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1)
41화 무한 증식 (3)
“케에에에에!”
날카로운 단말마와 함께.
바람구멍이 난 자이언트 멘티스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재생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소용없다.
아무리 질긴 녀석이라도 심장만큼은 복구할 수 없었으니까.
[‘아누비스의 대전자’가 쓰러졌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펠타로스 공국의 마도서’를 획득하셨습니다.] [중급 마정석을 획득하셨습니다.]이걸로 또 하나의 레벨이 올랐다.
게다가 탑 중층부에 가야 구경할 수 있는 마도서까지 등장했다.
‘호오, 이것 봐라?’
진혁의 입에서 작게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지금까지 수십 차례 대전자를 쓰러뜨렸지만, 이 정도로 좋은 보상을 준 경우는 없었다.
무기류를 떨구거나 간혹 특수 효과가 붙은 액세서리를 주는 게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갑자기 이토록 보상 간의 격차가 커지다니.
진혁은 곧바로 그 이유를 깨달았다.
‘독식에 의한 효과와 행운 스탯까지 적용된 덕분이었군.’
우연이 아닌 필연.
계속해서 쌓아 온 작은 기연들이 지금의 성과를 이룩해낸 것이다.
짜릿하다.
‘내가 했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이 맛에 고이고 고여도 게임을 접지 못했나 보다.
진혁이 사체 옆에 놓여 있는 고서 한 권을 집어 들었다.
“……!”
손끝을 찌르는 한기.
……차갑다.
[순수한 냉기로 인해 손끝의 감각이 일부 마비됩니다.]펠타로스 공국의 마도서는 빙계 마법을 배울 수 있었기에, 비마법 계열 플레이어들에게 비싼 가격에 거래됐다.
비록 90% 이상은 얼음 마법은커녕 눈송이 하나 만드는 데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다른 계열의 스킬을 얻을 수 있다는 기회 자체만으로도 희소가치는 충분했다.
‘역시 마도명가들이 밀집해 있는 공국답네.’
진혁의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13층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거라, 나중에 천천히 얻으려 했는데.
계획보다 훨씬 빨리 새로운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사각.
책의 첫 번째 장을 펼쳐지자.
복잡해 보이는 문자들이 두 눈에 들어왔다.
***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누비스가 실소를 머금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마도서는 전부 룬어로 적혀 있었기에, 애초에 일반인은 읽을 수조차 없다.
게다가 룬어를 습득한다고 한들, 그 안에 적혀 있는 내용을 이해하고 가장 기초적인 마법을 구사하는 덴 또다시 상당한 시간이 요구되었다.
노력과 재능.
두 개의 영역이 모두 뒷받침되어야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어리석긴. 그 마도서를 읽는데만 해도 3년은 훨씬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는…… 허억!?”
말하던 아누비스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츠츠츠츠!
공기 중의 수분이 얼어붙으며, 투명한 얼음 가루들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1분이 지나 고유능력과 스킬을 사용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Lv1 ‘얼음 조형’이 발동됩니다!]응?
강아지 짖는 소리 비슷한 게 들린 것 같긴 한데.
“방금 뭐라고 했었나?”
“어, 어떻게…….”
어떻게긴.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거든.”
물론, 새로운 언어를 익히는 게 쉬울 리는 없다.
초중고 12년을 배운 영어도 제대로 활용 못 하는 사람이 넘쳐났으니까.
하지만, 그건 억지로 욱여넣은 주입식 교육일 때 이야기고.
‘이건…… 내 스스로가 진심으로 원했던 공부지.’
재밌었으니까.
그리고 이걸 배워야만 강해질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외웠다.
……죽도록 연습했다.
마법 계열을 선택한 플레이어들보다 강해질 때까지, 계속해서, 계속해서.
츠츠츠!
어느덧 흩날리던 얼음 가루들이 하나의 형(形)을 갖췄다.
2m가 넘는 얼음 화살 5개.
아름답게 조형된 각각의 화살들이 진혁의 명을 기다렸다.
“확실히 네놈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건 인정하마. 하지만, 그 얼음 장난감을 믿고 나와 싸우겠다는 것이냐?”
“알아.”
“뭐라고?”
“소용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고.”
현재 갖고 있는 그 어떤 수단으로도 아누비스를 죽일 순 없다.
아니, 피부에 작은 상처 하나조차 입히지 못할 것이다.
엘리스와 마찬가지로 녀석 역시 이 탑의 최상위에 위치한 괴물이었으니까.
하지만.
“헛발질하느라 초조한 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무엇보다 대전자나 벌레를 통하지 않고선 다른 생명체를 공격할 수 없으니 답답해 죽을 지경일 텐데?”
“…….”
이번엔 아누비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상대방을 협박하기 위해 말을 건 것이었으나, 어떻게 된 건지 녀석은 그 모든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에게 걸려 있는 제약의 종류까지도 모두 꿰뚫어보고 있는 상태.
‘보면 볼수록 놀랍군.’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아무리 공격해 봤자 소용없다는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거다.
“이유가 뭐지?”
궁금하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그리고 그 속에 숨겨 둔 꿍꿍이가 무엇인지도.
하지만, 아누비스의 기대와 달리 진혁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너무나 허무했다.
“그냥…… 재미?”
“재, 재미라고?”
“아무리 때려도 죽지 않는 샌드백이라니. 이건 포기 못 하지.”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우드득하고.
아누비스 석상의 표면에 아주 가느다란 실금이 갔다.
진혁은 그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좋아.
‘자존심 높은 놈답게, 도발에 약하군.’
이런 식으로 계속 긁다 보면 머지않아 복사 조건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 말을 증명하듯.
쿠쿠쿠쿠쿠!
아누비스가 농구공만 한 벌집을 꺼냈다.
무한 증식이 가능한 특수 아이템 ‘하이브’였다.
드디어 사용하려는 건가.
대전자가 사라진 이상 사실상 유일하게 남은 선택지는 저것뿐이었다.
“저 빌어먹을 인간을 갈가리 찢어 삼켜라!”
아누비스가 하이브에 마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부우우웅!
부우웅!
벌집에서 날개를 지닌 비행형 벌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고막을 찌르는 소름 끼치는 소리.
동시에 진혁의 머리 위에 있던 얼음 화살들이 사라졌다.
콰콰콰쾅!
굉음과 함께 자욱한 눈보라가 일어났다.
바닥에 꽂힌, 2m짜리 기둥들엔 수십 마리의 벌레들이 꿰어 있었다.
모두 적중이다.
‘역시, 이 정도 타격으론 어림도 없는 건가.’
벌레의 외피마저 가볍게 뚫어 버리는 얼음 화살이었으나, 하이브를 파괴하는 덴 실패했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 싸움의 승패는 누구의 인내력이 더 뛰어나냐에 달려 있었으니까.
화르륵!
진혁의 왼손에 한 줌의 불꽃이 일어났다.
츠츠츠!
오른손엔 가느다란 얼음 줄기들이 한기를 뿜어냈다.
바로 그때.
[‘불의 원소(B)’와 ‘얼음 조형(A)’이 융합합니다!]진혁이 양손을 하나로 합쳤다.
얼음과 불이 모이며 마력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불꽃과 눈보라가 얽히고설켰다.
쿠쿠쿠쿠쿠!
공기가 급변했다.
“키이이이…….”
“케엑! 케엑!”
이질적인 마력에 벌레들마저 주춤했다.
아누비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융합에 성공했습니다!] [스킬 ‘데이 라이트(AA)’을 획득하셨습니다!] [데이 라이트]입수 난이도: AA
내용: 마력을 압축해 방출하는 대군(對軍) 스킬입니다. 백색계열 마법은 위력 자체도 뛰어난 편이지만, 시야에까지 영향을 미치기에 전투에 있어 활용도가 매우 높습니다
[융합된 스킬은 ‘세계의 기억’에 저장됩니다.]얼음 조형에 이어, 융합을 통한 새로운 스킬까지 얻었다.
그것도 무려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데 특화된 대군 스킬로.
‘과연, 위력은 어떨까?’
과거에도 이 스킬을 얻었었지만, 지금만큼 완벽하게 성장한 상태는 아니었다. 실수를 했고 실패를 했으며, 낭비된 시간과 노력들이 뒤섞여 있었다고 해야 할까?
그렇기에 기대됐다.
지금 걸어가는 이 길이 과연 어디로 이어질지.
진혁이 단검을 앞으로 뻗었다.
우우웅!
[Lv1 ‘데이 라이트’가 발동됩니다!]거대한 빛이 지하를 집어삼킨 건 바로 그때였다.
마치, 한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 서 있는 것처럼.
눈부신 빛이 벌레들의 눈을 태워 버렸다.
“케에에엑!”
“키이아아아!”
벌레들이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질렀다.
오랫동안 빛이란 걸 본적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괴로운 건 알겠는데, 그렇게 고개를 처박고 있으면 이건 어떻게 피하려고?”
데이 라이트의 1차 효과는 빛 속성 피해.
어둠 관련 속성을 지닌 생명체에게 피해를 입히고 눈을 멀게 한다.
허나, 진짜는 2차로 몰려오는 폭풍이다.
진혁이 단검 끝에 모인 빛을 바라봤다.
팔이 가늘게 떨렸다.
강력한 마력을 압축하다 보니 근육에 무리가 갔던 탓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
그리고 그 순간.
하나의 점으로 모인 빛이 직선으로 쏘아졌다.
굉음이나 폭발음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지면이 박살나거나 벽에 구멍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살상력이라는 하나의 목적에 충실했을 뿐.
치이이이익!
백린(白燐).
물에 들어가도 계속해서 타들어 가는 악마의 불꽃은 눈앞에 보이는 모든 벌레들을 태워 버릴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물론, 이 와중에도 하이브에선 계속해서 새로운 벌레들을 탄생시켰지만…….
진혁은 쉴 틈 없이 마력을 쏟아 부으며 수가 쌓이는 걸 막았다.
‘군집체 벌레들이 무서운 건 바로 개체 수 때문이지.’
협동력도 뛰어나고 집단 사냥도 능숙해 수가 늘어날수록 상대하기 까다로워진다.
단순히 1+1=2가 아닌 3이나 4 이상의 위력을 발휘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수만 모이지 않게 한다면, 각개 격파하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퍼엉!
콰아앙!
불꽃이 하나 터지면, 그것이 트리거가 되어 또 다른 불꽃을 폭발시켰다.
얼음 화살 또한 대형 벌레들의 외피를 뚫으며, 착실하게 그 역할을 다했다.
벌레가 태어나 나오는 속도보다 죽어 나가는 속도가 더 빨랐다.
“크으윽…!”
결국, 보다 못한 아누비스가 하이브의 두 번째 능력을 발동했다.
[‘하이브’가 대상을 선별합니다.]***
잠시 뒤, 벌집에서 나온 건 1m도 채 안 되는 말벌 한 마리였다.
독침이 제법 위험해 보이긴 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보유한 마력도 낮을뿐더러, 단일 개체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케에에엑!”
길게 포효한 말벌이 침을 세운 채 날아올랐다.
그리고 약 20m 높이의 상공에서 그대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부우우웅!
꽤나 빠른 속도.
진혁의 단검을 꺼냈다.
콰득!
두 개의 흉기가 교차했다.
단검 끝에서 걸쭉한 체액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머리를 잃어버린 말벌은 날아오던 궤적 그대로 지면에 처박혔다.
콰아아앙!
하이브의 선택을 받은 것치곤 너무나 허무한 결말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키이이…….”
말벌은 죽지 않았다.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머리가 새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재생이냐?”
“후후. 겨우 그런 걸로 보이나?”
아누비스가 낮게 웃었다.
“키이이이!”
“케에엑!”
두 번째 목소리가 들린 건 바로 그때였다.
몸통에서 새롭게 자라난 머리뿐 아니라 이번엔 잘려 나갔던 머리에서도 새로운 몸통이 자라났다.
재생이 아닌 분열.
완전히 실사판 호러 영화다.
“베어 봤자 소용없다는 건가.”
“그렇다. 이젠, 아무리 날뛰어 봐야 더 많은 벌레들과 싸우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이브의 두 번째 능력이다. 무한히 분열되는 벌레들을 체력과 마력이 다할 때까지 상대해야 하는.
아무리 강한 플레이어라도 그 한계는 존재할 터.
결국, 시간의 차이가 존재할 뿐 결과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드디어 걸렸다.’
진혁은 웃었다.
이 절망적인 상황조차 모두 자신이 계획한 것이었기에.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포석이 되어 원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을 알고 있기에.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