 총격을 퍼부었다.
콰콰콰콰콰콰!
“그까짓 총으로 대체 뭘 하려는 거냐? 설마, 저 많은 걸 다 쏴서 맞히겠다고? 아무리 멍청해도 그런 짓을…… 으응? 응? 오잉?”
말을 하던 므르시엘리오의 목소리에서 점점 묘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무리 분진의 입자가 크다고 한들, 기본적인 형태는 가루다.
그런데 그걸 모조리 상쇄시키다니.
무슨 놈의 괴물이 저런 말도 안 되는…….
“어……으……어.”
므르시엘리오가 입을 뻐끔거렸다.
“말했잖아. 느리다니까?”
“크아아악! 죽여! 뭣들 하고 있어. 죽이라고!”
“케에에에!”
“케엑!”
명령을 받은 벌레들까지 가세했다,
대형 지네가 모래바닥을 파고들며 시야에서 사라졌고. 수십 마리의 말벌들이 독침을 내세운 채 쇄도했다.
장수풍뎅이와 각종 식인 식물 역시 빽빽하게 벽을 세우며 압박해 왔다.
“질로 안 되니 양으로 밀어붙인다라…… 벌레다운 사고방식이네.”
촤촤촤촤촤촤!
어느새 바꿨는지 사복검이 칼날에 칼날을 흩뿌리며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과거 탑을 올랐을 때 독자적으로 개발한 검술.
아니, 초식이 없으니 검술이라고 하긴 너무나 초라하다.
이건 단지…… 사복검을 편하고 효율적으로 다루기 위해 최적화된 동작에 불과했으니까.
그저 상대방이 짜증나게 하는 걸 최우선으로 삼은 춤에 가깝다는 게 옳은 표현이겠지.
그렇지만.
다른 건 몰라도 아픈 곳을 파고드는 것 하나만큼은 일품이었다.
[고유 능력 ‘검의 무덤’이 개방됩니다!]강기까지 더해지자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케에에!”
“크아아!”
조각조각 난 벌레들의 파편이 바닥에 뒹굴었다.
츳!
취릭!
검이 살아 있는 것처럼 모래 속으로 파고들었다.
동시에.
“그오오오!”
“크와아아!”
모래 속에 숨어서 틈을 노리던 지네들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사복검에 꿰뚫린 채 몸을 마구 비틀어대는 지네들.
콰드득!
진혁이 검을 한 번 더 휘두르는 것으로 비명 소리가 사라졌다.
“여왕님의 소중한 부하고 어쩌고 하면서 죄다 사지에 집어넣지 말고 직접 덤비는 게 어때? 찌그러진 팅커벨 씨.”
“찌, 찌그러진 팅커벨?”
“우리 세계 동화에 나오는 요정 하나 있어. 네가 자동차에 한 번 치이고 나서…… 음. 다시 할게. 10t 트럭에 한 번……으론 안 되겠군. 한, 열 번 정도 치이면 걔랑 비슷하게 생길 것 같다고 보면 돼.”
대놓고 말하면 상처 줄까 봐 최대한 상냥하게 포장을 해 봤다.
솔직히 말하면 성별 빼고는 공통점이랄 게 없긴 하지만.
“네까짓 게 감히 위대한 곤충족의 귀족인 이 몸을 놀려? 좋아. 네놈은 이 몸이 친히 전력을 다해 찍어 눌러 주마.”
[므르시엘리오가 ‘고치화’를 시도합니다!] [모든 상처가 회복됩니다.] [고치로 전신을 완전히 감싸게 될 경우 방어력이 3800%만큼 상승하게 됩니다.]거대한 나비의 몸체를 새하얀 실타래가 둘러싸기 시작했다.
고치화.
변태를 거듭할수록 성장하는 곤충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능력이다.
“내 진정한 모습을 보는 순간이 네 마지막이 될 것이…… 응?”
그런데.
말하던 므르시엘리오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경청하고 있어야 할 상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듬이가 달싹였다.
전신의 감각이 적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나타난 곳은 허공 위.
정확히는 므르시엘리오의 머리 위였다.
‘바람의 영역’과 ‘검마천령보’를 중첩한 덕에 거의 단거리 공간 이동에 육박하는 움직임을 보일 수 있게 되었다.
툭.
고치 위에 착지한 진혁이 총구를 므르시엘리오의 머리에 겨눴다.
“누가 기다려준대?”
이게 무슨 12세용 애니메이션도 아니고.
변신이 끝날 때까지 박수나 쳐 줄 생각은 없다.
“자, 잠깐.”
므르시엘리오가 다급히 외쳤지만, 이미 총 끝에 붉은빛을 띤 마력이 맺힌 뒤였다.
‘고치화’가 완전히 발휘된다면 손을 쓸 수 없지만.
그 직전은 움직임이 제한될뿐더러 허점이 완전히 노출되는 상태가 된다.
시간으로 치면 몇 초 남짓.
이것이 바로 나비 녀석을 죽일 수 있는 가장 좋은 타이밍이다.
“너무 억울해 하진 마. 내 도발에 안 넘어갈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잠까아아……!”
콰콰콰콰콰!
붉은색 마탄이 외피를 부수고 내부에 있는 뇌까지 꿰뚫어버렸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므르시엘리오의 날개(재료)를 얻으셨습니다.] [‘황색 분진’ 500mg을 얻으셨습니다.]“키에에에!”
“키이이!”
벌레들이 날뛰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였다.
본래라면 지휘관을 잃은 즉시 통제에서 벗어나 자기들끼리 물어뜯거나 뿔뿔이 흩어져야 할 놈들이다.
하지만, 이런 이상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건…….
쿠쿠쿠쿠쿠!
지면을 따라 느껴지는 진동.
“일부러 찾아가게 되는 수고를 덜었네.”
허무하게 오른팔을 잃은 16층의 보스가 직접 움직였다는 뜻이다.
콰아앙!
지면이 뒤집히면서 묵빛 외피를 지닌 거대한 곤충이 튀어 나왔다.
약 5m 크기.
외형은 헤라클레스 풍뎅이와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지만, 기존의 벌레들과는 그 격이 달랐다.
이 녀석이 바로 여왕이자.
이번 레이드의 하이라이트다.
“내 아이들이…….”
여왕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체들을 훑었다.
허무함과 분노 그리고 그걸 넘어선 감정이 깃들었다.
“위에 있는 존재의 심기를 건드렸으면 곱게 죽을 것이지. 이곳까지 와서 발악을 한다고 해서 네 운명이 바뀌진 않는다.”
“……호오. 탑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는 거냐?”
“한 층계를 지배하는 존재를 우습게보지 말거라. 네가 아는 알량한 지식과 정보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노라.”
여왕의 시선이 진혁에게 향했다.
“보아하니 나를 죽이고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아티팩트를 얻을 생각인가 본데, 부질없는 짓이다. 이곳에서 몇 시간을 보내는 동안 탑 밖에 있는 사념체들이 네가 사는 세계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릴 거니까.”
“이야. 그렇게까지 계산했다니. 생각보다 훨씬 더 똑똑한 벌레네.”
진혁이 피식 실소를 내뱉었다.
근데, 그거 알고 있나?
“꼭 내가 아니어도 이 세계에 실력자들이 없는 건 아니야.”
슈브 니구라스가 직접 온다면 몰라도.
그 밑에 있는 사념체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만한 자들이 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 말하지 않아도 플랜B에 관한 카드 정도는 배치해 뒀다는 말이다.
그리고.
“왜 내가 여기서 몇 시간이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지?”
[‘세계의 기억’이 활성화됩니다.]진혁이 허공을 향해 손을 저었다.
그러자 등 뒤로 수많은 스킬들이 저장된 서고가 나타났다.
[고유 능력 ‘태양의 성역’이 발동됩니다!]촤르르르!
넘어가는 책장.
이집트 신격의 무대가 재현되며, 군집체를 통솔하던 여왕의 세계가 사라졌다.
사막과 스핑크스 그리고 거대한 피라미드가 있는 공간.
황금색 빛줄기가 하늘에서 성역의 결계를 지탱하는 기둥이 되었다.
“여, 여기는……?”
여왕의 눈에 이채가 스며들었다.
왼손에 쥔 총에 ‘데이라이트’가 발현되었고.
오른손에 쥔 검에 ‘혈마기’가 깃들었다.
몇 시간까지 끌 필요도 없다.
“3분 안에 끝내주마.”
진혁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
게이트가 개방된 후 전 세계 대도시는 어둠에 잠겼다.
불타버린 건물과 버려진 자동차.
인적이 완전히 사라진 도심.
아포칼립스를 방불케 하는 광경 속. 미처 이 지옥에서 대피하지 못한 생존자들이 벌벌 떨며 숨어 있었다.
“엄마. 나 무서워…….”
어린아이의 칭얼거리는 소리가 지하 주차장에 울려 퍼졌다.
“여, 여기 있으면 찾지 못하겠죠?”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마력 탐지를 방해하는 불꽃을 둘러 뒀으니 어지간해선 들키지 않을 겁니다.”
“체스말들도 미끼용으로 세워 뒀어. 맞서 싸우는 거야 불가능하겠지만 우리가 도망칠 때까지 시간 벌이 정도는 될 거야”
민정우와 이유리가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그렇게, 가지고 있던 물과 식량까지 배급하고 나서야 잠깐 한숨 돌릴 틈이 생겼다.
“후우. 말은 저리 했지만, 진짜 난감하긴 하네. 우리 완전히 고립된 거잖아?”
“허허. 어쩌겠나?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어떻게든 버텨내는 수밖에.”
“영감은 항상 속 편한 소리만 하네. 농담이 아니라 강진혁 그 인간이 빨리 와 주지 않으면 우리 다 죽을지도 몰라.”
“흐음. 내가 볼 땐 늑대를 쫓자고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꼴 같다만.”
“밖에 있는 염소가 늑대고 호랑이가 강진혁이란 거겠지?”
“반대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건…… 그렇긴 해.”
두 사람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혁을 만나 시작된 악연을 떠올리며 몸을 가늘게 떨었다.
특히나 이유리는 노동요를 틀어놓고 날밤을 꼴딱 새며 체스말을 만들어줬던 추억까지 갖고 있었다.
“그쪽 분들도 강진혁 플레이어님을 개인적으로 알고 계시는 겁니까?”
싸울아비 길드의 김기태가 진혁의 이름에 반응했다.
그 역시 선발대 격으로 대전에 왔다가 이곳에 고립된 상태였다.
“어라? 아저씨도 그 사람 알아?”
“예. 몇 번 같이 활동했었습니다.”
“그 망할 놈 때문에 시작부터 꼬였어. 우리가 진짜 완전히 유리하게 시작할 수 있었는데. 하……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리네.”
“대동여지도를 송두리째 태워버렸을 땐 좀 황당하긴 했지. 나도 제대로 속았었네.”
“국보를…… 사실 저 역시 그분에게 여러 번 당하긴 했습니다. 하하.”
세 사람 사이에서 묘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주로 씁쓸한 맛이 느껴지는 공감대였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반드시 와 줄 거야.”
“당연한 거 아니겠나? 그 친구가 사람을 부려먹긴 해도 천성이 나쁜 건 아닐세.”
“맞는 말씀입니다. 강진혁 플레이어님이라면 무언가 수를 내 주실 거예요.”
세 사람은 믿고 있었다.
진혁이 결코 사람들을 버리지 않을 거라는 걸.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 아무리 지옥 같다고 한들, 진혁이 온다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또한.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콰아아앙!
강한 충격과 함께 굉음 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천장에서 먼지가 후두둑 떨어졌다.
“무슨……! 이유리 양 설마 놈들이?”
“체, 체스말이…… 젠장. 한 놈이 아니야. 미끼용뿐만 아니라 퇴로에 배치해 둔 체스말까지 전부 박살났어!”
이유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함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