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374)
374화. 검은 언덕 부족 ‘타라첸’ (2)
쩌저적!
충격파로 인해 지면에 기다란 검상이 생겨났다.
무지막지한 공격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검격이다.
승부가 나지 않자, 타라첸이 거칠게 글레이브를 휘둘렀다.
콰앙!
쾅!
천지가 요동치는 충격이 이어졌다.
그러나.
정작 휘청거리는 건 타라첸 쪽이었다.
“크윽!”
무게중심이 깨진 탓에 허점이 점점 더 늘어났다.
대체 어떻게……. 저토록 작은 단검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파괴력을 자아낼 수 있단 말인가?
거대한 글레이브를 전력을 다해 휘둘렀지만, 상대는 여유 있게 그 일격을 받아냈다.
“강하긴 강하네. 과연, 오크 중에서도 최강이라 불릴 만해.”
진혁이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감히, 누구 앞에서 여유를 부리는 것이냐!”
타라첸이 글레이브를 높게 치켜들었다.
순간,
우우우웅!
녹색 마력이 회오리 모양으로 응축되었다.
[타라첸이 고유 능력 ‘멸혼계승(滅魂繼承)’을 발동합니다!]오크 종족의 혼을 불러 올 수 있는 고유 능력.
바로 저것이 타라첸이 다른 오크들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날 수 있는 이유다.
쿠쿠쿠쿠쿠쿠!
반투명한 기운들이 검은 언덕을 따라 피어오르더니, 이내 타라첸의 몸속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몸에서 풍겨 나오는 마력 또한 달라졌다.
[복사 조건: 오크 종족이 되어 타라첸의 후계자가 된다면 상대의 고유 능력을 복사할 수 있습니다.]당연한 말이지만, 저 능력 하나 얻자고 종족을 바꿀 수는 없다.
애초에 이곳에 온 목적이 타라첸을 죽이거나 능력을 복사하는 것도 아니었고.
‘동맹을 맺을 정도로만 싸워 주면 돼.’
……온다.
진혁이 오른쪽 상단을 노리고 날아오는 글레이브를 바라봤다.
충분히 피할 수도 있겠지만, 녀석의 인정을 받기 위해선…….
[고유 능력 ‘툼그레이브의 오른팔’이 발동됩니다!]바너드를 잡고 있는 오른팔의 모습이 바뀌었다.
콰아앙!
천지가 쪼개질 듯한 굉음.
두 개의 병기가 한 개의 점에서 격돌했다.
***
콰콰콰콰콰콰콰!
진혁과 타라첸의 발이 지면으로 파고들었다.
충격파로 인해 뿌옇게 일어난 흙먼지.
방금 전 충돌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보여주듯, 무기를 쥔 손 전체가 격렬하게 떨렸다.
‘……강하다.’
타라첸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방심 따위는 하지 않았지만, 호각조차 이루지 못했다는 현실이 냉혹하게 다가왔다.
주위에서 킬킬대며 웃고 있던 나머지 오크들도 어느새 웃음을 잃어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전투는 자신들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했으니까.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것이 아닌, 순수하게 힘을 숭상하는 전투 방식.
심지어 고유 능력까지 해방한 타라첸을 상대로 정면 승부를 벌이고 있지 않은가?
“취익! 대체 뭐 하는 인간들이지?”
“전력을 다한 족장의 글레이브를 견디다니. 친위대장보다도 강하다는 건가?”
“같이 온 인간도 괴물이다. 혼자서 친위대 둘을 제압했어.”
수군거리는 소리가 한층 커졌다.
좋아.
자기소개는 이쯤이면 충분하겠지.
진혁이 바너드에 실린 마력을 회수했다.
“갑자기 무슨 짓이냐?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렇긴 한데, 계속 싸워봤자 남는 게 뭐가 있겠어? 서로의 실력은 충분히 알아봤잖아?”
자존심을 챙길 명분도 만들어주고 대화의 여지도 남겨뒀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승부를 가리는 걸 넘어 생사결로 비화될 터.
끝을 맺는다면 지금이 제격이다.
하지만.
“너희 인간들은 항상 그렇지. 적당한 말로 상대를 구슬리며 적당히 타협하려고만 한단 말이다.”
타라첸의 흉흉한 기세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존심을 건드렸는지 더욱 날카롭게 변했다.
“타협하려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싸움을 막고자 하는 거야.”
“검을 겨눈 이상 반드시 피를 봐야 하는 법. 그것이 우리 부족의 신념이다.”
명예라는 말을 몬스터에게 갖다 붙이는 게 우스운 일이었으나, 자존심 센 오크들은 평범한 몬스터들과는 달랐다.
특히 그들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검은 언덕 부족은 더욱더.
‘역시나, 어설프게 봐주는 건 독이라 이건가.’
진혁이 입맛을 쓰게 다셨다.
“크오오오!”
타라첸이 붉게 물든 동공을 한 채. 지면을 박찼다.
콰앙!
진혁이 재빨리 왼쪽으로 몸을 날려 공격을 피했다.
타라첸이 즉각 쫓아왔지만, 진혁은 속도를 높여 더더욱 거리를 벌렸다.
“도와줄까? 꽤나 힘들어 보이는데?”
먼저 싸움을 끝낸 천유성이 이죽거렸다.
하여간, 저 녀석은 조금만 잘했다 싶으면 콧대가 하늘까지 솟구친다.
“지금 네가 다른 사람 걱정할 때가 아닐 텐데? 저 오크들. 고작 한두 마리 제압한다고 해서 꼬리를 말 놈들이 아니거든.”
그 말을 증명하듯.
쿵!
탓!
천유성을 향해 더 많은 수의 친위대가 달라붙었다.
둘이 안 되면, 열이.
그것도 안 되면, 친위대 전체가 달라붙겠다는 것처럼.
“제, 젠장할!”
“그러게 조용히 구경이나 하고 있으라니까.”
쯧쯧.
괜히 여유 있는 척 똥폼이나 잡고 있으니, 화를 사는 것 아니냐?
콰아앙!
곧이어, 언덕 전체가 쇠들이 부딪치는 소리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오크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선 함부로 죽여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마냥 봐주자니 벌떼처럼 덤벼는 게 성가시기 짝이 없다.
“큭! 계속 이대로 싸우기만 해야 하는 거냐! 소모전을 이어갔다간 답이 없단 말이다!”
천유성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긴 창을 휘두르는 박투르까지 가세한 덕에, 이죽거리던 검성은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물론, 마력과 체력이 전부 고갈될 때까지 치고받고 싸워줄 생각은 없다.
이런 상황이 될 거라는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회심의 카드 또한 준비해 둔 상태다.
단지.
“미안. 당장은 뾰족한 수가 없어. 그냥 최대한 버텨봐. 뭔가 떠오를랑 말랑 하니까.”
요즘 아득바득 기어오르는 천유성의 똥줄을 타게 하고 싶을 뿐.
“정말이냐?”
“그래. 포위망이 조금 더 얇아져야 뭐라도 해볼 건덕지가 나올 거야.”
진혁이 모른 척 시선을 피했다.
결국, 천유성은 울며 겨자 먹기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가장 안쪽에서. 수십 마리의 적들과 함께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허억……. 허억. 허억…….”
천유성이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전신이 땀에 젖고 호흡이 가파르다.
이미 몇 번이나 의식이 끊어졌다 돌아왔다를 반복했다.
“빌……어먹을. 이젠…… 더 이상 손 하나 까딱하기가…….”
바로 그때.
툭.
천유성의 등 뒤에 무언가 닿았다.
타라첸과 혈전을 벌이던 진혁이 어느새 천유성이 있는 곳까지 도달한 것이다.
“왜 벌써 힘들어?”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흐음. 천하의 검성이 영 비실비실하네. 처음 만났을 땐 오크쯤이야 한 트럭으로 와도 박살낼 수 있을 것 같이 말하더니.”
“너 이 망할 고인물 자식.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네놈만큼은 반드시 길동무로 데리고 가고 말겠다.”
천유성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더 이상 놀렸다간 저 칼이 이쪽으로 향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충분히 굴릴 대로 굴리면서 자존심을 팍팍 짓밟아 놓기도 했고.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무대는 충분히 갖춰졌다.
그렇게 판단한 진혁이 아공간에서 새로운 아이템을 꺼냈다.
[‘신념을 잇는 끈’이 발동됩니다!]차원과 차원을 잇는 힘.
엄청난 마력의 폭풍과 함께 모두의 눈앞에 거대한 게이트가 나타났다.
***
명예.
오크들이 죽고 못 사는 절대적인 가치다.
평생을 일족의 명예와 부흥을 위해 살아왔으며, 개인이 믿는 것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질 수 있는 게 바로 그들이었으니까.
그런 이유로 오크들이 인간을 믿지 못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가치관을 바꿔버리는 게 바로 인간들의 특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그 인간을 위해서 나서는 게 오크들과 동일한 신념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라면?
그때에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그 결과에 대한 대답이 바로 이것이다.
쿠웅!
게이트 너머로 푸른 피부를 가진 종족이 나타났다.
오크보다 더 기다란 엄니.
비록 층계는 훨씬 더 낮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그 격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노움을 통해 이야기는 전해 들었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서리칼날 부족.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족장 ‘카라칼’.
엄니를 가진 두 개의 종족이 검은 언덕에서 조우했다.
“……!?”
미친 듯이 날뛰던 타라첸이 처음으로 움직임을 멈췄다.
“……저 깃발은?”
“어떻게 저 녀석들이 이곳에 온 거지?”
천유성을 압박하던 친위대들도 입을 쩍 벌린 채 서리칼날 부족을 바라봤다.
일순간 생겨버린 전장의 공백.
대치 상황이 영원처럼 이어졌다.
“카라칼…….”
타라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카라칼이 즉각 고개를 끄덕였다.
“타라첸 족장, 이거 오랜만이군. 종족 전쟁 이후 처음 만나는 건가?”
“그대가 어째서 인간들의 편에 서 있는 거지?”
카라칼이 옛이야기를 꺼냈지만, 타라첸은 시답잖은 과거 이야기를 나눌 생각은 없었다.
어째서 긍지 높은 트롤 족의 대영웅이 인간과 함께하고 있는 건지. 그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될 뿐이었다.
“협박이라도 당한 건가? 아니면…… 부족이 인질로 잡혀 있기라도 한 건가?”
그게 아니라면 말이 되질 않는다.
무언가 인간놈들다운 더러운 짓을 한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은혜를 입었다.”
타라첸은 또 다시 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은혜라고? 인간 따위에게 말이냐?”
“그렇다. 평생을 갚아도 갚을 수 없는. 그런 빚을 지었지.”
이 말은 진심이다.
카라칼은 진혁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한 몸을 불사를 각오가 되어 있었다.
일족 전원에게 자유를 안겨주었고. 노예의 삶을 끝내주었으며, 그토록 바라던 긍지를 지켜주었으니까.
그리고 만약.
“우리 은인을 해하려 한다면, 우리 부족 전체를 넘어서야 할 것이다.”
“크오오오!”
“오오오오!”
서리 칼날 부족의 전사들이 창과 방패를 높게 치켜들었다.
개개인의 전력도 부족원의 수도 훨씬 열세였지만, 전원이 필사즉생을 각오한 상태였다.
저릿저릿.
하늘을 찌를 듯한 사기는 타라첸에게도 전해졌다.
“……아무래도 거짓말은 아닌 것 같군.”
싸워서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다.
카라칼과 서리칼날 부족이 저토록 굳게 믿고 있는 인간이라면…….
어쩌면 평소에 알고 있던 쓰레기들과는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인간들과 카라칼 족장을 내 천막 안으로 안내해라. 싸움은 끝났다.”
푸욱.
타라첸이 글레이브를 지면에 박았다.
이걸로 대화의 물꼬는 트였다.
이제부터가 20층 공략의 성패를 결정지을 담판의 시작이다.
“후우. 그럭저럭 성공한 것 같네. 다행이다 유성아 그치?”
“크으으윽! 네놈! 이런 방법이 있었으면서 일부러 날 개고생하게 만든 거였냐! 진즉에 서리칼날 부족을 불러들였으면, 죽을 뻔할 일도 없지 않았나!”
“에헤이. 잘 풀렸으면 됐지. 넌 꼭 다 끝나고 사소한 거에 집착하드라.”
“뭐, 집착? 사소한 거? 그걸 말이라고……!”
“아! 우리보고 빨리 오라고 하잖아. 먼저 실례 좀 할게.”
진혁이 종종걸음으로 타라첸의 천막을 향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