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371)
371화. 망령의 교주 ‘나태’ (1)
은은한 은색 빛깔을 띤 정육각형 상자.
호오. 여기서 이게 나올 줄이야.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랜덤 스킬 박스는 일종의 해체형 아이템으로. 단단하게 봉인되어 있는 박스를 얼마나 해체하느냐에 따라 보상의 종류가 결정된다.
‘한 마디로 많이 해체하면 할수록 20층에 존재하는 스킬 중 더욱 좋은 걸 획득할 수 있다는 뜻이지.’
하지만, 랜덤 박스를 해체하는 건 조금 시간이 지난 이후의 이야기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사라졌을 때. 바로 그때가 이 박스에서 스킬을 뽑아낼 때다.
“진혁 씨!”
“가, 강진혁 플레이어님!”
두려움에 떨며 전투를 지켜보던 플레이어들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다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다.
20층에 온 이후 계속해서 쫓기기만 했으니 당연히 한계에 달할 수밖에.
“몸은 좀 괜찮으신 건가요?”
“예. 진혁 씨가 제 때 와준 덕에 전멸하는 건 면했어요.”
테레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머지도 감사의 뜻을 표했다.
“저, 정말 감사합니다. 다 틀렸다고 생각했어요. 전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공대장이 저희를 버렸을 때만 해도 모든 걸 포기했었거든요.”
“이 은혜를 대체 어떻게 갚아야 할지……. 강진혁 플레이어님은 저희 길드의 은인이십니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말로 죽었다고 생각했다.
처절하게 몰이사냥을 당하다가 하나씩 목숨을 잃을 거라고.
하지만.
최악의 순간, 최강의 아군이 등장했다.
바로 고인물 코퍼레이션이 말이다.
“진짜, 다들 엄청나시더군요. 하나같이 쟁쟁한 멤버들만 골라 받는다고 들었는데, 직접 보니 그 말은 오히려 축소해서 표현한 거였네요.”
카를로스, 이번 레이드의 마법 병대장으로 참가한 남자가 감격에 가득 찬 얼굴을 한 채 중얼거렸다.
고인물 코퍼레이션…….
만약, 대형 길드에서 내로라하는 랭커들이 온다고 한들 이들 중 하나를 상대할 수 있을까?
올림포스는 물론 나머지 6대 길드를 전부 합치더라도 이들의 발끝을 쫓아갈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물론, 최근 들어 대형급 루키들이 나오고 있긴 하지.’
시련의 탑에서 나온 마력으로 인해, 후발주자 격으로 각성하기 시작한 이들이 속속 합류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유한 이들은 존재했고.
현재 올림포스 길드의 부마스터를 맡고 있는 페이던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그들을 천유성이나 엘리스와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저 근육질의 할아버지와 파란 머리 소녀도 상상을 초월해.’
조금 전 벌레들을 쓸어버리던 모습은 아직까지 뇌리에 박혀 떠나가질 않았다.
그야 말로 압도적인 격차.
혼자서도 공격대 하나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랭커들이다.
‘저 백색 갑주를 입은 기사 역시 엄청난 실력자가 틀림없을 텐데…….’
카를로스가 힐끗 옆쪽을 바라봤다.
그곳엔 무기를 정비하고 있는 에브라함과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는 페시스가 있었다.
두 사람 또한 한 눈에 봐도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하지만 가장 터무니없는 건…….
‘강진혁 플레이어님이야.’
카를로스가 떨리는 주먹을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공격대 전체를 압도했던 규격 외의 보스.
심지어 성기사 중에서는 교황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한 손가락 안에 드는 테레사조차도 저 괴물에게는 상대도 되질 않았다.
그런 절망적인 적을 일방적으로 찍어 누른 진혁은…… 카를로스 입장에서 그저 하늘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부상자들을 추스르고 야영할 준비를 하세요. 오늘 밤은 이곳에서 보낼 겁니다.”
“예? 야영이라고요?”
야영을 한다는 말에, 카를로스를 비롯한 나머지 플레이어들이 화들짝 놀랐다.
“교단 놈들을 걱정하시는 겁니까?”
“그, 그렇습니다.”
당장 위기를 넘겼다곤 하나, 아직 그 찰거머리 같은 교단의 추격이 끊긴 건 아니었다.
지금까지 집요하게 이쪽을 노려왔으니, 계속해서 포위망을 조여 올 것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적어도 오늘밤 정도는 버틸 수 있을 테니까요.”
진혁이 생긋 웃었다.
[현재 반경 15km에 ‘광역 착시’ 결계가 발동중입니다.]이미 숲의 주위에 결계를 쳐 뒀다.
이곳까지 빠르게 온 터라 6성급이 한계였지만, 3중으로 쳐 뒀기 때문에 파훼하는 게 그리 만만하지는 않을 거다.
***
연합 공격대의 플레이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진혁은…….
꽤나 곤란한 상황 속에 빠져 식은땀을 흘리는 중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허기가 지니 적당히 근처에서 식량을 조달하자는.
그리고 기왕 먹을 거, 맛있는 걸 먹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진혁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눌렀다.
문제는 이게 경쟁이 되다 못해 과열이 되어버린 것이다.
“계약자. 이거 귀엽게 생겼지? 이거 먹어야 돼. 알았지? 다른 놈들 거 말고 꼭 이걸로.”
“어머나. 우리 꼬맹이는 딱 봐도 먹으면 즉사할 것 같은 걸 가져와놓곤. 그걸 식재료라고 내놓는 건가요? 그것보다는 이 아름답게 생긴 버섯이 훨씬 더 나을 텐데 말이죠.”
“……모두 생존확률 0%야. 내가 가져온 게 가장 음식으로 권할 만해.”
엘리스와 프레이 그리고 어째서인지 자기 절제를 한 듯 어설프게 흑화한 테레사까지.
모닥불 앞에선 안개 마을의 마녀들도 울고 갈 끔찍한 식사가 준비되는 중이었다.
진혁의 시선이 각자가 가져온 식재료로 향했다.
먼저, 가장 열정적으로 어필하고 있는 엘리스는 어떤 생명체인지도 모를 곤충의 사체를 들고 왔다.
심지어 다리가 3개 달린 곤충은 시련의 탑을 하면서도 처음 보는 종류였다.
엘리스 말마따나 귀엽게 생기긴 했는데, 보라색 가시가 잔뜩 나 있는 걸 보니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테레사가 채칩해온 버섯을 먹자니 저건 ‘과부 제조기’라 불리는 맹독 버섯이었다.
‘아니, 보통 독버섯이 화려하다는 건 상식 아닌가?’
대체 무지개 색으로 빛나는 버섯을 무슨 생각으로 가져왔는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프레이 역시 끔찍한 식재료를 들고 왔다.
‘회색 말벌집과 꿀이잖아.’
맛은 미친 듯이 좋다 못해 중독성까지 있지만, 일정량을 넘게 섭취할 경우 지독한 환각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음식이라기 보단 마약이라고 보는 편이 좋을 거다.
“그래서 누구 걸 먹을 건데? 당연히 내 거지? 응? 계약자!”
“제 정신인 사람이라면 꼬맹이가 들고 온 걸 먹진 않겠죠.”
“누, 누구 보고 꼬맹이라는 거야! 이 바보 성녀가!”
“꿀…… 몸에도 좋아.”
선택을 하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먹일 기세다.
쿠쿠쿠쿠쿠!
실제로 모두들 마력을 끌어 모으며, 진혁을 포위하듯 감싸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탈출구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선택을 하지 않았다간 자칫하면 저것들을 모두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푸하하! 역시 승리 후에는 미주(美酒) 한 잔이 제일인 법이지. 제자야. 소저들이 준 음식을 다 먹으면 본좌와도 술 한잔해야 하느니라. 30동이를 가져왔으니 다 마실 때까진 잠도 잘 생각하지 말고.”
암황까지 거대한 술동이들을 깔아놓았다. 족히 60도가 넘는 독주로만.
“…….”
이곳은 지옥이다.
적어도 지옥과 비슷한 곳이거나.
진혁이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을 체념한 얼굴로.
“후후. 천 공자도 부러우면 이 스승이 맛있는 걸 구해다 줄까요?”
“…………괜찮습니다. 스승님이나 많이 드시죠.”
천유성이 나무 열매 하나를 아삭 베어 먹었다.
그렇게.
밤이 점점 더 깊어갔다.
***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은 풍경.
음침한 별자리와 붉은 거성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밤하늘이 들어온다.
그리고.
저벅.
기괴한 식물들이 자라난 길을 따라 니알라토텝이 발걸음을 옮겼다.
“…….”
입을 꾹 다문 채 그저 앞만 보고 걷는다.
평소 쾌활하던 성격을 생각한다면, 지금 분위기는 너무나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에 있을 일은 아무리 니알라토텝이라 하여도 달갑지 않은 종류였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식물들이 검게 물든 끝에는 분홍빛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아름다운 외형의 이종족이 있었다.
반인반수.
상체는 인간이되, 하체는 염소의 것을 한 존재였다.
검은 나뭇가지들로 엮어 만든 왕좌에 걸터앉아, 상념에 빠져 있는 모습은 고혹적이다 못해 몽환적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향해.
“어머니.”
니알라토텝이 천천히 입을 뗐다.
그러자, 반응 없이 왕좌에 앉아있던 존재가 고개를 돌렸다.
“늦었구나.”
“죄송합니다. 조금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래. 그야 그렇겠지. 올드 가드가 상했다고 들었다.”
짧은 감상.
하지만,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쿠웅!
“크윽!”
니알라토텝의 허리가 90도로 꺾였다.
인지를 초월하는 마력에, 니알라토텝의 전신이 가늘게 떨렸다.
슈브 니구라스.
모든 것들의 어머니라는 이명에 걸맞게 본신의 힘은 감히 그 끝을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심지어 니알라토텝이라 하더라도 대적하지 못할 만큼 말이다.
“그, 그게…….”
“그래, 어서 말해 보거라. 기다리고 있으니.”
“저는 단지 저희들의 미래를 위해 한 인간 놈이 가진 왕관을 빼앗으려 했을 뿐입니다. 거대 세력도 아니고 플레이어 한 명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결국, 방심한 채 상대를 우습게 봤다는 뜻 아니더냐? 분명, 그 인간이 이 어미를 몰아낸 걸 똑똑히 봤음에도 말이다.”
슈브 니구라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물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사방을 가득 메워나가기 시작했다.
“하, 하지만……! 그 녀석이 어머니를 상대한 건 어디까지나 편법을 써서 그런 것 아니었습니까?”
니알라토텝이 격분한 얼굴로 항변했다. 슈브 니구라스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최초의 모래시계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설마……! 인과율이 흘러간다는 말씀입니까?”
니알라토텝이 눈이 터져라 부릅떴다.
‘최초의 모래시계’는 일종의 미래 예지.
그리스의 ‘운명의 세 여신’이나 에덴의 ‘요한계시록’처럼 강력한 미래를 자아내고 있다.
단, 광범위하게 미래를 예견하는 나머지와 달리, ‘최초의 모래시계’는 단 하나만을 예견한다.
50층에 누군가 진입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 머지않아. 우리가 사는 곳에 누군가 올 게다. 그리고 그 대상은 그 인간 녀석이겠지.”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다른 층계의 예언들과 달리. ‘최초의 모래시계’엔 해석 따위란 존재 하지 않는다.
모래가 떨어지기 시작한 이상 반드시 누군가 50층에 도달할 거라는 뜻.
“어머니께선 너무 그 인간을 과대평가 하시는군요. 탑 아래에는 수많은 강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녀석이 이곳에 올 거라는 말씀입니까? 40층대의 세력들을 전부 제치고요?”
본래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아무리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고 한들, 탑에 들어온 지 몇 년 정도밖에 안 된 플레이어들이. 탑의 정상에 도달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슈브 니구라스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래서 잠에 들 수가 없다. 무료함을 달래줄 놀잇감들이 계속해서 나와 주니까 말이다.”
사르륵.
모래시계 속 모래알이 떨어진다.
“탑 아래층에 풀어둔 하수인들에게 명령을 전달해라. 우리도 지금부터 세력 전쟁에 가담하겠다고.”
그에 맞춰 50층의 존재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