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384)
384화. 태양의 샘물 (4)
– 엘리스. 그럼, 믿고 맡길게. 너라면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일 수 있어. 그러니 너무 부담가지지 말고. 알았지?
그래.
계약자는 믿고 맡겨줬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상관없다면서.
그런데 그 믿음을 시작부터 어긋나게 할 수는 없다.
“…….”
엘리스가 주먹을 꽉 쥐었다.
기존에 하기로 한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리스크가 올라갔지만…….
“그렇게 할게.”
포기란 말은 죽어도 입에 담지 않을 거다.
“좋습니다. 그럼, 나머지 분들은 여기서 기다리고 계셔 주세요.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하토엘의 말에, 벨루스와 오필리아가 즉각 반발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함정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동감이야. 어차피 계획을 마음대로 바꾼 건 저쪽이고. 우리도 돌아가서 할 말은 충분히 있어.”
“너희들은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나 해. 가주로서의 명령이야.”
“……알겠습니다. 로드시여.”
“그렇게 결정했다면 따르는 수밖에…… 없긴 한데. 조심히 갔다 와. 모시는 가주를 두 번이나 잃고 싶진 않으니까.”
엘리스가 하토엘을 따라나섰다.
철컹!
정문이 아닌, 황금 나뭇잎 사이에 가려진 쪽문이 열렸다.
다른 천사들에게 엘리스의 존재가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호오.”
내부로 들어온 엘리스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수많은 천사들이 모여 사는 성역은 그 자체만으로도 장관이었다.
성스럽고 화려한 건축물과 그것들을 지키는 수천의 군대는 하나같이 최강이라는 수식어가 붙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가장 감각을 자극하는 건…….
역시나, 골목 구석에 위치한 작은 집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이었다.
저릿! 저릿!
피부를 타고 전해지는 따가운 기운.
굳이 하토엘에게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저 안에 가브리엘이 있다는 것쯤은.
“저 안이지?”
“예. 기다리고 계십니다. 먼저 가시죠. 저는 주위를 한 번 점검한 뒤 따라 들어가겠습니다.”
“알겠어.”
엘리스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방 안에는 화사하게 웃고 있는 대천사가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손님 대접이 영 아니네. 최소한 그 기분 나쁜 신성력은 집어넣고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후후. 이거 죄송하군요. 신경 쓴다고 썼는데, 본능은 어쩔 수 없는 법이라서요. 그것도 한때 저희 일족을 쓸어버렸던 아타락시아의 가주라면 더욱더 조심해야하지 않겠어요?”
“아무렴 그러시겠지.”
차갑게 내뱉은 엘리스가 품속에서 편지 한 장을 꺼냈다.
“계약자가 보낸 편지야. 이 안에는 네가 그토록 찾고 싶어 하는 책인지 뭔지의 단서가 적혀 있다고 하더라고.”
“……!”
가브리엘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했다.
화사했던 표정은 간데없고, 탐욕과 본능만이 번들거리는 눈빛이다.
오랜 세월을 찾고 또 찾던 보물의 단서가 눈앞에 들어왔으니, 당연히 평정심이 흔들릴 수밖에.
“아! 그 더러운 손 저리 치우고. 먼저, 너도 줘야 할 게 있을 텐데?”
탁!
엘리스가 뻗어오는 가브리엘의 손을 가차 없이 쳐냈다.
“……강진혁 플레이어님이 알고자 하는 정보입니다. 하스팅의 과거에 관한 기억이 기록되어 있죠.”
가브리엘이 푸른색 보석을 탁자 위에 올려놨다.
‘기억을 머금은 돌’.
단 1번만 재생이 가능한 특수 아이템이다.
이걸로 두 세력이 원하던 교환품이 한 자리에 모였다.
[가브리엘이 Lv?? ‘수평선을 이루는 천칭’을 발동합니다!]가브리엘과 엘리스의 머리 위로, 황금색 천칭이 나타났다.
저울 한 곳엔 밀봉된 편지가. 그리고 다른 한 곳엔 ‘기억을 머금은 돌’이 올라갔다.
서로의 진위를 판별하고 그 가치를 비교하는 성스러운 천칭.
이 스킬을 사용한다면, 거래를 함에 있어 어떠한 부정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실제로 두 정보는 서로 비슷한 수준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네크로 노미콘에 대한 단서가…… 일부에 불과하다는 뜻이겠군요.’
가브리엘이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한 단서였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했을 것이다.
그래도 아예 실마리조차 없던 교착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으니, 훨씬 더 남는 장사리라.
바로 그때.
“단, 이 말도 전하라고 했어.”
엘리스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어떤 말을 말이죠?”
“키자키엘이 거인들의 성채에서 날뛴 덕에 피해가 제법 컸거든. 그에 대한 피해 보상을 추가해 줬으면 해.”
“그런……! 키자키엘은 이번 일이 터지기 전에, 저희 쪽에서 추방당한 타락 천사입니다. 한데, 어찌 그 책임을 저희에게 묻는단 말입니까?”
“아 몰라. 나는 계약자가 전하라 한 걸 전할 뿐이야. 아니면, 뭐? 아예 이 거래를 엎어버릴까? 누가 손해인지는 말해 봐야 입만 아플 것 같은데?”
엘리스가 편지를 찢으려는 시늉을 했다.
“자, 잠깐만요!”
다급해진 건 가브리엘 쪽이었다.
“보상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흐응. 별거 없어. 그냥 우리 성채가 박살난 거 전부 복구해주고 대형 거점이 될 때까지 지원해주겠다는 것 정도?”
“대……형 거점이라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돼.”
되고말고.
엘리스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무조건 강하게 밀어붙여라. 평소 성격대로. 그럼, 모조건 먹힌다. 급한 건 에덴 쪽이니까.
이미 진혁을 통해 확신을 얻었다.
남은 건 계속해서 상대를 압박하는 것뿐.
뿌드득.
가브리엘의 입에서 섬뜩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알겠습니다. 그 계약도 추가로 넣도록 하죠.”
기우뚱하고.
천칭이 한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었다.
누가 봐도 불공정한 계약이었지만, 가브리엘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제안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좋아. 이걸로 됐어.”
엘리스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우우웅!
위이이잉!
성곽을 따라 강력한 마력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사이렌을 연상케 하는 경고음 역시 에덴 전역을 떠들썩하게 뒤흔들었다.
“아무래도 침입자가 들어온 걸 눈치챘나 보네요.”
“너…….”
“이건 정말로 고의가 아닙니다. 하토엘이 이미 말했겠지만, 저희 쪽에서도 내부 문제가 좀 커져서 말이죠.”
가브리엘이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너무 걱정 마세요. 뱀파이어들과 계약을 했다는 사실이 퍼져나가면 곤란해지는 건 저희도 마찬가지니까요. 하토엘.”
“예.”
“엘리스 님을 에덴 밖으로 안전하게 내보내 주세요.”
“알겠습니다. 서두른다면, 아직 막히지 않은 비밀 통로를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쳇! 할 수 없네.”
엘리스가 재빨리 자리를 뜨려 했다.
“아, 이걸 드린다는 게 그만 깜빡할 뻔했네요.”
가브리엘이 붉은 사과 하나를 건넸다.
평범한 사과가 아니다.
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지닌 이건…….
선악과. 혹은 퍼스트 애플.
여러 의미로 불리지만, 에덴을 상징하는 최상위 특수 아이템 중 하나였다.
“이걸…… 나에게 준다고?”
“소중한 사람과 단둘이 있을 때. 이 사과를 먹이면 그 사람을 엘리스 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절대 판정을 지닌 구속력.
이것이라면…….
분명 진혁도 넘어올 것이다.
“물론, 하나 가지곤 안 되겠지만,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시험이라도 해 보라는 뜻에서 드리는 거예요.”
“이, 이런 치사한 방법을 내가 사용할 것 같아? 나는 내 힘만으로도 얼마든지 그 녀석을 나한테 빠져들게 만들 수 있어!”
“흐음. 그렇게 말하는 것치곤 눈동자가 흔들리는데요? 침은 또 왜 흘리면서 숨은 거칠게 몰아쉬는 걸까요?”
“내, 내가 언제!”
“후훗. 아무튼. 다시 뵐 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아타락시아의 가주로서 말이에요.”
가브리엘이 생긋 웃으며 작별을 고했다.
***
콰아앙!
쾅! 쾅! 쾅!
검은색 다리가 사정없이 바위들을 박살냈다.
“젠장! 뭐…… 이런 무지막지한…… 문어가…… 있단 말이냐!”
천유성이 미친 듯이 몸을 움직이며 공격을 피했다.
말이 문어지, 거의 기관총이 몰아치는 것만 같다.
전력을 다해 움직이고 있음에도 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으니까.
“그놈의 통발은 대체 언제까지 설치할 셈이냐?”
“기다려 봐. 자신만만하게 나서 놓고 엄살은……. 난 예전에 저 녀석 상대로 15분은 버텼어.”
“하! 고작 15분? 네놈이 15분이라면 나는 30분도 거뜬하다.”
“30분……이 가능하다고 저 괴물을 상대로? 말도 안 돼. 그건 불가능할 텐데?”
진혁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두고 봐라. 내가 너와는 격이 다르다는 걸 보여 줄 테니.”
쿠쿠쿠쿠쿠!
[천유성이 고유 능력 ‘검의 노래’를 발동합니다!]천유성이 모든 마력을 쥐어 짜내며 류화를 휘둘렀다.
콰아앙!
요기가 서린 검이 문어의 다리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역시 자존심만 센 놈이랑 바보는 다루기 쉽다니까.’
그 중에서 가장 다루기 쉬운 게 자존심 센 바보다.
바로 저 녀석처럼 말이지.
진혁이 콧노래를 부르며, 통발 밖에 있는 철갑 슈림프 한 마리를 꺼내들었다.
다른 슈림프들과 다르게 집게발의 모양이 조금 더 굴곡지고 커다란 놈이다.
이 녀석이 미궁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다.
그리고 이미 열쇠를 손에 넣었지만, 천유성을 저렇게 굴리고 있는 이유는…….
미궁 안에는 딱히 맛있게 먹을 만한 식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맛좋은 재료들이 잔뜩 널려 있는데, 굳이 안에 들어가서 쓰레기 같은 걸 먹을 필요는 없지.’
어디 보자…….
저기 저 녀석은 등에 검은색 선이 있는 게 녹진한 단맛이 풍부할 것 같고.
저 녀석은 아직 산란을 끝내지 않은 게 기름기가 유독 많을 것 같다.
천유성이 목숨을 다해 싸우고 있는 동안, 진혁은 가장 맛있는 철갑 슈림프 7마리를 선별해 아공간 인벤토리에 보관했다.
다음은…….
진혁의 시선이 계곡 안쪽으로 향했다.
수심이 가장 깊어 보이는 웅덩이.
저 바닥 아래 미궁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이제 그만 상대해도 돼! 어서 이쪽으로 와!”
고함을 진 친혁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순식간에, 차가운 물이 전신을 집어삼켰다.
머리까지 얼어붙을 것만큼 냉기는 지독했지만, 정신은 놀랍도록 멀쩡했다.
진혁이 익숙하게 헤엄을 쳤다.
밑으로.
계곡의 가장 밑바닥에 도달할 때까지.
바로 뒤에서 수리부엉이와 천유성이 따라오는 게 보였다.
문어의 거대한 다리 역시도.
서둘러야 한다.
다른 건 몰라도 물속에서 저 거대 문어와 맞닥뜨렸다간, 정말로 위험해질 수 있었다.
뽀그르르!
천유성의 입이 격하게 벌어졌다.
바로 뒤에서 쫓아오는 빨판들을 가리키면서.
빌어먹을. 나도 알고 있다. 당장 문을 개방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것쯤은.
‘집게발을…… 틈에 끼우고 시계 방향 23도로 돌리면…….’
철컥!
역시나.
열쇠를 정확하게 끼워 맞추는 것쯤이야 이미 이골이 날 정도로 많이 해봤다.
[미궁 ‘영원의 계곡 – 태양이 도달하지 못하는 곳’이 개방됩니다!]계곡의 밑바닥이 열리며.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모두의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
“쿨럭! 쿨럭!”
“휴우…… 아슬아슬했네.”
한끝 차이로 미궁 안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조금이라도 늦었다간 천유성이 그대로 문어 밥이 되어버릴 뻔했다.
하지만. 안심하고 있을 새는 없다.
이곳은 23층 내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미궁.
이제부터 이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이쪽을 노리는 함정이라고 생각해야만 한다.
‘그래도 아무리 난이도를 올려 봤자, 기본 공략법만 알고 있으면 충분히 공략할 수 있어.’
진혁이 몸에 묻은 물기를 툭툭 털었다.
그런데.
“너는 우리들이 난이도를 올렸다고 생각하고 있나 본데…….”
잠자코 있던 수리부엉이가 입을 열었다.
“거기에 조금 오해가 있는 것 같군.”
“그게, 무슨 뜻이야?”
“이곳이 평범한 미궁이 아니라는 건 맞다. 하지만, 이곳을 이질적으로 만든 건 우리가 아니라…….”
철컹!
쿠웅!
기묘한 외피로 전신을 감싼 몬스터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말했던 그 녀석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빌어먹을. 대체 언제……! 강진혁!”
천유성이 고함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