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386)
386화. 미궁의 수문장 (1)
드디어 그 녀석의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는 그를 ‘설계자’라 부르기도 하고 혹은 ‘최초의 운영자’라 부르기도 한다. 모든 게 그이며, 그가 곧 모든 것이기도 하지.”
“더럽게 애매모호하게도 말하네. 다수의 세력을 ‘그’라고 지칭하는 거야? 아니면, 그자가 다양한 칭호를 가지고 있다는 거야?”
“글쎄. 우리도 정확한 정의를 내리긴 어렵다. 실제로 관념 자체가 애매한 구석이 있거든. 나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고 싶지만, 보다시피…… 손발이 반쯤 묶여 있어서 말이다.”
수리부엉이가 힐끗 하늘을 바라봤다.
파츠츠…….
파칙!
하늘에서 푸른 스파크가 일어나는 중이었다.
이미, 시스템의 한계에 도달한 거겠지.
“마지막으로 하나 말해 주자면, 녀석은 골치 아픈 능력을 하나 가지고 있다. 기존의 규칙을 허물고 자신만의 규칙대로 탑을 재구성할 수 있는 힘을 손에 넣었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하다고?”
“실제로 이 미궁을 변화시킨 걸 두 눈으로 보지 않았나? 물론, 놈도 아직 완벽하게 자신의 힘을 컨트롤 하는 수준은 아니다만, 어디까지나 시간문제일 뿐. 언젠간 탑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릴 거다.”
수리부엉이가 담담히 현실을 고했다.
“…….”
시간을 끌면 끌수록 위험해진다는 건가.
확실히,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탑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는 능력이라면, 운영자들이 겁을 내는 게 당연한 거겠지.
새영언환이 경고했던 게 이제야 비로소 이해가 됐다.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되는 건데?”
“워낙 난해한 능력이니 적어도 2년은 필요하겠지. 어쩌면 그보다 더 걸릴 수도 있고.”
2년.
진혁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과연, 2년 안에 탑의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과거와 비교하면 너무도 짧은 시간이다.
아무리 기연을 독식하고 실수를 배제했다고 한들 말이다.
“……그때까지 강해져야겠네. 지금보다도 더.”
“그래. 더욱더 성장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미궁을 클리어해야 하는 게 그 첫 번째 관문이겠지.”
“무슨 뜻인지 잘 알겠어.”
여러 가지로 쓸모 있는 정보를 많이 얻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덕분에 조금은 감이 잡혔다.
***
빠르게 바뀌는 시야.
낯선 곳들이 이어졌지만, 쉴 틈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아.하아.하아…….”
엘리스가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대체 얼마나 달려왔는지 모르겠다.
하토엘의 꽁무니만 쫓은 지 벌써 몇 시간.
추격의 고삐는 더더욱 조여져 왔고. 그만큼 체력과 마력은 바닥을 향해 다가갔다.
진혁과 멀리 떨어져서 행동하는 탓에, 공급받을 수 있는 마력이 제한된 것도 크게 한 몫 했다.
‘진짜 피라도 잔뜩 빨고 왔어야 하는 건데…….’
그 부드러운 목덜미에. 날카로운 송곳니를 박고. 격하게 마력을 보충했어야 했다.
“왜 혼자서 그리 헐떡이는 겁니까? 고기를 눈앞에 둔 사냥개마냥.”
하토엘이 미심쩍다는 눈으로 엘리스를 흘겨봤다.
“내, 내가 언제! 그보다 대체 입구라는 건 어디 있는 건데?”
“거의 다 왔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돼요.”
조심스레 주위를 살피던 하토엘이 엘리스의 손목을 붙잡았다.
“잠깐……!”
“왜?”
“바로 앞에 결계가 있습니다. 술식을 보니, 만들어진 지 10분도 되지 않은 새것이군요.”
“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천사들에게만 보이는 함정입니다. 외부의 침입자들을 방어하기 위해 특수한 신성력을 사용했거든요.”
혹시라도 누군가 저 선을 넘는다면 그대로 전투 천사들이 소환될 터.
결국, 마지막 탈출구마저 봉쇄된 꼴이 되었다.
“…….”
하토엘이 곤란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에덴 내부가 살얼음판이 된 거야? 예전엔 좀 더 편안하고 안락한 분위기였는데.”
“내부 사정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내부 사정이라는 게 뭐냐고? 상황이 이 지경이 됐으면 나도 좀 알아야 하는 거 아니야?”
엘리스가 한 번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러자, 하토엘이 긴 한 숨을 내쉬었다.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건 피하고 싶었지만, 그 말대로 언제까지나 숨기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미 엘리스는 이 시궁창에 발을 담게 되었으니까.
“키자키엘의 배신으로 인해 에덴에서 징계위원회가 소집되었습니다. 말이 회의지, 사실상 심판을 내리기 위한 자리였지만요.”
하지만.
“재판이 열리니 생각보다 그를 지지하는 천사들이 많았습니다.”
언제까지 에덴은 조화와 균형을 수호하며, 사악한 세력들의 횡포를 참고 견뎌야만 하는가?
에덴이야말로 진정한 탑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을진대?
키자키엘이 부르짖던 주장은 점점 더 그 힘을 더했다.
앞으로는 다른 세력들의 입장 따윈 존중하지 않고. 오롯이 에덴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해야 한다는 쪽으로.
“그걸로 에덴의 온도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대세였던 온건파가 휘청인 건 순식간이었다.
미카엘과 가브리엘을 비롯한 대천사들은 침묵했고. 대신 우리엘과 라파엘을 비롯한 급진파 천사들이 행동에 나섰다.
반대파를 축출하는 참극까진 가지 않았지만, 에덴이 아닌 세력은 잔인하게 도려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나랑 우리 혈족들이 온 게 알려지면 안 된다는 거였네.”
“맞습니다. 가브리엘 님 역시 이번 일이 알려지면 곤란한 처지에 빠지게 되겠죠.”
대충 어떤 상황인지는 알겠다.
엘리스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계약자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분명, 가장 좋은 길을 찾아냈을 텐데…….
“하아. 모르겠다.”
엘리스가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생각을 하고 머리를 굴리는 건 자신의 취향이 아니다.
그저 본능대로 행동하는 게 적성에 맞지.
“그럼, 우리엘하고 라파엘인지 뭔지 하는 놈들을 모조리 박살내줄 테니, 우리와 정식 동맹 관계를 맺자고. 어때?”
“예?”
하토엘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대체 이 뱀파이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설마…….
“지, 지금 내전을 시작하자는 말씀입니까?”
“응. 원래 한 세력에 머리가 여러 개 있으면 안 돼. 의견 통일이 안 되거든. 뒤통수 맞기도 쉽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충고.
복수의 강자가 균등하게 권력을 나누어 가지면, 반드시 문제가 터진다.
서로가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이지. 불만과 감정은 쌓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여길 나가서 내 계약자와 한 번 만나보자는 거야. 성가신 놈들 박살내는 게 우리 계약자의 특기이자 취미거든.”
“말도 안 되는…… 아니, 잠깐. 지금 뭘 하려는 겁니까?”
“결정이 됐으면 여기서 나가야지. 어차피 시간을 질질 끌다간 마력이 바닥나서 꼼짝없이 독 안에 든 쥐 꼴이 될 거야.”
엘리스가 관절을 우두둑 꺾었다.
비밀 통로가 아닌, 성채를 통째로 날려버리고 밖으로 나갈 심산이었다.
“여, 여기서 날뛰면, 가브리엘님도 곤란해집니다! 제가 말한 걸 제대로 듣기나 한……!”
“미안하지만, 우린 이미 한 배를 탔어. 이제는 모 아니면 도야.”
하토엘이 비명을 질렀지만, 엘리스가 마력을 끌어올린 뒤였다.
[고유 능력 ‘블러드 로드’가 개방됩니다!]쿠쿠쿠쿠쿠!
붉은 핏방울이 사방으로 솟구쳤다.
마력 공급이 원활하지 않음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의 폭풍이 몰아쳤다.
이제 에덴의 모든 이들이 알게 될 것이다.
이곳에 뱀파이어 가문의 가주 중 하나가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왔다는 것을.
***
“으음. 왠지 몸이 오싹하네.”
진혁이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만지작거렸다.
온도가 낮은 건 아닌데, 어째 뼛속까지 한기가 스며들었다.
“또 새로운 적이라도 나타난 거냐?”
천유성이 두 눈을 번뜩였다.
어제의 아픔이 생각났는지, 검을 잡은 손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니, 그건 아니고 뭔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아마, 별 일 아닐 거야.”
“쳇. 별것도 아닌 걸로 사람 긴장하게 만들지 마라. 그렇지 않아도 신경이 곤두 서 있으니까.”
미궁에 들어온 지 2일차.
상급 포션과 ‘별의 가호’로 치료해 준 덕에, 천유성은 제 컨디션을 되찾을 수 있었다.
때문에 이제는 제법 깊숙한 곳까지 진입한 상태였고.
‘그나저나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틀림없이 바로 이 앞에…… 아!
찾았다!
계곡 사이로 묘하게 생긴 석상들이 보였다.
“저게 어제부터 네가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석상들이냐?”
“맞아.”
통칭 ‘자연의 수호자’.
보스 방까지 가려면, 반드시 저기서 나오는 ‘저항석’을 손에 넣어야 했다.
서로 다른 속성 마법이 몰아치는 길은 어지간한 스탯이나 방어구로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국의 기사들도 여기서 포기하고 돌아갔지.’
대마법 방어진이 새겨진 갑주로도 버틸 수 없는 화력.
제아무리 소드 마스터들이 날고 긴다고 해도 체내에 보유하고 있는 마나의 양은 정해져 있는 법이다.
진혁과 천유성이 석상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바로 그 순간.
“새로운 도전자인가?”
“흐음. 세 놈이라…….”
“킥킥. 마침 숫자도 딱 맞네.”
세 개의 석상이 깨어났다.
‘불의 석상’.
‘물의 석상’.
‘바람의 석상’.
각각의 저항석으로 만든 목걸이를 찬 석상들이 키득거렸다.
“우리는 이 미궁을 지키는 가디언 중 하나다. 보아하니 저항석을 가지고 싶어서 온 것 같은데…… 맞나?”
불의 석상이 석상들을 대표해 입을 열었다.
“뭐, 그런 목적으로 왔지. 너희들이 낸 시험을 통과해야만 목에 매달고 있는 걸 얻을 수 있다고 들었거든.”
“호오. 그 기사 놈들한테 정보를 산 건가?”
“킥킥! 쓸데없는 설명은 안 해도 되겠어.”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 우리가 각각 내는 과제를 풀어라.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이걸 넘겨주지.”
단.
“과제에 하나 실패할 때마다 너희 중 한 명의 목숨을 그 값으로 받겠다. 그래도 도전하겠는가?”
“마음대로 해.”
진혁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걸로 계약이 맺어졌다.
진혁과 천유성의 앞에 화려한 문양을 지닌 칼이 나타났다. 불의 석상이 말한 대로. 실패할 경우 절대판정의 효과를 지닌 검이 심장을 꿰뚫어버릴 것이다.
“좋아. 시작하지.”
불의 석상이 손에 들고 있던 두루마기를 펼쳤다.
[불의 시험]내용: 화기를 다루는 것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불의 속성을 이해하는 것. 그 중에서도 자존심 강한 불의 정령들을 복속시킬 수 있다면 ‘불의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단, 복종시킬 수 있는 정령의 숫자에 따라 지급되는 저항석의 크기가 달라집니다.
화르륵!
불꽃이 모이는가 싶더니, 작은 도마뱀들이 나타났다.
날름거리는 혓바닥.
수십 마리의 살라맨더들이 적개심을 드러냈다.
“쉬익!”
“캬오오!”
하급에 불과한 놈들이지만, 숫자가 장난이 아니다.
어지간한 정령사들은 꼬리부터 말고 도망칠 정도로 말이다.
“전부 베어버리면 되는 거냐?”
천유성이 류화를 뽑았다.
“기다려 봐. 힘으로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니까.”
단순무식하게 찍어 누르는 것도 분명,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그렇게 할 경우 진정한 의미의 자격 증명을 얻어낼 수 없었다.
힘으로 굴복시킨 정령은 반드시 반감을 가지는 법이었으니까.
‘멘트라 테이밍을 통해 복속시키는 것도 완벽한 건 아니지.’
친밀감을 조작하는 것 역시 1% 부족한 해결책이었다.
실제로 과거에는 이곳에서 최상급 저항석을 얻는 데 실패했기도 했었고.
그렇다면…….
조금 더 확실한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살라맨더. 잠깐 나와 봐.”
“부, 불렀어 주인?”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통통하게 살이 오른 정령수가 허겁지겁 달려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