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381)
381화. 태양의 샘물 (1)
시련의 탑 21층부터 29층은 두 개의 거대 세력이 다스리는 영역이다.
제국과 무림.
양 세력으로부터 층계의 이동 권한을 받은 플레이어들만이 이 층계를 넘어 30층으로 갈 수 있다는 뜻.
그리고 당연히…….
진혁과 고인물 코퍼레이션에 소속된 플레이어들은 그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그 층계를 넘나들 수 있었다.
현재,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비밀 지하 벙커에선 타이탄 길드에 소속된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었다.
“후우…….”
“흠…….”
회의실 안에선 긴 한숨 소리가 이어졌다.
푹신한 의자에 몸을 누인 건, 긴 금발을 올백으로 넘긴 탄탄한 체구의 남성.
바로, 타이탄 길드의 탑 내부 공략팀 팀장이자, S급 랭커인 ‘스나이더’였다.
그 외에도 화면 너머에선 20층 공략으로 인해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올림포스 길드를 포함해, 일본의 ‘사무라이’와 중국의 신생 길드 ‘천혼’의 랭커들이 보였다.
다들 중대한 안건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회의에 참석한 것이다.
스나이더가 무거운 분위기를 깨며 입을 열었다.
“결국, 20층대를 무난하게 올라가기 위해선 강진혁 플레이어님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거군요.”
그렇다.
각 길드 역시 탑의 다양한 자원들과 수많은 기연들을 독점하고 싶었다.
누구보다도 빨리 말이다.
그러나 고인물 코퍼레이션이란 거대한 세력에 의해 그 꿈은 접어야만 했다.
그렇다면…….
차선책은 그 세력에 동조해 2인자의 위치를 노리는 것뿐.
“어지간한 걸로는 설득하기 힘들 겁니다. 탑의 상층부에 갈 수 있는 권한이면 억만금을 갖다 바친다고 해도 손해일 테니까요.”
“하긴, 나라고 해도 누군가와 공유하진 않겠지.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구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정보의 독식은 상식 중의 상식.
그걸, 다른 누구도 아닌 강진혁이 모를 리 없었다.
“아니면, 국가 차원에서 고인물 코퍼레이션을 대등한 관계로 인정해 주는 건 어떻습니까?”
치외법권과 완전 자율권.
한마디로, 일국의 수장과 동일한 대우를 약속하자는 말이다.
막대한 자본력과 로비로 인해 7대 길드는 이미 그러한 권한을 누리고 있었지만, 워낙 탑 밖의 권력 다툼에 관심이 없던 진혁은 그러한 일들을 손톱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었다.
“확실히, 그건 좀 매력적일 수도 있겠군.”
“언제까지나 탑에서만 있을 순 없을 테니까요.”
모두가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탑에서 전투를 치렀으면, 현실로 돌아와 탑 밖에서의 생활도 영위해야 하는 법.
김칫국이긴 하지만, 먼 미래엔 탑의 모든 층계가 공략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그때를 생각한다면, 지금 7대 길드에서 내거는 조건들은 결코 가벼운 게 아닐 것이다.
일개 개인이 국가급 권력을 손에 쥐게 된다는 뜻이었으니까.
“웃기는 소리!”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 끼어들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에선 분노와 질투가 배어 나왔다.
간다라 길드의 마스터. ‘니라샤’.
제국에서 진혁에게 대패한 뒤, 절치부심 강해지기 위해 모든 걸 포기했던 인도의 랭커다.
“니라샤 씨께선 탐탁지 않으신 모양이네요.”
“당연하지! 다들 그 쓰레기 같은 놈이 뭐라도 되는 양 떠받드는데, 그 자식 완전히 사기꾼이라고! 게다가 다른 사람들 뒤통수나 후려칠 줄만 아는 놈을 뭐가 예뻐서 잘해줘? 너희도 나중에 크게 한 방씩 얻어터지기 싫으면 내 말 똑똑히 명심해.”
평소에 냉철하고 차가워, 얼음마녀라는 별명이 붙은 니라샤였다.
그런데, 존칭도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흥분하다니.
어지간히 쌓인 게 많은 모양이다.
“인도 쪽이 랭커들을 많이 잃었다고 들었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군.”
천혼을 대표해 온 양치안이 혀를 찼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인해 대업을 그르치려 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죠. 실제로 강진혁 플레이어님이 몇 번이나 저희를 위기에서 구해 주셨습니까? 그분은 경쟁 대상이 아닌 은인입니다. 평생을 갚아도 갚을 수 없는 만큼 큰 은혜를 베푼 영웅이란 말입니다.”
사무라이 길드의 거짓 예언자인 타케시 역시 진혁을 옹호했다.
사실, 이번 회의를 열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타케시의 미래시 때문이었다.
“제가 본 미래에서는 반드시 강진혁 플레이어님이 있어야만 합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단 한 명을 꼽으라면 그건 반드시 진혁이어야 한다.
타케시가 사무라이를 대표해 선을 그었다.
“모두의 말이 맞습니다. 그쪽 길드가 서운하다고 해서 전체의 이익을 포기할 수는 없거든요. 강진혁 플레이어님과의 접선은 예정대로 진행하겠습니다.”
“두고 봐. 이 결정. 반드시 후회하게 될 테니.”
니라샤가 싸늘한 미소를 흘렸다.
“후회라고요? 그럼, 그쪽 편을 드는 게 후회하지 않는 길이라는 말입니까?”
스나이더가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글쎄. 그거야 조금 시간이 지나면 알겠지. 줄을 잘못 선 게 누구인지 말이야.”
‘균형의 사도.’
시바를 비롯한 인도의 거대 신격들이 모여 만든 ‘힌두교’와 ‘베다’의 총집합체 ‘천세(千歲)’.
그리고.
그들이 며칠 전 최종적으로 선택한 사도 중 하나가 니라샤였다.
“신격의 간택을 받았다고 너무 기고만장하시군요. 그렇게 비꼬지 않으셔도 이번 일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을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비장의 수 하나쯤은 준비해 두었으니까요.”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회의실 한쪽 구석.
조금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인물이 앉아 있었다.
만에 하나.
진혁이 이쪽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그때는 이 카드를 사용하면 된다.
***
20층 공략이 끝난 지 삼 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아스가르드로부터 받은 부탁은 위그드라실을 보호하기 위한 재료를 구해오는 것.
그 중에서 진혁이 맡은 건 ‘태양의 샘물’이라 불리는 특수 아이템이었다.
“흐음…….”
석촌 호수 인근을 따라 걷고 있던 진혁이 턱을 쓰다듬었다.
모처럼 탑 밖에서 휴일을 즐기는 것까진 좋았지만, 이제 곧 골치 아픈 곳으로 가려고 하자니 여러 가지로 생각할 게 많았다.
‘간만에 긴장 좀 하면서 공략 방법부터 정리해야겠네.’
태양의 샘물은 탑 23층에 위치한 미궁에 존재하는데 이곳에 들어가기 위한 열쇠는 입수 자체가 까다롭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만약 내부 진입에 성공한다고 해도 미궁 안을 지키는 게이트 가디언 역시 특정 공격 패턴이 아니면 피해를 입지 않았다.
‘괜히 토르나 로키가 나에게 맡긴 게 아니라는 뜻이지.’
애초에 둘은 태양의 샘물이 있는 정확한 위치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천유성, 이 머저리는 대체 언제 오는 걸까?
길고양이들 밥만 주고 온다고 한 지가 벌써 1시간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배고픈 고양이들한테 잡아먹혔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던 바로 그때였다.
부우우웅…… 끼익.
진혁의 옆에 검은색 벤츠 S클래스가 멈췄다.
방탄까지 장비한 게, 한 눈에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특수 차량이었다.
덜컹!
문이 열리자, 금발을 멋들어지게 넘긴 남자가 나타났다.
알고 있는 얼굴이다.
이미 매스컴을 통해 몇 번이고 본 적이 있었으니까.
타이탄 길드의 ‘스나이더’.
원거리 저격계 능력을 가진 S급 플레이어다.
생긋.
세상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스나이더가 품속에서 명함 한 장을 꺼냈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진혁 플레이어님 저는 미국 타이탄 길드에 소속된…….”
“벨레모스 미궁에서 활약한 영상. 잘 봤었습니다. 원거리에서 보스 몬스터를 견제하는 능력이 정말 탁월하더군요.”
“……아니, 그걸 보신 겁니까?”
스나이더가 겸연쩍은 얼굴로 명함을 도로 집어넣었다.
“상위 랭커들의 동향은 꼼꼼하게 체크해 두는 편이라서요.”
“정말로 영광입니다. 강진혁 플레이어님이 관심을 가져주실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거든요. 하하.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는걸요?”
“그래서 미국의 대형 길드가 이 먼 곳까진 어쩐 일인가요?”
“그게…….”
스나이더가 주위의 시선을 살폈다.
워낙 이른 시간이라 인파가 많지 않긴 했지만, 새벽부터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계속 대화를 나누다간 눈에 띌 위험이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진혁이라면 더욱더 말이다.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대화를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희가 호텔 한 층을 전세 내두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요. 자리를 비우긴 힘들 것 같네요.”
“어쩔 수 없군요. 그럼……. 본론만 빠르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 생각을 가다듬은 스나이더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고인물 코퍼레이션이 현재 제국과 무림으로부터 층계 이동에 관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역시나.
그 이야기를 꺼낼 줄 알았다.
하긴, 20층이 돌파되었을 때부터 대형 길드에서 접촉해 오는 건 시간문제의 일이긴 했었지.
“상층부의 통행을 원한다면…… 어지간한 대가로는 씨알도 안 먹힌다는 것쯤을 알고 계시겠죠?”
“아무렴, 저희 쪽에서 푼돈을 들고 왔겠습니까? 저희가 원하는 걸 제공해 주신다면, 백지수표와 치외법권, 그리고 어느 나라에서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비자를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스나이더가 슬쩍 한 마디 덧붙였다.
“기왕이면…… 강진혁 플레이어님을 담을 수 있을 만한 강대국의 시민권을 따두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1조든 10조든, 100조든.
숫자로 써서 제출하기만 하면 그대로 달러로 환전된다.
나머지 2개의 권한 역시 일개 개인이 갖기엔 과분한 특권이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덥석 받아들일 만큼 말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평범한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
“흐음. 코인이 아닌 돈이라면 관심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절 건드릴 수 있는 세력 또한 존재하질 않을 테니 나머지 것들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진혁에겐 그 모든 것들이 의미 없게 느껴졌다.
“하, 하지만……!”
“예를 들어 만약, 제가 미국 내에서 범죄행위를 저지른다고 해서…… 그쪽에서 저를 구속하실 수 있습니까?”
짧고 가벼운 질문.
허나, 그 질문이 지닌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과연, 타이탄 길드의 전력을 동원한다 한들, 눈앞에 있는 괴물을 제압할 수 있을까?
아니, 타이탄 길드뿐 아니라 3일 전 모였던 대형 길드의 랭커들을 총동원한다고 하더라도?
……쉽지 않을 거다.
그 결과는 확정적으로 입에 담을 수 없었다.
“강진혁…… 플레이어님이 대단하신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타케시 씨의 강력한 추천도 있었고요.”
하지만.
“공식 집계 상.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구성은 고작 열 명 남짓. 정말로 이 인원만으로 최대 세력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진혁이 피식 웃었다.
“저희가 인원이 적은 건 굳이 숫자를 늘려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소수 정예.
한 명 한 명이 수백 수천의 역량을 지니고 있다면 굳이 덩치를 부풀릴 이유가 없다.
“…….”
구구절절 맞는 말에, 스나이더가 입을 꾹 다물었다.
모두가 일대일로 맞서기 꺼려 하는 검성, 천유성과 암스테르담을 구원한 성녀 테레사. 거기에 엘리스라 불리는 은발의 랭커까지.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구성원들은 하나같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미국으로 귀화시키는 것까진 기대하지 않았지만…… 아예 협상을 할 여지조차 없단 말인가.’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럴 때를 위해 상대를 자극할 수 있는 히든카드를 준비하지 않았던가?
“할 수 없군요…… 저도 이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스나이더가 벤츠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덜컹.
문이 열리며, 누군가 나타났다.
“……!!??”
진혁의 눈동자에 이채가 스쳤다.
스나이더가 데려온 인물은 결코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존재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