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316)
316화. 검들의 노래 (1)
심마사령의 죽음과 진혁이 무림맹에 넘긴 정보로 인해 전황이 묘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파죽지세로 밀어붙이던 천마신교의 기세가 한 풀 꺾였고.
대신 연전연승으로 기가 살은 무림맹의 무사들은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갔다.
때문에 각 문파에서는 진혁에게 당한 일에 대한 분풀이도 하지 못한 채, 서로의 눈치만 살피는 상황이 펼쳐졌다.
-괜히 저 녀석의 심기를 거슬렀다가 더 많은 걸 뜯길지도 몰라.
-천마신교보다 더한 놈. 아주 송두리째 기둥을 뽑아갔어.
-겨우 그 정도 가지고 엄살은. 금궤와 은자가 하루아침에 사라져서 우린 오늘부터 풀뿌리만 먹고 살게 생겼다고.
-그래도 저 녀석이 전해준 정보 덕에 강시 1,000구를 넘게 처리했소. 아쉬운 건 우리니 얌전히 기다려봅시다.
-이것도 다 부처님의 뜻 아니겠습니까? 아미타불. 허허.
그렇게 모두가 진혁의 눈치를 보느라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이.
홀로 남은 진혁은 모처럼 생긴 여유를 마음껏 즐겼다.
[귀환자의 팔찌]입수 난이도: A
내용: 과거, 이계에 갔다가 되돌아온 인물이 탑을 오를 때 사용했던 팔찌. 시련의 탑 1층의 거주자 전용 ‘박물관’에 전시되었다가 도난당한 상태입니다.
효과 1: 귀환자와 만날 경우 공명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전투 시 모든 스탯이 +3만큼 상승합니다.
효과 2: 특정 조건을 만족할 경우 이계와 연결되는 게이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귀환자.
또 다른 세계에 갔다 온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시련의 탑에는 귀환자들이 존재했는데, 진혁 역시 그들의 수가 정확히 몇인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워낙에 스스로의 정체를 꽁꽁 숨기고 있던 탓이다.
‘그래도 이게 있으면 몇몇은 찾아낼 수 있겠지.’
일종의 이스터 에그를 찾아낸 것에 대한 보상이랄까?
귀환자는 단순히 정체를 찾아내는 것만으로도 탑으로부터 각종 특전이 주어졌다.
특히 ‘메드레이’는 탑의 상층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재이기도 했고.
물론, 이 모든 건 아직 시기상조의 이야기다.
귀환자들을 만나려면 적어도 탑의 30층을 넘어서야 했으니까.
진혁이 귀환자의 팔찌를 아공간 인벤토리에 다시 쑤셔 넣었다.
그때.
우우웅!
아공간 인벤토리에 넣어두었던 또 다른 무기가 소름 끼치는 공명음을 내뱉었다.
발뭉.
보라색 빛을 흘려내는 최강의 성유물이 주인의 부름을 받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래, 너도 잊고 있지 않고 있었어.’
조만간 발뭉을 쓸 때가 다가올 거다.
주연 배우들이 모두 모이고.
최강의 일격이 필요로 하는 순간이 오면.
바로 그때. 완성된 발뭉이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럼, 대충 정리했으니 슬슬 가 볼까.’
진혁이 움직일 채비를 했다.
그런데.
“뭐야. 이 밤중에 어딜 가려고? 아니, 그보다 나한테 말도 없이 떠나려는 거야?”
창을 넘으려던 걸 본 엘리스가 한 걸음에 달려왔다.
이 녀석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고기만두를 잔뜩 만들어줬었는데.
그새 그 많은 걸 다 먹어치운 모양이다.
저 입가에 기름기 좀 봐라.
50개를 다 먹더니 볼이 아주 햄스터처럼 돼 버렸네.
“잠깐 산책 좀 가려던 거였어.”
“진짜? 그럼, 나도 같이 갈래. 마침 배부른데 잘됐네.”
“사실, 누구랑 같이 걸으면 죽는 병에 걸려서……. 그건 좀 곤란할 것 같은데.”
“계약자가 가면 나도 갈 거야. 떼 놓고 가려고 하면 여기서 막 소리도 지를 거다. 진짜로?”
엘리스가 두 눈을 치켜떴다.
이건 진심이다.
마력이 차오르면서 검은 동공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후우…… 알겠어. 데려가 줄 테니 대신 얌전히 있어야 된다. 알았지?”
“응! 나 얌전히 있는 거 엄청 잘할 자신 있어!”
엘리스가 송곳니를 뾰족 드러낸 채 환하게 웃었다.
뭔가 믿음이 안 가긴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함께 가는 수밖에.
진혁이 가볍게 창을 넘어 밖으로 뛰어내렸다.
***
인적이 드문 저잣거리를 지나 얼마나 걸었을까?
깊은 산 중턱에 있는 버려진 절에 도착했을 무렵에서야 길었던 발걸음이 멈췄다.
쏴아아아…….
바람이 대나무 숲을 스치고 지나갔다.
수많은 별이 떠 있는 밤하늘.
그곳엔 처음 만났을 때와 완전히 달라진 천마가 있었다.
“…….”
말라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모습은 간데없고.
가부좌를 튼 채 대기에 퍼져 있는 기를 조금씩 흡수하는 모습은 무인의 표본과도 같았다.
……경건하다라는 말이 이럴 때 어울리는 걸까?
진혁은 자신도 모르게 그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크흠! 스승한테는 그런 모습을 보인 적도 없더니. 아주 빠져도 푹 빠진 모양이구나. 하나뿐인 제자란 놈이 외도나 해대다니…… 늙으면 죽어야지. 서러워서 원.”
암황이 툴툴대며 다가왔다.
“주군. 오셨습니까. 정말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그 옆에는 장작을 한 꾸러미 안고 있는 월영도 있었다.
사마자에게 맞서기 위해 따로 움직이다가 어젯밤 합류한 두 사람은 현재 천마의 상처를 치료하며 이곳에서 머무는 중이었다.
“아니, 하고 많은 표현 중에 외도가 뭡니까. 외도가.”
“뭣이라? 지금 하늘같은 스승의 말에 토를 다는 것이냐?”
“아니, 그게 아니라…… 다 같이 잘 지내면 좋은 것 아니냐는 뜻에서 한 말이었습니다.”
“하여간 말이나 못 하면…… 호오. 정혼자도 데리고 온 것이냐?”
암황의 시선이 엘리스에게 향했다.
“…….”
엘리스는 겁먹은 고라니 마냥 진혁의 뒤에 꼭 붙어서 눈치를 살폈다.
마음 편히 나온 산책길에서 천마나 암황과 만나게 될 거라곤 생각지 못한 탓이다.
‘천마신공의…… 편린을 구현화할 수 있을 정도까진 회복된 건가. 좋아. 나쁘지 않네.’
진혁이 엘리스를 보며, 피식 웃었다.
이 녀석이 이런 표정을 짓는 건 꽤나 오랜 만에 본다.
하긴, 천마신공은 ‘블러드 로드’와 동급의 능력이었으니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현재 이곳에는 10성급 결계 ‘에테르 테레토리’가 펼쳐져 있습니다.]음과 양의 조화.
망가진 단전을 복구하기 위해선 상극의 기가 필요하다.
천마 역시 그걸 알았기에, 마을에서 두 속성 에너지를 지닌 단서를 찾으려 했다.
문제는…….
천마는 본능적으로 그 해결법을 짐작한 것일 뿐. 그 세세한 방법까지 알아낸 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진혁이 직접 적극적으로 나서 도왔다.
천마의 단전이 복구되고 잃어버린 내공을 다시 한 번 모을 수 있게.
에테르를 일정 구역 안에서 증폭시킬 수 있는 결계는 천마의 내공을 회복하는 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해줄 것이다.
“크읍!…… 컥! 커억!”
갑자기 천마의 입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토혈.
하지만, 선홍빛이 아닌 검은색을 띤 핏줄기다.
근맥을 막고 있던 죽은 핏덩이가 이렇게 또 하나 사라졌다.
“…….”
천마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단전에 기가 쌓이고 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야 정상인 단전이 과거의 기억을 곱씹듯 요동쳤다.
“커흠.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 녀석 말은 믿을 만하다고. 이게 다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좋아서 된 거죠.”
암황의 얼굴에서 진혁에 대한 자부심이 뚝뚝 묻어 나왔다.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깨버리고 모두가 불가능하다 외쳤던 일을.
하나뿐인 제자가 해낸 것이다.
“제자 사랑이 각별하구나.”
“암요. 말년에 겨우 받은 제자인데, 오죽 하겠습니까. 제가 이래 봬도…….”
말을 하던 암황이 천마의 눈치를 살폈다.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인데, 나중에 제 제자를 홀랑 뺏으시면 안 됩니다.”
“그대의 제자면 나의 제자이기도 하지 않겠는가? 훌륭한 인재에겐 여러 스승이 있는 게 좋은 법이지.”
“거 보십쇼. 맞네. 이 노친네. 이거. 아주 눈독을 들이고 있었구만. 이번에는 절대로 안 됩니다. 제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절대로.”
“절대로 안 된다?”
천마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움찔하고.
암황이 몇 걸음인가 뒷걸음질 쳤다.
“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언제부터 우호법인 그대가 본좌의 명에 토를 달게 된 것이지? 만일 본좌가 1할이라도 힘을 되찾았다간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묻을 것이다.”
“어허. 폭력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지 좀 마십쇼. 다 늙은 노인네가 환골탈태 좀 했다고 뭔 그리 힘이 넘쳐나십니까? 게다가 아직 티끌만큼밖에 안 되는 내공으로 괜히 허세부리시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곤란합니다.”
“허세라고? 지금 본좌가 허세를 부린다 하였느냐!”
천마와 암황이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쟤네들한테 가면 안 돼. 내가 더 강하단 말이야. 아마도…….”
엘리스가 불안한 듯 중얼거렸다.
“주군. 속하는 저분들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주군께서 부르신다면 언제라도 함께 싸울 수 있습니다.”
월영도 한 마디 거들었다.
두 녀석 다 혹시라도 버림받는 게 아닌지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바보들인가.’
어린애들도 아니고.
이 상황에서 네 거 내 거를 따지면서 자존심 싸움이나 하고 있는 게 어이가 없는 걸 넘어 황당할 지경이다.
‘뭐…….’
그래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한 층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을 함께 추억하고 경험할 수 있었으니까.
진혁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이렇게 쉴 수 있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겠지.
이제 곧…….
……사방신 중 하나가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자연재해라 불리는 동양의 신수 ‘청룡’이.
그에 대한 대비 역시 해두긴 했지만, 앞으로 닥칠 거대한 싸움을 생각하자 자신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긴장감과 흥분 그리고 그걸 넘어 더욱더 강해져야겠다는 열망이 타올랐다.
그나저나.
슬슬 시간이 다 됐는데…….
진혁이 상태창에 있는 시간을 바라봤다.
정확히 자정.
약속 시간이다.
바로 그때.
부스럭!
수풀 속에서 인기척이 났다.
***
한 쌍의 남녀가 나타났다.
천유성과 추혼사영이다.
“네가 어떻게 여길……?”
암황이 두 눈을 부릅떴다.
일전에 탑 밖에서 함께 휴가를 즐긴 적이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 탑 밖에서의 이야기.
무림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적이다.
천마 역시, 흥미롭다는 눈으로 추혼사영을 쳐다봤다.
“본좌를 봤음에도 별로 놀라지 않는 눈치로구나.”
범인이 아닌, 천마신공의 기를 띠고 있는 지금. 추혼사영이 천마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했을 리 없다.
그럼에도 추혼사영은 별 달리 동요한 듯 보이지 않았다.
“거기 있는 강 공자에게서 들었습니다.”
추혼사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엇을 말이지?”
“당신이…… 무림을 구해주셨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그로 인해 모든 내공을 잃어버렸다는 것까지도요.”
“……그래서?”
“예?”
“본좌가 힘을 잃은 것을 동정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아니면 싸울 가치도 없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아뇨. 제겐 그대를 욕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스릉!
추혼사영이 천천히 검을 뽑았다.
“강 공자. 천마의 내공을 되찾게 하기 위해선 음과 양의 기가 필요하다고 했죠?”
“맞습니다. 지금도 조금씩 회복하는 중이긴 하지만, 이래서야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네요.”
“그렇다면, 저희가 직접 나서 두 개의 기를 폭발시켜야겠군요. 마침 이곳엔 음과 양의 기를 극한까지 익힌 분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추혼사영의 말에, 암황의 눈동자가 더더욱 크게 팽창했다.
“무림맹의 수뇌부가…… 우리를 돕겠다는 건가? 맹에서 허락했을 리가 없을 텐데?”
그렇다.
무림맹과 천마신교는 함께할 수 없다.
피와 피로 점철된 역사 속 그 둘은 언제나 서로의 목을 노려왔으니까.
서로가 서로를 돕는 것 따위…….
있을 수도. 있을 리도 없다는 말이다.
“무림맹엔 알리지 않았습니다. 이번 일은 제가 독단으로 결정한 일이에요.”
“어째서냐? 어째서 그렇게까지…….”
“우리는 ‘무림’이니까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정파도 사파도 천마신교도 상관없다.
50계층의 현현이라는 재앙.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사마자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무림.
그 한 개의 세력만이 존재할 뿐이다.
“천마신교. 우호법. 암황.”
추혼사영의 시선이 암황에게 향한다.
“본녀, 추혼사영. 지금부터 무림맹을 대표하여 그대에게 비무를 청하겠습니다.”
검이 잔영을 남기며 흐드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