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383)
383화. 태양의 샘물 (3)
시련의 탑 23층.
제국의 비호 아래 있는 이 층계는 탑 50층 내부에서도 꽤나 평화로운 축에 속한다.
이미 제국의 기사단들이 상당수의 던전과 미궁들을 정리해 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몇 황실 기사단들조차 손을 쓸 수 없는 곳들이 존재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태양의 샘물’이 흐르는 ‘영원의 계곡’이었다.
약 300k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
7개의 호수가 있는 이곳은 수많은 몬스터들이 서식하는 거대한 생태계였다.
‘이 계곡 자체가 미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진혁이 조심스레 주위를 살폈다.
“크르르…….”
“그라라!”
3m 크기의 엄니를 가진 블랙 보어들이 떼를 지어 움직이고 있는 게 보였다.
극도로 호전적인 데다 무리를 이루는 습성을 지닌 터라, 사냥하기가 극히 까다로운 종류다.
“그냥 지나칠 거냐?”
천유성이 검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하여간, 이 녀석은 뭐든지 보이는 족족 베어 버려야 성질이 풀리는 모양이다.
이런 녀석이 무슨 생명을 살리는 의사를 한다는 건지…… 쯧쯧.
“왠지 눈꼬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 속으로 내 욕하고 있는 것 아니냐?”
“무, 무슨 소리야? 그냥 든든한 동료가 와서 이번 레이드는 걱정 없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중이었는데?”
진혁이 슬쩍 시선을 회피했다.
“눈동자가 미미하게 떨리면서 좌측 10도로 내리깔고 있군. 네놈이 거짓말을 할 때 나오는 증상이다. 티모 대령으로 방송을 할 때 이런 적이 정확히 293번 있었지.”
“너 무슨 스토커냐? 그딴 걸 왜 알고 있는 건데?”
“재밌는 조합이로군. 두 사람이랑 있으면 심심할 겨를이 없겠어.”
수리부엉이는 지금 이 상황이 못 견디게 재밌다는 듯, 연신 실소를 흘렸다.
천유성에게는 운영자 대신 과거에 알고 있던 고인물 중 하나라고 소개해 둔 상태.
때문에 천유성은 별 다른 군말 없이 수리부엉이의 존재를 받아들였다.
정확히는.
자신의 일만 방해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는 태도였지만.
‘대체 무슨 속셈으로 이곳에 온 걸까?’
진혁이 조심스럽게 수풀을 따라 움직이면서도 연신 수리부엉이의 동태를 살폈다.
운영자라면 플레이어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
다시 말해, 신들을 뛰어넘는 초월자의 위치에 있는 놈들이다.
그런데. 그런 괴물들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게 있다니.
‘미궁을 공략하기 전까지 은근슬쩍 떠봐야겠어.’
일단 지금 당장은 할 수 있는 것부터 처리하는 게 우선이다.
***
블랙 보어 떼를 지나고 수많은 식인 식물과 벌레들을 회피하며 걷고 또 걸었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거대한 계곡이었다.
콸콸콸콸!
폭포 소리가 모든 기척을 지워버리자, 비로소 한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이 계곡 안에 미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숨겨진 통로가 있다는 거냐?”
“응. 위치는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아. 열쇠가 문제긴 문젠데…….”
진혁의 시선이 물속으로 향했다.
물속에선 살이 통통하게 오른 갑각류들이 활기차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철갑 슈림프.
계곡에서 주로 서식하는 시련의 탑의 명물로, 맛이 좋기로 소문난 녀석들이다.
23층에 있는 건 특히 그 크기가 큰 놈들로, 여기 있는 수만 마리 중 한 마리가 미궁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집게발을 가지고 있다.
“완전히 사막에서 바늘 찾기로군. 이래서야 몇 달은 족히 걸리겠어.”
천유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많은 놈들 중에서 대체 어느 게 진짜인 줄 알고 골라낸단 말인가?
맞는 말이긴 하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렇게 무식하게 찾아 헤맬 필요는 없다.
“색깔이 알록달록한 열매가 있을 거야. 봐. 저기 바위를 따라 자라 있는 것들 보이지?”
사우전드 애플.
엄청나게 단단한 껍질을 가지고 있는 과일이다.
“저 과일 열매로 낚시라도 하라는 말이냐?”
“철갑 슈림프들이 가장 좋아하는 먹거리가 저거거든. 하지만, 열쇠인 슈림프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영원히 살기 때문에 열매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거야.”
미끼를 이용해 가려낼 건, 미끼에 관심이 없는 개체다.
“반응이 없는 놈을 살핀다라… 그것도 쉬워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아예 단서가 없는 것보단 낫겠군.”
“그런 셈이지. 어디 보자. 한, 30개 정도만 모아 줬으면 해. 그쯤이면 충분하겠지.”
“알겠다. 바로 가마.”
천유성이 군말 없이 움직였다.
그렇게 천유성이 자리를 비우자, 진혁과 수리부엉이만 남게 되었다.
진혁이 나무들을 이용해 만든 통발을 설치하면서 넌지시 운을 뗐다.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는 게 어떤 거야? 미궁에 새롭게 히든 피스라도 추가되었다는 건가?”
“너무 대놓고 물어보는군.”
“지금밖에 기회가 없을 것 같았거든. 그리고 레이드에 함께하게 해줬는데, 이 정도쯤은 알려줘도 되잖아?”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가능성이라고?”
“그래.”
수리부엉이가 무겁게 대답했다.
“성가신 놈이 튀어나왔다. 우리로서도 제어가 안 되는 종류지. 이미 운영자 셋이 놈에게 목숨을 잃었고. 앞으로도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올지도 모른다.”
“……!?”
언제나 방송에서 자신감 넘치고 짓궂은 포지션을 도맡아왔던 수리부엉이가 이런 모습을 보일 줄이야.
새영언환 역시 탑의 정상의 변화를 경고했었다.
이전에 알던 곳과는 많이 다를 거라고.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운영자도 죽을 수 있다는 건 좀 놀랍네. 너희라면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변수를 제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
“우리가 초월적인 위치에 있는 건 맞지만, 시스템과 인과율을 거스를 순 없다. 실제로 너와 함께하는 것도 많이 무리하고 있는 거니까.”
“대체 그 녀석이 누구길래 그래? 설마, 아자토스나 슈브 니구라스보다도 강하다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터무니없는 규격 외 외신들보다도 강할 수는 없을 거다.
설마…… 그럴 리가.
“그것까진 말해 줄 수 없다. 말해 줘 봐야 의미가 없기도 하고. 우린 그저 보고 싶은 것뿐이다. 네 잠재력을… 그리고 ‘그자’와의 대결에서 이길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이곳에 온 거다.”
수리부엉이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게 알려줄 수 있는 정보의 한계라고 선을 긋듯.
아직까지 궁금한 게 많았지만, 그래도 몇 가지 건진 건 있다.
‘평범한 레이드가 되진 않겠어.’
분명, 수리부엉이와 나머지 운영자들이 이번 미궁의 난이도를 대폭 상향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과거와는 다른 난제를 주어주고, 어떻게 해결할지. 임기응변과 상황판단 능력은 어떨지.
그 모든 걸 확인하려면, 난이도 보정은 반드시 선결되어야 할 문제였으니까.
‘……재밌겠네.’
단순히 탑의 정상을 또 다시 오르는 거면, 동기 부여로는 조금 부족하다.
게임과 현실의 성취에는 비교할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는, 그런 진부한 이야기가 아니다.
고인물에게 있어 새롭게 추가된 콘텐츠는 그 어떤 물질적인 보상보다도 큰 자극이 된다는 뜻.
하물며 그것이 이 탑을 설계한 운영자를 넘어서는 것이라면…….
더욱더 흥미가 솟구칠 수밖에 없다.
바로 그때.
“다 챙겨왔다.”
열매를 따러 간 천유성이 돌아왔다.
품안에 한가득 들려 있는 열매들은 족히 30개가 넘어 보였다.
“좋아. 슬슬 시작해 볼까?”
진혁이 사우전드 애플 하나를 손에 쥐었다.
정확히 중앙에서 3.6cm 아래 지점에 십자 모양으로 칼집을 낸 뒤, 계곡물에 담갔다.
이것이 과즙을 가장 빠르게 퍼질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이다.
우르르.
열매의 냄새를 맡은 철갑 슈림프들이 우르르 통발 안으로 몰려왔다.
“이걸 반복하기만 하면 돼.”
“생각보다 더 반응이 좋군. 미궁의 열쇠를 얻는 게 어렵다더니. 엄살을 부린 거였나?”
그럴 리가.
이 과일이 효과적인 건 맞으나, 문제는…….
과일의 단맛이 유혹하는 건 철갑 슈림프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부터 시작이야.”
바로 그 순간.
쿠웅!
계곡 전체가 흔들렸다.
콰콰콰콰콰콰!
수심이 깊은 부분의 물살이 격하게 요동치며, 거대한 다리가 튀어나왔다.
십여 미터에 이르는 대왕 문어가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콰직!
검은 다리가 순식간에 세 사람이 있던 곳을 걸레짝으로 만들어버렸다.
“젠장!”
천유성이 즉각 검을 뽑았다.
무림 특유의 문자들이 칼날을 따라 은은하게 드러났다.
저건……?
매화검을 어디다 두고 새로운 걸 가져왔다 했더니, 저 요검을 얻은 거였나.
[요검(妖劍) ‘류화(柳花)’가 깨어납니다!]추혼사영이 사용하던 검이다.
정확히는 너무 요기가 짙어 보관만 해두던 걸, 천유성이 길들인 거일 테지만.
‘저건 나중에 내가 저 녀석한테 미끼로 쓰려고 했던 건데. 아무리 재능충이라고 해도 벌써 완벽하게 다스리다니.’
무림 전체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에 드는 신병이기를 꿀꺽한 걸 보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문어는 내가 맡겠다! 넌 계속 통발이나 설치해라!”
“너무 무리하지 마. 그 녀석 방어력이 상상을 초월하니까.”
“하! 지금 날 걱정하는 거냐?”
천유성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류화에 깃들어 있는 요기는 방어력을 무시할 수 있을뿐더러, 지속적으로 상처를 악화시킬 수 있는 특수 능력까지 덧붙여 있었다.
요기에 잠식될 수 있다는 단점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큼 엄청난 효과들이란 뜻이다.
하지만.
콰아아앙!
“크읍?”
문어의 다리를 베려던 천유성은 무언가 잘못된 걸 느꼈다.
“이게 무슨……?”
“그래서 말했잖아. 무리하지 말라고.”
본래라면 류화로 일검에 저 두툼한 다리를 잘라낼 수 있었을 것이다.
굳이 검강이 없더라도 검 자체가 사기적인 스펙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난이도를 미친 듯이 올려놨군.’
쉽게 보고 온 레이드는 아니었지만….
이번 레이드는 여러 의미에서 빌어먹게 어려울 것 같다.
***
한 세력과 한 세력의 영역이 겹치는 지점.
44층은 상층부의 거대 세력 ‘에덴’이 관리하는 층계였다.
그리고 성역(聖域)이라 불리며, 모두가 접근을 꺼려하는 이곳에 발을 디딘 건….
은발에 붉은 눈동자를 지닌 일족이었다.
“도착했습니다. 로드시여.”
벨루스가 새하얀 성벽이 늘어진 입구를 가리켰다.
“여긴 정말 더럽게 크고 웅장하기만 하네. 대체 뭐 이리 쓸데없이 돈을 퍼부은 거야?”
엘리스가 툴툴대며 주위를 살폈다.
“정말 제정신이 아니야. 다들 미쳤어. 에덴은 뱀파이어들에게 적대적인데 내가 어쩌자고 줄을 잘못 서서 여기까지……. 그것도 고작 셋이서. 상대의 본거지에… 하아아아….”
오필리아는 모든 걸 체념한 채 중얼거렸다.
“부탁인데, 조용히 좀 해 오필리아. 그깟 날개 달린 바보들이 뭐가 무섭다고 그러는 거야? 예전에는 내 눈도 못 마주쳤던 것들인데.”
“후우. 그건 로드가 아타락시아의 가주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 때 이야기고. 지금은 진짜 위험하단 말이야…….”
“하여간 데카서스 혈족들은 겁만 많아서는. 그보다 지금 6시 아니었어? 이 녀석은 왜 약속 시간을 마음대로 어기는….”
바로 그때.
“늦어서 죄송합니다. 엘리스 님.”
성벽 앞으로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천사가 나타났다.
부드러운 인상에 긴 금발.
보는 이가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미소를 지닌 남자였다.
“가브리엘은 어디 가고 왜…… 네가…… 아. 천사들은 다 똑같이 생겨서 구분이 안 가네. 이름이 뭐였더라?”
“하토엘이라고 합니다. 가브리엘께선 안쪽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쪽? 회담은 경계에서 하기로 한 것 아니었나?”
벨루스가 즉각 항변했다.
“죄송합니다만, 상황이 좀 복잡하게 됐습니다. 가브리엘을 만나 뵙고 싶으면 직접 안으로 들어가셔야만 합니다.”
단.
“나머지 분들은 여기서 기다려주셔야겠습니다. 말했다시피. 지금 내부 상황이 좀 복잡하게 됐거든요.”
들어갈 수 있는 건 엘리스 한 명뿐.
“말도 안 되는 소릴!”
“웃기지 마!”
벨루스와 오필리아가 동시에 고함을 질렀다.
아무리 형식상 회담이라고 해도 암 속성 계열의 세력이 신성 계열 세력의 영역에 들어갈 수는 없다.
그것도 홀로 말이다.
“…….”
엘리스의 얼굴 역시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 결정하셔야 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