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31)
31화 고인물이 절대자를 조련하는 법
진혁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새로 얻은 능력을 확인했다.
‘별의 가호’.
별자리의 가호를 받는 테레사의 고유 능력.
드디어 이걸 손에 넣었다.
‘유적에 와서 얻은 게 정말 많긴 많네.’
‘얼어붙은 눈물’이나 ‘브라함의 반지’ 같은 아티팩트류도 쓸 만했으나.
천유성과 테레사의 고유 능력에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정상급 랭커의 능력을 두 개나 얻다니…….’
표정 관리를 하고 싶은데, 표정 관리가 안 됐다.
로또라도 당첨된 사람처럼, 입 꼬리가 자연스럽게 씰룩였다.
후우, 침착하자.
진혁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고유 능력이 얼마나 많은데.
겨우 여기에 안주할 순 없다.
게다가, ‘별의 가호’도 융합을 통해 더 상위 능력으로 대체가 가능할 터.
천외천(天外天).
랭커들이 감히 쳐다도 보지 못할 정도로 높은 자리에 올라갈 때까진. 잠시도 여유를 부려선 안 된다.
‘우선, 가장 시너지가 좋게 나올 수 있는 스킬들부터 모아 봐야겠군.’
조합법은 이미 모두 머릿속에 있었다.
그때.
“저기, 진혁 씨?”
테레사가 조심스럽게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맞다.
이 여자가 있었지.
능력에 심취해 있느라 그만 깜빡 잊고 말았다.
“아 죄송합니다. 뭘 좀 확인하느라고요.”
“괜찮아요. 그보다 방법은 생각하셨어요?”
“거창한 방법은 없고, 그냥 맨 손으로 한번 잡아 보려고요.”
“……네?”
테레사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다재다능하더라도.
저주가 걸린 성유물은 신성력이 없으면 만질 수 없다.
그리고 이중에서 신성력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사실, 제가 신앙심이 매우 투철한 편에 속합니다. 어린이 주일 학교도 꼬박꼬박 다니고 군대에서도 종교 활동을 빼 놓지 않았죠.”
“그, 그런 걸로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요?”
“왜요? 못 믿겠어요?”
“당연히 못 믿죠!”
테레사가 그녀 답지 않게 목소리를 높였다.
“제가 여기 오면서 뭐라고 했죠?”
“무…조건…… 믿으라고요.”
제대로 기억하고 있네.
역시 똑똑한 학생은 기억력이 출중하다.
“그럼 믿으세요.”
“…….”
청산유수처럼 이어지는 말에, 테레사가 입술을 꼭 깨물었다.
믿지 않은 걸 후회한 게 바로 몇 분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렇기에, 같은 실수를 또다시 반복하기 어려웠다.
“하, 하지만. 이건 다른 이야기예요.”
그래.
이번엔 틀리지 않았다.
“흠. 이렇게 하죠. 만약, 제가 이걸 만지고도 멀쩡한지 아닌지. 내기 한번 할까요?”
“내기요?”
내기란 말에 테레사가 말끝을 흐렸다.
지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다.
이미 1만 코인을 넘기기로 약속한 상황.
더 이상 걸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지면, 이 성유물을 드리죠. 대신, 테레사 씨가 진다면 나중에 제 방송에 게스트로 한 번 출연해 주세요.”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약속한 겁니다?”
“진혁 씨야말로 약속 꼭 지키세요.”
지키고말고.
만약, 내가 진다면 말이지.
우우우웅!
바로 그때, 진혁의 손이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마력.
틀림없다.
이건, 신성력이다.
“아…….”
테레사의 입에서 폐 속 깊숙이 쌓여 있던 한숨이 흘러나왔다.
허무함과 허탈함.
그리고 그것을 넘어 자신이 믿고 지켜 온 모든 것이 무너진 듯한 절망감이 느껴졌다.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이쯤 되면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여라.
비가 오면 젖듯이.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으니까.
“게스트, 잘 부탁드려요.”
진혁이 가볍게 테레사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걸로 든든한 지원군을 확보했다.
[멀린의 지팡이 파편(재료용)]입수 난이도: AAA
공격력: ?
내구도: 5/5
내용: 전설적인 영국의 대마법사 멀린이 사용하던 지팡이의 파편입니다. 저주가 걸려 있기 때문에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만 만질 수 있습니다.]
미궁이나 유적에서만 구할 수 있는 AAA급 재료.
코인 거래소나 블랙 마켓에 팔아도 쏠쏠하고.
마도구를 만들어도 쓸 만할 테지만…….
이걸 써먹을 데는 정작 따로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이나 보물을 함부로 다루는 법이지.’
아티팩트가 갖고 있는 진가의 백분의 일도 사용하지 못하는 바보들.
‘뭐, 그런 놈들 덕분에 고인물들이 더욱 빛나는 법이지만.’
생각해 보라.
세상 모든 이들이 선구자적인 시야와 빠른 판단력을 갖고 있다면…….
정보의 격차란 게 무슨 소용 있겠는가?
어찌 보면 그 사람들을 욕할 게 아니라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고 이번 레이드에선 여러가지로 운도 따라줬군.’
만약 테레사가 아니었다면 베드로의 서약서를 해독해 더욱 귀찮은 방법으로 지팡이를 손에 넣었어야 했을 거다. 그 외에도 엘리스를 속이는데 더 치밀한 빌드업을 짜야 했을 테고.
허나, 그녀의 존재로 인해 일이 수월하게 풀렸다.
진혁이 파편을 잘 챙겨 넣었다.
이제 이 유적에서 나가야 할 시간이다.
***
“이거 특종이니까 무조건 잡아.”
“하루고 한 달이고 일년이고 간에 망부석처럼 기다리란 말이야! 야……! 야 이 새끼야. 위에서 허가 떨어졌으니까 닥치고 대기하라고!”
방송국에서 나온 기자와 각종 길드의 관계자, 짐꾼들과 채굴꾼들까지.
그야말로 수백 명이 넘는 인파가 입구를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곧 있으면, 유적 공략이 끝날 거다.
낡아빠진 검을 든 채 살기를 줄기줄기 뿜어내던 남자가 남긴 말.
이 난리는 모두 이 한 마디 때문에 일어났다.
“부장님. 그 남자가 했다던 말. 사실일까요?”
각성자 협회에서 온 정재현 대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태춘 부장이 담배 하나를 꼬나물었다.
“글쎄다. 그냥 믿기엔 너무 허무맹랑한 말이긴 하지. 젠장, 직접 들었으면 몇 가지 물어나 봤을 텐데, 하필이면 그 남자랑 만났던 짐꾼들이 완전히 쫄아서 그대로 보내버린 게 크긴 크네.”
공격대는 전력을 제대로 갖추지도 못한 채 들어갔다.
아니, 만약 전력을 갖췄다고 해도 최소 3주는 걸려야 하는 레이드다.
그걸 이 단기간 안에 끝낸다고?
그렇게 간단한 거였으면, 애초에 이 유적이 이토록 악명 높지도 않았을 거다.
하지만.
마냥 미친놈의 헛소리라고 넘겨 버릴 수도 없었다.
유적 안에서 나왔다는 건. 입구를 지키던 가디언을 단신으로 쓰러뜨렸다는 뜻이었으니까.
믿기도 안 믿기도 힘든 상황.
“골치 아프군.”
김 부장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우우우웅!
유적 입구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모두의 앞에 황금색 상태창이 나타났다.
[유적 ‘타락한 자들의 회랑’이 공략되었습니다.] [위대한 업적은 내일 하루 동안 ‘명예의 전당’에 오릅니다.]“부, 부장님!”
“진짜……였나.”
김 부장이 멍하니 입구를 바라봤다.
그곳에선 상처투성이의 사람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공격대의 주축인 발해 길드와.
시온 길드의 공격대였다.
촤촤촤촤촤촤촤촤!
카메라 셔터가 미친 듯이 터졌다.
“나왔다!”
“오오오오!”
사람들은 영웅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1층 유적을 공략하신 걸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단기간에 공략을 성공한 방법에 대해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이번 레이드에서 최고 활약한 MVP는 누군지 말씀해 주세요!”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인터뷰를 따 내려면 단연 이번 레이드를 이끄는 공대장을 찾아야 한다.
그때.
“호, 혹시. 공대장이신 송천화 플레이어님 맞으시죠?”
남기자 한 명이 맨들맨들한 대머리 남자에게 물었다.
얼핏 봤을 땐 설마 했는데.
자세히 보니 틀림없었다.
이번 레이드의 공대장을 맡은 송천화다.
“…….”
그러나 동공이 풀려 버린 송천화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기계적으로 발걸음을 옮길 뿐.
영혼을 잃어버린 듯한 그의 표정에, 기자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었다.
“세상에나. 머리카락뿐 아니라 눈썹이랑 속눈썹까지 죄다 없어졌잖아?”
“대체…… 안에서 뭔 일이 있던 거지?”
“역시 유적인가. 엄청나게 처절했던 모양이구만.”
“머리털을 대가로 2차 각성이라도 한 것 같은데, 발해 길드는 좋겠어. 완전 대박 났네.”
비록 소중한 걸 잃긴 했지만, 2차 각성으로 전직을 완료했다면 몇십 배는 남는 장사다.
물론, 뒷사정을 아는 사람들 입장에선 기자들이 뱀파이어들보다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결국, 보다 못한 테레사가 끼어들었다.
“유적을 공략한 건 송천화 씨가 아니에요.”
“그, 그럼 테레사 플레이어님이……?”
“시온 길드 쪽에서 성공한 겁니까?”
시선이 테레사에게 집중됐다.
마른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주위가 적막에 잠겼다.
“아뇨.”
테레사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을 가리켰다.
기괴한 문양의 가면을 쓴 진혁을.
“유적 공략은 모두 이분 혼자서 한 거예요. 저희는…… 그저 무대를 지켜보는 관객에 불과했습니다.”
***
초대형 신인의 등장.
그 사실에, [시련의 탑] 커뮤니티를 비롯해 전국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가면을 쓴 플레이어. 그는 누구인가?] [단신으로 유적 공략! 터무니없는 괴물의 등장!] [세계 정상급 길드들. 내일 아침 첫 비행기로 조사단 파견 결정.] [3시간 뒤, 명예의 전당에 그 활약상 대공개.]그야말로 모든 관심이 쏠렸다.
특히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던 3층 보스몬스터의 공략의 시기와 맞물렸기에, 정부와 언론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명목으로 이 사건을 더더욱 밀어줬다.
유럽의 정상급 랭커 테레사가 인정한 새로운 영웅.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던 난공불락 유적의 끝을 본 플레이어…… 라고.
“거참, 온갖 수식어를 죄다 갖다 붙여놨네.”
진혁이 머리를 긁적였다.
반응이 뜨거울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건 상상 그 이상이다.
그나마 귀찮은 일에 말려들지 않을 수 있도록 가면을 쓴 게. 신의 한 수라면 한 수랄까?
‘이제 곧 S급을 받을 테니. 그건 그거대로 활동하면 되겠지.’
100인의 플레이어.
랭킹 1위와 2위가 지금 정해졌다.
남은 건 그 사이를 적절하게 조율하면서 내게 유리한 방향으로 판을 설계하는 것뿐이다.
테레사도 함구하기로 약속을 했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일단 이 문제는 이 정도면 됐고.
다음은.
‘꽁해 있는 진조와 대화를 좀 해 봐야겠군.’
유적에선 주머니 속에 쑤셔 넣는 걸로 해결했지만,
앞으로도 계속 방치플을 시전 하긴 힘들다.
‘다루긴 힘들어도 이 녀석만큼 쓸모 있는 카드도 없을 테니까.’
탑의 50층까지 가는 험난한 여정.
그 길을 쉽게 갈지, 어렵게 갈지 결정하는 첫 번째 선택지가 바로 이것이다.
진혁이 조심스럽게 반지를 꺼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날카로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감히, 나를 어두컴컴하고 냄새 나는 주머니 속에 종일 가두다니! 인간. 너 내가 누군지는 아는……!]“이보세요, 진조 아가씨 아니, 고조고조고조 할머니.”
아직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되나 보네.
아직도 자신이 무소불위의 힘을 지닌 뱀파이어인 줄 아나?
진혁이 반지를 움켜쥔 채 팔을 회전하기 시작했다.
부웅!
부우웅!
시계방향으로 빠르게 도는 어깨.
[꺄아아악! 멈춰. 어지러우니까 멈추라고!]엘리스가 비명을 질렀다.
진혁이 원운동을 멈췄다.
“어때, 정신이 좀 드세요?”
[너 같으면 정신이 들 것 같아? 똑똑히 기억해! 뱀파이어는 절대 원한을 잊지 않는다는 걸!]아직도 먼 듯싶다.
좋아.
그래도 진조라고 뼈대가 있네.
너무 쉽게 굴복하는 것도 재미없지.
원래 당근과 채찍을 적절하게 섞을 생각이었는데…….
마음이 변했다.
아주 철저하게 채찍으로 조련시켜 주마.
“이변 역은, 구로역, 구토역입니다. 강한 어지럼증이 동반될 예정이오니 승객 여러분은 주의해 주십시오.”
진혁이 낭랑한 목소리로 안내 방송을 자청했다.
[그…… 그만 둬. 진짜로, 토할 것 같으니까 하지 말라고!]“내리실 문은…… 없습니다.”
다시 한번 헬조선식 다람쥐통이 개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