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34)
34화 고인물이 성장하는 법 (1)
[A급 이상 플레이어 분들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지금 당장 최상층 펜트하우스로 모여 주시길 바랍니다.]우우우웅!
핸드폰이 진동했다.
전후 사정이 생략된 짤막한 소집 명령이 하달됐다.
“젠장, 한창 바쁜데 왜 긴급 소집이야?”
“말도 마라. 난 한창 레이드 중이었다고.”
“카악 퉤! 아무리 까라면 까야 한다지만, 요즘 들어 더 심해지는 거 아녀?”
검은 까마귀 길드에 소속되어 있는 플레이어들은 툴툴대면서도 빌딩으로 모였다.
조용한 내부.
바닥에 남아 있는 작은 유리 조각들.
평소와는 달랐다.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 왜 이래?”
“여기 우리 건물…… 맞지?”
짙은 위화감이 일어났다.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덜컹!
그리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순간.
불길한 느낌은 확신으로 변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냐?”
“건수 형!”
“힐러…… 당장 치료해! 당장!”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길드 마스터, 신건수였다.
“이미 늦었어. 숨이 끊어진 지 최소 몇 시간은…….”
신건수의 상태를 살피던 힐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상을 치료하는 건 몰라도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건 힐러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길드장이 죽었다.
그렇다면.
긴급 소집 명령은 누가 내렸단 말인가?
모두의 시선이 방 안에 있던 또 하나의 인물에게 향했다.
신건수의 비서인 김희웅이었다.
초조한 얼굴로 안경을 고쳐 쓰는 모습에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김희웅!”
플레이어 한 명이 무기를 꺼냈다.
우우웅……!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2m가 넘는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리한 흉기가 김희웅의 목을 향해 뻗어졌다.
“토씨 하나 빠뜨리지 말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라! 지금 당장!”
“하하…… 그,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
김희웅이 곤란한 듯 옆을 힐끔거렸다.
정확히는 탁자 아래를 향해서.
누가 또 있는 건가?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저벅.
탁자 아래에서 굉장히 앳돼 보이는 백발의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긴 은발과 붉은 눈동자가 인상적인.
묘한 분위기를 간직한 소녀였다.
“하아.”
소녀가 귀찮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각종 무기로부터 지독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지만,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처럼.
그 무사태평한 모습에 기가 막힌 걸까?
“어이가 없군. 이딴 꼬맹이 하나 믿고 일을 벌인 거였냐?”
창잡이가 혀를 찼다.
바로 그 순간.
빠직하고.
엘리스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꼬…… 꼬맹이? 꼬맹이라고?”
쿠쿠쿠쿠쿠쿠!
붉은 마력이 범람하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였다.
[Lv?? ‘피의 권역’이 발동됩니다!]방 안에 팽팽하게 깔려 있던 살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전신의 혈관이 모조리 얼어 버릴 것만 같은 냉기.
이중에는 1층 보스 레이드에도 참여한 적 있는 플레이어도 있었지만…….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아예 차원이 다르다.
“세상에나…….”
“무, 무슨 마력이?”
“괴, 괴물이다.”
덜덜덜!
플레이어들이 제자리에 굳은 채 온몸을 덜덜 떨었다.
누구 하나 감히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우와아악! 차, 참으셔야 합니다. 그…… 대표님이 가능하면 죽이지 말라고 하셨잖습니까?”
당황한 건 김희웅도 마찬가지였다.
길드의 운영을 위해서는 핵심 자원들이 필요할 터.
진혁은 랭커들을 가능한 한 보존하라고 당부해 두었다.
하지만.
“알 게 뭐야? 지금 저놈들이 나한테 한 말 못 들었어?”
엘리스의 이성은 이미 끊어진 지 오래였다.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호소하듯.
거대한 마력이 폭발했다.
콰아아아앙!
빌딩에 있던 창문들이 모조리 박살나 버렸다.
***
서초동에 있는 각성자 협회.
2차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진혁은 가장 먼저 이곳을 찾았다.
오후 1시.
정확히 약속했던 시간이다.
스마트폰을 확인한 진혁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그렇게 생각한 바로 그때.
“형!”
“오빠! 여기야. 여기!”
입구 옆에서 두 사람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이태민과 유연화였다.
기간으로 따지면 다시 만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린 건 아니다.
하지만 왜일까?
진혁은 두 사람이 진심으로 반가웠다.
“딱 맞춰서 왔네. 그동안 잘 지냈어?”
“저희야 잘 지냈죠. 2층에 있는 B급 미궁 하나도 공략 성공했습니다!”
이태민이 어깨를 한껏 치켜 올렸다.
“레벨도 꽤 올랐어. 진짜 잠도 안 자고 열심히 사냥했거든.”
유연화도 칭찬해 달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둘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이 달라지긴 했다.
단순히 전체적인 양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마력의 농도 또한 짙어졌다.
“나름 스펙터클하게 보냈나 보네.”
“에이. 오빠만큼은 아니지.”
“응?”
“모른 척하지 마. 어제 ‘명예의 전당’에 업로드된 영상. 그거 오빠잖아?”
유연화가 팔꿈치로 진혁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
이태민도 한 마디 덧붙였다.
“형. 근데, 가면은 왜 쓴 거예요? 설마, 예전처럼 중2병 돋은 건…… 아니죠?”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였어. 그보다…… 그렇게 티 났어?”
가면 하나만으로 유추하다니.
아니, 그것보다 중2병이랑 연관 지어서 정체를 꼭 집은 건 너무한 거 아니냐?
한때 그쪽 취향이었던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왠지 모르게 슬프다.
“유적을 공략할 정도로 고인물은 오빠밖에 없으니까. 바로 눈치 챘어.”
“사실, 뉴스 보는 순간 바로 형인 줄 알았어요.”
“아…! 그런 거였어?”
시무룩해 하던 진혁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다행이다.
여러 의미로…….
“그나저나 형 진짜로 [시련의 탑] 저희랑 비슷한 시기에 접은 거 맞아요?”
“영상 보니까 패턴을 외운 수준이 아니라 [시련의 탑] 제작자 뺨 때리는 수준이던데…….”
두 사람이 의심과 경외심이 섞인 눈빛으로 진혁을 바라봤다.
부담스러울 정도의 시선이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시련의 탑] 커뮤니티는 어제 올라온 동영상으로 인해 뜨겁다 못해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3층 보스 공략 실패와 난공불락으로 여긴 유적의 공략.
두 대사건이 맞물리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가면을 쓴 플레이어에게 쏠렸다.
그의 정체가 누구인지.
과거, 탑의 몇 층까지 올라가 봤는지.
어느 길드에 소속되어 있는지.
좋아하는 음식이나 취미는 물론, 심지어 오늘 입고 있는 팬티가 무슨 색인지조차 관심 대상이었다.
‘반응이 격하긴 하네.’
진혁이 피식 웃었다.
대충 예상은 하긴 했으나, 이건 기대 이상이다.
‘좋아.’
이 정도 조건이 갖춰졌으면 앞으로 행동하는 게 더욱 수월할 것이다.
가면을 쓴 자신과.
가면을 쓰지 않은 자신.
이렇게 두 개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두 개다 모두 정상급을 찍어주지.’
세계 랭킹 1등과 2등.
얼핏보면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보일 테지만, 실상 그 둘은 동일 인물이다.
‘그 두 개의 조건을 이용해 이득이란 이득은 모조리 취해주마.’
두근! 두근! 두근!
생각해 둔 수많은 계획들을 생각하자, 진혁은 조금씩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그때.
“형? 대답 좀 해 줘요. 진짜로, 몇 층까지 가 본 거예요?”
“야. 질문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솔직히 말해 봐. 오빠, 게임 운영진 중에 한 명이지?”
“누나, 그건 좀 너무 간 거 아니야?”
“아니긴. 그게 아니면 이렇게 고이다 못해 썩은 수준으로 움직이는 걸 어떻게 설명할 건데?”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쩌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모르겠다.
두 사람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걸 구경하는 것도 재밌겠지만…….
“미안.”
진혁이 생긋 웃었다.
동시에 스마트폰의 화면을 두 사람에게 보여 줬다.
[오후 1시 15분까지 2차 테스트 결과를 보고하러 와 주십시오.]***
각성 테스트가 없는 날이어서 그런지, 협회 내부는 꽤나 한산했다.
안내데스크에 도착한 진혁은 신분증을 꺼냈다.
“2차 테스트 통과했다는 확인증을 수령하려 왔는데요.”
“예, 잠시만요.”
여직원이 진혁의 신분증을 건네받았다.
그런데.
“어……? 강진…혁 씨?”
토끼처럼 놀란 표정.
여직원은 신분증과 진혁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시,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예?”
“잠시만요. 어디 가지 마시고 꼭 기다리셔야 해요.”
할 말만 한 채 황급히 어딘가로 달려가는 여직원.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진혁은 뭐라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잠시 뒤.
여직원과 함께 온 이는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 남성이었다.
‘이건 꽤나 의외로군.’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어찌 모를 수 있을까?
각성자 협회장, 한상진.
한국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총괄하는 인물을.
[Lv2 ‘진실의 눈’이 발동됩니다.]진실의 눈이 상대방의 상태창을 꿰뚫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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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상진
성별: 남
나이: 45세
레벨: 15
힘 19 민첩 17 체력 15 마력 15
보유한 스탯 포인트: 0
보유한 코인: 0
직업: 행정관(行政官)
고유 능력: 일괄지휘
스킬: Lv4 ‘관료제(官僚制)’, Lv4 ‘굳건한 단결’, Lv3 ‘중재’, Lv3 ‘사상 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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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조건: 오류로 인해 복사조건이 업데이트 되지 않았습니다.]진혁이 상태창과 복사 조건을 막 읽었을 때였다.
“오시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강진혁 플레이어님.”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온 한상진이 악수를 청했다.
젠장.
왠지 이걸 맞잡으면 골치 아파질 것 같은데…….
틀림없다.
한상진의 눈빛.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눈빛이다.
‘그렇다고 멀뚱멀뚱 서 있다간, 동방예의지국에 길이 남는 망나니가 될 테고.’
후우.
하는 수 없지.
그런데 손을 뻗으려던 진혁이 멈칫했다.
방금 한상진이 했던 말을 곱씹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대화에서…… 짙은 이질감이 느껴졌다.
잠깐,
잠깐만.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1차 테스트의 진짜 측정치를 아는 건 시험관 한 명뿐.
나머지 사람들에게 자신은 그저 길바닥에 널려 있는 F랭크 중 하나다.
‘최하위 등급의 플레이어를 위해서…… 협회장이 직접 움직인다?’
말이 안 되잖아?
그렇다고 해서 시험관이 입을 열었을 가능성도 없다.
‘염혼의 낙인’을 새긴 이상 진실을 말하는 즉시 잿더미가 되어 버릴 테니까.
……재밌네.
이번엔 ‘눈’을 속일 수 있을 정도의 대비를 해둔 놈들이라는 거잖아?
진혁이 피식 웃었다.
“야.”
“예?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한상진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얼룩졌다.
난데없이 반말을 해 대니 그럴 수밖에.
그러나 진혁의 표정은 여전히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어설픈 연기는 그만두고 결계 풀어. 당장.”
“결계라니 그게 무슨…….”
“강진혁 플레이어님. 협회장님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이렇게 말해 줘도 모른 척하시겠다?”
진혁의 입 꼬리가 더더욱 위로 올라갔다.
쉬운 길 말고 쪽팔린 길로 가겠다면야.
순식간에 단검을 꺼낸 진혁이 어깨를 크게 뒤로 젖혔다.
그리고 천장을 향해 투척했다.
쐐애애액!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단검이 천장에 박혔다.
정확히는 천장으로 ‘보이는 것’에 박혔다.
그 순간.
파츠츠츠!
공간이 일그러지며, 투명한 막에 잔잔한 물결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