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97)
298화. 긍지보다 더 중요한 것 (2)
“하아…… 하아…… 하아.”
불규칙하게 터져 나오는 호흡.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은 이미 모든 체력과 마력이 고갈되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엘리스가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작살을 힘겹게 들어올렸다.
“괴……물 같은…….”
“진짜 질리는 힘이군. 젠장. 저거 죽기는 하는 거야?”
“살아남은 게 스물도 안 되다니…….”
레비시타 혈족들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림자 속에서 충원되던 혈족들만 벌써 300이 넘었다.
나오는 족족 죽어 나갔기 때문에 계속해서 넘어오다 보니 어느새 이 정도 수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사지 멀쩡히 서 있는 건 20명 남짓.
그마저도 아비가일 가주가 가세했기에 이 정도지. 만약 뒤에서 팔짱을 낀 채 구경만 했다면 전멸을 면치 못했을 거다.
“아뮬람이 당한 걸 보고 멍청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충분히 그럴 만했던 것 같네.”
아비가일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유성창이 봉인된 이상 날개 잃은 호랑이라고 생각했건만…….
아무래도 여전히 우습게보고 있던 건 자신들인 것 같다.
그러나.
길고 길었던 싸움도 이제 끝이 보인다.
이제 정말로 한 걸음만 남았다.
“넌 정말로 대단했어. 역대 최강의 가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고유 성창 ‘망령나무의 낫’이 깨어납니다.]키에에에에!
낫에 있는 거대한 눈동자가 맹렬하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입이 없어도 찢어질 듯한 굉음이 도시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휘릭!
아비가일의 몸이 연기가 되어 사라진 건 바로 그때였다.
블링크에 가까운 공간이동.
순식간에 엘리스의 뒤를 잡은 아비가일이 낫을 높게 치켜들었다.
……빠르다.
엘리스가 반사적으로 작살을 휘둘렀다.
상쇄하는 건 당연히 무리여도…… 최소한 궤도를 비틀기라도 한다면.
콰득!
일격에 작살이 쪼개졌다.
긴 무기의 특성 따윈 잊어버린 듯, 아비가일은 터무니없는 속도로 낫을 다뤘다.
“아아악!”
엘리스의 몸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극한의 절삭력을 보유한 고유 성창답게 ‘블러드 로드’로 만든 작살로는 아예 상대가 되질 않는다.
엘리스가 떨리는 다리를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움직여야 한다.
계속해서 움직여야지만 조금이라도 더 버틸 수 있다.
“이제 와서 도망을……? 아니, 시간을 벌려는 건가. 후후. 정말이지 마지막까지 어리석은 짓만 골라서 하네 넌.”
아비가일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등을 보인 이상 이걸로 승기가 굳어졌다.
상처 입은 맹수가 제일 위험하다고 하나, 그건 반격할 힘이 있을 때의 이야기지.
완전히 탈진해 버린 맹수는 추하게 발버둥 치다 왕좌에서 끌어내려질 뿐이다.
서걱!
츠걱!
낫이 움직일 때마다 붉은 핏줄기가 흘러나왔다.
이제는 넝마가 되어버린 옷은 더 이상 옷이라고 부르기도 힘들었다.
“아……. 하아. 하아…….”
엘리스의 숨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
흐릿해진 시야와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였다.
허나,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 몸은 연신 휘청거리기만 했다.
“왜. 벌써 포기하는 거야? 조금 더 도망쳐 봐. 벌레처럼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발버둥 쳐 보라고!”
아비가일의 조롱이 이어졌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분노는 느껴지지 않았다.
‘생각보다…… 더 체념하고 있었나 보네.’
이렇게나 담담하게 마지막을 맞이하게 될 거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단지,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마지막으로.
계약자의 얼굴을 한 번만 더 보고 싶었다.
그저 그거 하나만이 미련이라면 미련이었다.
털썩…….
엘리스의 무릎이 땅에 닿았다.
“드디어!”
“죽여 버리십시오!”
“동포들의 원수! 일족의 수치!”
“와아아아!”
격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콜로세움에서 패배한 검투사의 목을 치듯. 지켜보던 관중들이 피를 갈구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머리를 잘라내 줄 테니까.”
아비가일이 엘리스의 목에 낫을 갖다 댔다.
서늘한 감촉이 목덜미를 타고 뺨까지 어루만졌다.
이걸로 짧았던 여정은 끝났다.
“…….”
엘리스가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부웅!
낫이…… 횡으로 가로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
우우우웅!
모두의 앞에 낯선 게이트 하나가 나타났다.
동시에 처음 보는 형태의 룬어들이 엘리스 주위를 감쌌다.
카아앙!
낫이 가로막혔다.
시간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
탓……!
아비가일이 1초도 안 되는 찰나에 거리를 벌렸다.
‘내 낫을…… 막을 수 있는 결계라고?’
말도 안 된다.
그런 것 따위 있을 리 없다.
그러나 눈앞에 벌어진 현실을 마주하고도 언제까지고 부정할 수만은 없었다.
바로 그때.
우우우웅!
녹색 빛을 띤 표면이 일렁였다.
처음 보는 룬어들이 장식된 게이트가 완전히 해방되며, 검은색 롱코트를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한 손에는 사복검이.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은빛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진혁이었다.
“……!?”
엘리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빛이 꺼져 가던 동공에 생기가 스며들었다.
“너…… 여기…… 오면 안 되는데. 위험한데…… 대체 왜. 왜 온 거야. 왜 온 거냐고!”
어떤 마음으로 삶을 포기하고 신념을 굽혔는데.
너를 구해 주기 위해 모든 걸 다 버렸는데.
왜. 어째서. 그 당사자가 이곳에 온 거냔 말이다!
목소리가 떨린다.
그보다 더 격하게 억눌러 왔던 감정이 요동쳤다.
그러나 한편으론 지금 이 순간에 진혁이 이곳에 와 준 게 너무나도 고마웠다.
진혁이 말없이 코트를 벗어 엘리스의 어깨 위에 덮어 줬다.
그리고 천천히 자리에 일어나 앞으로 향했다.
저벅.
발걸음이…… 차갑다.
걷는 소리마저도 너무나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너가 우리 꼬맹이 흡혈귀를 울렸냐?”
묻는다.
이 일의 원흉이 누구인지.
시선이 마주친 아비가일이 피식 웃었다.
“그렇다면 어쩔 테냐?”
“죽어야지.”
촤르르르…….
사복검의 칼날이 길게 늘어졌다.
철컥!
탄창에는 룬어가 새겨진 속성탄이 자리 잡았다.
“건방진 인간 따위가. 지금 누구 앞에서 함부로 입을 놀리는 거냐! 가주. 이놈은 제가 베어 버리겠습니다!”
레이피어를 빼 들은 혈족 하나가 그대로 몸을 날렸다.
빠르고 정확하다.
사각을 파고들어 검을 찔러 넣는 솜씨도 완벽했고.
“끝이다!”
하지만.
퍼퍼퍽!
회심의 미소를 짓던 혈족의 몸이 그대로 양분되었다.
뭔가 반응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촤촤촤…….
사복검이 도로 위에 피를 흩뿌렸다.
“다음은 너다.”
“한낱 인간인 네가 가주인 나를 말이냐? 조금 특별한 결계를 사용한다고 해서 까부는 거라면 크게 실수하는 거다.”
“한낱 가주 주제에 자기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네. 너 하나 상대 못 할 거였으면…… 애초에 이곳에 오지도 않았어.”
“그 말. 죽을 때도 똑같이 내뱉을 수 있나 기대해지.”
아비가일이 옆을 향해 고개를 까닥였다.
그러자 나머지 혈족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움직일 채비를 했다.
“겁을 상실한 건지…….”
“혈족들 싸움에 인간이 끼어들다니. 완전히 미쳤군.”
“검은 조금 쓸 줄 아는 놈이다.”
“괜찮아. 그래 봤자 하나. 셋만 붙어도 저 이상한 검을 휘두르지 못하게 막을 수 있어.”
“수준 차이라는 걸 알려 주마, 애송이.”
엘리스를 상대로는 꼼짝도 하지 못하던 혈족들이 자신만만하게 나섰다.
어느새 꺼냈는지 뱀파이어들 곁엔 황소만한 크기의 회색 늑대들까지 있었다.
혈족들이 부리는 패밀리어 중 하나인 ‘패소드 울프’다.
포악한 성격 탓에 길들이기가 매우 까다로운 종류였지만, 한 번 고삐를 풀어버리면 적의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요함을 가지고 있었다.
“크르르…….”
“컹!컹!컹!”
레비시타 혈족들과 엄청난 수의 패소드 울프.
모두가 진혁을 죽이기 위해 송곳니를 내비쳤다.
웃긴 일이다.
단지 인간이란 이유만으로 저렇게 태도가 달라지는 점이.
“너희들을 일일이 상대해 줄 시간은 없어.”
무엇보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나와라.”
진혁의 부름에 ‘신념을 잇는 끈’이 발동되었다.
좌우로 길게 벌어진 차원의 틈.
그곳에서.
벨루스와 오필리아가 나타났다.
“빌어먹을 놈들이…… 감히 엘리스 님께 무슨 짓을 한 거냐!”
“……이번엔 아비가일 가주인가요. 정말 저희 가주님은 어딜 가나 엄청난 사건만 일으키네요.”
거기에.
쿵! 쿵! 쿵! 쿵!
이어진 끈을 통해 새로운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시 뒤.
거대한 함성이 뒤를 이었다.
“크오오오!”
“오오오!”
“전투를 준비해라!”
담수호에서 만나 인연을 맺은 탑의 인외종, ‘트롤’.
그들을 이끄는 카라칼이 가장 선두에서 진혁을 맞이했다.
꽤 오랜만에 보는 거라 솔직히 조금은 걱정했는데.
역시나 트롤 족의 영웅답게 그동안 눈부신 성장을 거듭한 모양이다.
일전에 봤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져 있었으니까.
물론,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개개인의 질에서는 뱀파이어들에게 비교할 수는 없었으나. 대신 뱀파이어들보다 족히 10배는 많은 수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물량 앞에는 장사 없다는 걸 똑똑히 보여줄 차례다.
“인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말해 다오.”
카라칼이 긴 창을 어깨에 기댔다.
“잡졸들을 맡아 줘.”
“그대는?”
“나는 머리를 칠거야.”
이중에서 아비가일을 쓰러뜨릴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좋다. 명을 따르도록 하지.”
카라칼이 뒤에 있는 병사들을 향해 손짓을 했다.
“칼람. 좌측부터 3인 1조로 돌격할 준비를 해라. 패소드 울프의 기동력을 제한하면서 철저하게 각개 격파로 상대하겠다.”
“알겠다. 바로 배치하지.”
깃발을 중심으로 부대장급을 맡고 있는 트롤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
진형을 갖춘 병력이 도심을 가로질렀다.
콰아앙!
콰앙!
중갑주를 갖춘 몬스터들이 몰아치자 엄청난 충격이 일어났다.
“크아아악!”
“크오오오!”
피와 살이 난무하며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
“뭐,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 지금……!”
아비가일은 연이어 터진 이변들로 인해 혼이 쏙 빠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당장 대응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 그래…… 먼저 엑센시온에게 말해야겠어. 그리 멀지 않으니, 도와달라고 하면 바로 와줄 거야.’
아무리 변수가 발생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엑센시온과 그를 따르는 아타락시아의 혈족들이 와주기만 한다면 그런 변수마저도 찍어눌러 버릴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한눈…… 팔 때가 아닐 텐데?”
진혁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콰아아앙!
“아악!”
묵직한 충격과 함께 아비가일의 몸이 옆으로 튕겨 나갔다.
곧바로 망령나무의 낫이 어지럽게 허공을 가로질렀다.
하지만 이미 진혁은 거리를 벌린 뒤였다.
“큭! 기습이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놈 따위…… 응?”
오싹하고.
아비가일의 등줄기를 따라 차가운 한기가 흘렀다.
룬어들이 겹겹이 그 형을 갖추는 게 보였다.
“간다.”
진혁의 몸 주위로 너무나 이질적인 마력이 일어났다.
잃어버린 언어와…….
벨토르로부터 복사된 ‘고대 결계’를 통해.
최강의 결계를 구현한다.
[11성급 결계 ‘황도십이궁(黃道十二宮)’이 펼쳐집니다!]해질녘 하늘로부터 별빛이 하나의 선을 타고 이어졌다.
별들과 별들이 새로운 마력에 반응해 하나의 별자리를 자아냈다.
[12월의 ‘사수자리’가 깨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