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33)
33화 검은 까마귀 길드 (2)
빌딩 최상층 펜트하우스.
개인 집무실에 있던 신건수는 연이어 들려오는 소식에 입술이 바짝 타들어갔다.
“혀, 형님! 경호팀 전멸했습니다.”
“외부하고 통신도…… 안 됩니다. 뭔가 장난질을 한 것 같습니다.”
“엘리베이터 모두 가동 중지. 놈이 계단 쪽으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빨라요. 벌써 20층 넘었습니다!”
좋은 소식 따위는 없다.
하나같이 최악을 예고해 주는 짜증나는 패전보뿐이다.
콰앙!
신건수가 책상을 내려쳤다.
“빌어먹을! 이게 무슨 개 같은 경우야!”
난데없이 침입자라니.
길드의 특성상 적이 많긴 했지만, 이처럼 앞뒤 안 재고 쳐들어오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고작 혼자서…….
“절대, 뜨내기 청부업자 따위가 아니야.”
처음에는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정신병자라고 생각했었다.
허나 줄줄이 무너지는 보안을 보며, 신건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수백 명의 적보다 단 한 명의 적이 더욱 무섭다는 걸.
바로 그때였다.
“컥!”
“끄아아악!”
문 밖에서 비명이 들렸다.
캉! 카아앙!
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뒤를 이었지만, 잠시뿐이었다.
더 이상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두근! 두근! 두근!
신건순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두려움과 호기심이 공존하는 가운데, 마침내.
……끼이이익.
문이 열렸다.
“네가 여기 길드 마스터냐?”
모습을 드러낸 이는 기괴한 과면을 쓰고 있는 남자였다.
***
[결계 지속 시간: 0h : 15m : 33s]외부와의 통신을 끊어 둘 수 있는 시간이 약 15분 정도 남았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겁대가리 상실한 까마귀 한 마리 처리하기에 충분하고말고.’
진혁이 발걸음을 옮겼다.
“멈춰. 멈추지 않으면 베겠다!”
스릉!
신건수가 검을 뽑았다.
여러 개의 마법이 걸린 무구였는지, 칼날에 형형색색의 스파크가 일어났다.
한 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검이다.
과연, 꼴에 길드 마스터는 마스터라 이거군.
하지만 왜일까?
서슬 퍼런 경고에도 진혁은 실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너무 어설픈데…….’
얼마 전에 천유성과 싸워서 그런지, 전신의 감각이 극도로 곤두서 있는 상태다.
때문에 신건수 정도는 대충 손과 발의 움직임만으로도 예상이 갔다.
어떤 식으로 공격해 올지.
어디를 노리려 할지.
전부.
진혁이 계속해서 다가오자, 참다못한 신건수가 고함을 질렀다.
“멈추라는 말, 못 들은 거냐!”
[신건수가 Lv3 ‘쾌검(快劍)’을 발동합니다!]신건수의 검이 사라졌다.
부우우웅!
잔상을 남기며, 칼끝이 진혁을 향해 폭사되었다.
‘설마…… 이것도 페인트를 줬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면 마음이 아플 정도인데 이거.
진혁의 손이 검의 궤도에 맞춰서 움직였다.
이 속도면 피할 필요도 없다.
덥석.
춤추던 칼날이 우뚝 멈췄다.
“헉!?”
신건수의 입에서 바람 새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스킬로 인해 가속까지 된 칼날을 맨손으로 잡았으니…… 당연히 이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오싹하고.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오소소 일어났다.
과거 조폭으로부터 지금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경험들이 말해 주었다.
……죽었다 깨어나도 못 이겨.
가망이 없다고 판단이 서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너… 넌 뭐냐? 누구 사주 받고 여기까지 온 거야?”
신건수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도망가 봐야 50평 남짓한 방 안일 뿐이다.
툭.
등에 유리창이 닿았다.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두려운 거겠지. 든든했던 부하들도 더는 방패막이가 되지 못했으니까.
“맞혀 봐.”
“뭐?”
“내가 누구인지,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맞혀 보라고.”
혹시 아나? 정답을 맞히면 살려 줄지?
푹!
진혁이 단검을 책상 한가운데 꽂았다.
그리고 푹신한 의자에 몸을 묻은 채 자체 골든 벨을 시작했다.
“단군이나…… 발해 쪽에서 보낸 거냐? 우리가 성장하는 걸 견제하려고?”
“땡.”
오답이다.
보통은 다시 맞혀 보라고 웃으면서 말할 테지만.
진혁이 주관하는 골든 벨은 규칙이 살짝 다르다.
틀렸을 경우 당연히 그에 따른 페널티가 있어야지.
오, 마침 좋은 게 있다.
진혁이 책상 한쪽에 있는 바둑알 하나를 집었다.
‘씨알이 아주 굵네.’
돈이 많은 놈답게 제대로 된 걸 구해 놨다.
“바, 바둑알은 왜……?”
신건수가 불안한 듯 중얼거렸다.
왜긴.
따악!
“끄아아아아! 내…… 내 이마, 내 이마가!”
바로 이것 때문이지.
신건수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바닥을 뒹굴었다.
마치 도깨비처럼 이마에 튀어나온 혹.
마력을 실은 바둑알이 두개골을 두드렸으니 꽤나 고통스러울 거다.
“다시, 맞혀 봐. 이번엔 생각 잘해서.”
진혁이 두 번째 바둑알을 만지작거렸다.
“으으…… 블랙 마켓. 그래, 거기다! 막대한 보수를 받고 우리를 치라고 의뢰받은 것 아니었나?”
“땡.”
이번에도 틀렸다.
“잠깐, 잠깐만! 기다려 봐. 누가 보냈든 내가 그쪽에서 제시한 금액의 2배를 주겠어. 응? 뭐가 필요한데. 말만 하라고. 다 맞춰 줄 수 있으니까!”
또다시 바둑알을 맞아야 한다는 생각에, 신건수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신건수는 절박한 목소리로 새로운 딜을 제시했다.
“야.”
“……?”
“내가 누구인지 맞히라고 했지, 내가 너보고 돈 달라고 했어?”
이건 한국말을 외국에서 배워 왔나.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
초등학교를 어디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래서야 세종대왕님이 무덤에서 일어나 일본어로 욕하실 수준이다.
따아악!
또다시 바둑알이 이마를 두드렸다.
아까보다 마력을 더욱 실어 뒀기에, 신건수는 미친 듯이 온몸을 뒤틀어야 했다.
“우와아악! 이마가…… 이마가아아!”
“마지막 기회야. 이번에도 틀리면 여기 있는 바둑알 전부 원샷 하는 거다.”
“허억. 허억. 허억…….”
신건수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났는지 진혁의 가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강……진혁.”
세 음절로 된 하나의 단어.
“이제야 제대로 된 답이 나오네. 맞아. 네가 박하진을 보내 죽이라고 한 당사자가 바로 나야.”
진혁이 가면을 벗었다. 맨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빌어먹을. 그래서 그 복수를 하기 위해서 이곳까지 온 건가? 고작 그것 때문에 건물 전체를 들쑤셔 놓은 거였냔 말이다.”
“고작? 고작이라고?”
진혁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래. 너도 박하진을 비롯한 우리 쪽 놈들을 죽였을 것 아니냐. 그러면 그걸로 된 거지.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아하, 그러니까. 적당한 선에서 그만둬야 했다?”
“너무 삐딱하게만 생각하지 말고 냉정하게 봐라. 탑을 공략하느라 지금 여기엔 없지만, 길드에 소속된 랭커들만 해도 오십이 넘어.”
“그래서?”
“만약, 날 죽인다고 해도 네 뒤를 노리는 이들은 계속해서 나올 거라는 소리다. 복수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겠지.”
피는 피를 부르고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
어느 한쪽이 용서하지 않는 한, 살육전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흠…….
확실히 일리 있는 말이네.
피, 복수 이런 건 편안한 잠자리에 방해되는 키워드들이지.
진혁이 결심한 듯 생긋 웃었다.
“오케이. 너까지만 죽이고 거기서 끝내자. 깔끔하게.”
“뭣?”
“내가 마지막으로 복수할 테니까, 너희 쪽에서 용서하라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궤변…… 컥!”
진혁이 바둑알을 한 움큼 손에 쥐고 신건수의 입에 쑤셔 넣었다.
“꺽! 커어억!”
신간수가 입안 가득 들어온 이물질에 기침을 내뱉었다.
피거품이 흘러 나왔지만, 진혁은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더욱 주었다.
단 하나도 뱉어내지 못하도록.
“네가 끊어라. 그 복수의 고리인지 나발인지. 꼭 내 쪽에서 끊어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
뭐? 복수는 복수를 불러?
그런 걸 걱정하는 놈이 암살자들은 왜 보낸 건데?
“개소리 들어주는 것도 여기까지야.”
만약 뒤에 검은 까마귀 길드의 떨거지들이 덤빈다면 그 녀석들도 모조리 처리하면 그뿐이다.
어중이떠중이들은 한 트럭으로 몰려와도 무섭지 않았으니까.
“이제 그만 꺼져라.”
진혁이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주먹을 휘둘렀다.
콰아앙!
“쿠에엑!”
주먹이 신건수의 안면 깊숙이 박혔다.
이빨과 바둑알이 뒤섞이는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즉사군.’
진혁이 잠시 쓰러진 신건수를 내려다봤다.
안면이 완전히 함몰됐으니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다.
이제 다음은…….
“야, 거기 죽은 척하고 있는 놈. 일어나 봐.”
“…….”
“셋만 셀게. 하나.”
“옙! 깨어 있었습니다.”
복도에 쓰러져 있던 검은 양복들 사이에서 한 남자가 잽싸게 대답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마력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플레이어는 아닌 것 같고.
신건수의 비서쯤 되려나?
“자기소개 시작. 쓸모 있다는 걸 보여 주면 너는 살려 줄게.”
“이름 김희웅, 나이 26세. 검은 까마귀 길드의 전반적인 업무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5개 국어를 할 줄 알며, 스탠포드에서 컴퓨터 공학과 회계학을 전공했습니다! 뭐든지, 뭐든지 맡겨만 주십쇼!”
“오오, 좋아 좋아. 아주 똑부러지네.”
진혁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 경력, 스펙.
이 정도면 충분히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보다시피 지금 여기 상황이 영 좋지 않아. 길드장도 죽었고, 부상자도 넘쳐나고 있지.”
“예…… 예. 그렇죠.”
“그래서 너한테 이 길드를 맡기려고 해.”
“예…… 예. 그렇…… 예에에?”
김희웅의 동공이 터질 듯이 팽창했다.
“거창하게 생각할 건 없어. 솔직히 중견 길드를 통째로 날려 버리는 것도 아깝고. 적당히 허우대만 유지할 생각이니까.”
처음 이곳에 오기로 했을 때부터 생각해 뒀던 계획이다.
바지사장을 한 명 내세우고 그 뒤에서 길드의 단물을 쪽쪽 빨아먹어 보자고.
그리고 김희웅이라면, 그 역할을 제대로 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비서로서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을 테니까.
“하, 하지만 제가 길드 마스터를 한다고 해 봤자 따라올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렇겠지.
비전투계열, 그것도 비서 출신이 갑자기 꼭대기 자리에 앉으면 반발이 생길 수밖에.
“반대하는 놈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 직접 처리해 주시겠다는 말씀인가요?”
김희웅의 얼굴빛이 조금 밝아졌다.
방금 보여 준 무력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신건수를 저토록 쉽게 제압했다면, 길드의 랭커들이 몰려와도 결과가 달리지진 않을 테니까.
그러나 진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런 귀찮은 일을 왜 도맡아서 하나?
바로 옆에, 대신 처리해 줄 든든한 조력자가 있는데?
“전부 들었지?”
진혁이 힐끗 손에 낀 반지를 바라봤다.
그러자.
잠자코 있던 엘리스가 말문을 떼었다.
“여기 너밖에 더 있어?”
[아타락시아 가문을 이끌었던 가주(家主)이자 가장 고귀한 피가 흐르는 이 몸에게 하찮은 인간들의 뒤를 봐주는 보모 역할이나 하라고?]하…….
이게 또 엄근진한 말투를 쓰고 있네.
“아직 정신 못 차렸지? 풍차 돌리기 한 번 또 해 줄까? 응? 왜 되지도 않는 무게를 잡고 그래?”
[하지 마! 하지 말라고! 그거 어지럽단 말이야! 이 말미잘 같은 인간 놈아!]풍차 돌리기란 말에 화들짝 놀란 엘리스가 목소리를 높였다.
말미잘이라….
욕설 한 번 저렴하다.
“겨우 그걸 욕이라고 한 거야?”
[뭐? 이… 이정도면 심한 모욕 아냐?]심한 모욕 같은 소리하네.
신생아실에 있는 아기들도 그것보단 더 맛깔나게 말하겠다.
적어도.
“미천하고 xxxx한 인간아. 감히 고귀한 이 몸을 반지에 가둬놓고 다람쥐통 돌릴 듯 다뤘다간 xx해서 xxxx한 다음 xxxx로 xxxxxxx해주겠다. xxxx에 매달아놓고 3만년동안 xxxx로 삼아주마!”
이 정도는 돼야 협박과 욕설의 조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지.
[어,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엘리스가 충격을 받았는지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고귀하신 귀족에겐 너무 큰 충격이었나 보다. 하긴, 언제나 오냐오냐 하는 말만 듣고 살았을 텐데, 현대 한국인들의 언어를 필터링 없이 경험했으니 멘탈이 무너질 수밖에.
어쨌든 이제야 좀 고분고분해졌다.
“이 녀석이랑 함께, 말 안 듣는 놈들 있으면 전부 처리해.”
[알았어. 근데 너는 뭐 하려고?]“나는 따로 할 일이 있어.”
유적 공략을 끝낸 이상, 더는 1레벨에 얽매여 있을 필요가 없다.
진혁의 입 꼬리가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성장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