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35)
35화 고인물이 성장하는 법 (2)
저릿저릿.
바늘로 찌를 듯한 살기에, 두 사람이 몇 걸음인가 뒤로 물러섰다.
“이것 참…… 나름대로 공들여 만든 무대였는데 완전히 나가리가 됐군.”
한상진의 외견을 하고 있던 남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말투에서 허탈함이 배어 나왔다.
“그러게. 어디서 눈치를 챈 거지?”
짜증이 난 건 여직원도 마찬가지였다.
각성자 협회 빌딩 전체에 ‘차원 왜곡’ 결계를 펼쳐 두고 인물 복제’ 마법을 이용해 모습까지 재현했다.
게다가 개개인의 스탯과 고유 능력까지 파악해, 시스템 전체를 재구성해 두기까지 했다.
‘투시’나 ‘마인드 리딩’, 심지어 ‘눈’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문제 될 일이 없도록.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계획이 들통 났다.
너무나 허무하게.
설마, 진혁이 ‘염혼의 낙인’을 통해 담당자의 입을 다물게 했던 것까진 미처 계산하지 못 했던 탓이었다. 정체를 숨기더라도 최소한 협회장과 비밀 계약을 맺는 것까진 진행했을 거라 단정지은 거겠지.
그런 뒷계약도 없이 일부러 유리한 고지를 포기한 채 낮은 랭크를 고집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거기에 진혁이 보유한 ‘눈’이 하필이면 규격 외로 상정된 눈이라는 걸 간과한 것도 한 몫 했다.
녀석들이 만든 결계는 복사조건이란 시스템 구성까지 재현하는덴 실패했고 때문에 진혁은 시작부터 묘한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다.
[3성급 ‘차원 왜곡’ 결계가 약화됩니다.] [남은 시간: 0h : 2m : 59s]단검에 의해 훼손된 결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중심이 되는 부분이 파괴된 탓이다.
‘3성급 차원 왜곡 결계라…….’
저층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사용할 만한 걸 만들다니.
확실히 안타까워할 만하다.
이 정도 무대를 짜는 데 들인 코인과 마력만 해도 중소 길드의 한 달 예산을 훌쩍 뛰어넘을 테니까.
진혁이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돈지랄만 잔뜩 한 장난질은 여기까지인 것 같으니, 이제 말해 봐. 왜 나한테 접근했는지.”
“흐음. 접근한 목적보다 먼저 우리 정체를 물어보는 게 순서 아닐까?”
“그걸 왜 물어봐? 이미 누군지 알고 있는데?”
진혁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러자 두 사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호오. 우리가 누군지 알고 있다고?”
“허세야. 떠보는 거겠지.”
허세긴.
이미 주어진 정보만으로도 상대의 정체를 예측한 건 어렵지 않았다.
부유하고 정보력이 뛰어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들.
아직 수면 아래 있는 인재들을 영입하려고 안달이 나 있는 조직은 단 한 곳밖에 없다.
“너희 마인들이잖아. 마력 수준을 보아하니 이제 막 직업 퀘스트 끝마친.”
“……!”
“……!”
지진이 일어나는 동공.
남자와 여자는 순간, 표정을 관리하는 데 실패했다.
“하…… 진짜로 보통내기가 아니군. 이건 좀 충격인데?”
“간부들이 눈독 들인 이유도 이해가 되네. 고작 한 명 섭외하는 데 왜 이렇게 회(會)의 자원을 쏟아 붓나 했더니, 이래서 그랬구나.”
지금까지 다양한 유망주들에게 접촉했었다.
과거 [시련의 탑]에서 이름을 날린 랭커도 있었고.
현실이 된 지금에 와서야 두각을 나타내는 루키도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그 누구도 첫 만남에 이쪽의 정체를 파악한 사람은 없었다.
“네놈들 감탄이나 들어줄 시간 없으니까 빨리 본론부터 말해.”
이 의미 없는 대화에 어울려 주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베일에 싸여 있는 놈들이 어떤 흥미로운 제안을 할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다.
진혁이 힐끗 천장을 바라봤다.
남은 시간은 약 2분.
결계를 파훼하고 난 후, 단검이 떨어지는 바로 그때가 이 대화가 끝나는 기준점이 될 것이다.
“그렇게 살기등등하게 노려보지 말라고. 보아하니 마인들에 대해 안 좋은 선입견이 있나 본데, 그거 헛소문이 많이 섞여 있는 거야.”
“흐음. ‘코인 농장’을 처음 만든 놈들이 이제 와서 이미지 세탁을 하시겠다?”
“실리주의라고 해 두지. 물론, 당신이 사람의 목숨을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는 개소리를 믿는 부류라면……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할 테지만.”
“재밌네. 계속해 봐.”
“첫 번째로, 우리와 함께한다면 계약금 대신 이걸 주겠다.”
남자가 품속에서 주홍빛이 도는 보석을 꺼냈다.
저건 설마……?
진혁의 미간이 좁혀졌다.
알고 있는 아이템이다.
‘황혼의 이슬’.
반인반조이자 영수 중 하나인 ‘퀘이샤’가 갖고 있는 보물이다.
치유, 재생, 강화, 해독 등.
탑의 10층 아래에선 거의 만능기(萬能機)라 해도 좋을 평가를 받고 있었으며,
심지어 ‘얼어붙은 눈물’을 해동하는 데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걸 그냥 주겠다고?”
당장 경매장에 올려놔도 한 시간 안에 성유물과 교환하자는 연락이 올 텐데?
“나도 개인적으론 아깝지만, 위 분들이 쓸 땐 쓰자는 주의라서 말이지. 아마, 정식으로 입사한다면 이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혜택이 주어질 거다.”
남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곧바로 진혁을 향해 황혼의 이슬을 던졌다.
툭!
손아귀에 전해지는 묵직한 감촉.
진혁이 어린아이 주먹만 한 보석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이야.
확실히 통이 크긴 하네.
이렇게 조건이 화끈하니 두 번째도 기대가 된다.
“그럼, 다음 조건은 뭐지?”
“두 번째로, 당신이 원하는 인물 하나를 처리해 주지.”
“누구든 상관없이?”
“그래. 대상이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자신감 넘치는 말투다.
하긴, 마인이라는 이유로 공식 랭킹에 반영되진 않았지만 이 녀석들의 실력은 상위 랭커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았으니까.
‘없애 준다고 했으면 정말로 처리해 주겠지.’
사실상 성공을 보증하는 백지수표나 마찬가지였다.
바로 그때.
어라?
잠깐만…….
진혁의 머리에 한 줄기 번개가 스치고 지나갔다.
“만약, 너희들이 대상을 죽이는 데 실패할 경우엔 어떻게 되는 거냐?”
“뭐?”
“만약이라는 게 있잖아.”
“그럴 일은 없다.”
“맞아. 암살 조는 우리보다 훨씬 강한 플레이어들로 구성되어 있거든.”
두 사람이 확신하듯 못 박았다.
분명, 니들 입으로 말했다.
무조건 성공하겠다고.
“그렇다면 실패할 경우 이 계약은 없던 걸로 해도 되겠지?”
“그, 그건……!”
“왜? 이제 와서 자신이 없어졌어? 두 번째 조건 자체가 마인 협회가 갖고 있는 절대적인 힘을 보여 주겠다는 건데, 실패한다면 그 자체가 모순 아니야?”
진혁이 이죽이며 도발했다.
능글맞게 웃어 주는 건 덤이다.
남자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좋다. 하지만, 의뢰에 성공할 경우 그 즉시 우리와 함께 간부들을 만나러 가야 한다.”
“그렇게 하자고.”
고개를 끄덕인 진혁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사진과 이름이 저장되어 있는 주소록을 클릭한 뒤, 두 사람에게 보여 줬다.
“이 녀석이 타겟이야.”
“못 보던 놈이군.”
“나도 처음 봐. 정말로 까다로운 놈 맞아?”
“그냥저냥…… 밖에서 활동을 잘 안 하는 놈이라 낯설긴 할 거야.”
아마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다.
기껏해야 나와 유연화, 이태민…… 그 외에 손에 꼽을 정도랄까?
“확인했다.”
“다음엔 동료로 만나게 되겠네. 그때까지 잘 있어, 잘생긴 오빠.”
때마침.
툭!
결계에 박혀 있던 단검이 떨어졌다.
시간이 전부 지난 것이다.
단검을 회수한 진혁이 주위를 훑었다.
‘벌써 사라졌군.’
이미 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단절되어 있던 본래 각성자 협회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제야 2차 테스트 수료증을 받을 수 있겠다.
아! 그전에.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있다.
진혁이 재빨리 상태창을 띄웠다.
[귓속말 기능이 활성화되었습니다.]-야, 잠깐 시간 되냐?
말을 걸고 잠시 기다렸다.
그러자.
-뭐냐?
딱딱하고 짜증 섞인 음성이 되돌아왔다.
귓속말을 건 대상은 다름 아닌 천유성이었다.
하여간 차가운 녀석 같으니라고.
-너, 강해지고 싶다고 했지?
-갑자기 그게 무슨 헛소리냐?
-아니, 대답해. 그랬어, 안 그랬어?
-……그렇게 말한 적이 있긴 하다.
-그럼, 내가 비결을 알려 줄게. 무조건 강한 놈들과 최대한 많은 실전 경험을 쌓아야 해.
-뭐?
-싸우고 또 싸우고 또 싸워. 죽을 정도로 위험한 사선을 넘어야 강해질 수 있어. 이게 나만 아는 비밀 수련법인데 특별히 너 생각해서 알려 주는 거야.
-이게 미쳤나? 뭐 잘못 처먹었어?
-사랑한다, 미래의 검성. 형은 널 믿고 있어. 혹시라도 심하게 다쳐도 나한테 복수하러 오면 안 된다.
-야 이……!
진혁이 일방적 귓속말을 차단했다.
후우.
나름대로 경고를 해 줬으니 뒤는 알아서 처리해 주겠지.
그나저나.
‘검성과 마인들이 싸우면 결과가 어떻게 되려나?’
솔직히 말해 팝콘 각이긴 한데…….
지켜보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
1시간 정도 흘렀을까?
2차 수료증을 챙긴 진혁이 협회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태민과 유연화 옆에 또 다른 인물이 있었다.
검은 까마귀 길드의 일을 처리해 달라고 부탁했던…….
김희웅과 엘리스였다.
“오빠. 이 사람들이 오빠랑 아는 사이라고…….”
“형. 저 사람, 검은 까마귀 길드의 비서실장 아니에요?”
이태민과 유연화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두 사람에게 있어 검은 까마귀 길드는 안 좋은 기억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해한다.
전후 사정을 모르니 이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괜찮아. 아는 사람들 맞아.”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기회에 서로의 안면을 트는 기회로 삼아야겠다.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말할 것도 있고.
진혁이 간단하게 서로를 소개했다.
물론, 정보의 일부는 각색했다.
예를 들어 엘리스는 북유럽에서 넘어온 플레이어라는 식으로 정체를 숨겼다.
‘진조라는 걸 밝혔다간 한바탕 난리가 날 테니까.’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이태민과 유연화도 시간이 지날수록 순응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 쪽은 김희웅 이 친구가 맡아서 할 거야. 연화나 태민이도 시간 날 때 종종 연락하고 지내. 던전 섭외부터 각종 편의까지 봐 줄 수 있으니까.”
“예. 저한테 맡겨만 주세요. 강 대표님 지인분들이라면, 책임지고 도와드리겠습니다.”
김희웅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신건수 밑에서 제대로 된 대우도 못 받고 혹사당했다더니.
그 굴레를 벗어난 지금은 표정부터 밝아 보였다.
“와…… 그, 그럼 오빠가 검은 까마귀 길드 마스터인 거야?”
“명목상으론 이 친구고, 실제로 운영하는 건 나지.”
“형 진짜 며칠 만에 유적도 공략하고 길드도 먹고. 사람 맞아요? 아니 어떻게…….”
이태민은 할 말을 잃었는지 말끝을 흐렸다.
진혁이 고였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건 상상했던 한계를 계속해서 경신하고 있지 않은가?
미쳤다.
진짜로 미쳤다는 말밖엔 할 말이 없다.
동시에 그 괴물 같은 고인물과 알고 지내고 있다는 사실에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두근!
‘형과 만난 건 일생일대의 행운이야.’
세계에서 대형 길드와 랭커들이 자기 잘났다고 까불고 있지만.
진혁과 비교하면 우스운 수준이었다.
스티븐 호킹 앞에서 미적분을 배웠다며 으스대는 꼴이랄까?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믿고 따른다.’
이미 이태민은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
김희웅이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진혁의 시선이 엘리스에게 향했다.
“그리고 넌…… 하아.”
뾰로통하게 볼을 부풀리고 있는 모습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됐다. 말을 말자.”
“왜! 뭐! 나도 그렇게까지는 안 하려고 했어. 근데 저쪽에서 성질을 긁잖아!”
“꼬맹이라고 한 것 가지고 빌딩을 날려먹는 게 정상적이냐?”
김희웅에게 자초지종을 들었을 땐 내 귀를 의심했다.
겨우 그런 이유로…….
젠장. 한국 사람들이 다 너 같은 성격이었으면 한강의 기적이고 나발이고 한반도는 1년 안에 석기시대로 돌아갈 거다.
“뭣보다 몇천 년을 살아 왔으면서 그런 도발 하나 못 넘겨?”
“그, 그거야…… 지금까지 나한테 도발하는 놈이 없어서 그랬지.”
“……기가 막히는구나. 진짜로.”
제멋대로인 여왕님이나, 오구오구 해 주는 밑의 혈족들이나.
뱀파이어란 놈들이 괜히 자존심 세고 왕자병, 공주병에 걸리는 게 아니다.
혀를 찬 진혁은 움직일 준비를 했다.
“바로 사냥하러 가야 하니까, 반지 안으로 들어오기나 해.”
“응? 사냥은 너 혼자서도 충분하지 않아?”
“몰이사냥이라 서포터가 필요하거든. 아, 그리고 걱정하지 마. 이번만 도와주면 당분간 푹 쉬게 해 줄 테니까.”
이번에야 효율성을 위해서 엘리스가 필요하지만, 이후부턴 혼자서도 충분했다.
“그렇다면야 뭐. 근데, 몰이사냥을 할 만한 곳이 남아 있어? 3층까지는 전부 길드 놈들이 독식하고 있다고 했었잖아.”
시련의 탑은 50층까지라고,
그러니 4층이 개방되지 않는 한 남들이 모르는 사냥터 따윈 없을 거라고.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 시련의 탑은 50층만 있는 게 아니다.
진혁의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지금부터 고인물이 왜 고인물인지 제대로 보여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