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317)
317화. 검들의 노래 (2)
말을 하지 않아도…….
……진심은 전해진다.
암황이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대신, 포권을 취하는 것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본좌는 천마신교. 우호법. 암황이다.”
천마의 오른편에서 그를 보좌하는 자.
무림을 위해.
천마의 잃어버린 내공을 되찾아 주기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생사결이 아닌, 무림맹과 천마신교의 비무가 이루어졌다.
콰앙!
암황이 양 주먹을 맞부딪쳤다.
‘흑천마황공’의 기운이 한 순간에 폭발하며, 온 주위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스윽.
추혼사영 역시 검강을 끌어올린 검을 오른손에 쥔 채 앞으로 걸었다.
툭.
저벅.
현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 가벼운 발걸음.
심해와 같이 무거운 공기 속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거리를 좁혔다.
일보(一步).
이 거리는 3류 무사들이 서로의 간격을 가늠하는 거리다.
어느 정도가 본인들의 간격인지 잘 모르기에, 최대한 멀찍이서 눈치를 보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저벅.
간격이 좁혀진다.
이보(二步).
이 거리는 1류 무사들의 간격이다.
검을 휘두르면 서로의 몸에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거리.
그렇기에, 1류에 해당하는 이들조차 이 이상 함부로 거리를 좁히려 하지 않는다.
저벅.
또 다시 거리가 좁혀진다.
암황도 추혼사영도 여전히 맹수처럼 눈을 빛낼 뿐. 어떠한 동작을 취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해서 앞으로 향할 뿐이다.
삼보(三步).
절정급 고수들의 거리.
완벽하게 자신의 간격을 파악한 자들만이 범접할 수 있는 거리다.
당장이라도 검과 권이 충돌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둘은 검을 휘두르지도 주먹을 뻗지도 않았다.
마지막 사보(四步).
간격이 서로의 숨결이 닿을 만큼 좁혀졌다.
그 어떤 무림인도 제정신이라면 상대에게 허용하지 않을 거리.
그러나 무림을 대표하는 두 명의 고수는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서로의 간격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쏴아아아…….
눈부신 광휘가 일어났다.
[추혼사영이 ‘추혼검무(追魂劍舞)’를 발동합니다!]검이 노래를 부른다.
천유성이 사용했던 추혼검과도.
진혁이 사용했던 추혼검과도 다른.
추혼검을 창시한 당사자의 검무가 허공을 어지럽게 가로질렀다.
검으로 만든 꽃이 흐드러지며, 밤하늘에 하얀 눈이 내렸다.
콰콰콰콰콰콰!
검로를 예측하는 것 따윈 무의미하다.
모든 초식이 새로운 초식을 만들었으니까.
“흐읍!”
암황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쾅! 쾅! 콰콰콰쾅!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아오는 검격들을 두 주먹으로 쳐내며 기회를 엿본다.
애초에 암황의 장기는 속도가 아닌 파괴력.
그렇기에 승부를 가를 단 한 번의 일격이 중요하다.
서걱!
츠츳!
온몸에 생기는 자상.
강철보다 더 단단한 육체에 붉은 선들이 그어졌다.
하나하나가 놀랍도록 예리하다. 버티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정도로.
하지만, 암황은 급소만은 허용하지 않은 채 추혼사영의 호흡과 검의 흐름이 미묘하게 어긋나는 순간을 기다렸다.
바로.
……지금!
모든 초식들에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공백.
검과 검이 이어지는 찰나의 때를 파고들었다.
추혼사영 역시 스스로의 허점을 깨달았지만, 큰 공격을 하기엔 너무나 짧은 순간이었다.
퍼퍼퍼퍽!
암황이 5번의 검격을 맨몸으로 받은 채 주먹을 크게 뒤로 젖혔다.
무시무시한 기운이 일점을 향해 응축되었다.
우우우우웅!
단순히 비무라고 할지라도…… 이 정도 경지에 오른 두 사람이 싸운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것이 본좌의 무공이다. 어디 한 번 받아 보거라.”
콰아아앙!
추혼사영이 펼친 검막과 암황의 일권이 정면에서 충돌했다.
대기가 쩌렁쩌렁 울렸다.
“큭!”
호신강기를 덧씌운 검막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충격을 전부 흡수하지 못한 탓이다.
[대량의 에테르가 방출됩니다!]콰콰콰콰콰콰콰!
빼곡히 펼쳐진 대나무가 모조리 쓸려나갈 정도로 두 기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지형과.
지물이 바뀐다.
조금 전까지 숲이었던 이곳은 이미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네.’
진혁이 허공에 떠오른 검고 흰 구체들을 바라봤다.
음과 양의 기운.
그렇게, 흘러나온 두 개의 기운이 주위를 부유하더니…….
츠츠츠…….
이내 결계를 통과하지 못하고 다시 지상으로 내려왔다.
정확히는 천마의 몸속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내공이 회복됩니다.] [내공이 회복됩니다.]‘탐식의 눈’엔 천마가 빠른 속도로 회복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이건 좀 곤란한데…….’
진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음과 양.
천마라는 거대한 그릇을 채우기 위해선 두 사람만의 비무로는 부족하다.
단순히 양의 문제가 아닌…… 다양성의 문제.
음의 기운과 양의 기운조차도 세부적인 갈래로는 수십 개의 서로 다른 종류가 존재했다.
같은 종류의 무공을 쓰더라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기운이 나온다는 뜻이다.
실제로 천마의 회복이 일정 수준에 이르자 더 이상 진척되지 않았다.
“…….”
“…….”
위화감을 느낀 건 암황과 추혼사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허공에 부유하는 검은 구체와 흰 구체들이 흡수되지 못한 채 떠다니는 걸 보았다.
“아무래도 저희가 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겠네요.”
“확실히 그대 말대로군. 이래서야 아무리 치고받아 봤자 의미가 없겠어. 이미 우리의 기운은 충분하다 못해 넘치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두 사람의 시선이 각각 다른 쪽으로 향했다.
***
추혼사영의 손이 천유성의 뺨을 어루만졌다.
새하얀 손이 달빛을 받아 유독 하얗게 보였다.
“무림맹 쪽에서는 제 제자가 나서도록 할게요. 우리 천 공자의 추혼검이라면 저와는 같으면서도 다른 기운을 만들어낼 수 있을 테니까요.”
“스승……님? 제가…… 말입니까?”
천유성이 깜짝 놀란 듯 되물었다.
“어머나 설마, 자신 없으신 건가요? 암황의 제자 따위에게 밀려서야…… 추혼검을 가르친 보람이 없는 걸요?”
암황이 아닌 진혁과의 싸움.
싸움의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차리자 천유성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그건…… 바라던 바입니다.”
진혁과의 비무는 추혼사영이 굳이 등을 떠밀지 않더라도 손꼽아 고대하던 일이었다.
스릉!
천유성이 검을 뽑았다.
진혁으로부터 받은 ‘화무매화검’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렸다.
“오늘이야 말로 놈을 꺾고 제 검이 제일검이라는 걸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흐음. 저쪽 애송이 놈이 널 박살내버린다고 하는구나?”
암황 역시 진혁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뭐, 항상 저랬죠. 덤비고 깨지고…… 울고불고 이젠 그러려니 합니다.”
“푸하하하! 좋은 패기다. 그래, 우리 둘은 무승부가 되었지만, 너는 저 녀석의 제자 놈을 꼭 뭉개 버리거라. 다시는 천마신교와의 비무를 입에 담을 생각도 하지 못하도록.”
암황과 추혼사영은 워낙에 서로의 실력이 비슷한 형세였기에, 비무라는 틀에 얽매여서는 승부를 낼 수 없었다.
정말로 이기려고 한다면 그 다음은 살초를 사용하는 것뿐이겠지.
“저도 그럴 생각입니다.”
진혁이 일그러진 공간 너머에서 송곳니를 꺼냈다.
달빛 아래.
두 개의 검이 드리웠다.
천유성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고유 능력 ‘검의 노래’가 발동됩니다!]“이날만을 기다렸다. 강진혁.”
눈부신 양의 기운이 솟구쳤다.
쿠쿠쿠쿠쿠!
검압으로 만들어낸 검풍이 천유성의 주위를 완벽하게 둘러쌌다.
동시에.
[고유 능력 ‘검의 무덤’이 발동됩니다!]“너도 참…… 어지간히 특별한 날이 없나 보다.”
진혁의 송곳니를 따라 차가운 음의 기운이 깃들었다.
암황과 추혼사영이 두 제자를 바라봤다.
마치, 앞으로 이 세계를 이끌어갈 두 개의 기둥을 보는 것처럼.
그렇게.
탓!
탓!
진혁과 천유성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
심장이 고동친다.
교차하는 검.
살이 에일 듯한 냉기.
서로의 초식이 하나로 합쳐진다.
진혁이 횡으로 검을 그었다.
카앙!
천유성이 송곳니의 궤도를 살짝 틀고 곧바로 반격을 가했다.
팔과 다리를 노리는 매서운 일격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카카카카캉!
진혁이 송곳니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했다.
‘확실히…… 강해지긴 강해졌네.’
예전에는 그저 귀찮은 거머리 정도였는데…….
몰라볼 정도로 성장했다는 게 몸으로 체감된다.
모르긴 몰라도 추혼사영한테 혹독하게 훈련을 받은 게 틀림없었다.
천유성이 자세를 낮추고 곧바로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화르륵!
검끝을 타고 퍼지는 검강.
거기에 추혼검의 새로운 식이 펼쳐졌다.
동시에.
진혁 역시 허공을 따라 새로운 초식을 발현시켰다.
추혼검무(追魂劍舞).
마혼검무(魔魂劍舞).
서로 다른 검무.
하지만, 두 개의 검이 추구하는 끝은 같다.
제5식(第五式).
제5식(第五式).
식은 그저 그 끝을 위한 과정일 뿐.
추혼멸천(追魂滅天)!
마영일충(魔嶺一衝)!
추혼검과 마혼검.
콰아아아앙!
두 절기가 서로의 기운을 상쇄시켰다.
[새로운 종류의 에테르가 발생합니다!]검고 흰 구체들 사이에 노란색 스파크가 일어났다.
이걸로 새로운 활로가 열렸다.
조금만 더 하면…… 천마의 내공이 상당 부분 회복될 거다.
전성기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칠 할 정도는 충분히 노려 볼 만하겠지.
바로 그때.
“어떠냐?”
천유성의 검이 처음으로 멈췄다.
“응? 뭐가?”
“내 검이 어떠냔 말이다. 이전과는 달라진 게 있는지. 달라진 게 있다면 얼마나 달라졌는지 그걸 말해라.”
하여간.
이 녀석도 완전히 애라니까.
칭찬해 달라고 잔뜩 달아 있는 게 먹잇감을 물고 주인 앞에 나타난 고양이 같다.
‘너는 내가 마음껏 능력을 사용해도 되는 상대야.’
이런 말을 해 줄까 했지만…….
저 녀석이 뿌듯해 하는 꼴을 보려니 영 심사가 뒤틀린다.
‘내 눈에 흙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런 건 못 보지.’
무엇보다 여기서 녀석이 만족한 채 발톱을 숨겼다간 천마의 내공을 되찾아주는 일에 차질이 생긴다.
지금 필요한 건 당근이 아니라 채찍이었으니까.
“나쁘진 않은데…… 설마, 이 정도가 전부는 아니지? 에이, 설마. 예전이랑 별로 달라진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아무리 대충대충 수련했다고 해도 준비한 패가 겨우 이것뿐이겠어?”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뭐라고?”
“차라리 월영 쪽이 더 낫다, 뭐 이런 뜻이야.”
“…….”
으득!
천유성이 어금니를 부러져라 깨물었다.
“……좋다. 그럼, 네놈이 이죽거리지 못하는 걸 보여주지.”
천유성이 양 손으로 검을 잡았다.
아직 완벽하진 않았지만,
추혼검의 묘리가 그 검속에 있다.
‘그래…… 이 녀석도 검성의 칭호를 받게 될 랭커였지.’
항상 놀리기만 해서 잘 몰랐는데.
이제야 조금 실감이 된다.
천유성 역시 탑의 상층부에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재능충이라는 걸.
우우우우웅!
잔영을 남기며 점점 더 그 수를 더해 가는 검.
마치, 수백 자루의 칼날이 실체화된 것만 같다.
잠시 뒤에는 저 많은 흉기들이 모조리 이쪽을 향해 폭사되겠지.
“이걸 전부 피하는 건 힘들 거다.”
확실히…….
이건 조금 위험하다.
진혁이 송곳니를 앞으로 뻗었다.
“네 말대로 전부 피하긴 힘들겠네.”
그렇다면…….
“정면에서 전부 박살내 버려 주지.”
파츠츠!
유형화된 기가 반월 모양으로 휘기 시작했다.
흑월야(黑月夜).
단검에 드리운 검은색 초승달.
천유성에게 몇 번의 쓴 잔을 마시게 한 그 스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