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11)
411화.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규칙 (3)
콰앙! 콰콰쾅!
거대한 주먹이 사정없이 지면을 두드렸다.
칠죄종 ‘탐식’.
삼라를 망라하는 절대 악은 분명… 최강의 위치에 있어야 했다.
분명, 그래야만 했다.
“이런 쥐새끼 같은…!”
한데 어째서일까?
눈앞에 있는 적들은 좀처럼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지금까지 일격에 머리통을 박살내버리던 적들과는 무언가 근본적으로 달랐다.
부웅!
또 다시 주먹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옆이야.”
“달그락! 알겠다!”
푸른 머리 호문쿨루스와 데스 나이트급에 해당하는 해골기사.
특히, 젓가락처럼 가느다란 단창으로 공격을 빗겨내며 반격까지 해대는 푸른 머리 소녀 때문에 적지만 몸에 데미지가 꾸준히 누적되는 중이었다.
……성가시다.
이제는 자존심이고 뭐고 간에 오롯이 저 건방진 놈들을 짓눌러 죽여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칠죄종 탐식이 고유 능력 ‘에테르 디바우러(Ether Devourer’를 발동합니다!]우우우웅!
남색을 띤 선이 공간을 가로질렀다.
마치, 결계처럼.
20제곱미터에 해당하는 지역이 모조리 탐식의 영향력 안에 잠식되었다.
“……!?”
“달…그락?”
프레이와 티본이 이변을 느낀 건 그로부터 몇 초가 흐른 뒤였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정확히는 몸속에서 흐르는 마력이 이전과 달리 급속도로 줄었다.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걸 상대하느라 짜증났는데, 이제야 좀 수월하게 사냥할 수 있겠군.”
사라진 마력이 전부 탐식에게 흡수되었다.
훨씬 더 거대해진 덩치.
자연히, 힘의 격차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탐식이 날카로운 손가락을 쫙 폈다.
두 다리에 강한 마력이 응집되었다.
온다.
“정면이야.”
프레이가 단창을 좌우로 교차했다.
퍼억!
굉음과 함께 프레이의 몸이 사정없이 튕겨나갔다.
그러더니 결계의 끝자락에 부딪치고 나서야 가까스로 멈출 수 있었다.
일격에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몸.
“…….”
프레이가 부러진 팔을 바라봤다.
여전히 표정에 변화는 없었지만, 더 이상 왼쪽 팔은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호흡을 가다듬을 틈 따윈 없었다.
어느새 프레이의 뒤통수를 향해 거대한 주먹이 낙하하고 있었으니까.
콰아앙!
티본이 오러를 끌어올린 검으로 대신 그 일격을 받아냈다.
우둑!
검은 충격을 견뎠으나, 뼈는 그 충격을 전부 흘려보내지 못했다.
티본의 팔뼈와 갈비뼈에 보기 흉한 금이 생겼다.
단순히 공격을 받아내는 것만으로도 피해가 막심하다.
이대로라면 열 합 이내 승부가 결정될 것이다.
“보다시피 네놈들로는 어림도 없다. 계속해봤자 결과야 뻔하지. 하지만, 이대로 꼬리를 말고 꺼진다면 굳이 추격하진 않겠다. 마력은 전부 뺏겼지만, 움직일 수는 있을 터. 그 비루한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말이다.”
탐식이 일부러 퇴로를 열어줬다.
이렇게 넓은 영역에 고유 능력을 발동시키는 건 스스로의 몸에도 무리가 됐을뿐더러, 지금 당장 레미아에게 가야 했기 때문이다.
탐식의 시선이 반대쪽으로 향했다.
‘뭐냐, 저 흉흉한 마력은?’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어 정확히 파악은 안 됐지만….
몇십 초 전, 상상을 초월하는 마기가 일대를 집어삼켜버렸다.
레미아의 것이 아니다.
그녀와는 다른, 마왕급에 해당하는 무언가가 이 신전에 현현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저쪽 상황이 1분1초를 다툰다는 것쯤은 느낄 수밖에 없으리라.
그런데.
당장이라도 도망가야 할 티본과 프레이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한 줌밖에 안 남은 마력을 끌어모으며 다시 한 번 공격할 준비를 했다.
“달그락. 난 반파되어도 머리만 멀쩡하다면 마스터가 다시 복구해 줄 수 있다. 몸을 대마.”
티본이 유령 군마에 올라탔다.
마력의 고갈로 인해 유령 군마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댔다.
“내가 공격이네… 알겠어. 성공 확률은 3% 미만이야.”
프레이는 한쪽 팔로 단창을 움켜잡았다.
공과 수.
서로의 몸을 미끼로 최후의 일격을 날리려는 생각에서다.
“정말 어리석은 놈들이군. 그런 비틀거리는 몸으로 대체 뭘… 흠?”
탐식이 기가 막힌다는 듯 혀를 차다 이내 헛숨을 들이마셨다.
파츠츠!
티본과 프레이의 몸에서 강한 마력이 솟구쳤다.
고유 능력으로 마력 공급이 제한된 상황에서 이런 게 가능한 경우는 단 하나뿐이다.
흔히 말하는 진원진기.
결코 쓰면 안 되는 마력의 근원을 소모하고 있다는 것.
대상의 수명을 깎는 것은 물론, 그 임계치를 넘어선다면 이 자리에서 한 줌의 먼지가 되어 사라질 게 틀림없었다.
“인형과 언데드 주제에…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는 거지?”
탐식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스스로의 목숨을 불살라 충성을 다한다는 건 상식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일이었기에.
“애초에 나는 마스터가 아니었다면, 하찮게 쓰이다가 소멸됐을 운명이었다. 뭐, 어디서든 쉽게 만들 수 있는 스켈레톤에게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한데, 오직 마스터만이 내 가치를 알아보고 곁에 두었다.”
유령군마의 안광이 한층 짙어졌다.
티본의 검에 실린 오러 또한 칠흑 같은 검은색을 띠었다.
“그런, 마스터를 위해서라면 이 뼈가 가루가 된다 해도 상관없다.”
“그냥… 이대로 도망쳤다간 나중에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니까 그러는 걸 거야. 그 사람한테 고문을 당하느니 차라리 여기서 깔끔하게 소멸하는 게 낫기도 할 테고.”
프레이의 말에, 티본이 화들짝 놀랐다.
“다, 달그락! 그게 무슨 소리냐? 나는 순수하게 마스터에 대한 충의로…!”
“38시간. 25분 13초 전… 그 망할 놈이 잘 때 콧구멍에 뼛가루를 가득 붓고 싶다. 흔히 정의로운 용사가 악독한 마왕을 해치워주곤 하던데 왜 저 마왕 놈을 해치울 수 있는 용사는 이 세상에 없는 걸까? 45시간 39분 10초 전….”
“히익? 그건 내 일기장에 적어 놓은…이 아니라 모함이다! 고구마, 그래, 고구마 님이 쓰신 거란 말이다!”
티격태격 대는 소리가 높아졌다.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구나. 이것도 그 강진혁이란 놈이 계산해둔 건가?”
탐식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되도 않는 헛소리를 해대며 어떻게든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모습.
분명, 자신이 레미아에게 가는 걸 막기 위한 수작이었다.
“장난은 여기까지다. 어차피 도망칠 생각이 없다면 이 한 번으로 끝을 봐주지.”
탐식의 손톱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달그락. 아무래도 저 덩치가 눈치를 챈 것 같네. 준비는 됐나?”
“응. 최대한 속도를 내줘.”
두두두두!
유령군마가 한 점을 향해 쇄도했다.
* * *
촤촤촤촤!
채찍이 예측할 수 없는 궤도로 움직였다.
왼쪽, 아니 오른쪽인가?
진혁이 키샨을 휘둘렀다.
창이 채찍의 측면을 강타했다.
그러나 튕겨 나간 채찍은 또 다시 지면을 훑으며 진혁의 발목을 노렸다.
“후후! 또 아까처럼 여유를 부려보지 그러느냐?”
특유의 탄성을 이용해 가속하는 채찍은 음속의 영역을 넘나든다.
서걱!
채찍에 달린 칼날이 기둥을 휘감자, 대리석으로 만든 기둥이 통째로 잘려나갔다.
“꽤 성가시긴 하네.”
빠르고 위협적이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진혁이 제자리에 서서 채찍의 움직임을 살폈다.
불규칙적으로 쇄도하는 채찍은 예측 그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왼쪽, 아래에서 왼쪽, 그리고 다시 오른쪽.
…지금!
콱!
진혁이 아래에서 위로 튀어오르는 채찍을 맨손으로 움켜잡았다.
동시에. 키샨이 번개처럼 레미아의 복부를 꿰뚫었다.
“아아악!”
관통당한 상처는 금세 검게 물들었다.
제아무리 재생 능력이 뛰어난 레미아라 해도 흑창의 마기로부터 무사할 순 없었다.
“궤, 궤도를…. 읽었다고?”
“패턴이 꽤 다채롭긴 한데, 마지막에 어딜 노리는지만 알면 그 앞의 페인트쯤이야 얼마든지 구별해낼 수 있거든.”
“괴물… 같은 놈. 너… 진짜 플레이어가 맞기는 한 거야?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힘을….”
레미아의 몸이 천천히 무너졌다.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림에 따라 레미아 역시 진혁과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피처럼 새빨간 눈동자와 하얀 피부.
그리고 그보다 더욱 붉은 입술이 보인다.
바로 그 순간.
[레미아가 고유 능력 ‘몽마의 맹세’를 발동합니다!]희미한 숨결이 진혁의 입속으로 파고들었다.
달콤하면서도 편안한 권태감이 뇌수까지 스며들었다.
휘청하고.
전신을 감싼 흑갑이 크게 흔들렸다.
[절대판정 등급의 ‘상태 이상’에 빠집니다!]직접 타액을 통해 전파되는 게 아니었기에 효과는 다소 떨어졌지만….
조금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사심을 품게 된다면 레미아의 유혹에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타인을 홀리는 데 특화된 서큐버스의 특성상, 심지어 여자라 할지라도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후후! 멍청하게 내게 거리를 주다니! 멍청한 수컷들 중에서 이 몸에게 넘어오지 않은 자가 없었느니라!”
레미아가 승리를 확신한 교성을 내뱉었다.
깔깔거리는 웃음이 제단 전체를 가득 채웠다.
그런데.
“어…?”
몽마의 맹세가 완전히 발동되지 않았다.
특전으로 받은 ‘냉혹한 심장’ 패시브와 닳고 닳은 고인물의 성향 상.
아무리 매력적인 서큐버스라 할지라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탑을 오르는 것만으로도 정신없어 죽겠는데, 내가 왜 너 따위에게 빠지냐?”
애초에 거리를 준 것도 능력을 복사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반드시 몽마의 맹세로부터 저항할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고.
띠링!
황금색 상태창이 나타난 건 바로 그때였다.
[고유 능력 ‘몽마의 맹세’를 복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몽마의 맹세]입수 난이도: SS
내용: 서큐버스 레미아의 고유 능력으로 원하는 대상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평소의 친밀도가 높을 경우 능력의 효과가 더욱 커지며, 직접적인 신체 접촉을 할 경우 역시 효과가 2배 이상 상승합니다.
[복사된 능력은 ‘세계의 기억’에 저장됩니다.]좋아.
이걸로 레미아를 살려둬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
콱!
진혁이 반대 손으로 레미아의 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다른 곳이야 재생이 가능하다고 해도 머리는 재생이 불가능하다.
“자, 잠깐!”
레미아가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생존에 대한 열망이 두 눈동자를 통해 뚝뚝 묻어나왔다.
“날 죽이면… 군타페르께서 가만히 있지 않으실 거다. 마왕의 분노를 그대로 직면하게 될 거란 말이다!”
“그래? 얼마든지 그러라고 해.”
군타페르가 무서웠다면, 애초에 이런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거다.
무엇보다 일개 마왕이랑 노닥거리던 건 이미 오래전에도 해봤던 일이었다.
콰드드….
진혁이 손에 힘을 실었다.
레미아의 목소리가 한층 다급해졌다.
“컥! 케엑!… 게이…트를 활성화한… 다음에… 반대…쪽은 어떻게… 하. 하려고? 대책…은 만들어 두고 하는 거야?”
손에 실린 힘이 살짝 풀렸다.
이제야 좀 쓸 만한 대화가 나왔다.
“발표할 기회 정도는 줄게. 참고로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이대로 죽는 게 나았을 거란 생각이 들 거야.”
진혁이 생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