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336)
336화. 해방 (1)
“배신……을 했다고 나를?”
니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두 사람은 진혁과는 악연이 있었을 터.
결코 함께하려야 할 수 없는 사이였다.
그렇기에.
니체로선 지금 이 상황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미안. 더 강한 쪽에 붙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거든. 내가 생각한 게 바로 저 인간이었고.”
“너무 아쉬워하진 마세요. 저희들은 예전부터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였으니까.”
이미 오래 전부터 진혁과 함께했던 멜레나와 뒤늦게 합류하게 된 트리스탄이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굳이 염혼의 낙인 때문이 아니더라도.
진흙탕 싸움에 관해서만큼은 어느 쪽이 유리한지 뼈저리게 알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마인들의 수장이든.
위대한 순혈종인 진조들이든.
상관없다.
마지막에 살아남는 건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
“감히…… 네까짓 것들이 내 뒤통수를 쳐? 아무래도 이 몸이 얼마나 무서운지 잊었나 본데. 둘 다 산 채로 썩어문드러지게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흐음. 꼬리나 말고 도망가려 하던 사람이 그런 말을 하려는 거면 좀 웃기지 않나?”
니체의 어쭙잖은 협박에 이번엔 진혁이 끼어들었다.
“너……!”
“아아. 화내지 말고. 이제 와서 추하게 얼굴 붉혀 봤자 혈압만 올라. 기왕 죽더라도 내 칼에 죽어야지. 명색이 마인들의 수장이 고혈압으로 가고 싶진 않을 거 아니야?”
진혁이 능글맞은 미소와 함께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자 니체의 얼굴이 더더욱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건방진! 내가 네놈에게 당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거냐!”
“응. 그렇게 생각해. 그렇지 않아도 노인 공격이 뭔지 제대로 보여 줄 생각이거든.”
블랙네스를 유지하느라 니체의 마력이 한계까지 사용되고 있는 상황.
이 정도면, 니힐리즘으로 인해 능력이 봉인당해 있다고 해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복사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관문이 있었다.
‘저 녀석에게 붙어 있는 마왕을 떼 놔야 할 텐데…….’
마계 서열 7위. 헤시모디움.
마계에 있는 10명의 마왕 중 하나로 현재 니체를 후원하고 있다.
만약 놈이 끝까지 니체를 포기하지 않고 도와준다면 일이 골치 아프게 흘러갈 수 있을 터.
그렇다면.
‘후원하는 것보다 버리는 게 더 낫다는 걸 깨닫게 해줄 수밖에.’
진혁이 더 적극적으로 상대를 도발했다.
“마왕 중에서도 가장 끗발이 떨어지고 어중간한 놈이랑 계약했으면서도 그렇게 자신만만한 게 궁금하긴 했어. 대충 듣긴 했는데, 헤시모디움이면 10마왕 중에서도 서열이 꼴찌 아니었던가? 아니, 얼마 전에 너무 허접해서 마족으로 강등당했다고 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러자 바로 그 순간.
[마계의 신격이 크게 격노합니다!] [특수 능력 ‘부분 현신’이 발동됩니다!]쿠쿠쿠쿠쿠쿠!
“크으으…… 크아아아! 아아악!”
니체의 두 눈에 흰자가 드리웠다.
입에선 피거품이 일어났고. 피부에선 굵은 핏줄이 격하게 꿈틀거렸다.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전신.
니체는 더 이상 니체가 아니다.
이미 그 몸속에는 마왕의 영혼이 깃들어 있으니까.
정확히는 본체의 현현이 아닌, 매개체를 통한 빙의에 가깝다고 봐야 하리라.
한참이나 이어지던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크으…… 인간의 껍데기 속은 언제나 마음에 들지 않는군.”
헤시모디움이 무미건조한 눈으로 자신의 손과 발을 살폈다.
하지만 아주 잠시뿐이었다.
“이 몸이 불쾌함을 느끼게 했으니, 편하게 죽진 못할 거다.”
길게 자란 손톱에서 붉은색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최상의 컨디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길 수 없는 괴물이다.
물론.
이쪽도 그 정도는 생각하고 있다.
“베리엘. 보고 있는 거 다 알고 있어. 슬슬 아는 척 좀 해 주지 그래?”
진혁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러자.
[흐음. 그래. 뭐 보고는 있지. 일이 꽤 흥미롭게 흘러가서 잠깐 개인 창고에서 와인을 가져오느라 말이야.]기다렸다는 듯, 반응이 나타났다.
하여간 이 녀석은 세월도 좋다.
남은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고 있는데 말이지.
쿠쿠쿠쿠쿠쿠!
진혁이 전신에서 검은 기운을 줄기줄기 뿜어내고 있는 헤시모디움을 바라봤다.
정말이지 끔찍할 정도로 무식한 마기다.
[이대로라면 죽는다.]“그래, 그렇겠지.”
니체의 몸을 빌렸다고 한들, 상대는 마왕.
능력이 봉인되어 있는 이상 손짓 한 번만으로도 즉사할 거다.
“그러니, 나도 든든한 후원자가 지켜줘야 하지 않겠어?”
진혁이 힐끗 허공을 바라봤다.
[호오. 내가 도와야 한다고? 어째서 그래야 하지?]왜긴.
그거야…….
“네가 헤시모디움보다 강하다면 이 싸움을 피할 이유는 없으니까. 아, 물론, 서열에서 밀린다면야…… 싸우지 않을 수도 있지.”
[그러니까. 내가 돕지 않는다면, 저 머저리 마왕보다 격이 낮기 때문에 쫄아서 눈도 못 마주칠 거다? 결국엔 마계에서 제일가는 겁쟁이이자 최약체가 나라는 말 아니더냐?]음…….
그렇게까지 말하진 않았는데.
의도는 제대로 전해진 것 같다.
“안 그래도 오늘 저 녀석이랑 싸우면서 검은 사도가 얼마나 좋은 직업인지 다시 한 번 느꼈어. 3차 전직은 결계사가 아니라 다른 걸로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내, 사……도가 되겠다고? 그, 그게 정말이냐?]“응. 생각이 없진 않아.”
[정말로? 그 말에 맹세라도 할 수 있는 건가?]“날 못 믿는 거야?”
[믿음을 줘야 믿을 것 아니냐! 지금까지 몇 번이나 할 것처럼 간만 봤으면서!]“이번엔 담보를 걸게. 저기 보이는 녀석 어떻게 생각해?”
진혁의 손끝이 천유성에게 향했다.
[검술도 제법이고. 손속에 사정이 없군. 여러모로 우리 쪽이랑 잘 어울려 보이는군.]베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천유성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좋아.
걸렸다.
“맞아. 보다시피 제법 싹수가 있는 애야. 당연히 검은 사도로 전직할 경우. 꽤나 훌륭한 마족이 될 수 있지 않겠어? 거기다가 나까지 간다면 완전히 금상첨화잖아?”
천유성을 넘기는 조건으로 베리엘의 환심을 산다.
[그, 그건 맞는 말이긴 한데…….]“어어? 저 녀석 온다. 빨리. 이제 시간 없어! 나 죽으면 사도고 뭐고 간에 다 의미 없어지는 거야.”
진혁이 다급하게 헤시모디움을 가리켰다.
당장이라도 달려올 듯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게 남은 시간이 채 몇 초도 되어 보이지 않았다.
결국.
[빌어먹을. 알겠다. 우선 도와줄 테니. 나중에 약속이나 잊지 마라.]베리엘이 나섰다.
순간.
오싹하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가운 냉기가 일어났다.
파치칙!
화려한 스파크와 함께 공간을 찢으며 은발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콰아아아아앙!
붉게 물든 손톱이 허공에서 그대로 가로막혔다.
아니.
오히려 공격을 했던 헤시모디움이 충격을 이기지 못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베……리엘?”
헤시모디움의 동공이 급속도로 흔들렸다.
빙의를 통한 부분 현현이 아니다.
본체의 직접 강림.
그것도 최상위 신격에 해당하는 마왕이 직접 움직였다.
“방금 내 영지에 있는 숲 10만 평과 성 3개를 제물로 바쳤다.”
선택이 강요된다.
자신은 이미 물러설 수 없는 투자를 했으니…….
“이 인간은 내 사도다. 그러니 물러가라.”
어느 한쪽이 파멸할 때까지 싸우든가.
아니면 꼬리를 말라고.
***
“제기랄.”
하이신스가 송곳니를 부러져라 깨물었다.
니체를 비롯한 마인들이 그래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저 멍청한 놈들은 도움이 하나도 안 되잖아.”
특히나 갑자기 나타난 북유럽 쪽 신격들과 마왕까지 가세함에 따라 전세가 완전히 기울어버렸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점은…….
눈앞에서 상대하는 적이 예상보다 훨씬 더 까다롭다는 점이다.
퍼퍼퍼펑!
퍼어엉!
전격으로 만든 폭풍우가 연신 몰아쳤지만, 엘리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거리를 좁혀왔다.
분명, 전성기에 비해 한참이나 부족하다.
그런데도 어째서일까?
오히려 그때보다도 더 버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하이신스가 ‘인피니티 라이트닝’을 발동합니다!]들고 있던 창에 푸른 전격이 깃든다.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찌르기가 폭사되었다.
파앙!
소닉붐을 일으키며 창끝이 사라졌다.
그런데.
카가가캉!
번개처럼, 허리춤에 찬 레이피어를 뽑은 엘리스가 창의 궤도를 틀어버렸다.
빗나간 창이 애꿎은 지면에 박혔다.
하이신스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언제 레이피어를 쓰게 된 거지?”
“얼마 전에 배웠어.”
“얼마 전에 배웠다고? 설마…… 저 인간한테서?”
“…….”
엘리스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설마, 했는데 진짜였나.”
그 지체 높고 고고하기 짝이 없던 아타락시아의 가주가.
한낱 인간에게 무언가를 배웠다니.
다른 누군가에게 말한다면 결코 믿지 못했을 이야기다.
어떠한 경우에도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바꾼 거였으니까.
“대체…… 저 녀석이 뭐길래 그렇게까지 하는 거지? 단순히 레이피어뿐만이 아니야. 알고 있을 텐데? 아무리 너라도 50층의 존재들을 상대로 싸우게 된다면 목숨을 장담하기 힘들다는 것쯤은?”
그렇기에.
물을 수밖에 없었다.
강진혁이라는 존재가 엘리스에게 있어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에 대해서.
엘리스의 붉은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다시 살아 갈 수 있게 해준 사람.”
모든 걸 포기한 채 죽기만을 기다리던 자신에게 새로운 희망을 준 소중한 사람.
기나긴 악몽을 끝내고 새롭게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준 사람.
“50층에 무엇이 오든 상관없어.”
죽는다면…… 그래도 상관없다.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진다 해도 괜찮다.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으니까.
‘아타락시아식’.
레이피어가 7개의 원을 그렸다.
그려진 원들이 서서히 깎여 나가며, 화려한 문양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붉……은 장미?”
하이신스가 멍하니 그려지는 장미꽃을 바라봤다.
한 송이 한 송이.
허공을 따라 흐드러지는 장미꽃이 숨 막힐 듯한 광경을 연출했다.
[‘블러드 로즈’가 발동됩니다!]이것이 엘리스가 처음 만들어낸 자신만의 고유 식(式).
아타락시아를 상징하는 새로운 물결이다.
“급조한 것 따위로 나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냐!”
하이신스가 그에 맞서 창을 휘둘렀다.
창이 잔영을 남기며 수십 개의 갈래로 나뉘어졌다.
아무리 심상치 않아 보인다고 한들. 모든 식에는 그만한 경험과 세월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단순히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
검과 창.
두 개의 무구로 자아낸 식이 앞으로 뻗어나갔다.
그리고.
두 개의 식이 격돌한 순간.
파가각!
하이신스의 창끝이 가루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아…….”
짧은 탄식 속에는 허무함과 절망감이 함께 배어나왔다.
노력도 경험도 필요 없는 압도적인 재능의 영역.
모든 가주들을 압살해 버린 최강의 가주.
진조.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
세월에 치여 잊고 있었다.
그 존재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괴물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