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300)
301화. 고인물식 수영장 파티
‘뭐, 그럭저럭 나쁘지 않네.’
거울을 보던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글라스와 흰 티셔츠, 청으로 만든 반바지.
이곳에 오기 전 간단하게 쇼핑을 한 옷가지들이다.
“이야. 주인. 멋진데?”
“평소에도 좀 그렇게 꾸미고 살아.”
운디네와 실피드가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백화점 직원이 연신 칭찬을 할 땐, 그저 입에 바른 소리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령들의 반응을 보니 완전히 상술용 멘트였던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역시 가장 큰 이유는 활동량 때문이겠지.
아무리 운동을 병행했다고 하지만, 오랜 BJ 생활로 인해 군살이 약간씩 붙어 있었는데.
시련의 탑이 현실로 나타난 이후로는 완벽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헐렁한 핏 사이로 보이는 잔근육과 왁스로 머리를 올린 것도 단단히 한 몫 했으리라.
그때.
각기 다른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 수영장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월영과 천유성이었다.
“주군. 속하는 이렇게 무장을 하지 않은 복장이 영 불안합니다. 뭔가…… 만에 하나의 사태가 났을 때 주군을 보호하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트렁크형 수영복 하의만 입은 월영은 가녀린 몸이 그대로 밖으로 드러났다.
본인의 검을 소지하지 못하고 있는 게 꽤나 불안한 듯 보였다.
반면, 천유성은 여유롭게 아이스박스에서 맥주를 꺼낸 뒤 선배드 하나를 차지했다.
“흐음. 뭐, 가끔 이런 것도 나쁘지 않군.”
연예인 화보 촬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조각상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만 같은 외모는 여전히 한결같다.
누워서 맥주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나오네.
뒤이어 엘리스와 테레사 그리고 안드리아까지 나왔다.
“우와아아! 진혁 님. 이게 수영장이라는 건가요?”
“유럽에서는 흐린 날이 더 많았는데, 한국 날씨가 훨씬 더 좋은 것 같네요. 눈이 내린 거에 비해 춥지도 않고.”
안드리아는 하얀 머리카락 색과 어울리는 흰색 비키니를 입었고 테레사는 금발에 잘 어울리는 파란색 비키니를 입었다.
어우야.
둘 다 여러 의미에서 엄청나긴 하다.
특히 안드리아는 구미호의 능력에 익숙해지려는 듯, 여우 귀와 9개의 꼬리까지 완전하게 발현시킨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검은색 수영복을 입은 엘리스가 테레사와 안드리아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
엘리스가 진혁의 어깨를 쿡쿡 찔렀다.
“짐도 원래 몸으로 돌려다오.”
“왜?”
“잔말 말고 빨리.”
“싫어. 마력 소모 심하단 말이야. 그냥 있어 좀.”
짜악!
“컥?”
진혁의 등줄기에 선명한 손바닥 자국이 생겼다.
저 녀석은 이 좋은 날에 왜 아무 이유 없이 신경질을 내고 난리인 건지.
‘하여간, 완전히 애라니까.’
진혁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혀를 찼다.
그렇게 본격적인 물놀이가 시작되었다.
“모기! 모오오기!”
고구마가 튜브 위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네! 네! 대장 또 갑니다. 이번엔 조금 큰 파도예요!”
그러자 운디네가 열심히 물속에서 파도를 만들었다.
딱 적절하게 즐길 수 있는 높이로.
하지만.
“그것 가지고 재미가 있겠느냐? 파도를 원한다면 본좌가 파도를 만들어주지.”
수영장 한가운데 들어온 암황이 내공을 끌어올렸다.
콰콰콰콰콰콰!
순간, 수영장 끝으로부터 거대한 파도가 일어났다.
당장 막아야 한다.
이대로 놔뒀다간 피서를 즐기기도 전에 펜션이 통째로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스승님.”
진혁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왜 그러느냐?”
“스승님의 무위는 무림 최고라고 들었습니다만. 역시 명불허전이십니다.”
“크흠! 뭐, 틀린 말은 아니지.”
“해서 말인데, 저랑 가볍게 내기를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허? 본좌와 내기를 하겠다?”
암황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흥미와 호기심이 반반씩 섞인 얼굴이다.
“물론, 가볍게 흥을 띄우기 위한 용으로 말입니다. 진심으로 스승님과 내기를 해서 이길 수 있을 리는 없을 테니까요.”
“좋다. 즐거운 자리에 그런 게 빠질 순 없지. 허면, 종목은 무얼로 하겠느냐?”
“초절정급 고수들은 물건에 손을 대지 않고도 움직이는 게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허공섭물(虛空攝物)을 말하는 게로구나. 당연히 본좌 역시 사용할 수 있는 경지니라.”
“역시. 스승님의 무공은 천외천이라는 말밖엔 할 말이 없군요. 불초 제자는 오늘도 감탄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진혁이 감정에 북받쳐 울먹일 것만 같은 표정을 지었다.
진짜로 눈물 한 방울 흘려보겠다고 손톱으로 허벅지를 꼬집었다.
“커험! 컴! 제자가 뭘 좀 아는구나. 하긴, 본좌만 한 고수는 무림 전체를 통틀어도 찾아 보기 힘들긴 하지.”
좋아.
먹잇감이 택배 상자 안에 쏙 들어왔다.
“그럼, 더 높게 띄우는 쪽이 이기는 걸로 하죠.”
“잘 보거라. 본좌가 내공의 끝이 무엇인지 직접 보여주도록 할 테니.”
암황이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적당한 걸 찾는 듯한 눈치다.
“정했다.”
“모기?”
고구마의 몸이 천천히 하늘로 떠올랐다. 거의 10m가 넘게.
고구마의 무게 정도 되는 걸 10m가 넘게 띄우다니. 진짜 대단하긴 하다.
얼마나 내공이 깊은지 가늠조차 안 되네.
“벌칙은 본좌와 함께 10년 간 폐관 수련을 하는 것으로 하겠다. 가르쳐야 할 게 아주 산더미 같구나.”
암황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이래도 계속할 수 있겠느냐는 듯이.
하지만.
진혁의 입꼬리에 걸린 미소는 그보다 더욱 짙었다.
“이번엔 제 차례로군요.”
[고유 능력 ‘트리플 매직’이 발동됩니다.] [레비테이션 마법이 선택되었습니다.]“모기!”
고구마가 바람을 타고 부드럽게 하늘 위로 솟구쳤다.
아예 50m가 훌쩍 넘는 높이였다.
“자, 잠깐만!”
암황이 기겁하며 고함을 질렀다.
“이건 반칙이 아니지 않느냐! 내공으로 들어 올려야지. 네가 가진 다른 능력을 사용하면 대체…….”
“저는 내공으로 하겠다고는 한 마디도 한 적이 없는데요?”
“으응?”
“그냥 높게 띄우는 쪽이 이기는 거라고 했을 뿐입니다.”
대체 왜 힘들게 내공을 사용하는 거냐?
마법이라는 훌륭하고 편한 수단이 있는데.
“그, 그건…….”
“마침, 고기랑 같이 먹을 마늘을 깜빡 잊어서요. 길을 따라 쭉 나가셔서 사와 주시면 됩니다.”
가능하면 오다가 십톤짜리 화물 트럭이랑 정면 충돌 좀 해 주십쇼.
북망산에서 며칠 좀 요양하다 오시면 더욱더 좋고요.
***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을 놀고 나서야 시끄러웠던 하루가 저물어갔다.
물론, 피서는 끝난 게 아니다.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지.
지글지글.
고기 굽는 소리와 함께 먹음직스러운 향기가 솔솔 피어올랐다.
펜션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먹방.
다시 말해 얼마나 맛깔스러운 고기와 야채 그리고 술을 먹느냐다.
“…….”
“…….”
서로의 시선이 교차한다.
호흡이 차갑게 가라앉고 번뜩이는 맹수의 눈빛에서 스파크가 일어났다.
바로 그때.
고기 하나가 겉바속촉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공기가 급변했다.
다들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지금 저 고기가 가장 먹음직스럽다는 것을.
츳…….
탁!
타다닥!
젓가락이 허공을 가로지른다.
첫 번째 한 점을 얻기 위해.
그리고 남이 확보한 한 점을 빼앗기 위해.
각자가 보유한 고유 능력이 발동되었다.
음영극살로 인해 사라진 젓가락이 단숨에 고기를 낚아챘다.
“첫 점은 주군께 바치겠습니다!”
그러나.
‘추혼검’을 사용한 추혼사영이 월영이 집고 있던 고기를 빼앗았다.
“헉?”
“훗! 마교의 실력이 다 거기서 거기죠.”
그러자 질세라 암황이 흑천마황공을 끌어올렸다.
나무젓가락을 따라 묵직한 기운이 폭발했다.
“감히! 마교의 음식에 손을 대?”
콰아앙!
젓가락은 물론, 고기까지 가루로 변해 버렸다.
“뭐, 뭐 하는 짓이에요. 기품 없이!”
“정파 놈들에게 빼앗길 바엔 차라리 없애 버리는 게 낫다. 그것도 너같이 능글맞은 구렁이에게라면 더욱더 말이지.”
“어머나. 귀한 음식을 천하게 대하시는 분은 젓가락을 이마 한복판에 꽂아 드려야 한다는 탑 밖의 법이 있습니다만.”
“재미있군. 정파 나부랭이가 강호의 도를 논하는 것도 모자라 탑 밖에서의 법도까지 논한다고? 어디 할 수 있으면 한 번 해 보거라.”
우두둑!
암황의 근육이 터질 듯이 팽창했다.
하지만, 추혼사영 역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채 그 기세를 맞받아쳤다.
선글라스를 쓴 강남 사모님과 술 한 잔 거하게 잡수신 동네 아저씨와의 대결인가.
으음.
‘차라리 검은 염소랑 싸울 때가 더 나았어.’
진혁이 검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나마 테레사 씨가 ‘별의 가호’를 통해 남은 고기들을 보호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자칫했다간 저녁 밥이 단백질 분자로 구성된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될 뻔했다.
바로 그때.
“진혁 님! 이거 드세요. 제가 싸 봤어요, 헤헤!”
안드리아가 해맑은 얼굴로 쌈 하나를 쌌다.
나름 열심히 테레사에게 배웠는지 제법 그럴 듯한 모양을 갖추고 있는.
“한국 사람들은 원래 가족이나 친구에게 쌈을 싸 주는 게 전통이라고 하네요. 음. 보통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애정을 담아 고기나 마늘 밥 김치 등을 듬뿍 넣는다고 하고요.”
테레사가 초록색 검색창을 열심히 읽었다.
“고마워. 잘 먹을게. 안드리아.”
그래도 이 와중에 예쁜 짓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진혁이 기쁘게 쌈을 받아들어 입에 넣었다.
“이야. 맛있는데?”
비율이 적절하다. 고기도 두 점이나 들었고.
칭찬을 받은 안드리아가 세상 행복한 얼굴로 손뼉을 마주쳤다.
이 녀석도 이렇게만 보면 그 누가 한 층계를 맡고 있는 보스라고 생각할까?
영락없이 순수한 소녀 그 자체인데.
“제 거는 특이할걸요? 서양식으로 한 번 만들어 봤어요.”
테레사도 쌈 하나를 싸서 건넸다.
호오. 이건 삼겹살 대신 소시지와 머스터드를 곁들인 거다.
쌀밥이랑 계란 프라이랑 같이 해서 먹으니 자연스레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쌈이라…… 탑 밖에는 굉장히 재밌는 문화가 있네요.”
“사랑하는 제자를 위해 특별히 본좌가 하나 싸 주도록 하지.”
다시 한 번 묘한 신경전이 붙고 말았다.
“천 공자. 자. 아 하세요. 아아아~.”
“스, 스승님 체통이라는 걸 좀…….”
“어머나. 스승이 주는 걸 거절할 생각인가요? 서러워서…… 죽어야 할까 봐요.”
“……알겠습니다.”
고기를 세 점이나 넣은 쌈을 건네자 천유성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거머리 녀석도 저런 스승을 만나서 고생하는 걸 보니…… 살짝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기도 하네.’
진혁이 안쓰러운 시선으로 천유성을 바라볼 때였다.
“푸하하! 애송이 녀석. 정파 놈들은 항상 그렇게 호탕하지 못하구나.”
암황이 탄 고기를 가득 담아 쌈에 넣었다. 검은색 김치가 듬뿍 추가된 건 덤이다.
“사내라면 두 입에 나눠 먹지 않는 법. 받거라.”
불쌍하다는 말은 취소다.
여기 더 한 괴물이 있다.
게다가.
“애정이 있는 만큼 담아…… 최대한 많이…… 응. 질 수 없어. 응!”
혼자서 중얼거리던 엘리스가 연신 작은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더니 농구공만 한 무언가를 건넸다.
“먹어.”
“응?”
“먹으라고.”
“이걸?”
“응. 남기지 말고 다. 남기면 절대 안 돼. 알았지?”
“…….”
한 눈에 봐도 고기로 원각사지 10층 석탑은 돼 보이는 높이인데?
상추만 해도 30개 정도에 밥도 밥솥에 있던 걸 전부 넣었다.
부처님도 놀라서 도망갈 만한 양을 한 번에 먹으라고 주는 게, 이건 쌈을 주려는 건지 암살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중층부…… 빨리 가고 싶다.’
어서 빨리 이 지옥에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