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30)
30화 타락한 회랑의 주인 (4)
“어떻게 인간 따위가…….”
벨루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야 그럴 수밖에.
지금 공격은 인간들을 일격에 쓸어 버리기 위해 마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대체 어째서.
저놈은 이토록 쉽게 막아낼 수 있단 말인가.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너희들이 쓰는 스킬과 화염 속성은 상극이거든.”
거기에 간극 스탯과 적응형 능력치로 인해 오히려 레벨 차이가 역전된 상태다.
이 정도 상황이 갖춰졌으면…….
자신이 없다.
질 자신이.
“엘리스가 봉인된 순간, 너희들이 이길 확률은 사라진 거야.”
“확실히, 마법으로는 이기기 힘들 것 같군.”
벨루스가 끌어 모았던 마력을 흩어 버렸다.
“하지만 네놈 말대로 상극이 존재한다면……. 마법으로 근접계열의 공격을 받아내는 건 힘들 테지?”
어느새 오른손에 나타난, 묵빛이 도는 검.
뱀파이어들이 즐겨 쓰는 레이피어였다.
게다가.
[벨루스가 Lv9 ‘암흑투기(暗黑鬪氣)’를 발동합니다!]검신을 타고 검은색 기운이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검기다.
그것도 꽤나 순도 높은.
“멀리서 날파리처럼 요리조리 도망만 다니는 놈들을 상대하는 덴 이것만 한 게 없지.”
틀린 말은 아니다.
마법계열 능력자는 거리가 좁혀진 순간, 리스크가 극도로 증가하니까.
게다가 열둘이나 되는 수로 동시에 덤빈다면 충분히 승산 있는 한 수였다.
그래.
그게 정석이다.
정석이긴 한데…….
누가 그래?
내가 마법에만 강하다고?
[고유 능력 ‘검의 무덤’이 발동됩니다!]고요한 적막 속.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검마의 재능이 진혁의 몸에 스며들었다.
바뀐다.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부터.
마력이 흐르는 과정까지.
가면 너머로 보이는 세상이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과연……검마라는 칭호를 거져 얻은 건 아닌가보네.’
진혁의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
‘……뭐지?’
벨루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뭔가 달라졌다.
정확히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지만,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파르르.
희미하게 떨리는 손.
설마.
‘두려워하고 있단 말인가?’
이 내가?
벨루스가 어금니를 으스러져라 깨물었다.
“웃기지…… 마라.”
인간 하나에게 겁을 먹다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 그분을 구속하고 있는 육망성을 깨뜨려야 한다. 낭비할 시간 따위는 없다.
벨루스가 검을 움켜잡았다.
“네놈이 아무리 발악해 봐야 검기를 받아낼 순 없을 것이다.”
든든하게 타오르는 검은 기운.
극한의 절삭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는 검기였다.
“한꺼번에 덮친다.”
“명심해. 절대 놓쳐선 안 돼.”
“팔다리 하나 정도는 잘라야겠어. 그래야 분이 풀리지.”
혈족들이 진혁을 향해 포위망을 형성했다.
전후좌우.
개미새끼 한 마리 빠져나갈 틈도 없다.
그러나 진혁은 자리에 멈춘 채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았다.
그저 심드렁한 표정으로 적들을 훑을 뿐.
“검기라. 믿는 게 고작 그거였냐?”
“허세부리지 마라. 아무리 날고 기는 놈이라도 여기서 빠져나갈 순 없다.”
하긴, 말만 하면 허세로 보이겠지.
어느 쪽이 유리하고 불리한지 누가 봐도 뻔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보여 주면 된다.
말이 아닌 실력으로.
진혁이 단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콰콰콰콰콰!
눈이 시릴 정도로 밝은 빛이 일렁였다.
“이, 이럴 수가…….”
벨루스의 두 눈이 터질 듯이 팽창했다.
기껏해야 검의 표면을 덮고 있는 검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단검을 완전히 감싸고 그 위로 1m 가까이 솟구친 푸른 기운.
틀림없다.
이건.
“오, 오러 블레이드라고?”
“검(劍)에 기(氣)를 불어넣는다는 건.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어?”
진혁이 단검을 앞으로 뻗었다.
공기마저 베어 버릴 것만 같은 예리함.
압도적인 무력이 혈족들을 향했다.
탓!
신형이 사라진 건 바로 그때였다.
“어, 없어졌다?”
“어디야! 어디냐고?”
“젠장. 눈으로 쫓지 말고 마력을 탐지해라!”
벨루스가 외쳤지만, 너무 늦었다.
“크아아악!”
가장 측면에 있는 뱀파이어의 어깨에서 붉은 피가 솟구쳤다.
팔이 송두리째 잘렸으니, 아무리 회복력이 뛰어난 뱀파이어라고 한들 시간이 걸릴 거다.
‘일단 한 놈.’
진혁의 눈동자가 다음 타겟을 쫓았다.
철저하게 약한 순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으로 강한 놈까지.
아무리 승리를 확신하더라도 방심 따위는 하지 않는다.
서걱!
단검이 원을 그렸다.
“커억!”
허벅지에 바람 구멍이 나자, 뱀파이어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또 한 놈.
[당장 멈추지……!]엘리스가 뭐라고 소리를 질러 대는 것 같은데, 잘 들리진 않는다.
이미 싸움이 시작되기 전부터 브라함의 반지를 안주머니 깊숙이 쑤셔 놨기 때문이다.
“따로 놀지 말고 진형을 유지해라! 멍청하게 상대의 노림수에 당해 주지 말란 말이다!”
벨루스가 목에 핏대를 세웠다.
“큭!”
“쳇!”
그제야 뱀파이어들이 엉거주춤 자세를 갖췄다.
부상당한 이들의 공백을 메우며, 측면을 보강했다.
“쳐라!”
열 개의 레이피어가 진혁을 향해 폭사됐다.
검과 검이 격돌한 순간.
콰콰쾅!
레이피어가 수십 조각으로 쪼개졌다.
산산이 부서져 버린 칼날.
역시나 검기로는 검강을 당해 낼 수 없다.
‘상관없다. 절반을 잃더라도 한 번만 공격을 성공시키면 돼.’
희생은 불가피하다.
그건 누구보다도 벨루스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부웅!
부우웅!
하지만, 레이피어는 모두 허공을 가를 뿐.
진혁의 그림자 조차 쫓지 못 했다.
30초…… 1분.
시간이 지날수록 벨루스의 얼굴은 점점 흙빛으로 변해 갔다.
‘목숨을 내던질 각오로 덤벼도 상대조차 되질 않는단 말인가.’
그 와중에도, 이쪽의 숫자는 하나씩 줄어들고 있었다.
언제나 당했는지.
어떻게 당했는지조차도 모른다.
마치 귀신을 상대하는 기분이다.
퍽!
또 하나가 쓰러졌다.
더 이상 옆에 서 있는 혈족은 없다.
“젠장.”
이젠…… 뭐가 뭔지 모르겠다.
벨루스가 등 뒤에서 다가오는 싸늘한 기운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
싸움은 끝났다.
너무나 허무하게.
아니, 허무하다는 말은 당사자인 진혁에게만 해당되는 말일 뿐.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이들은 전신을 휘감은 전율에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테레사 씨…….”
송천화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대체 지금 무얼 본 걸까?
이게 현실이긴 한 걸까?
공격대마저 손도 대지 못했던 진조의 혈족을 혼자서 쓸어버리다니.
그 어떤 랭커라도 이런 일을 할 수는 없다.
꿀꺽!
송천화의 목구멍을 타고 마른침이 넘어갔다.
“저 남자. 누구인지 알고 계시는 겁니까?
“…….”
테레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힐끗 진혁을 바라봤다.
가면을 쓰고 있다는 건.
사람들 앞에서 정체를 밝히고 싶지 않다는 뜻이겠지.
“중간에 우연히 만나 함께 오게 된 사이예요. 저에게도 그저 믿으라고 했을 뿐, 그 외의 자세한 건…… 말해 주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그렇군요…… 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던 송천화가 탄성을 뱉어 냈다.
가면을 쓴 진혁이 무언가 하려는 걸 봤기 때문이었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송천화가 단숨에 진혁에게 달려갔다.
“왜 그러시죠?”
성유물 앞에 서 있던 진혁이 뒤를 돌아봤다.
“그……. 저는 이 공격대를 이끌고 있는 공대장, 송천화라고 합니다.”
“대충 들어 알고 있습니다.”
실패한 레이드의 책임자.
적군보다 무섭다는 무능한 지휘관.
나 같으면 쪽팔려서라도 구석에 찌그러져 있을 텐데.
무슨 낯으로 말을 거는 걸까?
……됐다.
이런 놈은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다.
“부상자를 데리고 유적을 떠나세요.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으니까 수분과 간단한 영양 보급이 필요할 겁니다.”
진혁이 귀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
그런데.
송천화가 곤란한 듯 자리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그전에 성유물에 관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설마.
여기서 성유물의 권리를 주장한다고?
와.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놈일세.
“알고 계시는지 모르지만, 이번 레이드에서 구한 모든 아이템의 소유권은 저희 발해 길드에…….”
진혁이 송천화의 말을 도중에 끊어 버렸다.
“목숨을 구해 줬는데 성유물까지 달라?”
개소리도 참 신박하게 한다.
너무 참신해서 다음엔 어떤 말을 할지 기대가 될 정도랄까?
송천화도 찔렸는지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대신 저희가 다른 보상을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돈이든 코인이든 결코 섭섭하지 않게 챙겨 드리죠.”
“보상이라…….”
이거 안 되겠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본인이 그토록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냥 가져가세요. 자요.”
진혁이 한 걸음 옆으로 물러섰다.
“저, 정말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그럼요. 대신 후회만 하지 마세요. 어떤 결과가 나오든.”
“예?”
“그냥 한 말입니다.”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송천화는 찜찜하단 느낌을 받았지만, 이내 머리를 털었다.
성유물을 양보해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넓적한 바위 위에 놓여 있는 나무 파편.
바로 ‘멀린의 지팡이’다.
부서진 7개의 조각 중 하나였지만, 그렇다 해서 그 가치가 깎여 나가는 건 아니었다.
‘마법 재료로 쓰면 활용 가치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해.’
송천화의 두 눈이 탐욕으로 얼룩졌다.
이걸 가져간다면, 공격대가 포로로 잡혔던 오점을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손으로 파편을 잡은 그 순간.
화끈하고.
불에 덴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송천화가 깜짝 놀라 손을 뗐다.
허나, 붉게 달아오른 피부보다도 그를 놀라게 한 건.
손바닥에 표시된 역십자 모양의 문양이었다.
“뭐, 뭐지 이건?”
뭐긴…….
“저주죠.”
본래 엘리스를 소멸시켜야만 얻을 수 있는 성유물이다.
그런데 엘리스가 죽지 않고 봉인되어 있는 상황에서, 성유물을 건드렸으니 당연히 저주에 걸릴 수밖에.
“저, 저주라니! 설마, 죽…… 죽는 겁니까? 제가?”
“생명에 지장 있는 건 아니고요. 단지…….”
“단지?”
무모증(無毛症)이라고.
“전신에 있는 털이 송두리째 사라집니다.”
쉽게 말해서 평생 매끈매끈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 그럴 수가.”
송천화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졌다.
어우야.
한 움큼씩 빠지는 걸 보니 몇 시간 남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말했잖아.
후회할 거라고.
뭐, 이제 와선 아무래도 소용없는 말이지만.
“안 돼… 안 돼애애애애!”
송천화가 비명을 지르며 어딘가로 달려갔다.아마 거울이 있는 곳으로 가려는 모양인데, 안 보는 게 정신건강상 이로울 거다.
***
“……짓궂으시네요.”
테레사가 복잡한 심경이 담긴 미소를 지었다.
“남의 떡에 손을 대려고 했으니 자업자득이죠.”
“하지만, 이렇게 되면 진혁 씨도 성유물을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니.
그건 아니지.
‘나는 저주를 피한 채 성유물을 만질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별의 가호’.
신성력을 익힐 수만 있다면 이 정도 저주 따위는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테레사 씨의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저도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제 덕분에 살았다는 거, 인정하십니까?”
“…….”
테레사가 진혁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만약 진혁이 없었다면…….
공격대 중 누구도 살아서 밖으로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예.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어요.”
테레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고유 능력 ‘별의 가호(SS)’를 복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복사된 스킬은 ‘세계의 기억’에 저장됩니다.] [별의 가호]입수 난이도: SS
내용: 성기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신성력을 다룰 수 있으며, 즉사가 아닌 한 2번째 삶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됩니다. (쿨타임 240시간)
이걸로…….
유적에서 해야 할 마지막 목적까지 모두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