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06)
406화. 망자가 잠든 신전 (4)
치이익!
“키에에에….”
희미한 비명과 함께 검은색 연기가 흘러나왔다.
이걸로 테슬론과 실비아의 몸에 있던 기생충이 완전히 사라졌다.
마침내 끔찍했던 악몽으로부터 해방되게 된 것이다.
“덕분에 살았어요. 진혁 님. 만약 와 주시지 않았더라면 저희는 영원히 이 녀석들이 시키는 대로 동족을 해쳤을 거예요.”
실비아가 진심을 담아 감사를 표했다.
얼굴에서 그간의 고생이 느껴졌다.
자신이 속한 층계와 마을을 벗어나 이 먼 곳까지 왔으니, 당연히 몸도 마음도 지칠 수밖에 없겠지.
반면.
“죽일 거다. 반드시 죽일 거다. 오크 어금니에 낀 치석 같은 놈 같으니라고.”
테슬론이 연신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게 누가 까불라고 했나?
얌전히 있었더라면 곱게 치료제만 먹였을 텐데.
진혁이 테슬론을 완벽하게 무시한 채 실비아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왜 너희가 여기에 있어?”
“그게…. 최근 들어 마계에서 닥치는 대로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어요. 원래라면 중층부 이상에서나 보이던 마족들이 이웃 부족의 엘프들이 사는 곳까지 오더니, 이내 마을 엘프들을 포로로 잡아갔죠.”
“…….”
진혁의 표정이 변했다.
‘지금 타이밍에 하필 엘프들을 사냥하면서 영역을 확장하다니.’
마계는 같은 층계로는 에덴과 영역을 나누고 있다.
아래로는 올림포스와도 국경을 접하고 있었고.
그렇게 양쪽이 적으로 둘러싸인 상황에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건, 다른 세력들의 침공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다는 뜻.
상대는 아마 올림포스겠지.
세력 전쟁을 하고 있으면서 에덴과 아스가르드를 견제할 수 있는 건 오직 올림포스 하나뿐이었으니까.
좋아.
이것만으로도 실비아와 대화를 한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근데, 너희는 어떻게 연루된 거야? 엘프 마을에는 내가 결계를 쳐 뒀는데?”
상위 마족이라도 현현하지 않는 한 결계가 파훼될 일은 없었다.
그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둔 결계였다.
“진혁 님의 결계는 그대로 있어요. 저희는 마을 밖으로 나왔다가 마족들에게 포로가 된 거예요. 하이엘프들이 모든 엘프 종족에게 도움을 구했거든요.”
“그 녀석들은 엘프들의 수호자격이니까 동족들이 당하는 걸 지켜볼 수만 없었겠지. 그래 어떻게 된 상황인지 대충 이해됐어.”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우리는 갈 길을 가겠다. 실비아. 주위에서 그나마 쓸 만한 게 있으면 죄다 긁어모아라.”
“예? 아… 네. 대장님.”
실비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고개를 끄덕였다.
진혁이 즉각 되물었다.
“어딜 가려는데?”
“살아남았으니 엘프 전사들과 합류할 생각이다. 더 늦기 전에 이 빌어먹을 기생체들을 전부 쓸어버리고 엘프들을 공격한 마족 역시 찾아 죽여 버려야지.”
“엘프들이 있다고? 여기에?”
“그래. 기생체들과 싸우고 있는 하이엘프 부족이 있다.”
호오. 아직 감염되지 않은 엘프들이라.
이건 예상하지 못했던 건데….
엘프 군대가 이 층계에 있다면 여러 가지로 써먹을 방법이 있다.
집단으로 움직이는 병대 중에서 가장 기동성이 좋은 게 바로 하이엘프들이었으니까.
“나도 같이 갈게.”
“뭐?”
“너희 둘이서만 기생체들 소굴을 지나가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야. 든든한 보호자라도 한 명 있으면 모를까.”
“와아! 하긴, 진혁 님이 함께 해주신다면 든든하죠.”
“실비아! 지금 누가 누구 편을 드는 것이냐!”
“그, 그게 아니라… 저는 단지 안전하게 가려면….”
“에헤이. 우리 레인저 대장님. 왜 이렇게 까칠하실까. 애먼 데 화풀이하지 말고. 현실적으로 보자고. 게다가 내가 그냥 가겠다는 게 아니잖아. 여기 근사한 선물도 있다고.”
진혁이 밧줄을 끌어당겼다.
그러자.
“끄으으….”
바닥을 따라 조남철이 질질 끌려왔다.
“마인이야. 마족들의 손발이 되어 움직이는 쓰레기들이지.”
“이 녀석을 우리에게 넘기겠다는 말인가?”
“정보도 빼내고 엘프의 법도에 따라 재판도 하고. 하이엘프들 쪽에서도 널 영웅처럼 대접하게 될 걸?”
“……흠.”
순간, 테슬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진혁의 말대로 적의 포로를 데리고 간다면 자신의 평가가 대폭 상승할 게 틀림없었다.
게다가 얄미운 놈이긴 해도 실력 하나는 보장되어 있는 셈.
자존심만 굽힌다면 손해 볼 일이 없는 제안이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좋아. 대신, 한 가지만 약속해라.”
“어떤 약속?”
“하이엘프들을 두드려 패거나….”
“야! 나를 뭘로 보고!”
“거기 있는 무기나 보물들을 절대 훔쳐선 안 된다.”
“……크흠!”
“빌어먹을 그럴 줄 알았다! 이번에도 또 도둑질 하려고 했던 거지?”
“아니, 내가 훔치겠다는 게 아니라. 쓰는 주인도 없이 방치된 게 있으면 응? 좋은데 좀 사용하겠다 뭐 이런 거지.”
어금니나 송곳니가 아직까지 동굴 속에 처박혀 있어봐라.
장식용으로는 그럴듯해 보일지 몰라도 실용성은 쥐뿔도 없었을 거다.
“개소리 말고. 약속해라. 네 명예를 걸고.”
“알았어. 하여간 눈치는 빨라가지고.”
진혁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을 때였다.
띠링!
갑자기 눈앞에 푸른 상태창이 나타났다.
[‘상위 거주자’로부터 통화 요청이 왔습니다.]발신자는 칠죄종 중 하나인 ‘나태’.
일전에 목숨을 살려주는 대가로 정보를 약속받은 회사의 직속 노예였다.
“잠깐만.”
진혁이 잠시 자리를 옮겼다.
갈대에 가려진 장소에 도착하자 진혁이 통화 요청을 수락했다.
“중요한 정보여야 할 거야. 지금 좀 바쁘거든.”
“어으…. 중요해. 중요한 거 맞아. 사실 더 빨리 말했어야 했는데…. 귀찮아서….”
누가 나태의 죄악 아니랄까 봐.
목숨이 걸려 있는데도 목소리에서 귀찮음이 뚝뚝 묻어나왔다.
“서론은 됐고 본론만 말해. 별것도 아닌 걸로 부른 거라면 즉시 염혼의 낙인을 발동해 재로 만들어 버릴 거야.”
“지금… 27층에 있지? 그 신전인지 뭔지 하는 곳에 말이야.”
“계속해 봐.”
“상위 마족이… 그쪽으로 갔어. 이름은 레미아. 서큐버스로 군타페르의… 뭐였더라? 아무튼. 꽤 짜증나는 여자야.”
레미아 셀트릭.
그래, 알고 있는 이름이다.
군타페르의 심복으로 꽤나 강력한 고유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
맡은 임무는 반드시 완수하는 데다, 그 과정까지 깔끔해 마왕급을 제외한다면 가장 성가신 적 중 하나다.
“그리고 ‘탐식’ 그 걸신 걸린 자식도 왔어. 조심하라고. 그 말… 하아. 전해주려고 연락한 거야. 이 정도면 목숨 값은 됐지?”
“……!?”
칠죄종 중 하나까지 이곳에 왔다니.
이거, 생각보다 판이 커지는데…?
‘조금 가볍게 마무리 짓고 위층으로 올라가려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릴지도 모르겠네.’
지금 플레이어들은 한창 29층에서 해상전을 준비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30층에 진입하기 전에 29층에서 혜택을 얻어야 한다는 조언을 들은 것이다.
‘플레이어들이 29층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1~2주는 걸릴 테니, 그때를 타임 리미트로 잡아야겠군.’
적어도 해룡(海龍) ‘기간트달로스’가 등장할 때까지만 돌아가기만 하면 될 터.
상황이 어려워지는 만큼 돌아오는 리턴 또한 클 것이다.
두근! 두근! 두근!
그렇게 생각하자 기대감과 흥분감에 심장이 기분 좋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
첨벙! 첨벙….
종아리까지 푹푹 빠지는 진창.
앞으로 갈수록 늪지대가 깊어졌다.
“하이엘프들이 정말로 이런 곳에 있는 거야?”
진혁이 혀를 찼다.
마력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음에도 늪지대를 가로지르는 게 보통 힘겨운 게 아니었다.
테슬론이야 말할 것도 없고 실비아는 아예 한 걸음 떼는 것조차 한계처럼 보였으니까.
“거의 다 왔으니 조금만 참아라. 그보다 대체 이 해골바가지는 왜 데리고 온 거냐? 거기다 저 옆에 있는 소녀는 사람도 아니잖느냐?”
“아. 우리 티본?”
“달그락.”
티본이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괜찮아. 얜 언데드여도 별종이라 엘프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렇다. 난 칼슘이 듬뿍 들어간 우유를 좋아한다. 가능하다면 오우거 밀크가 제일이지.”
“봤지? 엘프 고기는 싫어한다잖아.”
프레이 역시 얌전히 명령만 따를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테슬론 입장에서는 이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백날 말해 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을 테니 그저 구시렁대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늪지대가 끝나는 지점이 나타났다.
오래 전 버려진 듯한 성채.
나무로 대충 만든 외부는 그야말로 무너지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엘프들이 사는 곳치곤 영 분위기가 묘하네. 차라리 언데드 마을이라고 하는 게 나을 지경이야.”
“마스터. 언데드도 저런 곳에서 사는 건 사절이다. 최소한 5년 이하 신축 남향에 근린시설이 전부 갖춰져 있다면 모를까.”
“원숭이 세 마리.”
테슬론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쿠쿠쿠쿠!
성채 전체가 흔들렸다.
낡아빠진 목책들 위로 웅장한 거목들이 솟구쳤고. 이내 하늘을 뒤덮을 듯 빼곡한 풀들이 자라났다.
대자연으로 이루어진 천혜의 요새.
여러 종류의 결계와 대마법방어진이 중첩된 정문은 한 눈에 봐도 심상치 않았다.
“적의 눈을 피하기 위해 나름대로 대비를 했지. 암호를 아는 이만 들어갈 수 있게 말이다.”
“과연, 이러면 어느 정도 눈속임은 가능하겠네. 우리 슬론이 생각보다 더 똑똑하구나?”
“거지같은 애칭으로 부르지 마라. 뒤통수에 화살 맞고 싶지 않으면.”
바로 그때.
“웬 놈들이냐!”
나무 사이에서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들렸다.
하이엘프 전사들이다.
“6층, 레인저들을 이끄는 테슬론입니다! 기생충에게 당했다 간신히 탈출해 이곳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테슬론?”
“아! 기억나. 4레인저 중대를 이끌던 엘프로군.”
“예, 맞습니다! 어서 안으로… 헉?”
테슬론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나왔다.
귓가를 스치고 지나간 화살이 지면에 박혔다.
아직까지 파르르 떨리는 화살대.
대놓고 위협하려는 게 분명했다.
“어…째서?”
“기생충에 감염된 자가 다시 제정신을 차리는 경우는 없다. 무슨 수를 써서 이성을 되찾은 척 연기할 수 있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어설픈 수작질은 통하지 않을 거다.”
“오, 오해입니다! 저희는 정말로 몸속에 있는 기생충들을 제거했습니다!”
“호오. 그래? 어떻게 말이지? 그 옆에 있는 언데드가 도와주기라도 한 건가?”
하이엘프들이 적개심 가득한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한 모양이다.
물론, 저런 식으로 쌓인 오해는 쉽게 풀릴 리도 없다.
“말로 해서는 한 세월이 걸리겠네. 조무래기들이랑 대화할 시간 없으니까. 냉큼 위에 놈 불러와.”
진혁이 앞으로 나섰다.
“건방진…!”
“감히, 인간 따위가 하이엘프에게 명령을 한 것이냐?”
엘프들의 고운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귀만 토끼처럼 길고 소리는 제대로 안 들리는 건가? 아니면 풀만 뜯어먹더니 지능이 퇴화해서 했던 말을 100번씩 다시 해줘야 이해를 하는 건가? 너희 살려주려고 애를 쓰는 중인데, 자꾸 인내심 긁지 말고 문 열어.”
“이 찢어 죽일 놈이!”
눈이 뒤집힌 하이엘프들이 시위를 당겼다.
이번에는 경고가 아닌 사살이 목적이다.
“어림없어.”
“달그락. 더러운 날붙이를 마스터에게 들이대다니.”
프레이와 티본이 번개처럼 진혁의 앞에 나타났다.
카앙!
카캉!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반으로 쪼개진 화살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무, 무슨 짓이냐 지금! 분명, 얌전히 있겠다고 약속했으면서!”
테슬론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진혁에게 고함을 질렀다.하지만, 진혁은 별거 아니라는 듯 생긋 웃었다.
하지만, 진혁은 별거 아니라는 듯 생긋 웃었다.
“어차피 자존심 센 놈들은 말로 해서 안 들어먹어. 상대가 나 같은 인간이라면 더욱더.”
그렇다면 철저하게 알려주면 된다.
상대가 자존심을 부려도 되는 놈인지. 아니면 건드려서는 안 되는 벌집인지를 말이다.
“늦든 빠르든 한 번은 서열 정리를 해야 돼.”
진혁이 장궁 ‘어금니’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