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36)
36화 고인물이 성장하는 법 (3)
시련의 탑 1층에 있는 ‘달의 호수’.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이 마치 수면 아래에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하지만, 그 이름이 무색하게 이곳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인류의 존망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느긋하게 여가를 즐기고 있을 때가 아니었으니까.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답지만, 그 어느 곳보다 고독한 명소.
그곳이 바로 달의 호수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호숫가에 누군가 다가왔다.
진혁이었다.
“여기도 참…… 오랜만에 오네.”
레벨이 낮았을 땐, 자주 왔었는데.
탑의 중반부를 넘어간 뒤부턴 거의 찾지 않았다.
다시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운치는 제법 있어 보이는데, 여기서 무슨 수로 사냥을 한다는 거야?]반지에서 엘리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있어 봐.”
피식 웃은 진혁이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 밤중에 산책이나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찾아야 할 게 있기 때문이었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동공 또한 빠르게 움직였다.
분명, 이 근처에…….
‘역시……!’
잉어를 닮은 조각상을 발견한 진혁이 자리에 우뚝 멈췄다.
호숫가에 있는 12개의 조각상 중 하나일 뿐이지만, 사실 이 조각상은 단순히 호수를 장식하는 것 외에 또 다른 목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진혁이 손을 뻗어 조각품을 더듬었다.
만져진다.
가장자리에 오목하게 파인 홈이!
[호오. 저 조각상에 비밀 버튼 같은 게 있는 거야?]“그렇게 쉬운 거면 진즉에 모두가 눈치 챘겠지.”
세계의 고인물들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 아니냐?
고작 조각상에 있는 버튼 하나 찾지 못했을 거라고?
실제로 이 홈을 발견한 플레이어의 수는 세 자리가 가볍게 넘었다.
커뮤니티에도 가끔 언급이 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나름대로 소문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홈에 맞는 열쇠를 찾는 데 성공한 이는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건 열쇠로 여는 게 아니거든.’
달의 호수.
그 이름에 따라, 이 조각상의 비밀을 푸는 열쇠는 조금 특별했다.
진혁이 손바닥으로 열쇠 구멍을 가렸다.
달빛이 차단됐다.
스윽.
손바닥을 치우자 달빛이 다시 홈을 비췄다.
‘좋아.’
진혁은 같은 방식으로 손바닥을 이용해 빛이 들어오는 양과 각도를 조절했다.
침착하게…….
둘 중에 하나라도 어긋났다간, 이 까다로운 녀석을 만족시킬 수 없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다시 한 번.
달빛이 독특한 리듬에 따라 홈을 두드렸다.
바로 그 순간.
쿠쿠쿠쿠쿠!
호수 전체가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호수를 가득 채운 물이 좌우로 나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
지형이 완전히 바뀌었다.
‘어디, 가 볼까.’
진혁은 호수 바닥으로 이어지는 긴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저벅.
한 번도 인간의 출입을 허락한 적 없는 비밀의 층.
그렇기에,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로움을 간직한 장소.
마침내.
[시련의 탑 지하 1층에 입장하셨습니다.]시련의 탑의 히든 플레이스 중 하나인 ‘지하 산란장’.
드디어 미친 듯이 성장할 수 있는, 맞춤형 사냥터에 도달했다.
“나와도 돼.”
바닥에 도달한 진혁이 브라함의 반지에 마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우우우웅!
긴 은발을 지닌 뱀파이어가 현현했다.
정확히는 30cm로 줄어든 버전이지만.
엘리스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세상에나. 탑 아래 이런 공간이 있었다니.”
어지간히 놀라긴 한 모양이다.
붉은 동공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게 우스울 지경이었으니까.
“어때?”
“응?”
“점점 더, 나랑 계약하기로 한 게 잘했다는 생각 안 들어?”
“뭐. 그때 했던 말이 완전히 허언은 아닌 것 같네. 아주 조금…… 진짜 아주 조금은 믿을 만 한 것 같아.”
엘리스가 진혁의 시선을 피한 채 대답했다.
자존심 하고는.
속으로 혀를 차던 진혁이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다.
‘탑에 있는 놈들은 플레이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우리야 게임이 현실화된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과연, 그들도 자신들이 게임 속 데이터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시련의 탑이라는 거대한 세계가 사실, 지구가 아닌 어딘가에 실존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가능성 있는 경우의 수는 많은데, 정답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네이버나 구글에 검색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허나 수천 년을 영위해 온 진조, 엘리스라면…….
어쩌면 그 답을 알려 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엘리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진혁의 입술이 달싹였다.
그런데.
“…… ……!”
입에서 나온 말은 한국어가 아니었다.
아니, 그 어떤 언어도 아니었다.
귀를 긁는 불협화음과 불쾌한 성조(聲調)의 조합뿐.
“뭐, 뭐라는 거야? 무섭게.”
엘리스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과연.
이런 식인 건가.
플레이어와 탑 안에 존재하던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위화감을 어떤 식으로 해소할 생각인가 했더니.
아예, 정보의 교류를 원천 차단해 버렸다.
간단하지만, 확실한 방법이다.
“아니야, 아무것도. 쓸데없는 헛소리였어.”
적어도 이 주제로 탑 내부에 있는 존재들과 대화할 수 없다는 걸 알아낸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문자나 다른 방법도 막아놨겠지.’
진혁이 품에서 ‘얼어붙은 눈물’과 ‘황혼의 이슬’을 꺼냈다.
본격적으로 사냥을 시작하기에 앞서 마력의 절대량을 올려 둘 필요가 있었다.
[‘황혼의 이슬’이 ‘얼어붙은 눈물’과 접촉합니다.] [두 번째 해동이 시작됩니다.]따스한 빛과 함께.
츠츠츠츠…….
진혁의 몸으로 새로운 마력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마력이 +18만큼 상승합니다.]……좋아.
이걸로 두 번째 해동까지 성공했다.
차이점은 즉각 나타났다.
“후우!”
안정된 호흡과 부드럽게 흐르는 마력.
확실히, 엘리스를 유지하는 게 훨씬 더 편해졌다.
하긴, 편해질 수밖에 없겠지.
레벨로 치면 6레벨이 올라간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어서 빨리 시험해 보고 싶네.’
과연 증가된 마력으로 얼마만큼의 고유 능력과 스킬들을 사용할 수 있을지, 그것이 미친 듯이 궁금했다.
***
시련의 탑 지하 1층을 ‘산란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하나.
바로 심연 속에서 끊임없이 몬스터들이 기어 나오기 때문이다.
“키에에에!”
“크아아아!”
검은 외피로 몸을 감싼 곤충들이 비명을 질렀다.
투두두두두!
호랑이만 한 크기의 갑충류(甲蟲類) 무리들.
수십 개의 다리가 움직이며,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혔다.
수도 수인데다, 레벨도 각 20이 넘었다.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놈들이란 뜻이다.
투쾅!
콰앙!
거리가 가까워지자, 곤충들이 일제히 도약했다.
하지만,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이 진혁에게 닿기 바로 직전.
[고유 능력 ‘별의 가호’가 발동됩니다!]호수 위에서 한 줄기 빛이 낙하했다.
쿠쿠쿠쿠쿠쿠!
별자리의 비호를 불러올 수 있는 힘.
바로 테레사의 고유 능력이었다.
“키에에에에!”
“케엑! 케에에엑!”
곤충들이 몸을 뒤틀며 괴로워했다.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살아 왔기에, 이토록 밝은 빛은 견딜 수 없었다.
놈들 입장에선 두 눈을 불로 지지는 듯한 느낌일 거다.
그리고 이토록 무방비한 적을 가만히 보고만 있어 줄 진혁이 아니었다.
“역시 벌레는 태워야 제 맛이지.”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한 마리도 빠짐없이 숯덩이로 만드는 게 어울렸다.
화르륵!
왼손에 발현된 ‘불의 원소’가 점점 더 크기를 더했다.
야구공 크기에서 농구공 크기로…….
농구공 크기에서 마침내 지름 1m에 이르는 거대한 구체가 되었다.
진혁의 어깨가 크게 뒤로 젖혀졌다.
겁화가 더욱 맹렬하게 타올랐다.
“키이이이…….”
“키이잉!”
곤충들이 완전히 땅바닥에 몸을 기었다.
전면부 외피에 틈이 보였다.
……지금!
진혁이 한계까지 끌어 모은 마력을 방출했다.
콰콰콰콰콰콰콰!
불줄기가 곤충들을 집어삼켰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눈 먼 몬스터들이 한 줌 재로 화했다.
“대충 정리된 건가.”
그렇게 말한 순간.
“아니, 또 와.”
엘리스가 힐끗 뒤쪽을 가리켰다.
어느새 수십 마리의 벌레들이 새롭게 기어 나오고 있었다.
“말만 하지 말고, 실력 발휘 좀 해 봐. 밥값은 해야지?”
“뭐? 이런 하등한 놈들을 상대로 고귀한 이 몸이 힘을 쓰라는…….”
“고귀하신 분은 햇빛을 보면 안 되니 반지 속에 영영 가둬 줄까?”
아직도 왕좌 위에서 내려다보던 버릇을 못 고쳤네?
‘제국의 여왕이었던 내가, 눈 떠 보니 인도의 수드라가 되었다’ 뭐, 이런류의 로판 빙의물 좀 찍게 해 줘?
진혁의 서슬 퍼런 협박에 엘리스가 흠칫 몸을 떨었다.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칭얼대다가 정말로 비참해질 수 있다는 걸.
“아, 알았어. 하면 되잖아, 하면!”
[엘리스가 Lv?? ‘블러드 바인드’를 발동합니다!]우우우웅!
허공에 핏방울들이 나타난 건 바로 그때였다.
붉은 액체로 만든 거대한 원.
“키에?”
“켁?”
눈 깜짝할 사이에 곤충들의 몸이 굳어 버렸다.
무려 두 자릿수 레벨을 자랑하는 스킬이다.
아무리 제 몸무게의 몇십 배를 드는 곤충류 몬스터라도 옴짝달싹하지 못할 수밖에.
이제 마무리만 하면 된다.
진혁이 단검을 움켜쥔 채 놈들에게 다가갔다.
‘역시 쓸 만하네.’
죽이진 않되, 서포팅을 하는 선에서 멈춘다.
경험치는 최후의 일격을 가한 사람이 독식할 터.
굳이 마력을 나눠줘 가며 엘리스를 붙잡아 놓는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서걱!
단검이 호선을 그렸다.
곤충의 목이 깔끔하게 잘려 떨어졌다.
다음, 또 다음.
움직임이 봉인된 이상, 놈들을 처리하는 건 그저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였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미친 듯이 오르는 레벨.
상태창이 쉴 새 없이 점멸했다.
‘하하.’
진혁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마음 내키는 대로 날뛰는 게 이토록 즐거운 일일 줄이야.
아니, 진심으로.
그동안 참느라 죽는 줄 알았다.
‘1레벨을 유지해야 한다는 제약 때문에 스트레스가 너무 쌓였던 것 같네.’
하지만 지금부터는 그럴 필요가 없다.
드디어 강해져야 한다는 갈증을 만족스러울 때까지 채울 수 있게 된 것이다.
투두두두두!
또다시 새로운 곤충들이 올라오는 게 보였다.
“이번엔 나서지 마.”
“직접 하게?”
“응. 지금 보유하고 있는 마력으로 이 능력을 얼마나 사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거든.”
진혁이 단검에 마력을 주입했다.
[고유 능력 ‘검의 무덤’이 발동됩니다!]검마의 재능이 세포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었다.
전신의 감각이 극도로 예리해지는 기분이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갖춰진, 제대로 된 무대.
“부탁한다. 제발 멈추지 말고 끝없이 와라.”
탓!
진혁이 자리를 박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