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0)
40화 무한 증식 (2)
쿠쿠쿠쿠쿠!
묵직한 마력이 지하 내부를 가득 메웠다.
“젠장….”
엘리스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 탑에 존재하는 절대자들.
엘리스가 한 종의 정점이라면…….
상대는 한 신화의 정점 중 하나이다.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적이라는 뜻이다.
“놈은 내가 맡을 테니까 그동안 어떻게든 위로 빠져나가.”
“응?”
“나야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너라도 먼저 도망치라고!”
“뭐야. 내 걱정 해 주는 거였냐?”
크기는 포메라니안만 해가지고.
당당하게 앞을 가로막는 모습이 뭐랄까.
주인을 지키려는 강아지 같다.
“걱정은 무슨! 나는 그냥, 네가 죽으면 우리가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니까. 그걸 막으려는 거지!”
엘리스가 발끈하며 외쳤다.
“걱정하지 말고 그냥 지켜봐.”
“뭐? 지금 여기서 자존심 부릴 때야?”
“자존심 부리는 게 아니야. 단지, 나를 믿어 달라는 거지.”
보여 줄게.
네가 계약한 플레이어가 누구인지.
그리고 마지막에 웃고 있는 사람이 누구일지도.
***
쿠웅! 쿠웅! 쿠웅!
거대한 굉음과 함께. 3m 크기의 석상이 나타났다.
사막의 자칼을 본떠 만든 외형.
이것이 바로 이 지하의 보스 몬스터인 아누비스다.
“재밌구나. 나에 관한 건 네놈 어깨 위에 있는 진조에게 들은 것이냐?”
아누비스가 ‘질문’했다.
우우우웅!
공기가 급변했다.
이 느낌, 이 감각.
역시, 발동하려는 건가.
시전자가 세 가지 질문을 하고.
대상이 세 가지 질문에 답한다면.
그로써 조건이 충족된다.
……됐다.
진혁의 입 꼬리가 미묘하게 뒤틀렸다.
“그래, 맞아. 아니면 내가 어떻게 이런 곳을 알겠어?”
“역시 그렇군.”
아누비스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조 정도의 고위 생명체라면, 지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도 충분히 가능성 있었다.
“이곳에 온 목적은 ‘하이브’를 노리고 온 걸 테고?”
“뭐, 그런 셈이지. 그거 사다가 블랙마켓에 팔아먹으면 한 몫 단단히 챙길 수 있거든.”
무한으로 곤충들을 증식할 수 있는 이이템이라면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다.
이걸로 두 번째.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묻겠다. 도굴꾼이여, 보물에 눈이 머는 것은 미물들의 당연한 습성이다만, 나의 영역에 들어와 놓고 살아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거였나?”
마지막치곤 꽤나 재미없는 질문이네.
그거야 당연히…….
“너 하나 따돌리지 못하면 혀 깨물고 죽어야지.”
진혁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우우우웅!
신의 능력이 발현되었다.
[요구 조건이 모두 충족되었습니다.] [아누비스의 심판이 발동됩니다!] [모든 스탯이 50%만큼 하락합니다!] [고유 능력과 스킬의 사용이 1분간 봉인됩니다!]연거푸 나타나는 상태창들.
동시에 전신에 있던 마력과 힘이 급속도로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예리했던 감각이 무뎌지고 손에 익은 스킬과 고유 능력들이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이 능력의 진정한 무서움은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것이었으니까.
[아누비스가 ‘심판의 대전자(對戰者)’를 선정합니다!]“소개하마. 이것이 바로 나의 손과발이 되어줄 대전자이다.”
낮고 굵은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키에에에엑!”
지금까지 상대했던 곤충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력한 마력이 솟구쳤다.
쿠쿠쿠쿠쿠!
지하 전체가 떨렸다.
신의 간택을 받아, 그의 명령을 따르는 대전자.
그렇기에, 대전자는 앞길을 가로막는 모든 적을 분쇄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된다.
묵빛이 감도는 외피와 눈이 시리게 빛나는 앞발톱이 눈에 띄었다.
‘이 녀석의 레벨이 71 정도였지?’
회랑에서 만났던 혈족들의 레벨이 50대 후반이니, 그보다 높은 거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지금은 ‘아누비스의 심판’으로 인해 스탯과 고유 능력이 봉인된 상태였으니까.
진혁은 검강이 실려 있지 않은 단검을 손에 꽉 쥐었다.
“침 좀 그만 흘려라. 그렇게 내 머리가 뜯어먹고 싶은 거냐?”
“키이이이!”
굳이 마수어를 몰라도, 저건 ‘그렇다’라는 뜻일 거다.
그러고 보니 고유 능력 중에 마수어를 사용하는 놈도 있었는데.
관련 능력들을 융합하면 어떤 게 튀어 나오려나?
진혁이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사삭!
자이언트 멘티스가 모래 위로 빠르게 미끄러졌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낫처럼 생긴 발톱이 목을 향해 뻗어 왔다.
그러나.
카가가각!
진혁이 단검으로 궤적을 살짝 비틀었다.
발톱이 허공을 갈랐다.
“케엑?”
휘청하고.
자이언트 멘티스의 몸체가 앞으로 크게 기울었다.
무게중심이 완전히 흔들린 탓이다.
‘완전히 빈틈투성이군.’
겹눈깔로 360도를 볼 수 있으면 뭐 하나?
반응할 수 있는 시간이 없는데.
진혁의 눈에 장난스러운 이채가 맴돌았다.
동시에, 단검이 자이언트 멘티스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푸욱!
살이 헤집어지는 파육음.
초록색 체액이 뿜어졌다.
갑주로 뒤덮인 부분이 아닌, 연결 부위를 노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키에에에에!”
처절하게 울려 퍼진 비명이 동굴 전체를 휘감았다.
이제 겨우 다리 하나 가지고 엄살은.
진혁은 검을 뽑고 살짝 거리를 벌렸다.
“고작 인간이라고 방심했지? 그러니까 애꿎은 다리 하나 잃은 거 아니야.”
꼭 어중간하게 강한 놈들이 이러더라.
상대를 얕잡아보고 설렁설렁하다가 역으로 한 대씩 처맞는.
“키이이이.”
자이언트 멘티스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절단된 채 체액이 뚝뚝 떨어지는 다리를 바라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아주 잠시뿐이었다.
꿀렁!
잘린 다리가 새로 돋아났다.
“……할 말이 없게 만드는구만.”
이건 뭐 피콜로도 아니고. 자를 때마다 쑥쑥 자라났다.
진혁이 재빨리 자세를 잡았다.
온다.
콰앙!
지면을 박차는 소리와 함께 자이언트 멘티스가 재차 도약했다.
호선을 그리는 발톱.
‘이건…….’
틀림없다.
얼핏 봐선 티가 잘 안 나지만, 발톱에 흰색 강기가 맺혀 있었다.
그대로 맞부딪쳤다간 검이 버티질 못할 터였다.
그렇다면.
부웅!
진혁이 머리를 움직여 공격을 피했다.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간 흉기.
부우웅! 부우우웅!
이어지는 공격들 또한 허공을 갈랐다.
결코 속도가 느린 게 아니다.
전투가 지속됨에 따라 곤충 특유의 탄력을 받기 시작한 데다, 대전자 버프까지 받은 상태.
때문에 현재 자이언트 멘티스의 발톱은 눈으로 식별하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혁은 그 모든 것들을 종이 한 장 차이로 빗겨 냈다.
마치, 리듬을 타는 듯 독특한 움직임으로.
‘역시 노래는 트로트지.’
이미 전투를 시작했을 때부터, 진혁의 머릿속엔 노래 한 곡이 재생되고 있었다.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걸쭉한 음색과 중독성 있는 멜로디.
이 지하에 있는 곤충들과 싸울 때마다, 이 리듬감에 맞춰 공격 타이밍을 외웠었다.
신기하게도 급소를 노리는 공격이 올 때마다 이 리듬감에 맞춰 피하면, 서서히 상대의 체력을 낭비시킬 수 있었다.
‘이거 어째 예전보다 더 잘되는 것 같은데?’
아니, 진짜로.
예전에는 가끔 한두 번 엇박이 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사소한 실수조차 없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움직임에 진혁은 가빠지는 호흡마저 즐겁게 느껴졌다.
부우웅!
부웅!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공격의 속도가 느려졌다.
발톱의 외형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좋아. 이쯤에서…….’
진혁이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상단에서 오는 공격을 마지막으로 피하고.
부우우웅!
텅 비어 있는 틈을 노린다!
최대한 힘을 준 상태에서 자이언트 멘티스의 뒷다리를 찍었다.
푹! 푹! 푹! 푹!
힘줄을 노린 깔끔한 일격.
순식간에 네 번의 벌침을 먹여준 진혁이 또 다시 여유롭게 거리를 벌렸다.
“케에엑!”
쿠웅!
자이언트 멘티스가 꼴사납게 자리에 널브러졌다.
물론, 치명상을 입은 건 아니다.
어차피 상처야 회복될 테니까.
‘하지만 마음에 남은 상처는 평생 가는 법이지.’
진혁이 비틀거리며 일어서려는 자이언트 멘티스 앞에 섰다.
그리고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키에에엑!”
분노한 자이언트 멘티스가 다시 일어나면, 쓰러뜨린 뒤.
곧바로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여기서 포인트는 절대 힘들어 하는 표정을 짓지 않는다는 거다.
여유로운 분위기와 가볍게 올라간 입 꼬리.
마지막으로 ‘너는 백년이 지나도 나를 이길 수 없을 거다’라는 표정까지.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았지만, 괜찮다.
강한 상대를 능욕하는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고인물이 이 세계에 존재하는 이유였으니까.
***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냐!”
아누비스가 분노와 경악으로 얼룩진 괴성을 내질렀다.
압도적인 승리를 확신한 싸움이 정반대로 가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이 상황을 믿기 힘든 건 엘리스도 마찬가지였다.
“강한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남다른 인간이었다.
그건 인정한다.
혈족 중에서도 뛰어났던 벨루스조차 고전하다 결국엔 패배했으니까.
하지만, 회랑에서는 모든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을 때였고.
너프를 먹고 고유 능력과 스킬이 봉인된 지금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이야기다.
‘감각과 반사 신경만으로 상대를 농락하다니.’
엘리스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보면서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더군다나 상대는 아누비스가 지정한 대전자 아닌가?
그걸 상대로 저토록 여유를 부리는 건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엘리스의 눈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이언트 멘티스 앞에서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진혁이 보였다.
‘정말, 저 녀석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어.’
아타락시아 가(家)의 몰락과 그것을 초래한 여섯 가문에 대한 증오.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한 인간이 그 숙원을 풀어 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두근! 두근! 두근!
엘리스의 심장이 고요하게 뛰기 시작했다.
기대감과 설렘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고양감이 전신을 따라 퍼져 나갔다.
그리고 바로 그때.
깔끔하게 잘린 자이언트 멘티스의 다리가 하늘 높이 솟구쳤다.
***
후두둑.
진혁이 단검에 묻은 체액을 바닥에 털어 냈다.
‘좋아.’
이로써 자랑하던 양 발톱을 모두 제거해 버렸다.
“키, 키이이…….”
자이언트 멘티스가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호전성이 극도로 높은 곤충형 마수들에게선 보기 힘든 광경이다.
왜? 이제 그만 덤비게?
“사냥을 좋아하는 거 아니었나?”
여태껏 그리 기세등등하게 날뛰어 놓곤, 벌써 그만두려고?
물론, 이해는 한다.
사냥은 쫓기는 쪽보다 쫓는 쪽이 재밌는 법이니까.
하지만, 이번엔 사냥꾼이 사냥감이 될 차례다.
“뭐 하는 거냐! 물러서지 말고 싸워라! 맞서 싸우란 말이다!”
아누비스가 목소리를 높였다.
답답했는지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내려쳤다.
그러나 이미 완전히 공포에 질려 버린 자이언트 멘티스는 주인의 명령을 듣지 못했다.
“뭐 해? 빨리 뛰어야지.”
진혁이 단검을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입술을 모아 십부터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다.
최대한 멀리 도망가라.
쉽진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