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369)
369화. 회색 숲 (2)
보통 두 개의 마법을 동시에 캐스팅하는 걸 더블 캐스팅이라 하며, 그 이상을 트리플, 쿼드라플, 펜타플이라 칭한다.
그런데, 브레스에 버금가는 마법을.
쿼드라플로 발동하다니.
마법계열 플레이어들은 저 연산식이 얼마나 복잡한 건지 인지하고 있었다.
적어도 수십 명의 랭커들이 각기 다른 속성과 위력을 정확하게 계산해 대응하지 않으면, 막을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빌어먹을, 아직도 제대로 힘을 해방한 게 아니었단 말인가?”
“저…… 저걸 대체 무슨 수로 막으라는 건데?”
“스치기만 해도…… 끝이에요.”
스킬의 파괴력이 미치는 범위가 추정으로만 수백 미터가 넘는다.
지친 몸으로는 피하는 것마저 허락되지 않는다는 뜻.
그러나.
“괜찮아요. 이제.”
모두의 걱정을 뒤로한 채. 테레사가 입을 열었다.
초록색 눈망울에 스쳐지나가는 따스함.
그래.
이제 위험한 시간은 모두 지나갔다.
더 이상 공포에 떨어야 할 이유는 없다.
“테레사 씨…… 그게 무슨……? 아! 저, 저 사람 좀 봐.”
그제서야 모두의 시선이 진혁에게 향했다.
워낙 빠르게 움직인 데다, 어두운 숲의 시야 때문에 긴가민가했는데.
이제야 상대가 누구인지 눈에 들어왔다.
“강진혁이다!”
“정말이야. 8대 길드의 강진혁 플레이어잖아!”
“그 랭커가 여기까지 왔다고?”
틀림없다.
저 모습, 저 마력.
모두가 알고 있는 최강의 랭커가 이곳에 나타났다.
***
‘쿼드라플 속성 마법이라…… 그래도 숲의 주인은 주인이라 이거냐?’
진혁이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확실히, 저 정도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보스는 그리 많지 않을 거다.
중층부에서는 말이다.
‘마침, 딱 좋은 시험 대상이 되겠어.’
진혁이 검에 마력을 주입했다.
우우우웅!
검붉게 달아오르는 강기.
[하벨리안의 혼 – 바너드가 주인의 부름에 응답합니다!]색깔이 변했다.
푸른색 검신과 거기서 뿜어 나오는 검붉은 기운으로 인해, 단검 전체에서 은은한 보라색 운무가 흘러나왔다.
‘드디어 시연식을 해 볼 시간이군.’
역시, 새로 얻은 검이 좋긴 좋다.
손에 감기는 감각부터가 기존의 송곳니와는 차원이 달랐으니까.
툭.
‘검마천령보’를 통해 가속화된 몸이 그대로 사라졌다.
지면을 스치고 지나간 바람이 곧바로 크레이베라티스의 머리 위로 향했다.
위에서…….
……아래로.
서걱!
직선으로 떨어진 검이 단단한 외피를 절단해 버렸다.
“케에에에에!”
체액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깔끔하다는 말 외엔 할 말이 없는 움직임이다.
카카카카칵!
점점 더 빠르게 늘어나는 상처.
뿜어져 나오는 피 역시 이제는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때였다.
쿠웅! 콰앙!
크레이베라티스가 지면 깊숙이 다리들을 박았다.
무게중심을 굳건히 유지하겠다는 듯. 단단히 고정된 몸체.
동시에.
궤도를 읽을 수 없는 꼬리 공격이 펼쳐졌다.
조금 전, 테레사의 팔을 일격에 부러뜨린 그 공격이었다.
“죽여 버리겠다!”
콰콰콰콰콰콰콰!
지면에 생겨나는 무수한 참격의 흔적.
목표물을 통째로 갈아버리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하지만.
진혁은 폭풍처럼 몰아치는 꼬리를 모조리 피했다.
보고 반응하는 것이 아닌, 마치, 어디로 올지 모조리 다 외우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툭…… 탓! 샤삭!
목덜미, 심장, 관자놀이.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다.
허나, 아무리 공격을 해도 맞을 듯 맞지 않는다.
“저, 저게, 사람의 움직임이 맞긴 한 건가?”
“A급 암살계열도 반응도 하지 못하고 당했는데……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아.”
“난 벌써 5번은 놓쳤어.”
“하하하. 랭커로 승급했다고 자축했던 내 자신이 바보가 된 기분이야.”
“페이던이 아니라 저 사람이 공대장이었다면……. 우리 원정도 성공했을 텐데. 분명.”
신기에 가까운 곡예를 지켜보던 이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
테레사 역시 입을 멍하니 벌린 채 한 편의 영화 같은 전투 장면을 바라봤다.
저 궤도에서 규칙성을 찾아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실제로 자신 또한 초격에 팔이 박살나 버렸으니까.
“진짜…… 불가능이라는 게 없는 분이구나.”
진혁이 보고 느끼는 세계는 평범한 플레이어들과는 달랐다.
아예 다른 시공간에서 고인물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느끼고 있는 거겠지.
부우우웅!
마침내, 꼬리의 움직임이 둔화되었다.
그 틈을 노려.
쾅!
진혁이 단숨에 크레이베라티스의 외피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테레사와 동선은 같았지만, 속도는 결코 같지 않았다.
궤도를 읽어내는 능력도.
순간의 상황판단 능력도.
이전까지와는 격이 달랐다.
“키에에에!”
때문에 크레이베라티스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 상대한 여자 역시 다른 놈들이 따르는 실력자였다.
한 무리를 이끄는 대장급에 해당하는 사냥감이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이렇게나 차이가 크다는 말이냐?’
지금껏 마주해본 적 없는 거대한 벽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이대로 간다면 당한다.
그렇게 판단한 크레이 베라티스가 하늘을 향해 아가리를 치켜들었다.
[크레이 베라티스가 고유 능력 ‘군대 개미’를 발동합니다!]치이이이익!
순간, 녹색 연기에 낯선 향기가 나는 수증기가 끼어들었다.
이건……?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분명, 저 덩치의 고유 능력은 형태 변이가 포함된…….
“이야. 이거 자존심이 더럽게 센 보스인 줄 알았는데, 궁지에 몰리니까 고유 능력을 써 버리네. 근데, 그 능력.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내 능력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알다마다.
조금 종류가 다르긴 했지만, 네 녀석보다 상위 능력을 가진 신격과도 싸워 봤는데, 그걸 모르겠냐?
이 능력이 지닌 위력과 장점 그리고 단점까지. 모조리 꿰고 있다.
“모든 곤충들을 너와 같은 종족으로 변형시킬 수 있는 능력이잖아?”
진혁이 당연히 알고 있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자.
크레이 베라티스의 눈빛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차갑게 가라앉았다.
“보기보다 더 위험한 놈이로구나. 이 능력은 이 층계에 있는 놈들이 아니라면, 절대 알 수 없을 텐데.”
20층의 세력들 중에서도 그 수장급만이 알고 있는 고유 능력.
그걸, 처음 보는 낯선 인간이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을 줄이야.
하지만.
“그래 봤자. 내 능력에 대처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능력이 발동된 이상 승부는 정해졌다.
이 숲에 있는 모든 벌레들이 크레이 베라티스와 마찬가지로 최강의 전투 종족으로 탈바꿈될 테니까.
곧, 숲속에서 군침을 흘리고 있던 곤충들의 외형이 변하기 시작했다.
까드득! 까드드……드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세 개의 머리를 가진 수백 마리의 곤충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레이 베라티리스의 소형화된 버전으로.
“살……점.”
“부드러운…… 고기.”
“피와 육즙이 듬뿍 있는 내장. 먹을 거야. 다 먹어……치울 거야.”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마력.
“키에에에에! 어떠냐? 이 많은 수를 감당할 수 있겠나?”
크레이 베라티스가 찢어질 듯한 광소를 내뱉었다.
“흐음. 좀 많긴 하네.”
어림잡아도 수백 마리에 이르는 적.
그것도 ‘군대 개미’의 효과를 받아 신체 능력이 올라가고 지성은 제거된 상태다.
오롯이 크레이 베라티스의 명령을 수행하는 충실한 장기말이 되어버렸다는 소리다.
하지만 말이다.
스슥.
수풀이 움직이는 소리에 진혁의 귀가 쫑긋했다.
“아무리 굼벵이 같아도 이제 슬슬 올 때가 됐거든.”
“온다고? 무엇이 말이냐?”
크레이 베라티스의 물음이 도화선이 되었다.
“키에에에!”
“먹는다. 먹는다. 먹는다!”
“찢어 죽인다!”
벌레들이 도약했다.
동시에.
콰앙!
반대편의 수풀이 갈라졌다.
“캬오오오!”
새하얀 털을 가진 커다란 맹수가 포효했다.
하벨리안.
진혁이 목숨을 구해준 인연으로 함께하게 된 환수가 데뷔전을 가졌다.
파치치치치……칙!
얼음줄기가 일어나며, 일렬에 있던 곤충들이 모조리 얼음동상이 되어버렸다.
“이야. 신입이 제법이네. 주인은 또 어디서 저런 괴물을 데리고 왔대?”
“딴 소리 하지 말고 우리도 빨리 가자. 지금이 타이밍이야!”
“난 벌레 무서운데. 팔다리가 많아서 징그럽잖아.”
“이깟 벌레들보다 주인이 100만 배는 더 무섭지 않아?”
“다들 조용히 해. 머리 아파.”
거기에 운디네를 필두로 한 정령수들도 전투에 가세했다.
‘좋아.’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정령수나 환수 등과 함께할 경우 공격력이 30% 증가하는 효과!
바너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이 한 층 더 짙어졌다.
“뭐, 뭐냐 이놈들은……?”
갑자기 나타난 변수.
크레이 베라티스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고귀한 종족인 환수나 정령들이 한낱 인간의 명령을 따른다는 게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당혹감으로 인해 머리가 혼란스러웠지만, 이건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거대한 천재지변이 몰려온다면 이런 광경일까?
쿠쿠쿠쿠쿠!
지면이 산산이 쪼개진다.
폭풍을 몰고 온 건 다름 아닌 근육질의 노인이었다.
“미물들이 본좌의 앞을 막다니. 가소롭기 그지없구나.”
암황.
그리고 그 옆에서 추혼사영과 천유성이 각각 검을 뽑았다.
“스승님. 저 놈들입니다.”
“어머, 천 공자의 말대로 많긴 많네요.”
“지저분한 놈들을 상대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저도 가능하면 저희 힘만으로 해결하고 싶었는데…….”
“아니에요. 그래도 이 스승은 제자랑 함께 싸울 수 있게 돼서 마냥 나쁘지만은 않은데요? 오히려 조금 기쁠지도요?”
추혼사영이 배시시 웃었다.
“천유성…… 씨! 엘리스 씨, 암황 할아버지…… 모두들!”
테레사가 새롭게 나타난 동료들을 바라봤다.
이 먼 곳에서.
모두를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 했었다.
다들 와준 거다. 이 지옥에서 자신들을 구해주기 위해서.
하지만,
가슴에 북받치는 감정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아…….”
테레사의 입에서 경악에 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만 잊고 있었다.
지금 자신에게 온 고인물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
“네놈들…… 대체 뭐냐?”
“우리가 누구냐고?”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그 말을 해주길 기다렸다는 듯이.
[회색 숲이 보스 필드로 인정됩니다.] [방송 시스템이 활성화됩니다.]이미 이 모든 장면들은 영상으로 기록되고 있는 중이다.
방송을 비공개로 해서 시청자들이 들어올 순 없었지만, 진혁이 현재 ‘생방송’ 중이라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엄청난 어그로를 끌 수 있었다.
‘편집 한번 제대로 해서 올리면 이번에도 꽤나 달달하게 뽑아낼 수 있겠어.’
그리고 흥행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역시나…….
“엘리스!”
“아, 알고 있어. 잠시만 기다려 보라고!”
엘리스가 울먹이는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수치심 때문에 붉게 달아오른 목덜미와 얼굴에선 절대자의 존엄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새아가야. 그만 포기하거라.”
암황의 토닥임에 엘리스가 모든 걸 체념한 듯 입술을 뗐다.
“우, 우리는 고인물 코퍼레이션이다. 그리고 짐은…… 원거리 딜러를 맡고 있는 옐로이니라!”
“푸하하하! 잘 했다. 본좌는 제자의 스승. 블랙인지 뭔지를 맡고 있다.”
“천유성이다. 근접계…… 딜러지. 포지션은 블루다. 부탁인데, 이것만큼은 올리지 마라. 빌어먹을 고인물 자식아.”
다양한 불평들이 이어졌지만, 진혁의 머릿속엔 온통 이 전투를 흥행시킬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였다.
‘여기서……. 음. 나쁘지 않아.’
이렇게 각각 클로즈업을 하고.
진혁이 이번엔 테레사를 바라봤다.
부담스러운 시선이 정면으로 맞부딪쳤다.
바로 옆에는 운디네가 물로 ‘Healer – PINK’라는 글자를 만들어 낸 상태였다.
이제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고,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힐러를 맡고 있는 핑크예요!”
테레사가 울먹이며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