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382)
382화. 태양의 샘물 (2)
‘이건 놀랍네.’
상대를 본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모를 리가 없지.
어찌 모를 수가 있을까?
기하학 무늬가 그려진 가면.
날렵하면서도 탄탄한 체구의 외모.
무엇보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이 심상치 않다.
플레이어 언노운(Unknown).
정확히는 언노운 행세를 하는 가짜다.
저벅.
언노운이 스나이더의 옆에 섰다.
“최근 들어, 언노운 플레이어의 등장이 뜸했죠. 저는 당연히 강진혁 플레이어님과 함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들어보니 모종의 이유를 근거로 따로 행동을 하겠다고 했다더군요.”
이미 각종 커뮤니케이션에서 진혁과 언노운의 불화설이 심심치 않게 언급되는 중이었다.
종종 연합 전선을 구축했던 두 플레이어가 소원해지는가 싶더니, 수많은 인터뷰 요청에도 무대응으로 일관해 버리니 당연히 불씨가 타오를 수밖에.
특히,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공식 멤버에 언노운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게 가장 큰 이유로 작용했다.
‘그점을 이용해 언노운 행세를 하며 꿀을 좀 빨아보겠다는 건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진혁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능구렁이 같은 기회주의자라면 기회주의자고. 멍청하다면 한없이 멍청한 놈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은 언노운의 진위를 식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터.’
그럼에도 끝까지 언노운이 스스로의 정체를 숨기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걸까?
아니면, 자신이 가짜 행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어도 상관없다는 뜻일까?
어느 쪽이든 흥미가 생기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저 사람을 이곳에 데리고 온 이유가 뭡니까?”
“알다시피 언노운 플레이어님은 수많은 업적을 보유한 랭커입니다. 각성자 협회에서도 예외 등급으로 탑 공략을 허가했을 정도로 말이죠.”
스나이더가 잔뜩 거드름을 피웠다.
마치, 그 언노운을 완전히 휘어잡고 있다고 말하듯이.
“아무리 강진혁 플레이어님이라도 상층부의 공략은 쉽게 여길 게 아니지 않습니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을 처음으로 걸어가야 하는 입장이라면 더욱더 말입니다.”
아직, 상층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전무했지만.
감히 예상해 보건대, 중층부보다 족히 몇 배는 더 어려운 층계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을 것이다.
말이 좋아 소수정예지. 어떠한 변수가 있을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하지만, 저희와 협력하신다면 더 편안한 방법을 지원하겠습니다.”
지금보다 더 위로.
더 안정적이면서 빠르게.
경제적인 것과 실질적인 것에서 서포팅을 하겠다는 뜻이다.
“확실히…… 나쁘진 않네요.”
“저희 제안을 받아들이시겠다는 뜻입니까?”
“먼저, 언노운 씨와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네요. 대화는 그 다음에 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너무 길게만 끌지 말아 주십쇼.”
스나이더가 다시 한 번 주위를 훑었다.
그리고 잠시 뒤로 물러서 둘 만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자.
이제 어떻게 나올 생각이냐?
진혁이 상대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언노운 역시 진혁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후우하고.
귀찮다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쭙잖은 심리전이나 머리싸움은 별로 취향이 아니라서 미리 말해 두지. 나는 딱히 언노운인 척할 생각은 없다. 이 가면을 뒤집어 쓴 건 어디까지나 네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을 뿐이니까.”
스스로 말했다.
후자 쪽이었나.
“……의외로 쿨하게 인정하네. 조금 더 여러 가지 핑계거리를 댈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시간 낭비를 싫어하는 성격이거든. 속이려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속일 수 있는 상대도 아니고.”
“그럼, 피차 다 아는 사이. 가면부터 벗고 대화를 하는 게 어때?”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군. 언노운이 아니라고 해서 맨얼굴을 보여줘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미안하지만, 나도 부탁한 게 아니야.”
진혁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파치츠……츠!
마력이 모이면서 ‘결계’와 ‘빙하조형’이 동시에 발동되었다.
[6성급 ‘밀폐의 영역’이 발동됩니다!] [빙하조형(冰河造形) ‘극빙 화살’이 발동됩니다!]얼음 가루들이 순식간에 형(形)을 갖췄다.
3개의 화살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언노운의 가면을 노리고 쇄도했다.
지근거리에서. 그것도 속도에 특화된 기습이다.
그런데.
퍼퍼퍽!
얼음 화살이 가면 근처에서 모조리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다짜고짜 공격부터 퍼붓다니, 듣던 대로 까다로운 녀석이로군.”
막는다는 동작은커녕, 마력이 재배열되는 기척조차 감지하지 못했다.
결계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뭐냐 이 괴물은……?
“너…….”
진혁이 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언노운이 한 발 더 빨랐다.
“잠자코 있던 신격들이 날뛰는 통에 여러 가지로 골치가 아파.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도 문제지만, 그게 도화선이 된 게 짜증나는 점이지. 쯧! 하여간 제 잘난 맛에 사는 머저리들 같으니라고…….”
평범한 플레이어가 신격들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마주한 자도 극소수였고. 그마저도 완전한 상하관계에 얽매여 있을 테니까.
거주자……라는 건가?
아니, 거주자 중에서 모르는 놈은 없는데.
이렇게 묘한 마력을 가진 존재는…….
‘…….’
관리자 역시 아니다.
신격은 더더욱 아니었고.
추론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단 하나.
“운영자…….”
“호오, 눈치가 아예 없지는 않을 거라고 하더니. 답답하진 않아도 될 것 같군.”
언노운의 가면에 기괴한 입이 나타났다.
소름끼치는 붉은 입과 그 사이에 빼곡히 돋아난 이빨이 보인다.
“새영언환은 정체를 들켜서야 자신을 드러냈는데, 너는 다르다는 거냐?”
“그 친구는 ‘관조하는 자’. 대세에 개입하지 않고 지켜보는 걸 선호하지.”
“나는 ‘변수를 만드는 자’. 흠.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아. 그래. 기존의 따분함에 약간의 소스를 치는 걸 선호한다고 말하는 게 좋겠어.”
초창기에 방송을 보던 시청자 중 하나.
운영자는 과거 시련의 탑에는 없던 요인 중 하나였다.
실제로 50층의 변화를 경고한 것도 새영언환이었고.
그렇다면…….
과연 눈앞에 있는 녀석은 누구일까?
“닉네임 정도는 알려주지 그래? 그래도 한때 즐겨봤던 BJ인데, 애청자의 이름 정도는 알아도 되잖아?”
“이거 내가 실례했군. 팬으로서 예의가 아니었어. 확실히. 닉네임 정도는 상관없겠지.”
언노운의 입꼬리가 살며시 위로 올라갔다.
“‘수리부엉이’이라고 하면 기억이 나겠나? 나름, 방송은 빠지지 않고 봤다고 자부하는데.”
당연히 기억에 남아 있다.
과거, 방송에서 온갖 음식들을 후원해줬던 시청자.
하도 괴식을 먹이려고 해서 블랙도 몇 번 걸었던 기억이 난다.
젠장. 하필이면 저 사이코를 현실에서 만날 줄이야.
“설마, 솔의 눈에 만 순대국밥을 먹으라고 하진 않을 테고. 그렇다고 운영자쯤 되는 엉덩이 무거운 분이 추억팔이나 하려는 것도 아닐 것 같은데?”
“내가 직접 이곳까지 온 이유는 이번 레이드에 함께하고 싶기 때문이다.”
“……태양의 샘물을?”
“그래. 꼭 함께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이거, 일이 복잡하게 돌아간다.
난데없이 운영자가 나타난 것도 어이가 없는데, 그 운영자가 23층에 있는 미궁에 함께 가자고 하다니.
“어떻게 하겠나?”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이게 독이든 사과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운영자의 정체와 목적에 대해 조금이나마 단서를 얻을 기회라는 것뿐.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환영이야.”
진혁이 언노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바로 그때.
“미안하다. 늦어서. 오는 길에 잠깐 누구를 좀 만나게 돼서 함께 오느라…… 음?”
짧게 사과를 하며 다가오던 천유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혁의 옆에 웬 이상한 놈들이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천유성…… 플레이어……. 설마, 강진혁 플레이어님이 기다리고 있던 상대가 당신이었습니까?”
스나이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스나이더의 불행은 이걸로 끝이 아니다.
단지, 막 시작되었을 뿐이지.
“호오. 이게 대체 무슨 짓거리일까요?”
천유성이 오다가 만난 사람은 다름 아닌 한상진.
한국 각성자 협회 협회장이다.
얼굴에 그어진 흉터만큼이나, 지금 이 상황에 대한 흉흉한 감정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외국의 에이전트가 한국의 보물이라 할 수 있는 진혁에게 집적대고 있는 걸 발견했으니…….
당연히 분노가 치솟을 수밖에.
반면.
“아…….”
스나이더는 세상을 다 잃은 표정으로 전신을 가늘게 떨었다.
하필이면……!
한국 쪽 정부 요원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비밀리에 입국하고 철저하게 정보를 봉쇄해뒀건만.
어떻게든 꼬리 잡힐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인력과 자본을 투입했건만.
그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이거 재밌군요. 스나이더 씨. 지금 하는 행위가 타이탄 길드와 미국 각성자 협회의 뜻을 대변하는 겁니까?”
“이, 이건 오해입니다. 저희는 그런 의도가 아니라…….”
“의도가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딱 봐도 저희 쪽 VIP를 빼돌리려고 하고 있는데?”
한상진의 서슬 퍼런 엄포에 스나이더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미국이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한 나라였지만.
이런 식으로 꼬투리를 잡힌다면 앞으로의 관계에서 여러 가지로 불리한 빌미를 제공할 우려가 있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을 구제해준 이가 있었으니.
“큼큼! 협회장님. 그게 아니라 정말로 오해가 있던 겁니다.”
바로 진혁이었다.
“오해라고요?”
“예. 여기 오신 스나이더 씨는 무상으로 모든 걸 제공해준다고 했었거든요. 인류의 미래를 위해 아주 자비로운 마음으로 말이죠.”
“무, 무상……이라고요!?”
스나이더가 헛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닌가요? 그럼, 오해가 아니라 정말로 저에게 나쁜 마음을 먹고 있었다…… 뭐, 이런 뜻이라는 거군요.”
진혁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저는 그게 아니라…… 그게 어떤 뜻으로 말씀드리게 된 거냐면…….”
“예, 더듬지 말고 천천히 말씀하세요. 듣고 있습니다.”
“…….”
여기서 반박할 경우 타국의 인재를 빼돌리려 했다는 증거를 스스로 밝히는 꼴밖엔 되질 않는다.
그렇다고 뻣뻣하게 핏대를 세우다간 진혁과 적대 관계가 되는 대참사가 일어날 수 있었다.
진퇴양난의 상황.
결국.
“……제대로 한 방 먹었군요. 그냥 다 가져가십쇼. 제가 졌습니다.”
스나이더가 모든 걸 체념한 채 고개를 떨궜다.
***
한상진과 스나이더는 조금 더 할 이야기가 있다며, 자리를 옮겼다.
언노운 아니, 수리부엉이 역시 잠깐 할 일이 있다며 자리를 비웠다.
이제 탑 23층에 가기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남짓.
진혁과 천유성은 시련의 탑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장비와 보급품 등을 점검했다.
철컹!
못 보던 장검을 허리춤에 찬 천유성이 넌지시 운을 뗐다.
“엘리스 씨는 함께하지 않는 거냐?”
“그 녀석은 이번엔 빠질 거야.”
엘리스와 벨루스 그리고 오필리아.
셋은 에덴과의 접촉을 위해 따로 움직이기로 이야기를 끝내뒀다.
‘에덴에 소속된 키자키엘이 내 거점을 공격했으니, 그걸 빌미로 한 몫 단단히 뜯어낼 수 있겠지.’
키자키엘이 에덴에서 추방당했다고 변명해봤자, 내 알바 아니라고 해버리면 그만이다.
네크로노미콘에 대한 단서에 목을 매는 에덴은 적어도 당분간은 이쪽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테레사 씨도 유럽에서 바쁜 모양이고…… 스승님들도 무림의 일처리를 하러 떠났으니…… 그럼, 영락없이 너와 둘이서 미궁을 공략해야 한다는 뜻이로군.”
“왜. 천하의 검성이 불안해?”
“불안하기는! 나는 그저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한 말이다.”
“그래도 검 하나면 너 아니냐? 예전에 무림에서…… 그 뭐냐, 화산의 무슨 매화검수인지 뭔지도 이겼었잖아?”
“그거야…… 제약을 받고 놈이 탑 아래로 내려왔을 때 일 아니냐. 그리고 넌 꼭 알면서 일부러…….”
자존심이 상했는지, 천유성의 얼굴이 왈칵 구겨졌다.
“미안 미안. 진짜 몰랐었어.”
아니, 진짜로 몰랐다니까?
그거 밖에서 휘두르면 증거도 못 지운다. 진짜로.
진혁이 허둥지둥 양 손을 휘저었다.
“둘이서 즐거워 보이는군.”
이번 레이드의 마지막 멤버.
수리부엉이가 가면을 고쳐 쓴 채 두 사람 앞에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