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367)
367화. 망령의 교단 (4)
하얀 피부에 검은 뿔.
개구쟁이 어린이와 같은 외모가 인상적이다.
마족.
뿔의 길이를 보면 상급에 해당하는 고위 귀족이었다.
“후후, 이거 좀처럼 보기 힘든 분들이 전부 모여 계시는군요.”
“감히, 마족 따위가 여기가 어디라고!”
아테네가 즉각 창과 방패를 겨눴다.
예고도 없이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온 적을 꿰뚫어 버리려는 듯 백색 마력이 맹렬하게 회전했다.
“그만.”
그러나 제우스의 손짓 한 번에 그 뜻을 이루진 못 했다.
“……아버지?”
“마계가 이곳까지 오다니…… 재밌구나. 그래 무슨 일이더냐?”
“올림포스의 최고 주신께서 환대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제 이름은 매시드. 위대하신 마왕 군타페르를 모시는 마족입니다.”
남자 아이가 깊게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마왕급이라면 다른 신격들도 우습게보지 못하는 절대자.
그 전령이 이곳까지 찾아왔다라…….
제우스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위로 올라갔다.
“고하라. 우리를 만나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올림포스와 마계의 정식 동맹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
동맹.
뜻밖에 엄청난 말에 주위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지금까지 상층부의 거대 세력들은 서로의 가치관과 이해관계 탓에 협력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하나가 살아남을 때까지 죽고 죽이는 게 숙명이라 받아 들여왔던 것이다.
특히 왕관을 모두 한 세력이 모아야만 한다는 규칙은 더더욱 모두를 극한으로 몰아붙이게 만들었다.
그런데.
가장 음흉한 마계에서 먼저 동맹을 제안할 줄이야.
“호오.”
제우스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관심이 있습니까?”
“먼저, 동맹을 맺고자 하는 이유가 궁금하구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희도 올림포스와의 동맹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아스가르드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신 뒤로 에덴 역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해서요. 저희 쪽으로서도 대응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에덴은 마계를 제외하곤 모든 세력에 대해 원칙적으로 중립을 내세우고 있는 상태.
하지만, 올림포스의 영역 확장과 키자키엘의 반란으로 인해 평소와는 다른 움직임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내부 결속을 회복하고 세력 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마계를 공격해버린 것이다.
“에덴을 견제하기 위해서 우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로구나.”
“나쁘지 않은 제안이지 않습니까? 제우스께서도 지금 에덴 쪽을 견제하느라 최강의 카드 중 하나를 사용하지 못하고 계시니까요.”
“…….”
헤라클레스를 전장에 데리고 오지 못하는 건 확실히 뼈아프다.
최강의 반신만 있었다면, 이미 요툰헤임의 마지막 유적은 함락되었을 테니까.
아스가르드 북쪽 지역을 손에 넣었음에도 가장 중요한 거점을 손에 넣지 못해 시간을 끌리는 건 올림포스가 처한 냉혹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그 이유만으로 동맹을 맺기엔 무리일 것 같구나. 에덴쯤이야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 요툰헤임 역시 시간만 조금 더 들인다면 함락이 가능할 테고.”
제우스는 마계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협상의 결렬.
이것이 의미하는 건 곧 제안을 건네 온 전령의 죽음이었다.
파츠츠츠!
제우스의 고유 성창인 ‘아스트라페’가 상상을 초월하는 광휘를 뿜어냈다.
마왕의 투기마저 뚫어버릴 수 있는 최강의 창이라면, 귀족급 따윈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공포에 벌벌 떨거나 그대로 도망쳐야 할 매시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저희가 고작 에덴 하나 때문에 동맹을 제안했겠습니까?
그 말에,
“…….”
우뚝 하고 제우스의 손길이 멈췄다.
매시드는 그것을 대화의 연장이라 받아들였다.
“환웅과 이자나기가 오늘 새벽 ‘백록담’에서 접선했습니다.”
백록담.
거대한 마력의 원천이 흐르는 성지(聖地)이며, 동시에 수백의 신격들이 모일 수 있는 회의장이기도 한 곳이다.
“우습군. 그 버러지 같은 놈 둘이서 모인 게 그토록 큰일이라는 것이더냐?”
“둘이 아닙니다. 그 둘을 주축으로 한 수백의 신격들이 전부 모였습니다. 물론, 올림포스의 전력에 비하면 부족해 보일 수도 있지만, 부담이 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죠.”
비교적 세력이 약한 아시아계 신격들은 하나의 거대한 연합체를 구축하고 있었다.
개개인의 힘에서는 밀리니, 대신 양에서라도 밀리지 않겠다는 뜻에서다.
수백의 신격들이 비밀리에 모였다는 건 제우스 입장에서도 처음 듣는 소식이었다.
게다가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렇게 된다면, 머지않아 40층 후반대 세력들도 움직일 겁니다. 그들도 이번 분란을 기회라고 볼 테니까요. 특히 층계 전부를 집어삼키려고 하는 도마뱀들은 이번에 자신들의 사도마저 찾아냈다고 들었습니다.”
탑의 46층을 점거하고 있는 드래곤들.
49층은 둘째 치더라도 47층과 48층 역시 가만히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이번 일이 기폭제가 되어……버렸다는 건가?”
“맞습니다. 이전, 제1차 대전쟁 이후 두 번째 전쟁이 발발되려는 것이죠.”
변수와 변수가 모여 도화선이 만들어졌다.
“그러니, 우리도 든든한 동맹을 맺어 서로의 뒤를 봐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돌아가서 마왕급을 데리고 다시 오거라.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다.”
제우스가 결정을 내렸다.
탑의 패권을 두고.
또 다시 거대한 전운이 맴돌기 시작했다.
***
진혁이 도적 길드의 마스터를 만나는 데까진 채 2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피면구’를 이용해 착실하게 윗선과 접선한 덕분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오브라임 벤타.
30년간 도적 길드의 마스터로 잔뼈가 굵었던 그는, 알고 있는 상식이 모조리 무너져 내리는 걸 느껴야만 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의 수하로 얼굴을 변장한 진혁은 경악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폴리모프’가 가능한 건 오직 드래곤뿐.
그러나 30년 지기 동료를 마주보는 것만 같은 광경에 위화감 따위는 없었다.
그 정도로 변장은 완벽했다.
진혁이 덥수룩한 수염이 난 얼굴을 바닥에 던졌다.
“피라미드식 점 조직이 비밀 유지는 좋을지 몰라도…… 이런 식의 맹점이 있는 법이야. 네 얼굴도 곧 이런 식으로 사용해 줄게.”
마스터가 당한다고 해도 그 사실 자체가 퍼져나가지 않는다.
가장 좋은 건 껍데기만 유지하는 한 자유자재로 길드 전체를 부려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크아아아! 이 썩을 놈들이!”
당연히, 모든 것을 빼앗긴 벤타가 가만히 있을 리는 없었다.
한 길드의 마스터답게, 한 쌍의 단검을 뽑아든 벤타가 어지럽게 몸을 움직였다.
눈으로 포착하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
하지만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천유성은 벤타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읽고 있었다.
다리가 착지하는 순간에 맞춰…….
서걱!
천유성의 검이 궤적과 궤적 사이를 양단했다.
“……커……억?”
그걸로 도적 길드의 모든 것이 완벽하게 진혁의 손에 떨어졌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낸 천유성이 진혁에게 물었다.
“정보를 교란시키고 그 사이에 테레사 씨를 구해야지.”
정보력이 가장 뛰어난 도적 길드를 먹은 이상 나머지 놈들이 개입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딱 하나.
‘망령의 교단과 나태하고의 접점은 피하기 힘들겠어.’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지만, 나태는 한 번 포착한 먹잇감은 끝까지 추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 특수 능력의 지속 시간은 대략 6시간.
정확히 자정이 도달할 무렵이다.
‘이제 3시간 정도 남은 건가…….’
회색 숲에 도달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프레이. 스승님과 에브라함에게 우리가 갈 목적지를 전해줘.”
“응……. 그렇게 할게.”
“유성아. 넌 나랑 같이 바로 출발하고.”
“그래, 알겠다.”
모두가 각자 맡은 곳을 향해 움직였다.
***
회색 숲.
워낙 울창한 환경 탓에 해가 제대로 들지 않은 지역이다.
“젠장…….”
페이던이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자신만만하게 20층 공략을 선언하고 이곳에 왔건만, 공격대는 광신도들의 공격을 받아 넝마가 되어버렸다.
어디서부터 일이 틀어졌는지 모르겠다.
초반, 우직하게 진입로와 거점들을 확보하는 것까진 좋았는데.
역시, 광산으로 무리하게 진입하려 했던 게 잘못이었나?
아니면, 더 강한 랭커들을 섭외하지 못했던 게 패착이었단 말인가?
‘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전력을 모아 왔는데도 박살이 날 줄이야.’
대체 20층이 이렇게 강하면, 30층대는 얼마나 강하다는 걸까?
새삼 시련의 탑이 두렵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는 게 아니다.
당장 살아서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하는 걸 고민해야만 한다.
페이던이 주위를 둘러봤다.
생존자는 총 열일곱.
테레사를 비롯해 공격대 중 가장 강한 자들 위주로 살아남았다.
‘그나마 멀쩡한 건 나와 테레사 정도밖에 없군.’
나머지는 마력과 체력이 고갈되어 제 몸 하나 가누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바로 그때.
“페이던 씨.”
열심히 부상자들을 돌보던 테레사가 다가왔다.
“……예. 말씀하시죠.”
“우선 급한 분들 위주로 치료했어요. 하지만, 저도 마력이 부족해 응급조치를 한 게 고작이에요.”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다시 출발해야겠군요.”
페이던이 무기를 챙겨들었다.
짧게 숨을 골랐으니 어서 빨리 이 숲을 통과해 반대쪽으로 벗어나야 한다.
높은 습도 탓에 번창한 곤충계열 몬스터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호시탐탐 공격대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 떠난다고요? 하지만, 아직 부상당한 분들이 움직일 수 있을 만큼 회복되지 않았어요. 적어도 몇 시간 정도는 더 쉬어야만…….”
말을 하던 테레사가 페이던의 표정을 보고 움찔했다.
차갑게 굳은 표정에선 동료를 향한 일말의 동정심도 엿볼 수 없었다.
“설마, 이 사람들을 전부 다 버리겠다는 말씀인가요?”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앞으로 탑을 오르려면 약자가 아니라 뛰어난 사람이 필요한 법 아니겠습니까?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말이죠.”
인류의 미래라고?
테레사가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으나, 고통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번 일을 묻어 버리고 싶은 게 아니고요?”
공격대가 실패한 이유가 인류를 위해서가 아닌 한 길드의 마정석 독점 욕구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그래.
페이던은 그저 이 모든 책임을 회피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려면 목격자가 전부 사라져야 하고.
“마음대로 생각하십시오. 가지 않고 남겠다면 말리진 않겠습니다.”
페이던이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려 숲의 반대쪽을 향해 사라져버렸다.
그러자.
“키에에에!”
“케에에!”
기다렸다는 듯. 은신하고 있던 벌레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장 성가신 먹잇감이 제 발로 나머지를 버렸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사냥을 할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테, 테레사 씨! 몬스터들이 몰려옵니다!”
“공대장님은 대체 어디에 계시는 겁니까?”
버려진 공대원들이 다급히 테레사와 페이던을 찾았다.
‘이 사람들을 버릴 순 없어.’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한다고 한들, 동료의 피로 삶을 이어갈 생각은 없었다.
설령,
그 선택의 결과가 자신의 죽음이라고 해도.
[고유 능력…….]하늘에서 따스한 별빛이 내려왔다.
부족한 마력을 쥐어짜내며 만들어낸 희미한 빛이 테레사의 금발을 따라 녹아들었다.
성녀가 검과 방패를 뽑아들었다.
모두를 감싸듯 가장 앞에 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