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310)
311화. 천마(天魔) (2)
이것은 과거의 기억.
탑에 기록된. 그리고…….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다시 보지 못할 기억이다.’
진혁이 담담하게 눈앞에 있는 것들을 바라봤다.
쓸쓸한 풍경 속.
결말이 정해져 있는 싸움에 해피엔딩이란 없다.
천마는 모든 것을 잃을 것이며, 무림은 그 업적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천마신교 역시 천마로부터 등을 돌릴 것이며, 그가 이룩한 모든 것들은 사마자에 의해 더렵혀질 것이다.
그럼에도 왜일까.
진혁은 이 싸움을 두 눈으로 담아두고 싶었다.
“…….”
천마의 검이 앞으로 뻗었다.
그저 오롯이 앞을 향해 뻗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식이 완성된다.
천마가 천마로서 이 세계에 군림할 수 있던 힘.
그에 부응하듯.
쿠쿠쿠쿠쿠!
천지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제1식(第一式).
‘천마신공’으로 끌어올린 강기가 검신을 완전히 뒤덮고 5m가 넘는 길이로 뿜어졌고.
유형화된 기는 이내 용의 형상을 갖췄다.
‘천룡출두(天龍出頭)’.
대체 얼마나 내공이 깊으면 저런 말도 안 되는 기예가 가능한 걸까.
하지만, 놀랄 새도 없이 공간이 찢어지며, 수십 마리가 넘는 검은 염소들이 쏟아졌다.
“키이이……!”
“키에에에!”
하나하나가 전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생명체.
그것도 아웃브레이크로 나왔던 놈보다 족히 2배는 컸다.
‘50계층에서나 볼 수 있던 놈들까지 온 건가…….’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상급 사념체 격인 ‘데네볼라’.
기다란 창을 들고 있는 데네볼라들은 풍겨 나오는 마력부터가 아예 격이 달랐다.
꾸구국…….
선두에 있던 데네볼라가 창을 든 어깨를 크게 뒤로 젖혔다.
파앙!
굉음과 함께 창이 투척됐다.
나무들이 모조리 박살나면서 10m에 이르는 거대한 창이 천마의 몸을 향해 쇄도했다.
꿰뚫는다는 레벨이 아니다.
스치기라도 했다간 아예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찢겨 나갈 것이다.
하지만.
[‘천마군림보’가 발동됩니다!]아무리 강한 공격이라고 한들. 적중하지 않는다면 모든 전제가 의미 없어진다.
콰아아앙!
창이 천마가 있던 곳을 송두리째 날려버렸다.
물론, 이미 천마의 모습은 사라진 뒤였다.
나타난 곳은 데네볼라의 사이.
빠르다.
이것이 ‘천마군림보’.
특유의 패도적인 보법은 융합을 통해 만든 검마천령보보다 위력적이고 빠르다.
[천마신공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합니다.]진혁의 눈앞에 상태창이 나타났다.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돼.’
도약하기 직전, 미묘하게 발이 땅을 세 번 연속 차는 걸 확인했다.
가속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준비 동작이겠지.
거기에 기를 응축했다가 마지막에 두 차례에 나눠서 폭발시키는 것 역시 제3자의 입장에서 관찰할 수 있었기에 파악할 수 있었다.
‘운무관에서 얻은 2대 천마의 무공 비급도 기대 이상이야.’
무엇보다 오롯이 전투를 분석하는 데 집중할 수 있는 환경 또한 천마신공을 이해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
……지금!
곧바로 검풍이 몰아쳤다.
콰콰콰콰콰콰!
천마의 검이 종횡무진 움직였다.
“크아아아아!”
“케에에!”
데네볼라들의 팔다리가 잘려나갔다.
콸콸콸!
절단면에선 검은 피가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데네볼라들이 미친 듯이 창을 휘두르며 반격했으나, 천마의 검로를 막는 덴 역부족이었다.
‘제2식과 3식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이토록 자연스러울 수 있다니.’
진혁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낭비 따위 없이 최적화된 초식.
이렇게나 심장이 뛰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건 처음이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지금 올리는 이해도에 따라 천마신공의 완성도 또한 달라질 터.
이토록 강한 무공을. 과거와는 달리 이렇게나 빨리 손에 넣을 수 있게 됐는데. 어찌 흥분이 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온 신경을 집중해 검로를 보는 사이, 데네볼라들의 수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열일곱…… 아홉…… 셋.
쿠웅!
쿠우웅!
수십 마리가 넘던 거대한 마수들 중 서 있는 건 이제 한 마리도 없다.
바로 그때.
잠자코 있던 슈브 니구라스가 마침내 움직였다.
“과연, ‘패도의 왕관’……을 가진 놈답군. 강한 신체에…… 우리 영역에 올 수 있는 성유물. 너는 위협적이다.”
한 걸음.
단 일 보를 내딛는 것으로 탑에 존재하는 최강의 존재 중 하나가 개전을 알렸다.
콰콰콰콰콰콰콰!
흙이 모조리 갈아엎어지며, 충격파가 산 전체를 날려버렸다.
완전히 바뀌어버린 지형.
지금 이 모든 것들이 과거의 기억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방금 전 마력 파장에 전신의 솜털이 곤두서는 기분이다.
온갖 제약이란 제약은 다 받고 있어도 이런 위력이라니.
역시나 미친놈이라는 말밖엔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흔적조차 남지 않은 폐허 속에서도 천마는 여전히 그 기세를 잃지 않았다.
“이번엔 본좌의 차례다.”
이마에 흐르는 피가 가슴을 적셨지만, 여전히 안광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백일하가 Lv?? ‘천마대멸겁(天魔大滅劫)’을 발동합니다!]붉은색 기가 하늘을 가린다.
층계가 흔들리고 구름 또한 갈라졌다.
이 자가 천마.
사람의 몸으로 사람을 초월하여 무의 끝에 이른 절대자다.
“자폭에…… 가까운 수인가. 실망스러운 수를 두는……구나. 미물이여. 내가 가진 힘을 너무 얕잡아 보고 있는 게. 오늘 네가 죽는 이유다.”
슈브 니구라스의 몸 주위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렇게.
콰아아앙!
기와 기가 격돌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파장에 탑 전체가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큭.”
천마의 입에서 붉은 각혈이 흘러나왔다.
그렇다.
힘의 균형은 애초에 무너져 있었다.
진원진기를 끌어 쓴다고 한들, 상대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1초도 안 되는 찰나의 순간,
천마의 어깨 위로 12개의 심검(心劍)이 나타났다.
하나만으로도 신선의 경지라 일컫는 심검을 무려 12개나. 그것도 전부 이기어검술로 사용하고 있다.
“너야말로…… 본좌가 가진 힘의 끝을 예단하지 마라.”
심검이 동시에 사라졌다.
전후좌우.
카카카카가각!
콰콰콰콰쾅!
폭풍처럼 몰아치는 공격이 슈브 니구라스의 신체를 난자했다.
“크아아아아!”
슈브 니가루스가 내뱉는 비명은 고통보다는 분노 때문이겠지.
벌레만도 못한 인간이 자신의 몸에 일부나마 상처를 입혔으니까.
손가락이 근질거린다.
당장이라도…… 따라하고 싶다.
저 검을.
저 검격을.
저 검로를.
그리고 그 모든 걸 눈앞에서 지켜보면서. 진혁은 머릿속으로 또 다른 심상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아쉽다.
지금 저 자리에 자신이 없음에.
지금 저기서 싸우고 있는 것이 자신이 아님에.
그것이 미칠 듯이 아쉽다.
무엇보다.
‘나라면…… 다르게 할 텐데…….’
‘저기서 조금 더…… 검의 궤도를…….’
‘기의 흐름을 틀었더라면…….’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천마신공의 완성도가 매우 높은 폭으로 상승합니다.]금빛으로 물든 상태창이 나타났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제법이었다. 인간……치곤 말이야. 제약…… 탓에 끝을 낼 힘까진 없……다만 어차피 이곳에 온 목적은 달성했다.”
슈브 니구라스의 입에서 상대에 대한 찬사가 흘러나왔다.
마침내 긴 싸움이 끝난 것이다.
“…….”
천마가 가라앉은 눈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단전이 있는 자리에선 더 이상 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진원진기를 소모했기에.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힘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완전한 범인(凡人).
아니, 이제는 평범한 사람처럼 움직이는 것마저 쉽지 않을 터였다.
그나마 마지막 불꽃이 꺼지기 직전, 한 번 정도 움직일 수 있는 게 한계이리라.
하지만, 그 한 번만으로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승리를 확신한 건 슈브 니구라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협이 사라지자, 이빨이 달린 가지가 천마를 향해 천천히 뻗어 나갔다.
“왕관…… 우리의 영역에…… 도달할 수 있는 저주받은 성유물…….”
천마를 노렸던 건 7개의 왕관 중 ‘패도’를 뜻하는 무의 상징을 손에 넣기 위함.
아슬아슬하긴 했으나 시스템의 역소환이 이루어지기 이전에, 왕관을 빼앗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걸 순순히 넘길 것 같으냐.”
기절하기 직전, 천마가 품에 있던 검은색 왕관을 집어던졌다.
마지막 남은 기를. 도주나 반격이 아닌 투척에 쏟아 부어버린 것이다.
부우우우웅…….
콰아앙!
“크아아아! 아, 안 돼!”
슈브 니구라스의 가지들이 재빨리 왕관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층계를 부순 왕관은 어딘지 모를 곳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그래.
이렇게 흘러가리란 건 진혁 또한 알고 있었다.
문제는.
‘이럴 수가…….’
진혁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게.
왕관이…… 떨어지는 곳을 보고 말았다.
방관자로서 있었기에, 천마나 슈브 니구라스의 시선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까지 모두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있는 거였나.’
***
[천마의 기억이 모두 끝났습니다.]현실로 돌아온 건 아직 해가 뜨기 전 새벽이었다.
피로에 찌든 사람들이 잠든 오두막은 꽤나 고요했다.
딱 한 명.
천마를 제외하곤.
“악몽이라도 꿨던 게냐. 끙끙거리며 앓는 소리가 나더구나.”
“조금…… 불편한 꿈을 꿨거든요.”
보답받지 못한 채 버려진 절대자의 기억을 엿봤다.
비쩍 곯아 상처 입은 현재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씁쓸한 뒷맛이 배가 되는 느낌이었다.
“꿈은 현실에 내재되어 있는 불만을 투영하는 거울이라고 하지. 무엇인지 몰라도 담아두고 있는 게 있다면 털어놓아라. 그래야 좀 편해질 거다.”
“그럼……. 저번에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물어봐도 될까요?”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 말이더냐?”
“예. 자신이 한 노력은 잊혀지고 오히려 모두에게 버림받는다면…… 저라면 그 결말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거든요.”
“불편한 꿈이라는 게 본좌에 대한 꿈이었나. 정말이지…… 탑 밖에서 온 놈들은 남의 머릿속까지 마음대로 엿보는구나.”
천마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마지막으로.
그때의 기억을 곱씹는 듯 보였다.
“……인지를 초월한 적을 상대로 싸웠고. 지금 두 발을 딛고 있는 이 세계를 지켰다. 누군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본좌가 기억하고 있으면 그뿐.”
천마는 말했다.
후회란 없다고.
그 말에 거짓 따윈 없다.
적어도 진혁이 직접 본 기억 속에서의 천마는 그러했다.
‘누군가의 인정 따윈 없어도 혼자만 기억하면 된다 이건가.’
과연…… 천마다운 말이다.
자신이 행하는 모든 것이 최선이라 믿으며, 그에 따른 책임 또한 기꺼이 감수하는 것.
그것이 천마가 살아온 방식이었으니까.
“대답이 되었느냐?”
“충분히요. 덕분에 어떻게 방향성을 잡아야 할지 확실하게 결심이 섰습니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콰아앙!
오두막 인근에 펼쳐 둔 결계가 박살났다.
“이런 거미줄을 펼쳐 둔다고 해서 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멍청한 판단이었다.”
수백의 강시를 이끌고 나타난 건 다름 아닌 마교의 서열 4위.
심마사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