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375)
375화. 검은 언덕 부족 ‘타라첸’ (3)
몬스터의 가죽을 벗겨 만든 천막.
그 안에서 여러 종족의 운명을 결정지을 회의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사원을 지키는 방법이 우리들이 동맹을 맺고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는 것이냐?”
“그래,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진혁이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듯 생긋 웃었다.
그 천진난만한 미소에, 타라첸이 폭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이거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군. 수십 년간 팽팽하게 유지해온 균형을 우리 쪽에서 무너뜨리라는 건가?”
“바로 그거야. 애초에 수십 년 동안 결말이 안 났으면, 지금까지 해온 방법이 잘못된 거란 생각은 안 해봤어?”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느라 전면전을 시작하지도. 그렇다고 동맹을 맺고 한쪽을 쓸어버리지도 못 하고 있는 상황.
과거 삼국지에서도 세력의 균형 차이가 심한 위, 촉, 오가 그렇게나 오랫동안 결판이 나지 않았던 게 전부 다 첨예한 요소들이 얽혀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망령의 교단이 있는 그레이트 윙은 가장 거대한 세력이 되는 덴 관심조차 없지.’
그렇기에.
이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교착점을 뒤집기 위해선. 조금 더 파격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바로, 플레이어라는 변수를 이용해서.
“……흐음.”
용감한 건지. 무식한 건지. 그것도 아니면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건지.
타라첸은 진혁의 심중을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확실한 건, 눈앞에 있는 인간이 마냥 헛소리만 하는 성격일 리는 없다는 것이다.
서리칼날의 족장인 카라칼이 저토록 깊은 신뢰를 보이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무작정 돌격만 하라는 소리는 아닐 테고. 뭔가 생각해둔 비책은 있는 거겠지?”
그러자 진혁이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템 한 개를 꺼냈다.
“승산 없는 게임은 내 취향이 아니야.”
당연히, 회심의 카드 하나 정도는 준비해뒀다.
화르륵!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는 횃불.
이것이 바로 모든 세력의 허점을 찌를 수 있는 아이템이다.
“그건…….”
타라첸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들어본 적 있다.
20층에 존재하지만, 구전으로만 전해져 내려올 뿐.
직접 본 적 없던 기물에 대해서.
저 특유의 마력, 틀림없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이 층계에 이제 막 들어온 플레이어가 수십 년간 누구도 찾지 못 했던 횃불을 손에 넣었단 말인가?
‘보면 볼수록 믿기 힘든 인간이로군.’
타라첸이 속으로 혀를 찼다.
이쯤 되면 어이가 없다 못해 괜한 믿음이 생길 지경이다.
상대가 정말로… 오랫동안 이어져온 교착의 끝을 내줄지도 모른다고.
“확실히, 나쁘진 않아. 이 정도면 아예 도박은 아니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만큼 매력적인 미끼를 가져왔다면, 결과가 어떻든 낚일 수밖에 없다.
서리칼날 부족이란 든든한 지원에다가 진혁과 함께 온 천유성 역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했으니까.
“승낙의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나?”
“그래. 너희와 함께하겠다. 이참에 20층을 완전히 우리 손아귀에 넣어주지.”
“좋아. 그럼, 나도 개인적으로 한 가지만 더 부탁해도 될까?”
“부탁이라고?”
“보다시피 내가 이래저래 할 일이 많아서 손이 좀 부족하거든.”
“말해봐라.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들어주도록 하마.”
“19층에 숨겨진 유적이 한 개 있어. 위치랑 들어가는 방법을 알려줄 테니, 그 안에서 종이 한 장만 찾아주면 돼.”
여신 프리그가 쓴 예언자의 서의 일부가 유적 내부에 잠들어 있다.
내용이야 머릿속에 전부 있다고 해도. 실질적인 증거는 필요할 터.
이후 북유럽 신격과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모든 예언자의 서는 반드시 이쪽의 손에 넣어둬야 한다.
‘그 능구렁이 같은 오딘 영감이 올림포스에게 전멸당할 일은 없을 테니까.’
지금 발발된 전쟁에서 아스가르드가 일방적으로 밀리는 것 같아 보여도. 핵심 전력은 어떻게든 보존한 채 도망 다닐 수 있을 거다.
광역 이동기를 가진 헤임달이 여러 측면에서 올림포스의 헤르메스보다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알겠다. 동맹의 증표로서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타라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으로서 고인물 코퍼레이션과 검은 언덕 부족과의 연합이 결성되었다.
***
붉게 산화된 철과 끔찍하게 생긴 고문병기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곳.
망령의 교단의 본거지가 위치한 장소는 말 그대로 지옥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만 같았다.
“끄아아악!”
“아아악!”
온갖 몬스터들과 거주자들의 비명소리로 점철된 교단 최심층부에선 망령의 교단을 이끄는 수장 ‘나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정확히는 한참이나 이어진 고문을 막 끝내려던 참이었지만.
“…그래. 과연, 그런 계획이었군. 성녀의 특징에 대해서 말해준 것도 도움이 많이 됐다. 정말 유익한 이야기였어.”
“끄으으…. 그, 그렇습니다. 제가 아는 걸 전부 말했으니 제발 이제 그만… 그만 좀 해주십쇼.”
페이던이 목숨을 애걸했다.
당당했던 공대장으로서의 모습은 간데없고. 혹독한 고문으로 인해 몸과 정신이 피폐해진 포로의 모습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더 이상 해줄 말은 없다는 뜻인가?”
“아는 건… 저, 전부 말했습니다.”
“그러하더냐. 애써 입을 여느라 고생 많았다.”
나태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망치와 못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철컹! 철컹! 철컹!
“히이이익! 아, 안 돼. 안 돼애애애…!”
페이던이 온몸을 마구 비틀었다.
하지만, 아무리 발악해봤자 바뀌는 건 없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곧 다시 일곱 대죄의 권속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육체가 제법 쓸 만하니, 수술이 끝난다면 상당히 쓸 만한 병사가 될 것이다.
데스나이트의 상위 존재인 블러드 나이트 혹은 그 이상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런데 바로 그때.
콰앙!
철문을 박차고 머리가 두 개 달린 언데드 몬스터가 들어왔다.
“내가 분명…. 수술 하는 동안 방해하지 말라고 일러두었을 텐데?”
“죄송합니다. 하지만, 교주시여! 사원 밖에 적들이 나타났습니다.”
“뭐라?”
나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적이라니.
감히, 어떤 정신 나간 놈들이 교단의 심장부까지 온단 말인가?
“검은 언덕 부족의… 타라첸이 직접 대군을 이끌고 이곳까지 왔습니다!”
타라첸.
20층을 삼분하는 거대 세력의 우두머리이자, 매우 호전적인 성격을 지닌 전사다.
“멍청한 오크놈이 주제파악도 하지 못하는구나. 층계가 같다고 하여 나와 자신이 동급이라고 생각하다니.”
일곱 대죄는 본디 상층부의 거주자.
중층부에 있는 보스 몬스터 따위가 넘볼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군타페르의 명령 때문에 이곳에 처박혀 있는 것도 기가 막힌 일인데,
괜한 일을 벌이기 싫어 내버려둔 오크나부랭이들이 시비를 걸어대니 짜증이 치솟을 수밖에.
‘나는 그저 쉬고 싶을 뿐이란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영원히 자리에 누워 안식만을 영위하고 싶었다.
그게 유일한 소망이었고. 그게 유일한 삶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군타페르와의 ‘굴종 계약’으로 인해 그 꿈은 잠시 뒤로 미뤄두어야만 했다.
‘괜찮다. 괜찮아.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되면, 드디어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될 테니.’
이제 머지 않았다.
거짓된 가면을 쓴 채 온몸을 혹사하는 것도 지금뿐이다.
“어떻게 대응하면 좋겠습니까?”
“그런 것까지 일일이 나에게 말하는 거냐? 적이 왔으면 당장 쓸어버리면 될 것 아니더냐!”
“바, 바로 신도들을 불러 모으겠습니다.”
나태의 역정에 보고를 하던 언데드 몬스터가 즉각 고개를 조아렸다.
“…빌어먹게 할 일들만 넘쳐나는군. 수술만 끝나면 조금 쉬어야겠어. 개인 연구실에서 마정석만 좀 가지고 오면….”
나태가 귀찮은 듯 페이던을 개조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들을 찾으러 몸을 돌렸다.
쿠쿠쿠쿠쿠!
곧, 흉흉한 기운이 나가자, 고문실에 잠깐의 평화가 찾아왔다.
“으으…으으으…. 도, 도망쳐야 해. 어서. 빨리. 이 수갑부터… 풀어서.”
죽다 살아난 페이던이 가늘게 몸을 떨었다.
잠깐이라도 생긴 틈을 이용해, 무슨 수를 쓰든 이 지옥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덜덜덜!
떨리는 손발로 쇠사슬을 움직였다.
“이야. 여기서 이렇게 살아 계셨네?”
낯선 목소리가 끼어든 건 바로 그때였다.
페이던의 앞엔 어느새 환하게 웃고 있는 진혁이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너…너는!”
“쉿. 목소리 크게 내지마. 그러다가 그 무시무시한 교주 녀석이 돌아오면 어쩌려고?”
“이 녀석이 동료들을 전부 버리고 혼자만 살겠다고 튀었다는 그 버러지냐?”
“맞아요. 만약 끝까지 버텨줬더라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었을 거예요.”
천유성과 테레사도 각각 한 마디씩 덧붙였다.
“그, 그건….”
말이 비수가 되어 심장을 파고든다.
그러나, 수치심이나 죄책감보다는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먼저였다.
“우선… 이곳에서 좀 날 빼…내주십쇼. 그 다음에 감옥에 가든, 벌을 받든 뭐라도 할 테니….”
“흐음. 구해달라…라.”
진혁이 턱을 긁적였다.
“빨리…! 놈이 오기 전까지 시간이 얼마 없단 말입니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어.”
“예?”
“네가 만약 일반 쓰레기 정도만 됐어도 재활용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줬을 거야.”
하지만, 음식물 쓰레기는 재활용도 하지 않은 거라고 배웠다.
그냥 불로 활활 태우는 게 답이지.
그래도 다행인 건 미끼로서는 훌륭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랄까.
진혁이 손끝에 마력을 집중했다.
우우우웅!
바둑알만 한 핏방울들이 맹렬하게 시계 방향을 그렸다.
“뭐, 뭡니까 이건?”
“복분자라고. 몸에 좋은 거야. 좋은 거.”
진혁의 입가에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데카서스 가를 이끌던 아뮬람의 트레이드마크. ‘혈폭(血爆)’.
‘은신’ 효과가 있는 결계에 감싸진 핏방울들이 페이던의 몸을 향해 날아갔다.
“히이이익! 뭐, 뭐야 이게? 대체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냔 말이다!”
“일종의 시한폭탄 같은 거야. 우리가 이곳에 온 걸 발설하거나 적대적인 행동을 보일 경우 즉각 발동되게 되어 있지.”
언제 죽느냐는 이쪽이 결정한다.
그러니, 1초라도 더 오래 살아남으려면 장단에 맞춰주는 게 좋을 거야.
“슬슬 움직이자.”
“그래. 타라첸이 벌어준 시간을 활용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왼쪽 통로로 나가면 바로 이어지는 곳이 있어요.”
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서 일말의 동정심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미안해. 미안하다고! 그러니 제발. 제바아알!”
페이던의 절규만이 텅 빈 공간에 메아리쳤다.
***
서걱!
“커…으업?”
칼질 한 번에 광신도 한 명의 목에서 긴 핏줄기가 솟구쳤다.
깔끔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검격.
천유성이 칼날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우리가 찾는 게 뭐라고 했지?”
“적그리스도의 성배야. 붉은색 찌그러진 술잔처럼 생긴 걸 찾으면 돼. 1시간 전에 말해줬는데 그걸 그새 까먹었어?”
“…….”
스릉!
칼날이 예기를 발했다.
“암! 까먹을 수도 있지. 우리 검성이 좀 바쁜데, 그런 걸 일일이 기억하겠어? 그래도 지금 다시 알려줬으니까 이번엔 까먹으면 안 된다. 알았지?”
진혁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진혁 씨! 저기, 저것 좀 봐요!”
방 한쪽을 열심히 살피던 테레사가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