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04)
404화. 망자가 잠든 신전 (2)
“키에에에!”
“신선한 육체다… 아주 팔팔해…!”
유적에 본격적으로 진입하자, 그 안에 있던 기생체들이 반응했다.
외관은 각종 몬스터와 유사했지만, 전신에 튀어나와 있는 기묘한 집게발들은 이들이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츠츠츠….
전신을 따라 피어오르는 보라색 가루.
일정 시간 이상 노출될 경우 몸을 서서히 마비시키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오우거와 오크, 트롤, 리자드 맨 등. 각기 다른 외형을 한 기생체들이 무기를 뽑았다.
“도망 다니면 귀찮으니… 두 다리부터 잘라주지!”
먼저 움직인 건 가장 커다란 체구의 오우거였다.
어지간한 성인 남성만 한 도끼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그런데.
콰앙!
천지를 토막 낼 듯 휘두른 도끼가 허공에서 그대로 멈췄다.
“크에?”
오우거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무리 힘을 써도 움직이질 않는다.
일반적인 오우거의 근력에 3배에 해당하는 힘을 갖고 있음에도, 도끼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고작 이 정도라면 너무 실망인데…. 나름 까다로운 놈들이 가득 차 있다고 해서 조금은 기대하고 왔는데 말이야.”
진혁이 단검에 조금씩 힘을 줬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오우거의 몸이 옆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머, 먹잇감… 주제에….”
“네 이야기겠지.”
서걱!
너무나 깔끔한 절단음.
짙은 피보라가 뿜어졌다.
쿠웅!
상반신이 잘린 오우거가 그대로 무너졌다.
“……!”
“……?”
킥킥거리던 웃음소리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기생체들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눈앞에 나타난 침입자는 기존에 왔던 놈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너희 둘은 탱킹 위주로 해줘. 기생형 몬스터들이라도 너희한테 기생할 순 없을 거야.”
언데드와 호문쿨루스.
둘 다, 기생할 수 없는 신체를 가지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 둘을 이번 레이드에 합류시켰다.
“달그락. 모처럼 마스터랑 같이 싸우게 돼서 영광이다.”
“나도 나쁘지 않아.”
티본과 프레이가 긴 장검과 단창을 꺼냈다.
콰앙!
셋이 동시에 도약했다.
[티본이 Lv16 ‘광역 도발’을 발동합니다!]티본이 기생체들의 한복판으로 파고들어 어그로를 끌었다.
각종 병장기가 쇄도했지만, 티본의 검막을 뚫어내는 덴 역부족이었다.
‘기생감염’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집게발과 촉수들도 뼈 밖에 없는 티본의 몸을 뚫을 수는 없었으니까.
텅 빈 동공에 초록색 안광이 타올랐다.
퍼퍼퍽!
티본이 홀로 열 마리가 넘는 적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그리고 그 틈을 노려.
진혁이 허공 위로 도약했다.
10 강화가 끝난 홍련과 손에 익숙해진 바너드는 그야말로 종횡무진 움직였다.
“키에에에!”
“크아아!”
크기가 큰 중형종이든, 몸이 날랜 소형종이든 소용없다.
애초에 고속으로 움직이는 진혁은 눈으로 쫓을 수조차 없었으니까.
콰득!
트윈 헤드 오우거의 심장에 바람구멍이 생겼다.
‘진짜 손맛이 장난 아니네.’
진혁이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유적 입구에 있는 기생형 몬스터들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해도 기존 몬스터보다 최소 3배~5배 이상 강화된 상황.
하지만, 홍련은 그런 것 따윈 안중에 없다는 듯 불꽃을 뿜어내고 있었다.
탓.
‘음영극살’을 통해 순식간에 반대편에 나타난 진혁이 재차 검을 휘둘렀다.
채 비명소리도 내지 못한 트롤의 머리가 반대편까지 날아갔다.
“강하…다.”
“우리로는 안 돼.”
“위에 알려야 해. 괴물이 왔다고.”
승산이 없다는 걸 깨달은 기생체들이 도주를 선택했다.
“왼쪽. 다섯 마리 빠져나갔어. 내가 처리할게.”
프레이가 즉각 반응했다.
퍼퍽!
포물선을 그린 단창이 고블린의 외형을 한 기생체의 머리를 박살낸 순간.
프레이는 어느새 다른 방향으로 도주하는 고블린에게 도달해 있었다.
“너희가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는 확률은 1.35% 이하야.”
여전히 무표정하게.
그저 계산된 확률만을 읊조렸다.
심지어 상대의 숨통을 끊는 그 순간까지도 어떠한 감정의 기복은 보이지 않았다.
“키이…이?”
푹!
단창이 목젖을 헤집고 반대쪽으로 튀어나왔다.
*
“다들 고생했어. 처음 합을 맞춰 본 건데 나쁘진 않네. 이렇게만 계속하면 될 것 같아.”
진혁이 전장을 정리한 뒤, 티본과 프레이에게 다가갔다.
전투를 한 건 고작 3분 남짓이었지만, 각자가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이 정도는 기본이다 마스터. 솔직히 이런 버러지들을 상대로 뼈대 있는 이 몸이 나서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것 같다.”
딱 하나. 저 녀석은 입만 좀 다물고 있으면 좋으련만….
언젠가 쓸모없어지면 반드시 사골국으로 고아버리고 말겠다.
옆에 있던 프레이 역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잘…했어? 나도?”
“응. 프레이도 잘 했어.”
“……그렇구나.”
프레이가 두 손으로 단창을 꼭 쥐었다.
“더 많이 찔러 죽일게. 한 마리도 남기지 말고.”
또옥…. 또옥….
창날을 따라 붉은 핏방울이 떨어졌다.
어째 느낌이 살짝 쎄하긴 하다.
같은 편인데도 오싹한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
한 끗이라도 잘못 발을 내디뎠다간 완전히 이상한 쪽으로 가는 건 아니겠지 설마.
그런데 유적의 새로운 지역이 개방되었을 때였다.
“끄아아악!”
“사, 살려줘!”
앞쪽에서 다수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감지되지 않던 다수의 마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비명이라고?”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곳에 공격대가 있을 리 없다.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는 대형 길드라면 모를 리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처절한 비명소리는 결코 몬스터들이 흉내낸 것이 아니었다.
“프레이! 티본!”
“응. 주위부터 확보할게.”
“달그락!”
셋이 동시에 앞쪽을 향해 치고 나갔다.
***
비명소리가 들린 곳에 도착했을 땐 이미 꽤나 늦은 상황이었다.
카앙! 카카캉!
병장기를 휘두르며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는 플레이어들.
그러나, 이미 삼분의 일 이상은 싸늘한 시체가 된 지 오래였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기생체에 당해 또 다른 기생형 몬스터가 되어 있었지만.
“킥킥! 너희도 어서… 우리랑 함께하자.”
“그래. 인간이었을 때와 달리 느낌이 끝내준다고!”
“약해 빠진 몸은 이제 끝이야. 크하하하!”
두 눈에 핏발이 선 플레이어들이 검과 창을 휘둘렀다.
“으아악!”
“도, 도망쳐!”
“젠장. 뭐 이런 유적이 다 있어?”
“그러게 내가 아예 들어오지도 말자고 했잖아!”
일방적으로 밀리는 전열.
가뜩이나 엘프에게 기생한 기생체들 때문에 고전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조금 전까지 함께 싸우던 아군들까지 적으로 탈바꿈했다.
공포에 질릴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한 현실이다.
바로 그 순간.
부우웅!
붉은 섬광이 직선으로 가로질렀다.
유성우가 떨어지듯, 낙하한 빛이 엘프들 사이를 강타했다.
콰아아앙!
거대한 크레이터에서 흉흉한 불길이 치솟았다.
‘적색마탄’과 ‘멸천만독’이 섞인 폭발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놈은 없었다.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열기에 피부가 따가울 지경이었으니까.
진혁이 손끝에 마력을 집중했다.
크레이터 한 가운데 박혀 있는 홍련이 그대로 뽑혀 진혁의 손안으로 들어왔다.
“다들 괜찮습니까?”
“가, 강진혁 플레이어님?”
“진짜야?”
“아니, 어떻게 여기에…. 당연히 30층으로 가셨을 거라 생각했는데….”
간신히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이 놀란 얼굴로 진혁을 바라봤다.
“이 유적은 개인적인 볼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떤 일로 이곳까지 온 거죠? 분명, 이 유적은 각성자 협회와 대형 길드 내에서도 출입을 금했을 텐데요?”
김희웅과 오지원을 통해 전해들은 바로는 지난 번 레이드 이후 3000위 안에 들어가는 랭커 7명을 잃었다고 한다.
전원이 B급 던전을 솔로로 공략할 수 있는 실력자라고 봤을 때, 난이도가 예상을 훨씬 상회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무모하게 안으로 들어오다니….
진혁의 시선이 플레이어들이 입은 갑주로 향했다.
청록색 거미 문양.처음 보는 길드 마크다.
그렇다는 건….
“길드 홍보를 하기 위해서 여기에 왔다는 거겠군요. 후우. 다들 제정신들인지….”
“하하…. 그… 아시잖습니까? 저희 같은 신생 중소길드가 크려면 이런 방법 밖에 없다는 걸?”
맨 처음 말을 걸었던 남자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다 같이 죽자고 이런 곳까지 기어왔다는 건가요? 가장 강한 플레이어도 A급이 간당간당한 수준으로?”
“저, 저희도 입구에서만 잠깐 싸우다가 바로 나갈 생각이었습니다. 홍보는 그걸로 충분하니까요.”
하지만.
“누군가 유적의 입구를 막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깊숙이 들어올 수밖에 없었어요.”
입구를 막았다? 이번 유적은 게이트 가디언도 없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거죠?”
“모르겠습니다. 저희도 워낙 정신이 없어서….”
남자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부뿐인 단서이긴 했지만, 대충 어떤 상황인지 파악이 됐다.
하급 기생체들이 유적의 입구를 봉인할 정도의 능력을 지니고 있진 못할 터.
마인들이 남긴 함정이 아직까지 남아 있거나.
혹은 뿔뿔이 흩어진 마인 중 일부가 여전히 이곳에 있다는 뜻이겠지.
어느 쪽이든 일이 꽤나 재밌게 흘러간다.
***
망자가 잠든 신전의 최심부.
한때 마왕을 강림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유적은 어느새 잠들어버린 기생체들만이 가득한 무덤으로 변해버렸다.
아니, 정확히는 아직 몇몇 이들이 남아 있긴 했다.
진혁에게 수장인 니체와 원탁에 소속된 기사들을 잃어버리고 해체되어버린 마인 협회.
그리고 그 잔존 세력들이 모여 만든 껍데기가 말이다.
콸콸콸!
약 10m에 이르는 원형 제단을 따라 붉은 피가 끝없이 쏟아졌다.
“놈은 지금 어디에 있지?”
아름다운 외모의 악마가 입을 열었다.
군타페르의 명을 받고 유적에 온 서큐버스 ‘레미아’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모여 있는 이들이 대답했다.
“현재. 3구역을 통과했고 더욱 깊숙이 들어오는 중입니다.”
“속도를 보면 이곳에 오기까지 이틀이면 충분할 것 같군요.”
“같이 온 데스 나이트와 푸른 머리 여자도 상당히 강해요. 그나마 아타락시아의 가주를 비롯해 다른 동료들은 없는 것 같습니다.”
임시 수장 모드레드.기사 중 하나인 퍼시벌.
마찬가지로 기사 작위를 가지고 있는 트리스탄이 간부급에 해당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스무 명 남짓한 마인들과 멜레나 역시 함께 있었다.
“고작 셋이서 여기로 온 건가.”
레미아의 입 꼬리에 비릿한 미소가 맴돌았다.
그동안 워낙 골치 아프기로 악명이 높아 걱정했는데.
이 정도면 준비한 노력이 오히려 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레미아님.”
“그래. 모드레드. 말하거라.”
“청하건데, 놈의 마지막 숨통을 끊는 영광은 저에게 주실 수 있겠습니까?”
모드레드의 얼굴에서 지난 세월이 스쳐 지나갔다.
원대한 계획은 모조리 물거품이 되고, 정부와 길드에 쫓겨 도망만 치던 삶.
복수라는 원동력이 없었다면 진즉에 미쳐버렸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드디어 그 모든 걸 보상받을 수 있는 시간이 도래했다.
그것도 마왕의 직속 부하 중 하나의 지원을 받으면서.
그리고. 이번 일에서 눈도장만 확실하게 찍어둔다면 앞으로의 인생 역시 완전히 바뀌게 될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만 얻으면 그 뒤는 마음대로 해도 좋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인 모드레드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레미아가 청록색 거미줄로 만든 의자에 몸을 뉘었다.
“어서 오렴. 이곳에 잠들어 있는 수많은 망자들 중 하나로 만들어 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