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301)
302화. 침략의 서막
평화로운 오전.
청해성에 있는 거주자들은 언제나처럼 하루를 시작했다.
장사치들은 완판의 꿈에 부푼 채 상품들을 진열했고 약초꾼들은 삼삼오오 모여 진귀한 약초를 캐내고자 산으로 향했다.
“젠장할. 이놈의 산세는 어째 날이 갈수록 험해지는 것 같아.”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중년 사내가 욕설을 내뱉었다.
오랜 산행으로 인해 입에선 단내가 날 지경이었다.
“조용히 해. 덕분에 마교 놈들이 함부로 넘어오지 않으니 다행으로 생각해야지.”
“하긴, 그것도 그렇군. 길이 이 지랄이어서야 놈들도 이쪽으론 얼씬도 하지 않을 거야.”
산세가 험하고 길이 좁은 천혜의 지역.
때문에 곤륜은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 천마신교의 진출을 가장 효율적으로 대비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어억!?”
앞쪽에 가던 노인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뱉었다.
“뭐, 뭐여?”
“무슨 일인데?”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시, 심봤다! 심…… 심 봤다고!”
산삼이다. 그것도 몇 백 년은 족히 묵은.
“오오오오!”
“오늘 꿈자리가 좋더니만!”
모두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걸렸다.
이 정도 산삼을 판다면 앞으로 평생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쁨에 젖을 새도 없이…….
콰득!
고함을 지르던 이의 복부를 뚫고 검게 물든 손이 튀어나왔다.
팔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끄으으……어어어?”
전신에 붉은 피를 뒤집어쓴 강시.
혈강시다.
“마, 마교다!”
“으아아악!”
“피해!”
약초꾼들이 혼비백산 해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채 몇 걸음을 떼는 것조차 그들에겐 너무도 버거운 일이었다.
퍼퍼퍽!
순식간에 숲이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잠시 뒤.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시체 사이로 한 무리의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가장 선두에 있는 자는 바닥에 끌릴 정도로 긴 흑의를 입은 ‘심마사령’이었다.
그의 주위에는 특별히 선별해서 데리고 온 사령대의 고수들과 강시들이 있었다.
“또 다른 놈들은?”
“없습니다. 약초를 캐러 온 놈들은 이 녀석들이 전부인 것 같습니다.”
“좋아.”
심마사령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에 있는 적의 규모는 파악했나?”
“운무관의 관주가 절정급이긴 합니다만, 그자를 제외한다면 특별히 경계해야 할 인물은 없습니다.”
“곤륜파 떨거지들이야, 음양강시 셋만 붙여 주시면 제가 모조리 쓸어버리고 오겠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전부 죽여 버리죠. 흐흐흐.”
다들 기세등등하게 한 마디씩 내뱉었다.
오랜 폐관으로 인해 몸이 근질근질하다 못해 어떻게 칼을 휘두르고 사람을 베는지 까먹을 지경.
모처럼 날뛸 수 있다는 생각에 짙은 살기가 피어올랐다.
“해시(亥時)까지 시간을 주겠다. 전부 정리하도록. 오늘 밤은 이곳에서 보내겠다.”
“존명!”
심마사령의 명령이 떨어졌다.
곧바로 산을 따라 거대한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
종무량이 마교의 습격에 관한 보고를 들었을 땐, 이미 전화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뒤였다.
“혈강시가 삼백에…… 음양강시만 해도 스물이 넘습니다.”
“게다가 처음 보는 종류의 강시까지 있습니다. 놈들이 웅크리고 있는 동안 새로 개발한 것 같더군요.”
“가장 큰 문제는 마교 서열 4위인 심마사령이 직접 움직인다는 겁니다, 단순한 도발이 아니라 이번엔 아예 작정하고 온 게 틀림없어요.”
“관주……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미 곤륜과 무림맹에 전갈을 보냈지만, 그들이 오기까지 버틸 수 있는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도망친다면 평생을 겁쟁이에 비겁자로 낙인찍힐 것이다.
무인에게 있어 자존심과 명예란 목숨보다 중한 것.
그렇다면…….
남은 건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라도 더 죽이는 것뿐.
“결정했다.”
스릉!
종무량이 검을 뽑았다.
“더러운 마교 놈들을 모조리 쳐버린다. 누가 나와 함께하겠는가?”
“오오오!”
“저희도 함께하겠습니다. 관주!”
“최소한 다섯은 길동무로 데려가 주겠소!”
전의가 한껏 고조되려던 바로 그때였다.
콰아아앙!
운무관의 대문이 산산이 박살났다.
뿌연 연기와 함께 저음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멀리 나갈 것 없다. 네놈들의 묫자리는 이곳이 될 테니까.”
“어, 어느새!”
“벌써 밖에 있던 자들이 모조리 당한 건가.”
아무리 빨라도 한 시진은 버틸 거라 생각했거늘.
뚫리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지나칠 정도로.
“사령대 소속 사도악이라고 한다. 누가 자기 목숨을 거두는지 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양손에 톱날처럼 생긴 검을 든 거구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 옆에는 서른 정도 돼 보이는 혈강시들까지 서 있었다.
전신에 피 칠갑을 한 걸 보니 이곳에 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헤친 게 분명했다.
“크윽! 폐관을 끝내자마자 또 다시 정사대전을 일으킬 생각이나 하다니. 잔혹한 네놈들을 상대로 정녕 평화란 불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혓바닥이 길구나.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잔혹이니 비겁이니…… 전부 약자의 헛소리지. 뭣들 하느냐? 전부 죽여라.”
사도악이 고개를 까딱였다.
“키에에!”
“크아아!”
시커먼 액체를 입에서 흘리는 강시들이 일제히 자리를 박찼다.
대화 따위는 일절 필요가 없는, 서로의 목숨을 빼앗기 위한 사투가 시작되었다.
콰아앙!
카앙!
검기를 끌어올린 운무관의 고수들과 강시들이 정면에서 충돌했다.
“끄아아악!”
“아아악!”
피와 살점이 튀기며, 비명 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검들은 강시의 피부를 긁는 게 고작이었으나, 강시들은 일수에 운무관의 무인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무슨 강시가 이렇게…….”
“강기에 내성이 있는 강시라니.”
“보통 혈강시가 아니다. 모두 조심해라!”
혈교 특유의 제조법과 심마사령의 독문무공으로 강화시킨 혈강시는 기존의 혈강시보다 족히 3배는 강했다.
당연히 정사대전으로 강시를 상대해 본 이들조차 당황할 수밖에.
콰콰콰콰콰콰!
그렇게, 전세가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심마사령이 배합한 시독이 워낙 지독한 탓에, 작은 상처 하나만으로도 기혈이 뒤틀리며 주화입마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내공이 비교적 강한 이들은 몇 합을 더 견뎠지만, 실력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자들은 하나둘 미쳐 날뛰다가 싸늘한 시체로 변해버렸다.
“끄으으으…….”
“으아아아!”
“쿨럭! 컥! 커억!”
벌써 절반이 넘는 고수들이 죽었다.
그러나 단 한 명.
종무량만은 검강을 끌어올린 검으로 강시들을 가차 없이 베어버렸다.
혈강시 다섯이 토막이 난 채 흩뿌려졌다.
“제법이로군. 절정급을 넘은 놈이 하나 있다고 하더니. 네가 종무량인가 뭔가 하는 놈인가 보구나.”
“죽은 시체 따위를 상대로 정파의 검을 부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한 거라면 크게 착각하고 있는 거다.”
“크흐흐. 좋아. 재밌군. 안 그래도 이 녀석을 쓸 일이 없었는데, 몸 풀기로는 아주 그만이겠어. ‘백령’, 네 차례다.”
사박…….
새로운 강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눈은 바느질로 꿰맸고 전신은 눈처럼 새하얗게 변색돼 있었다.
푸른 실핏줄이 꿈틀거리는 게 쳐다만 봐도 구역질이 솟구친다.
“후우…….”
종무량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저 강시가 바로 보고에 있던 처음 보는 종류의 강시일 것이다.
‘방심하면 안 된다.’
강시는 기가 없기에 겉으로는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강하다고 가정하고 첫 초식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화르륵!
정순하게 정제된 기가 근맥을 따라 흐르며, 거칠게 타올랐다.
[종무량이 5성. ‘태허도룡검법(太虛屠龍劍法)’을 발동합니다!]곤륜파를 상징하는 절기.
5성 공력을 실은 검이 하늘을 베어버릴 듯 솟구쳤다.
……지금!
종무량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궤적이 호쾌한 호선을 그렸다.
그리고 그 검이…….
서……걱.
그가 세상에 행한 마지막 초식이 되었다.
“아…….”
상대가 어떻게 공격하는 건지.
자신이 어떻게 당한 건지.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다.
그저 너무나 자연스럽게, 죽음이라는 결과만이 싸움의 끝을 고했다.
차원이 아예 다르다.
“괴물…… 같은…….”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 종무량은 생각했다.
과거에 치른 정사대전은…… 이번에 있을 참극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고.
***
탑 밖에서의 휴가를 보낸 진혁은 곧장 중층부로 향했다.
‘여기가 낙양인가.’
무림맹의 총본산이 위치한 곳.
동시에 현 황제가 거주하는 황궁이 있는 장소다.
‘밤에 보니까 더 멋지긴 하네. 제국의 황도보다 몇 배는 더 크고 화려해.’
게이트에서 나온 진혁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완전히 저버린 뒤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해가 진 뒤에는 누구도 성 안으로 들어가거나 나올 수 없다.
[현재 대형 거점 ‘낙양’에는 1개의 대결계와 72종류의 중형급 방진이 펼쳐져 있습니다.]수도답게 그에 걸맞은 장치들이 존재했다.
‘대놓고 정문으로 들어가는 건 무리겠군.’
경비 또한 워낙 삼엄한 터라, 다른 뾰족한 틈도 보이지 않았다.
“젠장. 오늘 안에 안으로 들어가서 전해 줘야 할 물건이 있는데. 기일을 못 맞혔다고 단단히 한 소리 듣겠어.”
“어쩔 수 없지. 이 시간엔 귀족들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까.”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었다.
모두들 간발의 차이로 통행금지 시간에 걸리고 만 것이다.
하지만 투덜대는 것도 잠시뿐, 모두들 숙소를 찾기 위해 허탈한 걸음을 옮겼다.
이제 텅 빈 도로 위에 남은 건 진혁 하나였다.
아니, 정확히는 한 명이 더 있었다.
“형씨는 포기하지 않을 거요?”
더벅머리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어리다.
고작해야 스무 살을 갓 넘은 나이랄까.
꼬질꼬질한 모습을 보아하니 왈패이거나 거렁뱅이처럼 보였다.
“노숙은 취향에 맞지 않기도 하고. 시간이 그리 여유 있는 것도 아니거든. 가능하면 오늘 밤 안에는 이 안으로 들어가야 해.”
“그럼, 좀 일찍 다니지 그러셨소? 통금 시간이 있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그거야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조금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재미없잖아.”
“……뭐?”
“이곳의 성벽은 중층부에서 가장 철통같다며? 과연, 그 명성이 진짜인지 아닌지 한 번 시험해 보려고.”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설레는 법.
그것이 과거에 미처 시도해보지 못했던 일 중 하나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뭐, 그때는 천마에 뭐에 이런 것까지 신경 쓸 시간이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푸하하하! 이야. 이 형씨 이거 완전 걸물이네. 조금 특이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생각보다 더 굉장한 사람이었어.”
대답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남자가 미친 듯이 웃었다.
하지만, 지금의 만남이 당황스러우면서도 기쁜 건 진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남자를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우연이라는 게 진짜 무섭긴 하다니까.’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