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93)
294화. 최강의 길드 ‘고인물 코퍼레이션’
천장이 박살나며 거대한 염소의 얼굴이 보였다.
“그오오오오!”
하늘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쩌렁쩌렁한 포효 소리에 지면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졌다.
두렵다.
감히,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만큼.
덜덜덜!
모두가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렸다.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 쳐 왔던 이들이었지만, 압도적인 공포 앞에선 그 본능마저 빛이 바래 버렸다.
[‘검은 염소’가 ‘분쇄 파동’을 사용합니다!]검은 염소의 입에 불길한 빛이 모여들었다.
일전에 천리장성을 박살냈던 그 저주받은 공격이었다.
“아…….”
김기태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지하주차장에 숨어 있던 사람들 역시 비명을 지르며, 저마다 부둥켜안았다.
아이 엄마가 아이를 끌어안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1초. 2초 그리고 3초.
콰콰콰콰콰!
극한까지 압축된 마력덩어리가 직선으로 폭사되었다.
검은 염소가 있던 지점부터 주차장 입구까지. 빛의 범위에 들어간 모든 것들이 증발하기 시작했다.
막을 방법 따윈 없다.
피할 수 있는 의지는 더더욱 없었고.
이걸로 끝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파츠츠!
모두의 앞에 붉은색 오망성이 나타났다.
콰아아앙!
거대한 마력과 마력이 격돌하자 바닥에 쌓여 있던 먼지가 한순간에 솟구치는 게 보였다.
“하아…….”
짧은 탄식.
곧이어, 먼지 속에서 나타난 건 기하학 무늬가 그려진 가면을 쓴 사람이었다.
“어, 언노운…… 플레이어?”
“진짜 이런 힘든 일을 왜 내가 해야 하는 거야 대체! 솔직히 이건 한 달 내내 치킨 사 줘야 용서해 줄 거야. 치즈 소스 뿌린 감자튀김도! 얼음 잔뜩 넣은 콜라도! 기왕이면 제로 콜라로!”
혼자서 중얼거리던 엘리스가 검은 염소를 바라봤다.
“뭘 꼴아 봐, 빡쳐 죽겠는데 넌 또!”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오!”
“그오 같은 소리 하네.”
엘리스가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붉게 물든 수십 개의 작살이 검은 염소의 몸을 그대로 꿰뚫었다.
휘청하고.
검은 염소의 몸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것이 시작이다.
이변이 일어났다.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
유럽.
황폐화된 남프랑스의 국도를 따라 이동하던 검은 염소들이 제자리에 우뚝 멈췄다.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은 누군가를 봤기 때문이다.
저벅.
눈부신 금발이 순백의 갑주 위로 흘러내렸다.
테레사였다.
그 옆에는 천유성 역시 함께 있었다.
“지금쯤이면 다들 제 위치에 도착했겠네요.”
“그렇겠지. 다들 우리보다 빨리 출발했으니까.”
천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스 씨야 혼자서도 충분할 테고 이쪽도 천유성 씨와…… 저분까지 있으니 해볼 만할 거예요.”
테레사의 시선이 천유성의 옆으로 향했다.
시선을 마주치자 칠흑 같은 단발머리를 한 청순한 미녀가 생긋 웃었다.
추혼사영.
추혼검을 창시한 고수이자, 천유성을 가르치는 스승이었다.
본래는 무림맹에 남아 제국과의 전쟁을 준비해야 했으나, 천유성의 간곡한 부탁으로 인해 ‘내단’을 제물로 바쳐 탑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저희가 미끼 역할을 하겠습니다. 그동안 스승님이 녀석의 숨통을 끊어 주십쇼.”
“어머나. 천 공자는 가녀린 여인에게 칼질을 하라고 시키는 건가요? 그것도 저렇게나 흉악하고 커다란 마수를 상대로요?”
추혼사영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리질을 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순진무구한 얼굴을 한 건 덤이다.
“말투……가 그게 뭡니까 대체! 그리고 언제부터 스승님이 연약하셨다고…….”
“도와달라는 것 치곤 너무 까칠하네요. 자, 따라해 보세요. ‘도와주세요, 아름답고 강하신 스승님……’ 이렇게요.”
“진심이십니까?”
“어서요. 아니면 저 마수를 두 분이서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답니다?”
“천유성 씨! 놈이 와요!”
“알고 있다. 젠장.”
천유성이 어금니를 부러져라 깨물었다.
수치심으로 인해 얼굴이 붉게 물들었지만, 지금 와서 이것저것 재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부디, 도…… 도와주십쇼. 아름답고 강하신 검희(劍姬)시여.”
“후후. 귀여운 제자가 부탁하는데 스승으로서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추혼사영이 천유성의 볼을 양손으로 잡아 당겼다.
처음에 근엄했던 모습은 간데없고.
완전히 제자 사랑에 푹 빠진 스승의 모습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스릉!
추혼사영이 눈처럼 새하얀 검을 뽑았다.
“가르쳐 준 건 잊지 않았겠죠? 다른 건 몰라도 암황의 제자에게 밀린다는 말은 용납할 수 없어요.”
[고유 능력 ‘검의 노래’가 발동됩니다!]추혼사영이 고유 능력을 해방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 일이 끝나면 그 녀석마저 뛰어넘을 테니까.”
뒤이어 천유성 역시 고유 능력을 해방했다.
[고유 능력 ‘검의 노래’가 발동됩니다!]천유성과 추혼사영의 검에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이 깃들었다.
검신을 타고 흐르는 청아한 빛이 1장이 넘도록 솟구쳤다.
“초격은 제가 반드시 막아내겠습니다.”
테레사가 방패를 앞으로 뻗었다.
[고유 능력 ‘별의 가호’가 발동됩니다!]그렇게.
암스테르담을 구한 성녀가 또 한 번 유럽을 구하기 위해 움직였다.
***
같은 시각.
5계층의 안드리아가 있는 곳 역시 검은 염소로 인해 풍경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투기장은 사라졌고 광산은 무너졌으며, 정신병동 또한 반파되었다.
하지만, 모든 게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하아…… 하아…… 하아.”
안드리아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나머지 구역의 보스들은 이미 숨을 거뒀거나 도망친 상황.
유일하게 혼자 남아 자신의 구역을 지키고 있는 건 안드리아 하나뿐이었다.
“아직…… 아직이야.”
안드리아가 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이곳은 진혁님이 남겨 준 소중한 보금자리.
밑바닥에 있던 자신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게 만든 장소다.
‘죽는 한이 있어도 지킬 거야.’
설령, 싸우다가 쓰러질지언정 도망칠 생각 따윈 없었다.
아홉 개의 꼬리 위로 여우의 혼이 담긴 불꽃이 맹렬하게 타올랐다.
툭……툭. 탓!
잔영을 남기며 고속으로 이동하던 안드리아가 검은 염소의 발밑에 도착했다.
불꽃이 아홉 개의 방향으로 움직이더니 한 점으로 모아졌다.
화르르륵!
푸른 겁화가 검은 염소의 몸 전체를 삽시간에 집어삼켰다.
하지만.
‘아예…… 반응도 없다니.’
겁화는 피부를 살짝 그슬리는 게 고작이었다.
“그오오…….”
귀찮은 날파리 한 마리를 만난 듯, 검은 염소가 입을 벌려 구체를 만들었다.
분쇄 파동.
수많은 사람들을 찢어발긴 그 빛이 안드리아를 향해 쏘아졌다.
바로 그때.
“홀로 막느라 고생했다.”
새로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짙은 은발의 미남자가 분쇄 파동을 맨몸으로 막아섰다.
얼굴이 살짝 일그러지긴 했으나 몸에서 흘러나오는 흉흉함은 오히려 더욱 날카로워졌다.
“사념체 주제에 강하긴 강하군. 예전의 악몽이 다시 한 번 떠오를 지경이야.”
이것이 바로 마계의 고고한 마왕 중 하나.
썩어가는 심장이란 이명을 지닌 베리엘이 현현한 모습이다.
“그래도 네놈들 수준으로 나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건 어이가 없는 일이지.”
베리엘의 손끝에서 검붉은 창이 나타났다.
파칙! 파츠츠!
스파크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슈브니구라스에게 전해라. 이 층계엔 내가 있다고.”
창이 예비 동작 없이 사라졌다.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다섯 개의 소닉붐을 일으켰다.
콰아아앙!
“크와아아!”
가슴에 창을 맞은 검은 염소의 발이 지면에서 떨어졌다.
터무니없는 충격에 그 거대한 몸조차 버티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충격적인 건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우둑!
우두둑!
창이 회전을 거듭하더니 처음보다 더 강력한 마력을 분출했다.
저주와 술식이 그려진 룬어들이 동시에 창의 주위를 잠식해 나갔다.
“크으……그오오오오!”
검은 염소의 턱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부우우웅…….
……콰아아앙!
몸이 반대편에 있는 절벽까지 날아가는 광경은 그로테스크하다는 말 외엔 할 말이 없었다.
***
실컷 두드려 맞은 여왕이 모래 속으로 숨은 덕에, 전투에 잠시 공백이 생겼다.
‘이걸로 바깥쪽 대비는 대충 된 것 같네.’
진혁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믿고 맡길 만한 동료들을 적절하게 배치해 둔 덕에 최악의 상황은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무림 쪽에 나타난 게이트 역시 스승님과 고구마 그리고 티본을 포함한 고대 병사들이 함께 가 줬으니…….
시간을 끄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
‘바깥 쪽 상황은…….’
[아웃브레이크 ‘악몽의 시작’. 이대로 모든 게 끝인가?] [대형 길드들마저 손도 대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방관] [검은 화요일. 각국 수뇌부들 비상 회의 소집]각종 기사의 헤드라이트들이 매스컴과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었다.
좋아.
분위기가 아주 제대로 무르익었다.
위기에 빠진 인류. 그리고 그걸 구원하는 영웅.
대서사시에 있어 이 이상의 연출거리는 없다.
[화상 채팅을 활성화합니다.]모두의 채팅이 한 곳으로 연결됐다.
“다들 내가 말했던 거 기억하고 있지? 외운 대로 그대로 말하면 돼. 대본에 없는 말은 하지 말고.”
-엘리스: 야. 진짜 이거 말해야 돼? 진짜로?
-천유성: 빌어먹을. 나는 네놈의 어릿광대가 아니란 말이다.
-테레사: 진혁 씨. 지금 전 세계에서 지켜보고 있는 중이라고요.
-암황: 제자야, 혹시 본교의 파문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느냐?
-안드리아: 진혁 님…… 바보.
-베리엘: 후후. 과연 내가 찍은 사도 후보답군. 마왕의 자질이 보이는구나.
-고구마: 모기!
-정령특전대: 주인. 국제 망신…… 아니, 탑 전체 망신이다.
-티본&고대 병사: 마스터. 나가 뒤지십쇼.
여기저기서 불평 어린 글들이 봇물 터지듯 올라왔다.
물론, 일당독제체제에 있어 사소한 불만은 가볍게 즈려밟아 주는 게 관례다.
“이렇게 모두의 시선이 모여 있는데, 당연히 홍보를 해야죠. 저는 뭐 흙 파먹고 장사합니까?”
길드의 홍보 효과를 통한 부가 수익 창출과 브랜드 이미지 상승은 돈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천유성: 야 이…… 그렇게 홍보를 하고 싶으면 네놈이 직접 나와서 홍보를 하면 될 것 아니냐?
“나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서 무리야.”
진혁이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여왕을 처리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이 남아 있다.
‘경계를 허무는 거울’을 통해 반드시 가야만 하는 곳이 있지.
정확히는 거기서 얻어야 하는 보상이 목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네가 나한테 큰소리 칠 때가 아닐 텐데?”
메이드 영상이 이쪽 손아귀에 있다는 거.
설마, 벌써 잊은 거 아니지?
수틀리면 의대 자퇴가 아니라 인생에서 자퇴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천유성: 네놈…… 그걸로 자꾸 협박을 하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 알고는 있는 거냐? 그건 범죄란 말이다!
-추혼사영: 어머나. 제자의 영상이 담긴 물건이 있다고요? 그건 꼭 좀 보고 싶네요.
-천유성: 스, 스승님……?
“네 스승님도 내 편인 것 같은데, 어떡할래?”
결국.
강압적인 분위기 속…… 시련의 탑 커뮤니티와 뷰튜브에 영원히 박제될 영상 한 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우, 우리가 누군지 궁금하다면 대답해주는 게 인지상정…….”
언노운 아니, 엘리스가 입을 열었다.
한 손은 허리에 갖다 대고 다른 손은 검지 하나만 앞으로 뻗는 게 포인트다.
“고인물…… 고인…… 후우…….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이름으로.”
천유성이 쇳물을 삼키는 것 같은 목소리로 그 말을 이어받았다.
“이제부터 이 녀석들은.”
나머지 사람들도 각자 맡은 문장을 한 마디씩 내뱉었다.
그렇게.
“우리가 상대하겠다.”
모두의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