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335)
335화. 어둠의 정령
심상 세계의 변화.
기존의 법칙을 깨뜨리고 시전자에게 유리한 전장을 선택하게 만드는 능력은 시련의 탑 내에서도 꽤나 희귀하다.
하물며.
“……! 말도 안 돼. 단순히…… 흉내 내는 것만으로도 스킬에 버금가는 힘을 구현화했다는 말인가?”
니체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지금껏 플레이어들은 물론, 거주자들을 상대로도 압도적인 효력을 발휘한 게 바로 니힐리즘이다.
심지어 하이신스나 엑센시온마저도 움찔하게 만들었던 게 자신의 능력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 모든 확신들이.
무너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을 기점으로.
[‘플레이어들의 세계’가 펼쳐집니다.]파츠츠…….
기둥들이 즐비했던 거대한 왕궁은 사라졌고. 그 자리엔 익숙한 풍경이 나타났다.
타락한 자들의 회랑 안에 있던. ‘얼어붙은 눈물’을 두고 처음 싸웠던 곳.
시련의 탑이 현실에 나타나고 두 사람이 처음으로 검을 마주했던 장소다.
진혁이 아주 잠시 동안 주위를 둘러봤다.
천유성도 과거를 곱씹듯 입술을 일자로 꾹 다물었다.
물론, 아주 잠시뿐이었다.
“한 번에 끝내야 해. 두 번은 없어.”
강제적으로 ‘전장 선택’을 발동시킨 터라, 몸에 심각한 무리가 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욱씬! 욱씬! 욱씬!
혈관이 타들어가고 입술이 마른다.
과부화된 근육과 뼈가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았다.
고작해야 1분 남짓.
그게 이 세계가 유지될 수 있는 한계치리라.
“걱정 마라.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일격에 끝낼 생각이니까.”
천유성이 검을 앞으로 뻗었다.
동시에.
진혁 역시 부드럽게 검을 그었다.
[고유 능력…….]두 개의 검로가…….
[고유 능력…….]……하나로 이어진다.
[거짓된 ‘검의 노래’가 발동됩니다.]서로 다른 두 명의 플레이어.
당연히 둘 사이는 접점 따위라고는 없는 완벽한 타인이다.
하지만.
추혼검무(追魂劍舞).
흐드러지는 검 끝.
마력이 없어도.
능력이 없어도.
제11식(第十日式).
식은 구현된다.
마치,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운 선이 끝을 고했다.
이검일합(二劍日合).
이것이 두 사람의 검.
최강의 라이벌이자 서로가 서로의 검로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만들어낼 수 있는.
시스템을 초월한 극치(極致)다.
콰콰콰콰콰콰콰!
두 개의 검이 교차했다.
검의 잔영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럴 리가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니체가 고함을 지르며, 연거푸 실드를 발동시켰다.
허나.
흑마법으로 만든 여러 겹의 실드는 칼에 닿는 순간 박살났고.
서걱!
공간마저 그대로 잘려나갔다.
***
치이이익!
지면을 따라 자욱한 연기가 솟구쳤다.
워낙에 강력한 일검이 사용되었기에, 전장 선택으로 만든 심상세계조차 그 충격을 제대로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바로 그때.
띠링!
[경고! 플레이어들의 신체에 막대한 충격이 발생했습니다.] [‘전장 선택’이 소멸됩니다.] [불완전한 능력들이 모두 사라집니다.]우둑!
콰드득…….
허공에 균열이 일어나며, 유리조각처럼 풍경이 부서졌다.
아슬아슬하게 버텨오던 심상세계가 마침내 끝났다.
“허억. 허억. 허억.”
“후우우…….”
거친 숨소리만이 방금 전 전투가 얼마나 무리였는지를 말해 주는 듯 보였다.
그런데.
“쳇…….”
천유성이 짜증 가득한 얼굴로 혀를 찼다.
느낌이 없다.
당연히 손에 전해져야 할 묵직한 그 맛이.
“그 찰나에…… 상쇄시켰다는 건가.”
진혁도 눈살을 찌푸렸다.
마지막 순간, 무언가 니체와 검격 사이를 가로막았다.
실드는 베어냈지만, 가장 중요한 당사자를 베는 덴 실패했다.
니체는…… 여전히 건재하다.
그 말을 증명하듯.
“제법……이야. 이번 건 솔직히 나라도 위험했어. 설마, 이것까지 꺼내게 될 줄은 몰랐다.”
니체가 연기 속에서 걸어 나왔다.
상처 하나 없이 멀끔한 모습으로.
그리고 그 옆엔…….
“킥킥킥. 막았다. 내가 막았어. 잘했지? 응?”
어두운 기체로 둘러싸인 무언가가 있었다.
노란색과 파랑색. 각기 다른 눈동자를 가진 생명체가 연신 키득거렸다.
‘저건…….’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평범한 몬스터나 소환수가 아니다.
정령수.
그것도 5대 속성에 포함된 정령이 아닌, 암속성을 지닌 정령이다.
이거……, 또 엄청난 게 튀어나왔다.
‘갈수록 첩첩산중이네.’
하필이면 이럴 때 이런 성가신 적을 만나게 될 줄이야.
모든 걸 쏟아버린 탓에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다.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구할 수도 없었다.
로키와 토르 역시 상위 마족과 그녀를 따르는 수많은 마수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엘리스야 말할 필요도 없고.
“젠장. 뭔가 뾰족한 수가 없는 거냐?”
“……미안하지만, 당장은 없어.”
진혁이 조용히 고개를 가로지었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정말로 최악이라는 거군.”
언제나 능글맞게 행동하면서 대책을 내놓았던 진혁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승산이 0%에 가깝다는 뜻이다.
“드디어 네놈의 얼굴에서 절망이라는 게 보이는구나.”
니체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한계치에 도달한 건 니체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정령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힘만 남아 있다면 상관없다.
어차피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건 정령의 몫이었으니까.
“저놈들의 온몸이 썩어문드러지는 꼴을 내 반드시 봐야겠다. 가능하면 손이나 발끝부터 시작해서 오래오래 끌어라.”
“킥킥킥! 응. 알았어.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줄게.”
[잊혀진 원소의 정령 ‘블랙네스’가 ‘망자의 채찍’을 발동합니다!]기체의 양 옆으로 긴 채찍이 나타났다.
파츠츳!
검은색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흙이 타들어가는 게 보인다.
탑의 4층.
펜다리엘이 사용했던 ‘흑사(黑死)’와 비슷한 효과를 지닌 능력이다.
닿기만 해도 피부가 썩어 들어간다는 건 능력이 봉인된 현 상황에서 굉장히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단 하나라도 허용해선 안 된다.
스윽.
진혁과 천유성이 각각 자세를 잡았다.
온다.
“너 쪽이야!”
부우웅…… 콰앙!
“큭!”
선공을 받은 천유성이 가까스로 공격을 빗겨냈다.
말도 안 되게 빠른 속도에 무게까지 실려 있는 터라 받아내는 것마저 쉽지 않다.
그나마 화무매화검이 화산파의 신병이기였기에 망정이지. 보통의 검이었다면 저 불길한 기운에 잠식되어버렸을 것이다.
“킥킥! 제법이네? 이것도 막아볼래? 이것도? 이것도?”
쾅! 콰앙! 쾅!쾅!
폭풍처럼 몰아치는 채찍.
천유성이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이리저리 날렸다.
그리고 천유성이 정신없이 방어를 하는 틈을 노려.
탓!
진혁이 앞으로 몸을 날렸다.
거리를 좁힌다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의 속도였지만…….
타이밍만큼은 제대로 잡았다.
두 개의 채찍이 겹치면서 만들어진 사각을 정확하게 파고들었으니까.
월영이 평소 음영극살을 통해 이동하는 모습을 눈여겨본 것도 톡톡히 그 빛을 발휘했다.
그러나.
콰콱!
세 번째 채찍이 송곳니를 단단히 옭아맸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기습마저도 무위로 돌아갔다.
“킥킥! 그것도 기습이라고 한 거야? 그나마 둘이라서 기대했는데. 이거 완전히 실망이야. 응. 응.”
그걸로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졌다.
콰앙!
“크아아악!”
천유성이 또 다시 볼썽사납게 흙바닥을 뒹굴었다.
무게를 흘려보내는 데 실패한 건지. 그 한 번으로 오른쪽 어깨뼈가 박살났다.
“한 녀석은 이걸로 끝났고. 다음은…….”
블랙네스의 시선이 진혁에게 향했다.
콰아앙!
채찍이 쌍룡검 위를 두드렸다.
“……!”
보고 반응하는 것이 아닌, 예측과 경험에 의한 대응의 영역.
진혁이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내면서 검을 휘둘렀다.
물론.
무의미한 저항일 뿐이다.
아무리 정신력이 뛰어나다고 한들,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기란 불가능했으니.
“이제 두 놈 다 끝내줄게.”
블랙네스가 킥킥거리며 마력을 끌어 모았다.
채찍들이 일제히 하늘 높게 솟구치는가 싶더니.
이내 진혁과 천유성을 향해 쇄도했다.
콰콰콰콰콰콰!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두 사람에게 더 이상 피할 여력 따윈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우우우웅!
눈앞에 여러 개의 게이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이건 또 뭐냐?”
뜻밖의 이변에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니체가 반응했다.
당황할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상황에서 게이트가 나타날 이유는 없었으니까.
[다수의 정령들이 주인의 위기에 반응합니다.]마력은 이어져 있지 않다.
마력의 공급이 없다면, 당연히 정령들 역시 현세에 올 이유 또한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 계약이란 어디까지나 마력을 매개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보는 것에 불과했기에.
그럼에도.
게이트는 맹렬하게 그 빛을 더해가고 있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해방될 것처럼.
바로 그 순간.
게이트 너머로 누군가 나타났다.
“감히…… 어디서 그 더러운 손을 함부로 대는 거야?”
가장 먼저 게이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물의 정령. 운디네였다.
작고 아기자기했던 모습은 간데없고.
완전한 성인의 몸을 한 여인이 가느다란 손가락을 앞으로 뻗었다.
쿠쿠쿠쿠쿠쿠!
수십 개의 물방울들이 미친 듯이 회오리치며, 진혁에게 손을 댄 니체와 블랙네스에게 적개심을 드러냈다.
무시무시한 기운이 느껴지는 건 단순히 물방울에 깃든 마력이 강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진혁을 상처 입힌 자들에 대한 분노.
오직 그 하나의 감정만이 지배하고 있을 뿐.
“주인은…… 우리가 지켜.”
“크아아아!”
2쌍의 날개를 발현시킨 실피드와 전신이 붉은 비늘로 뒤덮인 살라맨더가 각기 다른 종류의 마법을 사용했다.
바람이 불꽃과 맞닿자.
휘이이잉!
지옥불과 같은 열풍이 몰아쳤다.
“그오오오!”
“다들 조용히 해. 머리 아파.”
5대 속성의 마법들이 동시에 사용되었다.
“저, 정령사들조차도 이 많은 정령수들과 계약을 맺진 못한다. 하물며…… 본체를 직접 오게 만들다니. 네놈. 대체. 대체 정체가 뭐란 말이냐!”
니체가 목에 핏대를 세운 채 고함을 질러댔다.
승리를 확신한 순간마다 찾아오는 변수.
그것도 하나하나가 전세를 뒤바꿔버릴 만큼 터무니없는 종류들이었다.
이제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
필살을 자신하는 것들이 모조리 어긋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아무리…… 블랙네스가 속성 원소 중에서 가장 강력하다고 해도. 본체와 싸울 수 있을 정도는 아니야.’
그렇다고 블랙네스가 본체로 와 줄 일도 없다.
이쪽은 순수하게 계약 그 자체에만 충실한 관계였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트리스탄. 멜레나!”
니체가 조금 멀찍이서 대기하고 있던 두 사람을 향해 외쳤다.
두 명의 마인들이 시간을 벌어 준다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을 터.
다시 한 번 재정비를 해서 싸우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명령을 받은 두 사람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뭣들 하고 있는 것이냐? 저 녀석들과 싸우지 않고!”
니체가 다그쳤지만, 돌아온 반응은 싸늘했다.
“미안.”
“안타깝지만 그쪽 명령이 최우선이 아니라서.”
“마인들의 수장인 내 명령이 최우선이 아니라면, 대체 어느 놈의 명령이 우선이라는 거냐!”
니체의 고함에.
“그거야 당연히 나지.”
진혁이 먼지를 툭툭 털며, 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