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12)
412화. 마계로 이어지는 통로
진혁의 말에, 레미아가 황급히 설명을 덧붙였다.
“게이트가 활성화된다고 해도… 반대쪽은 우리 영역과 이어져 있어. 알잖아? 당신도 마인들이 누구의 명령을 받았는지.”
마인들을 총괄하던 건 군타페르다.
다시 말해 레미아가 하고자 하는 말은….
기껏 마계로 간다고 해도 군타페르의 영지로 들어간다면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꼴이 될 수 있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진혁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아무렴, 내가 그것도 모르고 있을까 봐? 우회로를 만드는 것쯤이야 시간만 조금 있으면 충분해.”
재료들 역시 코인거래소와 이 층계에서 얻는 것들로 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중요한 거 아니겠어? 만약, 내가 당신을 여기서 내쫓았다고 거짓 보고를 한다면 군타페르 님… 아니, 군타페르는 이 게이트가 안전하다고 생각할 거야, 당신은 그만큼 시간을 벌 수 있을 테고.”
“배신을 하겠다는 말이야?”
“그, 그래. 살려만 준다면 뭐든 못 하겠어?”
레미아의 얼굴이 비굴하게 일그러졌다.
“…….”
제국이나 무림에서는 배가 침몰한다고 해서 그 배를 버리지 않았다.
자신이 믿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내놓았던 것이다.
‘악당이어도 대가 좀 있었는데… 이 녀석들은 그런 것조차 없네.’
그편이 마계의 특성이라면 특성이겠지만.
뭐, 어쨌든 일이 꽤나 수월하게 풀리게 될 것 같다.
목숨을 구걸하는 레미아가 군타페르를 적당히 구워삶는다면, 마계에 있는 베리엘이 게이트를 보호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줄 테니까.
‘차원을 연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걸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한 법이지.’
마계에서의 원정이 장기화될수록 이 게이트의 중요성은 가치로 헤아릴 수 없게 될 것이다.
“좋아…. 당장은 쓸모가 있을 것 같네.”
적어도 인턴으로 활용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
레미아를 바닥에 내려놓은 진혁이 ‘염혼의 낙인’을 발동했다.
화르륵!
손끝을 따라 붉은 화염이 일렁였다.
“그, 그건 뭐야?”
“왜 마인들이 전부 너희를 배신했는지 궁금했지? 이게 그 이유야.”
전신이 활활 타오르는 최후를 맞이하고 싶지 않다면 절대 복종을 맹세해야 한다.
“네 능력처럼 상냥하진 않지만, 이것도 생각보다 그리 아프진 않을 거야.”
지금껏 많은 경험자들이 남긴 말이니 맞을 거다.
아마도 말이다.
치이익!
“아아악!”
레미아의 어깨에 붉은 낙인이 새겨졌다.
그걸로 제단에서의 전쟁이 막을 내렸다.
* * *
사후 관리는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다.
붙잡혀 있던 엘프 포로들을 해방시켜 치료해주고 주위에 남아 있는 기생체들을 쓸어버리는 일들이 시간과 인원을 제법 많이 잡아먹은 탓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진혁은 틈틈이 마계로 가는 게이트를 활성화시킬 준비를 했다.
‘이빨 달린 물망초랑 푸른 엑토플라즘은 모았고….’
마지막은 ‘타마할 요충’만 구하면 된다.
이건, 파라곤이 코스프레를 벗는 대가로 반드시 오늘 내로 가져오겠다고 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다.
다른 건 몰라도 엘프들이 험지를 탐험하는 능력 하나만큼은 기가 막혔으니까.
“후우.”
진혁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법 고생하긴 했지만, 그래도 슬슬 끝이 보인다.
바로 그때.
파츳!
진혁의 앞에 검은색 연기가 솟구쳤다.
군타페르에게 다녀온 레미아였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눈가가 퀭한 게, 어지간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긴 한 모양이다.
그래도 몽마의 군주인데 너무 괴롭힌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좀 먹힌 것 같아?”
“예. 칠죄종인 탐식과 원탁의 기사들은 잃었지만, 게이트가 활성화되는 것까진 막았다고 전했습니다. 강진혁 님은 큰 피해를 입고 외각으로 도망쳤다고도 전했고요.”
반으로 동강난 채 버려진 티본과 두 눈을 감고 쓰러진 프레이.
케첩을 잔뜩 뿌려둔 엘프들까지.
제법 그럴듯한 증거물들을 조작해 넘겼다.
언젠가는 들킬 거짓말이지만, 최소 일주일만 벌 수 있어도 마계의 전황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다.
“그럼, 당분간 군타페르에게 연락하지 말고 조용히 있어. 괜히 초조하다고 벌집을 건드렸다가 의심이라도 사면 우리 사이에 맺은 계약은 없던 일이 되는 거야.”
“저, 저도 그 정도 눈치는 있어요. 그보다….”
레미아가 불안한 얼굴로 진혁을 바라봤다.
“군타페르는 반드시 처리해주세요. 만약 제가 배신한 게 알려졌다간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요.”
지금까지 군타페르의 곁에 있으면서 그가 어떤 식으로 배신자를 처리하는지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 끔찍한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둘 중에 하나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 줘야만 하리라.
“인턴 주제에 바라는 게 많기도 하네. 정 그러면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거라도 가지고 오든가.”
“도움이 될 만한 거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거야 네가 알아서 생각해야지.”
요즘 같은 시대에 인턴이 정직원이 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고인물 코퍼레이션 같이 사내 주주들의 안녕과 복지를 신경 쓰는 곳이라면 더욱더.
“도움… 도움이 될 만한 거….”
풀 죽은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는 레미아를 뒤로한 채. 진혁이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 새벽이 깊었을 쯤….
기다리고 기다리던 마지막 재료가 도착했다.
“허억, 허억… 여, 여기 간신히 찾았다.”
전신이 먼지투성이가 된 파라곤이 유리병을 건넸다.
그 안에는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절지류가 들어 있었다.
‘타마할 요충’.
언제나 마기가 가장 짙은 곳을 향해 이동하는 특징을 지닌 마수다.
“고생했어.”
진혁이 그동안 준비해온 재료들을 순서에 맞춰 사용했다.
푸른 엑토플라즘과 17개의 다른 재료들이 봉인들을 하나씩 제거했고.
타마할 요충이 마계에 있는 마기를 쫓아 움직이게 만들었다.
우우웅!
[마왕의 봉인이 약화됩니다!] [5개의 인장이 파괴됩니다!]콰콰콰콰!
게이트를 얽매였던 쇠사슬이 수십 조각으로 쪼개졌다.
마침내 마계로 가는 게이트가 해방된 것이다.
[게이트가 연결됩니다!]약 20m에 이르는 검은색 게이트의 표면으로부터 붉은 빛이 일렁였다.
“이, 이건 대체…?”
“옷은 이제 벗어도 좋아. 그리고 이제부터는 나 혼자서 갈 거니까 나머지 엘프들 데리고 누구도 이 근처에 얼씬 못 하게 해. 파라곤!”
“아… 어?”“내 말 알아들었어?”
“그, 그래 알겠다. 엘프들에게 전해 주도록 하지. 한데, 정말 괜찮겠나? 이게 뭔지는 몰라도 엄청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혹시라도 더 큰 재앙을 불러온 게 아닐까?
파라곤은 그점이 걱정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수백의 엘프 포로들을 구해준 진혁이 한 일이기에 대놓고 반대를 하진 못했다.
“걱정 마. 아무 일 없을 거니까.”
진혁이 다시 한 번 파라곤을 다독였다.
“너희들도 신전 입구를 확실히 지켜 줘.”
“달그락. 알겠다. 마스터.”
“응. 들어오려고 하는 자가 있으면 이걸로 찌를게.”
프레이는 얼굴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살벌한 말을 내뱉었다.
“그렇다고 죽이진 말고….”
“응. 죽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찌를게.”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됐다. 그래. 프레이 하고 싶은 대로 해.”
아무리 말로 설명해봤자 영영 제자리걸음일 거다.
작게 한숨을 내쉰 진혁이 게이트 안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일렁이는 표면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자, 순식간에 보이는 풍경이 바뀌었다.
붉은빛으로 물든 대지.
황폐하고 을씨년스러운 풍경에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후끈!
공기 역시 메말랐다.
여기가 바로 마계.
시련의 탑에 존재하는 층계 중 유일하게 안전지대가 없는 곳이다.
어느새 진혁의 손엔 두 개의 검이 쥐어져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마수들이나 마족이 튀어나올 수 있었기에, 전신의 감각 역시 최대치로 끌어 올렸다.
‘분명, 우회로를 베리엘의 영지 주위로 옮기긴 했는데…. 베리엘은 근처에 없는 건가?’
장소와 시간이 조금 엇갈린 탓에 만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리긴 할 거다.
가능하면 그 전에 다른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바로 그 순간.
“…….”
이질적인 마력이 감지되었다.
베리엘의 것이 아닌 다른 놈들의 마력이.
부스럭.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들이 꺾이며 네 명의 마족들이 나타났다.
“하여간, 그 멍청한 놈은 대세가 뭔지도 모르고 혼자 엇나가서. 괜히 우리만 쓸데없이 이런 고생을 하게 만드는군.”“멍청한 거지. 군타페르 님이야말로 유력한 차기 마신 후보인데.”
“수다는 그만 떨고 베리엘의 수족들이나 찾으세요. 오늘 안에 이 구역을 정리해야 놈의 영지로 가는 보급 줄을 완전히 끊을 수 있습니다.”
“그래. 놈만 처리한다면 마계도 하나로 통합될 터. 그럼, 다시금 그 씹어 먹을 에덴과 전쟁을 시작할 수 있을 거다.”
아름다운 금발에 검은 눈동자를 지닌 귀족들이다.
그것도 전원이 상급에 해당하는 놈들로만.
워낙에 은폐물이 없는 곳이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귀족들과 진혁이 한 곳에서 마주쳤다.
“뭐야? 인간? 인간이 왜 여길…?”
“누구냐 네놈은!”
덕분에 상황이 매우 어색해졌다.
상위 귀족 넷을 상대로 난데없이 전투를 하게 생겼으니까.
‘이건 좀 안 좋은데….’
진혁이 고함을 질러대는 귀족들을 바라봤다.
고유 성창을 함부로 해방했다간 군타페르에게 발각될 터.
이 자리에서 빠져나간다 해도 마찬가지로 군타페르의 귀에 들어갈 게 틀림없었다.
다시 말해 전부 처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답해라! 뭐 하는 놈이냐고 물었다!”
“거주자인가? 플레이어는 전부 20층대에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일단, 제압해서 물어봐야겠군. 숨만 붙여 놔라. 팔다리는 없어도 말하는 덴 문제가 없을 테지.”
스릉!
검은 칼날을 가진 검들이 예기를 뿜었다.
퍼억!
곧바로, 섬뜩한 파육음이 고막을 파고들었다.
진혁의 팔과 다리가 아닌… 가장 앞에 있던 귀족의 머리로부터.
“아, 아트라아!”
“뭐, 뭐야?”
당황스러운 상황에 대한 대답은 곧바로 이어졌다.
“내 영지에 온 귀한 손님에게 칼을 뽑다니…. 살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밖에 보이질 않는구나.”
베리엘.
마계의 마왕 중 하나가 자신의 영지에 침입한 적들을 바라봤다.
오싹하고.
공기가 소름 끼치도록 차갑게 얼어붙었다.
하지만, 동료 하나를 잃었음에도 귀족들은 금세 평정심을 되찾았다.
이 정도 상황은 충분히 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베리엘… 어디 숨어 있나 했더니, 이 숲에 있던 거였군.”
“그래 봤자, 이빨 빠진 마왕 하나다.”
“그래…. 우린 군타페르께서 주신 성유물까지 있으니까.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사냥할 수 있어.”
“휘하에 수족들도 없이 혼자 나타나다니. 크게 실수한 거다.”
귀족들이 베리엘을 둥글게 포위했다.
“군타페르 그 자식도 어지간히 급하긴 한 모양이군. 너희 같은 덜떨어진 놈들에게 나를 죽이라고 시킨 걸 보면 말이야.”
“닥쳐라!”
가장 체구가 큰 귀족이 양손으로 검을 움켜잡았다.
파츠츠!
검에서 하얀색 기운과 마기가 뒤섞였다.
“…그건?”
베리엘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저 기분 나쁜 하얀색 빛은….
분명 에덴에서 사용하는 ‘신성력’이었다.
“그래, 천사 놈들에게 얻은 성유물이지.”
“특별히 네놈을 잡기 위해 그분께서 준비하신 무기다.”
“큭큭. 재수 없는 천사들도 이럴 때만큼은 도움이 되는군.”
칼과 창 그리고 방패까지.
세 종류의 성유물이 해방되었다.
마족이 사용할 수 있게끔 무슨 장난을 쳤는지, 상위 귀족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천사들의 성유물을 다뤘다.
푹!
다시 한 번 파육음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이번에도 피를 뿜은 쪽은 베리엘이 아니었다.
“끄으…으어?”
등에 꽂힌 단검을 뽑자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아… 미안, 너희끼리 열심히 떠드는 건 좋은데, 너무 이쪽은 신경 쓰고 있질 않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손이 먼저 나갔네. 진짜 조건반사였어.”
진혁이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