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08)
408화. 하이엘프와의 동맹 (2)
또옥…. 또옥…. 또옥….
역십자가 아래로 붉은 핏방울이 떨어졌다.
“그래. 아직까지도 할 말이 없나 보구나.”
레미아가 멜레나의 뺨을 쓰다듬었다.
“쿨럭… 하아…. 그냥… 죽여.”
멜레나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지독한 고문을 당했는지, 몰골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정말 지독한 아이네. 이 정도 손을 썼으면 보통 입을 열기 마련인데 말이지.”
“아예 팔 하나를 잘라버리는 것도 방법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면 남은 걸 지키기 위해서라도 입을 열 테니까요.”
스릉!
옆에 있던 모드레이가 즉각 검을 뽑았다.
여태껏 배신을 당해왔다는 사실 때문일까?
모드레이가 느끼는 분노는 상상을 초월했다.
당연한 이야기다.
시련의 탑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함께 일을 해왔던 게 바로 마인들이었으니.
“하, 무슨 애인이 바람이라도 난 것마냥 부들대는 거야? 이쪽 세계에서 배신이야 당연한 일 아니었어?”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이지. 하지만….”
푸욱!
칼끝이 허벅지를 파고들었다.
“아아아악!”
“다른 놈들은 몰라도 날 배신하는 건 참지 못한다. 멜레나. 무기 거래를 하다 마피아들에게 죽을 뻔한 널 구해준 나를 말이다!”
“그만.”
선을 넘으려 하자 레미아가 입을 열었다.
“…….”
모드레이의 칼이 멈췄다.
“너도 대충 눈치챘겠지만, 넌 어차피 죽는단다. 허나, 어떻게 죽을지는 네가 하기에 달려있지.”
“흐응…. 기왕이면 나이 먹을 만큼 먹고 따뜻한 침대 속에서 와인이나 한잔하면서 가고 싶은데, 안 될까?”
“후후. 아직도 입은 살아있구나. 하지만, 누구에게나 한계라는 게 있는 법이란다. 그 한계를 찾아내는 일이야말로 내 주특기지. 더 괴로워지기 전에 강진혁의 계획과 이 안에 또 다른 첩자가 있는지 실토하렴.”
“말했잖아. 그냥 죽이라고. 마족이라는 년이 뭔 그리 혓바닥이 길어?”
“……기어이.”
레미아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모드레이.”
“예.”
“숨통만 붙여 놓거라.”
“맡겨 주십쇼.”
모드레이가 나무 탁자 위에 늘어진 고문 기구를 골라잡았다.
“트리스탄. 너는 나머지 마인들을 하나하나 심문해라. 혹시 첩자가 또 있다면 바로 색출해 보고해야 한다.”
레미아의 명령에, 잠자코 있던 트리스탄이 흠칫 몸을 떨었다.
“안색이 별로 안 좋은데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지?”
“아, 아니에요. 설마, 동료 중에 배신자가…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트리스탄이 복잡한 얼굴로 멜레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아주 잠시뿐이었다.
***
수백의 레인저들이 늪지대를 가로질러 앞으로 향했다.
이 정도 규모의 병력이 움직이는데도 소리가 나지 않을 만큼.
하이엘프들 레인저들은 빠르고 조용했다.
‘과연, 마족들도 쉽게 처리하지 못하는 게 이해가 되네.’
이런 놈들이 은신을 한 채 게릴라전을 펼친다면 제 아무리 레미아라 해도 성가실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런데, 바로 그때.
띠링.
진혁의 눈앞에 상태창이 나타났다.
[노예 ‘멜레나’로부터 통화 요청이 왔습니다.]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신전 안에 있는 레미아가 결코 이런 틈을 허용할 리 없었으니까.
‘레미아가… 멜레나를 손에 넣은 건가?’
그게 아니라면 멜레나가 이 타이밍에 통화 시스템을 활성화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배신을 한 거면 ‘염혼의 낙인’이 발동될 텐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온갖 경우의 수가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확인할 길은 하나뿐이다.
진혁이 통화 요청을 수락했다.
그러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직접 만나기 전까지 서로 연락을 하지 않기로 했을 텐데?”
“그랬지. 하지만, 괜찮아. 내부에 있는 친구가 틈을 만들어줬거든. 감청이 되거나 발각될 일은 없을 거야.”
“또 뭔가 쓸데없이 일을 벌였나 보네. 후우. 넌 좀 얌전히 있으면 어디 병이라도 나냐? 응?”
“혼나는 건 나중에 할 테니 그만 갈궈. 그보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 중요한 것만 서로 공유하자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다.
“좋아. 그럼, 마족들의 배치와 레미아와 칠죄종이 현재 머물고 있는 곳부터 말해.”
“마족들은 신전 외부에 배치해 둘 거야. 단, 그것들은 전부 미끼고 레미아를 포함한 주력은 신전 안에서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 칠죄종은 ‘흑마석’ 쪽을 지키기로 되어 있고.”
역시,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이쪽이 신전 내부의 게이트를 활성화 시키려는 목적이 있는 이상, 그걸 최대한 활용해 허를 찌를 생각이겠지.
딱 하나.
조금 이해가 안 되는 건 칠죄종 탐식이 흑마석을 지킨다는 것이다.
마족에게 마기를 공급하는 흑마석은 게이트에 이어 두 번째 주요 타겟인 건 맞지만….
‘의외네’
그것보다는 나를 제거하는 걸 최우선으로 삼을 거라 생각했는데.
처음에는 흑마석 쪽은 파라곤과 정령수를 다루는 귀족들을 보내려고 했었지만, 일이 이렇게 된다면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대체 무슨 꿍꿍이냐.’
속전속결로 끝내길 좋아하는 레미아의 성격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
흑마석이 중요하긴 했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전투가 길어지거나, 밖에 배치해둔 마수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했을 때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흐음. 뭐, 우리로서도 나쁠 건 없지. 적의 최대 전력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까.”
진혁이 결단을 내렸다.
“티본과 프레이까지 흑마석이 있는 곳으로 보내야겠어. 어차피 제단에는 내가 심어둔 애들이 있으니 이렇게 인원을 재분배해도 충분할 거야.”
“나도 그게 좋을 것 같아. 아! 이제 가 봐야 해.”
대화가 끝나기 전, 멜레나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
“호수에 있을 때 당신이 끓여줬던 차… 꼭 다시 먹고 싶네. 정말 취향에 맞았거든.”
[통화가 종료되었습니다.]푸른 상태창이 점멸하다 사라졌다.
***
쿵! 쿵! 쿵!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신전 입구에 있던 마수들이 일제히 포효했다.
“크오오오!”
“킥킥 먹이다! 먹이!”
중, 대형급 지옥 마수들과 각종 몬스터들에게 기생한 감염체들.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대군이 늪지대를 뒤덮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진혁을 앞세운 엘프 군대가 자리 잡았다.
“엄청난 숫자로군. 제대로 싸웠다간 한나절도 버티지 못하고 전멸하겠어.”
파라곤이 적들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적의 세력이 막강한 건 알았지만, 직접 눈앞에서 마주하니 그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거대했다.
27층에 존재하는 모든 마수들을 죄다 모아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적당히 싸우는 척만 하면 돼. 치고 빠지고 하면서 너무 깊이 들어가진 말고.”
“그래. 눈치껏 적당히 연기해보도록 하지.”
“아. 그리고. 너는 우리랑 함께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아. 나머지 마법 소녀들도 전부 같이.”
“뭐?”
“안에 일이 조금 꼬였거든. 마족에게 마기를 공급하는 마석이 하나 있는데, 그걸 파괴하는 데 힘을 보태줬으면 해.”
“아니, 분명 우리는 신전 안에 들어갈 일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이렇게 갑자기 말을 바꾸면 안 되지!”
“저 안에는 기생체에 감염된 엘프들도 있어. 아직 감염되기 전의 엘프들도 있고. 무슨 뜻인지… 알지?”
진혁의 말에, 파라곤이 소리를 지르던 걸 멈췄다.
“…….”
“그래. 맞아.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꼭 너희 도움이 필요해.”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군. 빌어먹을 간다. 가면 되지 않느냐. 대신,”
파라곤이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듯 진혁을 노려봤다.
“말해 봐.”
“제발 부탁인데, 이 옷만큼은 벗게 해다오. 명색이 내가 수비 대장인데 꼴이 이래서야 부하들 앞에서 체면이 서질 않는다.”
“그래. 지옥에라도 갈 테니, 제발 이 옷만 벗게 해줘.”
“나, 나도 부탁한다.”
마법 소녀들이 한 뜻이 되어 애걸했다.
하지만….
“안 돼.”
“왜, 대체 왜 안 된다는 거냐!”
“안에 감염된 엘프들도 잔뜩 있을 텐데, 피아 구분은 좀 해야지.”
솔직히 엘프들은 다 똑같이 생겨서 누가 누군지 못 알아보겠다.
그런데 이렇게 특색 있는 복장을 하고 있으면 누가 아군인지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지 않겠는가?
다시 말해 암구호나 피아식별 띠따위보다 100배는 더 확실한 방법인 셈이다.
“달그락. 마스터 말이 맞다. 절대 오인하지 않을 것 같다.”
“응. 식별 확률이 100%야.”
좀처럼 100%를 말하지 않는 프레이조차 동의했다.
결국.
파라곤을 비롯한 나머지 하이엘프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진혁과 함께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시작된 건 그로부터 몇 분이 흐른 뒤였다.
“공격!”
“저 더러운 놈들이 다시는 엘프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만들어라!”
수백 발의 화살이 날아가고 각종 정령 마법이 마수들의 한복판을 강타했다.
콰콰콰쾅!
콰아앙!
각종 속성 마법이 휩쓸고 간 자리는 폐허로 변했다.
하지만.
“크르르….”
“킥킥킥! 먹잇감들이 제 발로 찾아와 줬네?”
“어디 숨어 있었는지 도통 찾을 수가 없었는데, 드디어 전부 잡을 수 있겠어.”
피해를 입은 건 극히 일부일 뿐.
대다수의 마수들은 여전히 건재했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전쟁의 서막이다.
그리고 두 세력이 각자의 목적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이.
소수의 인원이 전장에서 이탈했다.
***
[신전 내부에 진입했습니다.]후욱하고.
짙은 피비린내가 코끝을 찔렀다.
밖에 있는 늪지대와는 전혀 다른, 죽음의 냄새가 깊게 배어 있는 장소다.
더욱이 기괴하기 짝이 없는 조형물들과 각종 고문기구들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솜털이 곤두서게 만들었다.
“이 안에 들어온 건 우리도… 처음이다.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어.”
파라곤이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조금만 더 가면 갈림길이 나올 거야. 긴장해. 감염체 중엔 기척을 지우는 데 특화된 놈들도 많으니까.”
“젠장. 이래서야 대놓고 접근해도 알아볼 수 없을 것 같은데….”
해골들로 뒤덮인 기둥들과 가시가 잔뜩 난 식물들이 워낙 빼곡하게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바로 코앞에 적이 있어도 눈치채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휘익!
천장에서 순식간에 무언가 날아왔다.
“으아아아!”
반응을 채 하기도 전에 엘프 레인저 하나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적이다!”
파라곤이 즉각 시위를 당겼다.
퍽! 퍼퍽!
“키에에에!”
약 3m에 이르는 거미가 기둥과 기둥 사이를 뛰어 다녔다.
‘점핑 스파이더’.
상대적으로 몸통이 작은 대신 긴 다리를 가진 거미다.
가뜩이나 암살자라는 별명이 붙은 성가신 종류인데, 감염까지 돼 더욱 빠르고 민첩하게 변모한 상태였다.
게다가 침입자에 반응한 건 점핑 스파이더만이 아니었다.
카가각. 그극 그그극….
거대한 도끼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
팔이 세 개 달린 기형종 ‘탈마이트’까지 튀어 나왔다.
전신이 강화된 외피로 뒤덮여 화살로는 치명타를 입히기 힘들었다.
“고오오!”
“우오오!”
근육질 마수들이 도끼를 휘둘렀다.
콰콰콰콰콰!
일격에 기둥이 산산이 박살났다.
몸놀림이 날랜 엘프들이 가까스로 그 공격에선 벗어났지만….
스윽.
천장에 있던 점핑 스파이더의 기습까지 피할 순 없었다.
“끄아아아!”
또 다시 엘프 하나가 허공 위로 사라졌다.
이런 식으로 협공을 당하다간, 전멸하는 건 그저 시간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