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380)
380화. 완벽한 승리 (2)
진혁이 20층을 공략하는 동안, 아스가르드와 올림포스와의 전쟁도 거의 마무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올림포스 측의 일방적인 승리.
요툰헤임에서 고전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승부의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위그드라실을 제외한 전 지역이 함락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벌써 그 소식이 플레이어들에게까지 전해졌나? 하하하. 이거 좀 창피하네.”
“이래저래 연줄이 좀 있다 보니 정보가 빨리 들어오는 편이거든요.”
정확히는 과거 플레이할 때 경우의 수들을 모조리 외우고 있는 거였지만.
그 사실을 굳이 로키나 토르에게 알려 줄 필요는 없겠지.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 네 말대로 우리 상황이 썩 좋진 않아. 다행히 지리적 특수성 덕에 위그드라실만큼은 지키고 있지만, 그마저도 오래 버티진 못할 거다.”
아스가르드의 근간이 되는 위그드라실을 잃었다간 그대로 끝이다.
한 신화를 상징하는 세계수는 아스가르드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저한테 원하는 게 뭡니까?”
“그대가 이끄는 세력의 활약상은 익히 들어왔어. 솔직히 말해 인간이라곤 믿기 힘들 만큼 강하더군.”
역시나. 도움을 구하는 이야긴가.
하지만, 아무리 고인물 코퍼레이션이 강하다고 해도 올림포스의 주력과 맞설 정도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을 텐데?
진혁의 생각을 짐작하듯, 로키가 재빨리 한 마디 덧붙였다.
“아! 물론, 터무니없이 무리한 걸 요구하는 건 아니야. 사실, 우리 쪽에서 부탁할 건 특정 아이템 하나를 구해 달라는 것이거든.”
“위그드라실을 보호하기 위한 재료……를 원하는 거군요. 대결계의 근간이 되는 세 개 중 두 개는 아스가르드 쪽에서 어떻게든 구할 수 있는 종류이니 남은 건 ‘태양의 샘물’이겠죠.”
“……!?”
로키는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설마 하니 그 단서 하나만으로 대화의 결말을 예측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크하하! 이거, 한 방 제대로 먹었구만. 그래. 그대 말이 맞다. 우리에게 남은 희망이라곤 위그드라실을 지키는 것뿐이니까. 한데, 올림포스의 지독한 공격으로부터 세계수를 지키려면 필요한 것들이 몇 개 있더군.”
멍하니 서 있는 로키를 대신해 옆에 있던 거구의 남자가 나섰다.
토르.
과연,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하고 막히는 기분이다.
마력을 극단적으로 숨기고 있음에도 이 정도라니.
완전 해방한 본신은 대체 얼마나 강할지 궁금해졌다.
과거에는 제대로 싸워 보기도 전에 마계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게 아스가르드의 대영웅 토르였었기 때문이다.
‘그게 좀 아쉽긴 했어. 헤라클레스와 달리 토르는 몇 번 부딪쳐 보지도 못했으니까.’
탑을 오르면서 아쉬웠던 몇 안 되는 것들 중에 하나가 바로 이거였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라면 어떨까?’
진혁의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탑에 들어온 지 아직 3년도 채 되지 않은 현 시점.
본래라면 신격과의 전투는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야만 하는 금기였다.
그런데 왜일까?
절망적이라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들지 않았다.
해 볼 만하다.
가장 터프하다는 상위 신격이 그 상대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어이, 날카로운 살기는 적당히 넣어두라고. 우리가 무리한 부탁을 하려는 건 알겠는데, 그리 적대적으로 나올 것까지야 없잖아?”
“맨입으로 도와달라는 게 아니야. 우리도 나름 준비한 게 있거든. 네가 좋아할 것으로 말이지.”
진혁의 살기를 다른 식으로 오해한 두 신격이 허둥지둥 본론을 들이밀었다.
로키가 품속에서 하얀색 나뭇잎을 조심스레 꺼냈다.
이건……?
진혁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심상치 않은 보상을 줄 거라곤 예상했지만, 설마, 이것까지 제시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위그드라실의…… 잎사귀.”
“하하…….”
“진짜 모르는 게 없군. 이래서야 설명할 필요도 없겠어.”
로키와 토르가 이제는 놀라움을 넘어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위그드라실의 잎사귀를 본 건 아스가르드에 속해 있는 신격들 중에서도 극소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가? 왕관을 가지고 있는 그대라면, 위그드라실의 잎사귀가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 건지 알 텐데?”
패도의 왕관은 탑에 존재하는 최정상급 아티팩트 중 하나지만, 그만큼 다루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보통 레벨이 500이 넘거나 천무지체의 몸을 가진 괴물들이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니 당연히 요구 조건이 엄청날 수밖에.
하지만, 위그드라실의 잎사귀를 잘 가공하기만 한다면…….
‘지금 내 레벨로도 충분히 다룰 수 있게 마력을 조절할 수 있겠지.’
이 조건은 꽤나 매력적이다.
기대 이상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기한은 언제까지로 하면 되겠습니까?”
거래는 성립됐다.
다음에 갈 곳 역시 정해졌고.
***
“뭐야, 이건?”
무도회에 다시 돌아왔을 땐, 꽤나 볼 만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쿠쿠쿠쿠쿠!
격하게 흔들리는 샹들리에.
훈훈하고 분위기 좋던 무도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왔냐? 부디, 뒷감당은 알아서 하길 바란다.”
천유성이 혀를 차며 가장 먼저 맞아 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보면 안다. 보면…….”
대체 뭘 보라는 걸까?
진혁의 시선이 무도회장으로 향했다.
그러자.
“바보 성녀는 오늘 얼굴색이 좀 피곤해 보이네. 종일 기도만 하다 보니 하루 만에 폭삭 늙었나?”
“어머나. 몇 천 년은 산 꼬맹이가 화려하기만 한 옷만 입으면 다 되는 줄 아니? 옷이 헐렁하다 못해 엄마 옷인 줄 알았다 얘.”
“죽을래?”
“오래오래 살 거란다.”
엄청난 신경전을 펼치고 있는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멤버들이 눈에 들어왔다.
엘리스와 테레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서로 칼만 안 들었지. 말로 찌를 기세다.
‘테레사 씨는 언제 또 저렇게 흑화를 해 버린 건지…….’
진혁이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였다.
“헤헤. 진혁 님. 잠깐만 이쪽으로 와 보세요.”
생글생글 웃고 있는 안드리아가 진혁에게 다가왔다.
눈은 웃고 있는데, 어째 분위기가 쎄하다.
그 말을 증명하듯.
슥.
스윽…….
진혁의 주위로 다수의 인원이 다가왔다.
5층 ‘정신병동’에 있던 신도들.
정확히는 안드리아의 수족들이다.
“지금, 뭐……하는 거니 안드리아야?”
“그게, 조금 뒤에 무도회에서 황제가 보는 앞에서 춤을 추는 이벤트가 있는데요.”
그런 이벤트가 열린다고 들었던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거랑 이거랑 무슨 연관이 있는 건데?”
“꺄아. 모른 척하시기는……!”
안드리아가 부끄럽다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동시에.
스릉!
철컹!
신도들의 품안에서 각양각색의 무기들이 튀어나왔다.
“저는 꼭. 무슨 일이 있어도 진혁 님이랑 추고 싶거든요. 헤헤. 언니들은 서로 싸우고 있느라 정신이 없을 테니. 자. 얌전히 제 파트너가 되어 주시겠어요?”
섬뜩하고.
진혁의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건 위험하다.
“유성……아?”
“말하지 않았나? 뒷감당은 오롯이 너 혼자 하라고. 나는 모르는 일이다.”
천유성이 단칼에 시선을 외면했다.
“젠장.”
탓.
진혁이 자리를 박차고 테라스의 측면 복도를 따라 질주했다.
“놓치지 않을 거예요!”
안드리아와 그녀를 따르는 신도들이 우르르 뒤쫓아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신도들에게 쫓긴지 얼마나 되었을까?
구석에 몰린 진혁을 구해 준 건 다름 아닌 프레이였다.
콰콰쾅!
단창을 이용해 벽을 무너뜨려 시선을 교란시킨 것이다.
“고마워 프레이. 덕분에 살았……응?”
프레이가 무표정한 얼굴로 진혁을 올려다봤다.
어디서 얻었는지, 푸른색 드레스는 유독 푸른 머리칼과 잘 어울려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춤이라는 게 뭐야?”
이 지옥에서 벗어나게 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던 프레이가 같은 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일종의 사교활동인데, 전투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쓸모없는 행동이야.”
“해본 적이 없어 몰라.”
프레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지만.
“데이터 축적을 위해서 한 번 정도는 해봐야 한다고 판단돼. 확률은 100%야.”
“…….”
단단히 잘못 걸렸다.
“여기 숨어 있던 거였어? 바보 계약자!”
“손에 넣지 못할 바엔 차라리 베어 버리겠어.”
게다가 뒤이어 엘리스와 테레사가 참전하자, 상황은 더더욱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
약 1시간 뒤.
전쟁을 방불케 하던 쟁탈전이 끝났다.
정확히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상처뿐인 쟁탈전이 되어버렸지만…….
인파 속으로 사라진 진혁 때문에, 엘리스와 테레사 그리고 프레이와 안드리아는 멍하니 무도회의 하이라이트인 춤을 바라봤다.
선남선녀들이 짝을 이루어 춤을 추는 모습은 가슴 한 켠을 시큰거리게 만들었다.
“……후우.”
엘리스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확히 저 속에서 진혁과 함께 있고 싶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일은 마음대로 돌아가질 않는다.
“난 좀 더 찾아볼 거야. 바보 성녀는?”
“글쎄. 난 여기서 좀 더 있어 보려고.”
“포기가 빠르네. 마음대로 해.”
엘리스가 자리를 비우자 홀로 남은 테레사가 계단에 앉았다.
바로 그때.
천유성이 테레사를 향해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흐응. 날 위로해 주려고 온 거야?”
“슬퍼하는 여자는 혼자 두는 법이 아니라고 배웠거든.”
“정말이지…… 실없는 남자네.”
피식 웃은 테레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이 순딩이한텐 이렇게라도 춤 출 기회를 줘야겠지. 아니면 평생 혼자서 끙끙 앓고만 있을 테니까.”
[테레사가 ‘타락’을 해제합니다.]“유성 씨?”
테레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저…… 아으…….”
“이쪽이다.”
천유성이 테레사를 무대 한가운데로 이끌었다.
곧, 우아한 곡조와 함께 두 사람의 춤이 이어졌다.
***
“간신히 따돌린 건가.”
사람들 속에 숨은 진혁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정신없이 도망만 가느라 눈치채지 못했는데, 어느새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적당히 숨어 있다가 무도회장에서 빠져나가면 되겠어.’
역시, 마음만 먹고 도망치면 썩은 물을 잡을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바로 그때.
“껄껄껄! 우리 제자는 영 인기가 없나 보구나. 혼자 여기서 멀뚱멀뚱 서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바로 뒤에서 암황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니, 스승님이 여긴 어떻게……가 아니라. 인기가 없다니. 그건 또 무슨 뜻입니까?”
“걱정 말거라. 이 스승이 있지 않느냐.”
암황이 왼팔로 덥석 진혁의 손목을 붙잡았다.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찰나. 갈고리와 같은 오른손이 진혁의 허리춤을 단단히 움켜잡았다.
“스, 스승님?”
“잘 보거라. 이게 본교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흑천패왕무도(黑天霸王舞蹈)’이니……!”
콰앙!
지면을 따라 거대한 파장이 일어났다.
“흑천이고 나발이고 그거 쓰면 여기 다 무너집니다!”
“자고로 남자란 힘. 본좌가 이 춤을 추면 안 넘어온 여자가 없었다!”
안 넘어온 게 아니라 다 뒈진 거겠죠.
진혁의 목구멍에서 멈추란 말이 튀어 나왔지만, 이미 늦었다.
암황의 춤은 시작되었으니까.
“으허허헙!”
콰콰콰콰콰콰!
폭풍과 같은 회전에 진혁의 몸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회전했다.
회전목마를 100배속으로 돌리면 이런 광경일까?
대리석으로 만든 바닥이 무서운 속도로 파여 나갔다.
“꺄아아악!”
“피해라!”
“말려들었다간 뼈도 못 추린다!”
귀족들이 허둥지둥 무도회장을 빠져나갔다.
이쑤시개처럼 무너지는 기둥들을 보자니, 정말로 목숨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저 멀리서 울고 있는 현 황제의 얼굴과 거품을 물고 있는 펜하이머, 그리고 마냥 재밌는 듯 웃고 있는 에브라함의 모습도 보였다.
반란이 일어났을 때도 황궁이 무너지진 않았는데. 수백 년의 역사가 가루가 되어 사라지기 직전이다.
“저 죽어요. 스승님. 진짜로 죽습니다!”
“견디거라! 이것도 다 여심을 얻기 위한 수련이니라! 흑천…… 패왕 무도! 3초식!”
아니, 나 죽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