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363)
363화. 거점 정비 (3)
서걱!
쇳조각이 잘리고, 뼈가 끊어지는 파육음.
예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절단면이 깔끔하다.
“드디어…… 잡았다. 마정석…… 탐하는 쓰레기들.”
2m가 넘는 헬버드를 들고 있는 거구의 몬스터가 살기를 줄기줄기 뿜어냈다.
조금 전 상대했던 집행자보다 더 크다.
상위 종 ‘학살자’.
지금까지가 망령의 교단의 중 하위 계급이었다면, 지금 눈앞에 나타난 놈은 장로보다도 상위 클래스인 몬스터였다.
한 눈에 봐도 심상치 않다.
어지간한 보스보다도 훨씬 더 무시무시한 기운이 전신을 짓눌렀다.
마력의 절대량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냥 존재 자체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에 거부감이 든다.
본능적으로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생리적 혐오감 때문이겠지.
바로 그때.
“젠장! 뭣들 하고 있는 거냐!”
막사 밖으로 튀어나온 금발의 남자가 고함을 질렀다.
페이던 로마니아.
올림포스 길드의 부마스터이자, 이번 공격대의 공대장을 맡고 있는 인물이었다.
이번 레이드를 계획한 것도, 난이도 높은 던전과 미궁들을 수없이 공략해낸 것도.
모두 페이던이 쌓아온 업적이었다.
“공대장님!”
“당황하지 말고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분대 단위로 상대해라! 놈들이 숫자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게 철저하게 각개 격파를 하란 말이다!”
“하, 하지만, 저 무지막지한 괴물 놈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
다른 광신도들이야 어찌어찌 상대할 순 있었지만, 딱 하나.
선두에서 미친 듯이 헬버드를 휘두르는 학살자만큼은 예외였다.
가장 튼튼하다는 탱커들까지 일격을 버티지 못하고 토막이 나고 있었으니까.
다시 말해.
지금 있는 방어구로는 놈의 공격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는 뜻이다.
“저 녀석은 내가 상대하겠다.”
페이던이 즉각 애병기를 뽑았다.
스릉!
노란빛을 띤 장검과 얇은 방패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려, 노란 등급의 성유물.
이번 레이드를 위해 길드 차원에서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카드다.
‘저 녀석만 잡으면 우리에게도 가능성은 있다.’
그렇게 판단을 내린 페이던이 학살자를 향해 몸을 날렸다.
탓!
빠르다.
근접 계열 딜러 중에서도 이 정도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플레이어가 몇이나 될까?
부우웅!
족히 100kg이 넘어 보이는 헬버드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콰콰콰쾅!
땅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졌다.
‘헬버드가 위력적인 무기인 건 분명하다.’
한 번에 몇 명씩 베어버릴 수 있는 파괴력.
거기에 사거리까지 기니 공포심은 배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리치가 긴 만큼 다음 공격까지의 텀이 길다.’
모든 무기에는 장단점이 있는 법.
초격만 피해낸다면…….
파고들 수 있는 틈은 반드시 나온다.
카가가각!
방패를 통해 충격을 흘리고, 검을 휘둘러 관절을 노린다.
헬버드의 옆면을 훑고 간 칼날이 학살자의 오금을 훑었다.
“크아아……아아!”
학살자가 미친 듯이 헬버드를 휘두르며, 날파리를 떼어내려 했다.
하지만, 속도를 살려 적절하게 치고 빠지는 페이던을 잡기엔, 학살자는 언제나 반 박자씩 느렸다.
“나를 다른 놈들이랑 똑같다고 생각하지 마라.”
곧바로, 뒤를 잡은 페이던이 학살자의 목덜미를 베어 버렸다.
서걱!
학살자의 머리통이 그대로 잘려나갔다.
“오오오!”
“돼, 됐다!”
“역시, 공대장님이시다. 저 괴물을 처리하셨다!”
사기가 단숨에 솟구쳤다.
적의 우두머리를 죽였으니, 이제 남은 광신도들만 정리하면 될 터.
하지만.
이어지는 광경에…….
모두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더러운 인간 놈들.”
“그분께 바칠 마정석을…… 탐하다니. 피로써 그 죄를…… 사할지어다.”
“킥킥킥. 전부 먹을 거야. 부드러운 살. 눈알. 그리고 내장까지.”
이곳에 온 학살자는 하나가 아니다.
헬버드와 전투 도끼, 기형적으로 생긴 낫으로 무장한 학살자 열둘이 나타났다.
하나도 상대하기 만만찮은 놈들이 무려 열둘이다.
게다가.
나타난 건 학살자만이 아니었다.
철컹!
철그럭…….
전신을 흑갑으로 둘러싼 기사들.
‘블러드 나이트’다.
팔이 3개가 달린 데스나이트의 변종으로, 패턴이 기괴하기 짝이 없어 상대하기 매우 까다로운 몬스터로 분류된다.
실제로 성기사로 구성된 교황청의 정예들도 저 블러드 나이트에 의해 1명을 제외한 전원이 목숨을 잃은 적도 있었다.
“언……데드 몬스터들까지 있다고?”
“그냥 미친 광신도들이 아니었나?”
“대체 얼마나 큰 세력이길래 상위종들이 끝도 없이 기어나오는 거야 빌어먹을. 하……하하.”
공격대도 이곳이 여러 세력들이 난투를 벌이는 곳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들이 파악한 정보가 딱 거기까지란 점이다.
빠르게 20층의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하고 중요 거점들을 점령하는 것에만 몰두했기에, 세세한 부분들은 신경조차 쓰지 못했다.
카앙!
카카캉!
블러드 나이트가 폭풍처럼 페이던을 몰아붙였다.
상단, 하단, 하단 그리고 옆구리.
속도라는 장점이 완전히 사라졌다.
눈으로 인지하고 반응하는 것이 아닌, 감각과 예측에 의존하는 대응만이 존재할 뿐이다.
“큭……!”
페이던이 방어에만 급급한 채 땀을 뻘뻘 흘렸다.
이 와중에도 적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중이었다.
“승산이…… 없어.”
테레사가 절망에 찬 눈으로 개미떼처럼 몰려오는 적들을 바라봤다.
검은 깃발을 휘두르는 수천의 광신도들이 야영지를 향해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이미 며칠째 잠도 제대로 못 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극에 달한 상황.
그 와중에 이런 강력한 몬스터들과 싸우게 되다니.
아무리 봐도 승산이 없다.
“도망쳐야 돼요.”
공대 단위의 전열을 가다듬을 여유조차 없다.
뿔뿔이 흩어져 한 명이라도 더 살아남아야 한다.
***
제국의 외곽에 있는 숲.
인적이 완전히 끊긴 어둠 속에 작은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어.”
진혁이 모두에게 오룬에게 들었던 일들을 털어놨다.
“골치 아프긴 하겠군. 플레이어 수백 명이 전멸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 아니냐?”
천유성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20층이면, 확실히 탑에서 제일 정신없는 곳이긴 하지. 정말로 사전 정보 없이 의욕만 갖고 들어갔나 보네.”
엘리스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런 셈이지. 본래라면, 욕심에 눈이 먼 놈들 따윈, 모른 척 넘어가고 싶긴 한데,”
문제는 그 공격대에 테레사가 끼어 있다는 점이다.
유럽의 유서 깊은 로젠베르크 가문이 각 나라의 대통령과 수상들의 도움을 거부하긴 힘들었을 터.
결국, 테레사는 공격대의 일원으로서 레이드에 참여하게 된 게 틀림없었다.
‘제국에 함께 가기 힘들 거라고 한 게 이런 이유였군.’
이제야 그 이유가 이해가 된다.
“그럼, 제국 쪽 연회에는 참석하지 않겠다는 뜻이냐?”
“좀 미뤄 달라고 해야겠지. 지금 급한 건 그쪽이 아니니까.”
20층 공략은 원래 조금 더 천천히 하려고 했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 더 서둘러야 한다.
물론, 서두른다는 게 반드시 나쁜 뜻은 아니다.
올림포스 쪽에서 먼저 잔뜩 설쳐 둔 덕분에, 여러 가지 변수들이 발생했고. 그걸 유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찾아 둔 상태다.
‘상황은 이용하기 나름인 법이니까.’
진혁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비틀렸다.
이번에 잘하면 단순히 20층을 공략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이득들을 모조리 독식해버릴 수 있을 거다.
“그럼, 우리 셋이서 가게 되는 건가? 너와 나. 그리고 엘리스 씨까지?”
“아니, 이렇게 가면 아무래도 숫자가 조금 부족하지.”
개개인의 전투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20층에선 ‘병력’이라는 자원이 뒷받침되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때문에.
진혁은 든든한 조력자들을 몇몇 섭외해 두었다.
저벅.
발소리가 들린 건 바로 그때였다.
“거…… 식사 한 번 같이 하기 힘들군. 자네가 비싼 몸인 건 알았네만, 이렇게까지 비쌀 줄은 몰랐네.”
에브라함이 머리를 긁적이며 다가왔다.
그리고 그 옆에는 마찬가지로 그리운 얼굴이 추가되어 있었다.
“근사한 탐험거리가 있다고 들었는데, 기대해도 되는 건가요?”
페시스.
탑을 부유하는 위대한 탐험가 역시 이번 원정에 함께하기로 했다.
일전에 하지 못했던 고유 능력도 겸사겸사 복사할 수 있게 됐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상황이다.
“감사합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흔쾌히 수락해 주셔서.”
“동료를 구해야 한다는 그대 마음에 감명 받아서 말이지.”
“그쪽 세계의 성녀를 구해야 한다니. 굉장히 로맨틱하군요.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말이죠. 아! 그럼, 강진혁 플레이어님이 용사 역할이신가요?”
으음.
뭔가 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굳이 풀어 줄 필요는 없겠지.
엘리스의 손톱이 유독 뾰족하게 자라난 것 역시 착각일 거다.
아마도…… 말이다.
두 사람의 합류를 본 천유성이 의외라는 듯 감탄사를 늘어놨다.
“다행이군. 혹여나 네놈이 달랑 셋이서 가자고 할까 봐 걱정했는데, 실력자 일곱 명 정도 되면 그럭저럭 구색은 맞출 수 있겠어.”
일곱?
다섯이 아니라?
“그게 무슨 뜻이야?”
“나 역시, 믿을 만한 분들에게 연락을 해 두었다. 원래는 20층이 아닌 다른 목적 때문이었지만, 테레사 씨를 구하는 게 먼저겠지.”
천유성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반대쪽 풀숲에서 새로운 인물들이 나타났다.
“천 공자가 꼭 만나고 싶다고 해서 급하게 왔지요. 오랜만에 이 스승을 보고 싶어서 부른 게 아니라는 건 조금 서운하긴 하지만요.”
“그래도 그쪽 제자는 스승에게 도움을 구하기라도 하지. 내 쪽은 아주 감감무소식이었어. 커흠. 안 부르면 아주 관짝에 들어갈 때나 올 기세라니까?”
추혼사영과 암황이다.
제국과 무림이 평화 협정을 맺었다곤 하나, 각 세력의 초절정급 고수 둘이 제국으로 넘어온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스승……님?”
“오냐. 그동안 잘 지냈느냐?”
암황이 껄껄껄 웃으며 다가왔다.
“저야 잘 지냈습니다. 스승님께선 평안하셨는지요?”
“평안은 개뿔! 시원하게 두드려 팰 놈들이 죄다 없어져 버려서 좀이 쑤셔 죽는 줄 알았다. 그래. 아주 작살낼 놈들이 수만은 쌓여 있다고? 어디부터 쓸어버리면 되는 것이냐?”
“그, 그건 그런데, 저희가 인원이 인원이다 보니 좀 전략적으로 접근하긴 해야 돼서요. 굳이 전부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 무대포 여포도 눈치라는 걸 보며 유비와 조조 사이에서 싸웠었다.
한데, 암황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았다.
물론.
“본좌가 이곳에 왔는데, 백만 대군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 자신감엔 그것을 뒷받침하는 압도적인 무력이 존재한다.
일인군단(一人軍團).
그저 자신 하나만으로도 족하다고.
암황이 선언했다.
든든한 지원이 늘어나자, 초조해진 건 엘리스였다.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있으려니 괜히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흐응. 나, 나도 사실, 준비해 둔 게 있었어. 진짜로.”
엘리스가 황급하게 착용하고 있던 목걸이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공간이 초승달처럼 찢어지며…….
츠츳!
연기와 함께 은발의 뱀파이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필리아와 벨루스가 엘리스를 향해 즉시 무릎을 꿇었다.
“아타락시아의 가주를 뵙습니다.”
“아타락시아의 가주를 뵙습니다.”
“그래. 나의 권속들아.”
엘리스의 어깨가 승천할 듯 위로 올라갔다.
지금까지 항상 놀림만 받았었는데, 이제야 한 가문의 가주로서 권위와 격이 느껴진달까?
본인 스스로도 모처럼 여왕님 대접을 받는 것에 잔뜩 고양된 듯 보였다.
‘…….’
진혁이 묘한 눈으로 모인 이들을 바라봤다.
고독하게 오롯이 홀로 모든 난관을 해쳐나가야만 했던 때는 더 이상 없다.
이제는 옆에 언제나 누군가 함께 있다.
“지금부터 20층으로 가겠습니다.”
진혁이 가장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