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299)
300화. 불안한 쉼표
“전부 모인 것 같군. 다들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선 들었겠지?”
천마신교 내에서도 특히 은밀한 곳인 ‘흑무당(黑武堂)’에는 몇몇 사람들이 모였다.
중앙에 위치한 상석에 오만하게 앉아 있는 건 좌호법 사마자.
그리고 입을 연 건 마교 서열 4위인 심마사령이었다.
“들었습니다. 그 멍청한 놈들. 그 녀석들이 탑 밖에서 시선을 끌고 있어야 우리의 대업이 수월해졌을 텐데요.”
“설마, 진조가 죽을 줄이야. 꽤 강한 놈들인 줄 알았는데 너무 허무하게 끝났어.”
채홍아와 패천무가 한 마디씩 덧붙였다.
당장이라도 무림에 진출해 모든 걸 쓸어버리고 제국까지 집어삼킬 계획이었건만. 이걸로 인해 모든 일에 제동이 걸려버렸다.
바로 그때.
“진정들 하게. 그 녀석들의 성패와 상관없이 본교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무림과 제국 전부를 쓸어버릴 수 있으니까.”
잠자코 있던 사마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천마가 내상을 입고 몸을 숨긴 지금, 본교는 유례없이 긴 폐관을 하며 움츠려 왔네. 건방진 무림맹이 날뛰는 걸 지켜보고. 서역의 제국이 이 땅을 더럽히는 걸 지켜만 봤지. 하지만, 그 모든 수모의 시간은 오늘로서 끝이야.”
날개가 꺾인 독수리는 더 이상 독수리가 아니다.
과거의 유산이자 청산해야 할 대상일 뿐이지.
모든 것이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천마신교라면…… 당연히 새로운 천마가 필요할 터.
바로.
좌호법인 자신이 움직일 때다.
“심마사령.”
“예. 지존.”
심마사령이 깍듯이 고개를 조아렸다.
“준비해 둔 건 어떻게 됐지?”
“시키신 대로 이미 전부 끝내 뒀습니다. 어떻게. 한 번 직접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호오. 그래. 퍽 기대가 되는군.”
사마자가 살며시 손을 들어 올리자, 심마사령이 곧장 나무로 만든 기둥에 다가갔다.
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기둥이었지만, 내공을 주입하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쿠쿠쿠쿵!
요란한 소음과 함께 별채의 바닥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이, 이곳에 이런 시설이 있다니.”
“뭡니까, 좌호법. 이건!”
곁에 있던 나머지 사람들이 깜짝 놀라 외쳤다.
평생을 천마신교 내에서 지내 왔던 이들이었지만, 설마 별채 지하에 이토록 거대한 시설이 숨겨져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시 말하지만…… 본좌는 이번 일을 위해 오랜 시간을 들였고 많은 것들을 준비해 왔네. 그러니 자네들은 믿고 따르기만 잘하면 될 거야.”
사마자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계단의 아래.
횃불이 밝혀진 내부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의 강시들이 주인의 명을 기다린 채 잠들어 있었다.
혈강시나 독강시는 물론, 절정급 고수들을 상대할 수 있는 음양강시부터 최상급 강시 중 하나인 천한강시까지 보였다.
혈교에서 생포한 고수들과 심마사령을 통해 육성한 최강의 강시들이다.
“곤륜을 필두로 달포 안에 무림 전체를 손에 넣겠다. 아! 그전에 집안 정리부터 해야겠지. 우호법 그 늙은이와 제자란 놈은 지금 어디에 있지?”
“그게…… 지금 탑 밖에 있다고 합니다.”
“제물로 내단이 엄청나게 소모될 텐데 세월도 좋군. 아니, 덕분에 목숨을 건진 건가.”
사마자가 피식 웃었다.
“추격대를 꾸릴까요?”
“아니다. 그냥 내버려 두어라. 어차피 음영대 하나가 전부인 놈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암황이나 그 제자 따위야 다시 무림에 왔을 때 천천히 요리해주면 된다.
강시들과 천마신교의 주력 정예들만 있다면, 그 둘을 죽이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다.
***
탑 외부에선 3일이 지난 오늘날까지 온통 아웃브레이크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인류를 구원한 영웅] [고인물 코퍼레이션 그 구성원이 어떻게 되는가? 랭커와 각 특성까지 총 정리.] [개인 인터뷰 모음] [암스테르담의 성녀 테레사, 당당히 자신의 소속 밝혀 ‘함께 해서 자랑스럽다’] [강진혁, 과거 정체를 숨긴 유명 BJ로 밝혀져!]각종 기사들이 인터넷과 커뮤니티를 즐비하게 도배했다.
어그로성 떡밥과 거짓 이야기도 많았지만, 그만큼 지금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주가가 하늘로 치솟고 있다는 방증이리라.
sky: 이번에도 진혁이 덕분에 살았네.
공백: 난 정말 죽는 줄 알았어. 건물도 다 무너지고 도로도 박살나고.
min: 탑 안에 일이 남의 일인 줄만 알았는데, 직접 밖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보니 이제야 심각한 건줄 알겠더라.
리리: ㅇㅈ. 진짜. 간 떨려 죽는 줄 알았음.
눈뜬장님: 다들 알고 있지? 추모식 오늘 생중계로 한다고 함.
앤케이: ㅇㅇ. 들었음. 오후 3시면 이제 얼마 안 남았네.
낭랑: 대전 현충원이라고 하니 근처에 있는 사람은 직접 가 봐.
kimy: 그래. 우리도 봐야지. 죽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by미니신랑: 후. 고맙고 미안하고 또 안타깝다.
jxh: 난 플레이어들이 새삼 더 대우받아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렇게 목숨 걸고 싸워줬잖아.
11: 맞아. 당연히 그래야지.
곧이어 전국에 동시 생방송이 시작되었다.
시련의 탑 방송 시스템이 아닌, 한국 각성자 협회 공식 채널을 통한 방송이었다.
사박.
진혁과 천유성 그리고 테레사가 검은색 정장을 입은 채 나타났다.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세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사근당과주스: 오오오! 진혁이다!
이도연: 천유성에 테레사까지 왔어.
민경부: 와 멤버 화려하네.
아르카주: 진혁이는 수트빨도 잘 받음.
las: 어깨에 붕대를 감고 있어서 그런가? 괜히 더 멋져 보이긴 한다.
kupi: 상처 입은 남자. 멋져. 짜릿해!
냉장고에 붙은 자석: 근데 힐링 스킬 사용하면 되는데, 왜 붕대를 감고 있는 거지?
수천이 넘는 추모객과 기자들 그리고 한쪽에 마련된 채팅창이 미친 듯이 움직였다.
“보세요. 진혁 씨가 이 사람들을 전부 구한 거예요.”
“그렇게 말하기엔…… 잃은 사람이 너무 많네요.”
진혁이 쓴웃음을 지었다.
듣기로는 한국에서 죽은 플레이어의 수천 명이 넘는다고 했다.
세계로 따지면 몇 만이 넘었고.
추정치가 이 정도였으니 실제로는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으리라.
“넌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 거다. 실제로 믿기 힘든 성과를 내기도 했고. 그러니 당당하게 어깨를 펴도 된다. 잃은 것만 생각하면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천유성이 진혁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이 녀석까지 이런 말을 해 줄 줄이야.
그래. 그렇게 말해 주니 조금 힘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산 사람들은 내일을 위해 살아가야겠지.
캬캬캬: 오! 저기 봐. 사무라이 길드의 타케시도 참석했음.
박희수: 아 맞다. 저 사람이 강진혁 플레이어한테 은혜를 갚기 위해 왔다고 했었지.
맥도리아케찹도둑: 이번에 백 명이 넘는 길드원들을 잃었다고 하던데.
이이이이이: ㅇㅇ. 피해가 엄청나게 컸다고 함.
pri: 피난민들 구하려고 최전방에서 그 염소랑 싸웠으니까.
모죠: 그래도 의리가 있구만.
푸른신록: 조금 다시 보게 됨.
“오셨습니까? 미천한 인간이 위대하고 존엄하신 신격을 뵙…….”
“……!?”
타케시가 말을 하려던 걸 진혁이 재빨리 제지했다.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조용히 하자.”
“예?”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 알지?”
“아, 알겠습니다.”
시무룩한 채 고개를 숙이는 걸 보니 약간 양심이 찔리긴 한다.
이 녀석한테도 언젠가 진실을 말해주긴 해야 할 텐데.
바로 그때.
“진혁 씨, 어서 오세요. 이제 식이 시작돼요.”
테레사가 저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예. 바로 갈게요.”
진혁이 기자들과 추모객 사이를 지나 앞으로 향했다.
흩날리는 눈송이 속.
눈송이보다 더 하얀 국화꽃이 묘지 앞에 놓였다.
이번 아웃브레이크로 인해 죽은 시민들을 위해.
또 다른 한 송이는 그들을 구하기 위해 죽은 플레이어를 위해.
마지막 한 송이는 고유 능력이나 스킬이 없음에도 사지로 뛰어든 군, 경찰들을 위해.
탕! 탕! 탕!
예포 소리와 함께 짧은 추모가 이어졌다.
pri: 그래도 무사히 잘 끝났네.
미리내: 이걸로 한시름 놓을 수 있는 건가?
현자: 아니지. 안 끝났어.
jew: ㅇㅇ. 저 게이트 아직 안 없어졌음.
우주수성: 더 센 놈이 있다고?
him: 그 검은 염소 부리는 녀석이 남아 있잖아.
로우: 기괴한 울음소리 같은 거 내뱉으니까 염소들이 움직이던데. 명령을 내리는 걸 보니 그 녀석이 보스인 듯.
버터와플: 마력 측정 불가 판정이라니 완전 노답이지.
윤재선: 나오면 이번에는 진짜 위험할 것 같긴 해.
kkh: 게이트 닫을 수 있는 방법 알아보려고 각 길드에서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하더라.
나만 믿어봐: 하아. 진짜 걱정이긴 하다.
당장은 살아남았다는 안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동시에 아직 개방되지 않은 게이트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당연한 말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잠시 시간을 번 것일 뿐.
근본적인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으니까.
‘남은 건 일주일 정도인가.’
진혁의 시선이 저 먼 곳으로 향했다.
아직까지 하늘에는 거대한 게이트가 떠 있는 게 보인다.
일렁이는 표면 속.
수많은 이빨을 달린 가시가 튀어나와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뛰쳐나와 모든 것을 무로 돌려버리겠다고 경고하듯.
***
다음 날.
가평에 위치한 대형 펜션에선 꽤나 묘한 조합의 모임이 만들어졌다.
파라솔을 두고 한쪽에선 진혁과 암황 그리고 엘리스와 월영이 앉았고.
반대편에선 추혼사영과 천유성이 자리 잡았다.
테레사는 안드리아가 탑 밖에서 입을 옷 쇼핑을 도와주고 난 뒤 합류하기로 한 상태.
시작은 분명 조촐한 뒤풀이였는데, 이 사람 저 사람이 끼어들다 보니 판이 이렇게나 커져 버렸다.
그나저나.
걸출한 두 거물의 만남이라니.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네. 그것도 탑 밖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만나게 될 줄이야.’
화사하게 웃고 있는 추혼사영과 대조적으로 뚱한 표정의 스승님.
겉으로는 신경 쓰고 있지 않은 척하고 있지만, 묘한 신경전이 계속해서 오고가고 있었다.
우아한 가디건과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추혼사영이 선배드에 몸을 뉘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얼음이 동동 뜬 트로피카 음료수를 마시는 게 완전히 해외 여행가서 인스타 찍는 수준이다.
저 사람은 무슨 수로 저렇게 이쪽 세계의 적응이 빠른 건지 모르겠다.
천유성이 개인 과외라도 해준 건가?
반면, 스승님은 어디서 구한 건지 수영 선수용 전신 타이즈를 입고 있었다. 수영모까지 착실하게 쓴 채.
“커흠. 제자야. 네가 사는 세계의 옷은 굉장히 불편하구나.”
그야 그렇겠죠.
그 근육을 감당하지 못해 수영복이 다 찢어졌는데, 편할 리가 있겠습니까.
진혁이 차마 속에 있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을 때였다.
“어머나. 제 생각엔 암황께선 뇌까지 근육으로 되어 있어서 옷이 버티질 못하는 것 같네요. 원래 무식한 분이 자기 체격도 생각 못 하고 옷도 꼭 그런 걸로 고르시더라고요.”
추혼사영이 음료수를 한 모금 홀짝였다.
“무, 무식? 지금 본좌에게 무식하다고 하였는가?”
순간.
콰콰콰콰콰!
수영장에 있는 물이 모조리 하늘로 솟구쳤다.
“꺄아아악!”
“뭐, 뭐야?”
“지진인가?
“설마, 그 아웃브레이크가 열린 건 아니겠지…….”
반대편 펜션에서 머물고 있던 손님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천유성이 두 사람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불안불안하군.”
“공감이다.”
그렇게.
탑 밖에서의 휴가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