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14)
414화. 29층, 대해(大海)를 지배하는 자 (2)
저벅.
가벼운 발걸음이 이어졌다.
구릿빛 피부에 긴 흑발이 잘 어울리는 여성.
배 안에 있는 선실로 들어온 건 간다라 길드의 마스터.
‘니라샤’였다.
관리자들과 가디언들이 가득 있음에도 니라샤는 조금도 주눅 들지 않은 채 여유롭게 내부를 구경했다.
베다와 힌두의 연합체 ‘천세’.
45층을 지배하는 거대 세력의 사도를 상대하는 거니 당연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찍찍. 자, 이쪽으로 앉으시죠.”
알루티가 의자를 가리켰다.
“엄청나긴 엄청나네. 과연, 이런 식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건가?”
“찍! 나쁜 뜻이 있는 게 아닙니다. 그저 원활한 진행을 위한 장치일 뿐이죠.”
“그래? 내 눈엔 자기 입맛대로 일이 진행되는지 감시하기 위한 것 같은데… 뭐, 좋아. 그건 그렇고. 사람을 이런 곳까지 부른 이유가 뭐야? 우리도 한창 해역을 탐사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니라샤 님을 부른 건 한 가지 제안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서로에게 좋은, 윈윈이 될 수 있는 딜을요.”
“듣고 있어.”
“현재 간다라 길드는 29층에 존재하는 선단 중에서도 꽤나 큰 규모를 보유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꽤 큰 편이긴 하지.”
“그렇다면, 그걸 이용해서….”
알루티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맺혔다.
“플레이어들이 다음 층계로 가는 걸 최대한 막아 주셨으면 합니다.”
“호오. 그건 꽤나 큰 요구인데….”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에 따른 보상은 확실하게 지급해 드려야죠.”
띠링!
허공에 황금색 천칭이 나타났다.
[‘마지막 섬’이 표시된 지도가 천칭 위에 나타납니다.] [‘안전한 항해를 위한 12가지 지침서’가 천칭 위에 나타납니다.] [‘아틀란티스의 창’(1회용)이 천칭 위에 나타납니다.]위에 올라온 건 총 셋.
“모두 이번 층계에서 요긴하게 쓰일 아이템들입니다. 제안을 받아들이신다면 이걸 전부 드리죠.”
“……확실히, 쓸 만해 보이는 게 많긴 하네.”
니라샤가 조금은 흥미가 동한 듯 보였다.
하지만.
“이걸로는 살짝 부족해. 기왕 쓰는 김에 한 가지만 더 얹어.”
“어떤 걸 말씀입니까?”
“강진혁.”
제국에서부터 시작된 악연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
지금까지 그 인간 하나 때문에 겪은 수모야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니까.
그리고 이 정도 상황이 만들어졌으면….
관리자를 포함해 29층을 공략하기 위한 모든 열쇠들이 모였다면.
……이제는 그 빌어먹을 자식을 죽여도 괜찮을 거다.
[‘천세’의 상위 신격들이 자신의 사도를 지지합니다.]“찍찍찍! 그거 듣기만 해도… 심장이 두근두근해지는 말씀이군요.”
알루티가 맹세의 증표로 한 입도 안 댄 해바라기 씨를 건넸다.
우우웅!
[‘천칭의 인도’에 따라 계약이 성립되었습니다.]29층에 새로운 규칙이 추가되었다.
⁕ ⁕ ⁕
쏴아아….
넘실거리는 파도 위.
진혁은 이태민과 유연화와 함께 대해를 가로질렀다.
모처럼, 따사로운 햇살과 부드러운 바닷바람을 맞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면서.
‘이게 피서지. 다른 게 뭐가 있겠어?’
드론들이 날라다 주는 트로피칼 음료수까지 곁들이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하지만.
행복했던 여행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콰아앙!
수면 위로 물보라가 솟구쳤다.
대포 공격이다.
곧바로 모두의 눈앞에 다수의 배들이 나타났다.
해적인가? 아직 스타팅 포인트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지도 않았는데?
“혀, 형!”
“오빠, 빨리… 빨리 이쪽으로 와 봐!”
두 사람이 다급히 진혁을 불렀다.
선미에 도착하자, 꽤나 묘한 상황이 펼쳐졌다.
“이곳은 내 영역이다.”
통통배 위에 천유성이 서 있었다.
그 주위엔 마찬가지로 십여 척의 통통배에 올라탄 해적들이 함께 하고 있었고.
“이야. 유성아. 오랜만이네. 그동안 잘 지냈어? 밥은 꼭꼭 챙겨 먹었고?”
“밥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곳에 우리를 처박은 채 혼자 사라졌던 놈이. 이제 와서 걱정이란 걱정은 다 해주는 척하는구나!”
“넌 또 남자가 뭘 그런 걸로 삐지고 있어. 어린애처럼. 내가 말했잖아. 아래 층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니까?”
진혁의 말에, 해적선에 있던 해적들이 고함을 질렀다.
“감히, 선장님보고 어린애라니!”
“이분이 누구신지 알고나 있는 거냐?”
“이분이 누구신데?”
“우는 아이도 뚝 그친다는 붉은 팔 천유성을 몰라보다니. 아직 이 바다에 온 지 얼마 안 된 애송이로군!”
붉은 팔 천유성이라….
작명 센스 실화냐?
“바보 선장과 바보 해적들이 차라리 나을 것 같은데….”
진심으로. 고구마를 데려다 놔도 저것보단 더 근사하고 강력한 해적단이 탄생할 것 같다.
“뚫린 입이라고 계속 망언을 지껄여 대는군.”
“명령만 내려 주십쇼. 선장!”
“돛대 뒤에 거꾸로 묶어두고 콧구멍에 소금물을 부어주마!”
검은 해적기가 유난히 웅장하게 펄럭였다.
“뭐라고 도발하든 상관없다. 덕분에 네놈을 쓰러뜨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으니까.“
정상대전.
탑에서 주최하는 메인 이벤트에서….
…최고의 고인물을 꺾고 자신의 승리를 만천하에 알릴 것이다.
”마지막 섬에 도착하는 건 바로 나다. 그걸 방해하는 놈은 누구도 용서하지 않아.“
스릉!
천유성이 검을 뽑았다.
다른 곳에서라면 몰라도 이 해상전에서만큼은 개개인의 실력뿐 아니라 배의 성능과 수 역시 중요하다.
층계의 특수 효과로 인해 바다에 빠질 경우 모든 능력치가 절반으로 감소하기 때문이다.
‘유연화와 이태민의 배가 성능은 위지만, 어차피 한 척뿐이다.’
반면 이쪽은 통통배에 불과했으나 무려 스무 척에 가까운 함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절반을 희생해서라도 난전으로 끌고 갈 수 있다면, 승산은 충분하다는 뜻이다.
거기에.
반대쪽에서 또 다른 배들이 나타났다.
쿠쿠쿠쿠!
자랑스러운 아타락시아 가문의 깃발이 돛대 위로 올라갔다.
“엘리스?”
“그래. 엘리스 씨도 우리와 임시 동맹을 맺었다.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자인 너만 탈락시킬 수 있다면, 그 이후엔 우리끼리 경쟁을 하면 되니까.”
“계약자! 똑똑히 보거라. 내가 위대한 아타락시아의… 꺄아아악!”
바로 그때.
퍼어어엉!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엘리스의 배가 반 토막이 났다.
산산이 부서진 잔해들 위로 검은색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래. 다들 열심히 날 방해하려고 노력한 건 좋아. 노력은 정말 가상한데….”
약 50m에 이르는 크기.지금까지 나왔던 배들과는 차원이 다른 함선이 나타났다.
베리엘에게서 받은… 대함대전용 특수함이다.
무려 8성급.
이태민과 유연화가 심혈을 다해 건조한 배는 3성급이었다.
현재 29층에 존재하는 가장 큰 배 역시 동급인 8성급이었고.
그런 점으로 미루어 봤을 때 이제 막 29층에 들어온 플레이어가 이런 규모의 배를 소유하고 있는 건 밸런스를 붕괴시키는 수준에 가까웠다.
“무, 무슨…. 분명, 아래층에 있었다고 했으면서 언제 그런 배를 만든 거냐?”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 나도 마냥 놀기만 하고 온 게 아니거든.”
해상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기 위해, 마계에 있는 호구 마왕 한 명을 단단히 구워삶았다.
엘리스 역시 돈이라면 어디 가서 밀리진 않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보석이나 치장하는 것에 국한되어 있을 뿐.
이렇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들은 베리엘보다 한참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전부 쓸어버려.”
“으응?”
“오빠? 진짜 쏴? 정말?”
“괜찮아 쟤들 튼튼해서 안 죽을 거야. 그리 쉽게는.”
진혁의 서슬 퍼런 명령에 이태민과 유연화가 마지못해 움직였다.
콰콰콰콰콰!
콰앙! 콰아앙!
“으아아아!”
“도, 도망쳐라! 배를 버려!”
“선장!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함포가 불을 뿜자 천유성의 해적선단들이 종이배처럼 찢겨 나갔다.
“강지혀어억!”
당연히 그 위에 있던 천유성은 바다 속에서 물고기 밥이 될 처지에 놓이게 됐다.
* * *
“커억… 쿨럭! 쿨럭! 컥!”
천유성이 몸속에 쌓인 소금물을 게워냈다.
간신히 나무 파편 하나를 찾아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지금쯤 심해에 처박혀 있을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함포의 사격은 무자비하기 짝이 없었다.
바로 그때.
쿡쿡.
무언가 천유성의 머리를 두드렸다.
바늘이 달린 낚싯줄.
배 위에 있던 진혁이 한 짓이었다.
“뭐 하는 짓거리냐! 당장 그거 치워라!”
쿡쿡. 쿡쿡쿡쿡…!
“당장 저리 치우란 말이다!”
천유성이 나무판자를 잡은 채 반대 손에 있던 검을 휘둘렀다.
깔끔하게 잘린 낚싯줄이 수면 위로 떨어졌다.
“남은 기껏 신경 써서 구해 주려고 했는데, 반응이 영 시원찮네. 계속 거기 있을 거야?”
“네놈 따위에게 목숨을 구걸할 생각은 없다. 내가 알아서 빠져나갈 테니, 당장 꺼져라!”
“그래?”
그게 소원이라면 들어줘야지.
진혁이 속도를 최대치에 놓고 뱃머리를 돌렸다.
배가 크게 선회하자, 그 여파로 인해 몇 미터에 이르는 파도가 생겼다.
“이 망할 놈아아아!”
파도풀은 저리 갈 정도의 거대한 쓰나미가 천유성을 집어 삼켰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연속 드리프트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천유성이 익사하기 바로 전까지 계속해서.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두터운 이불을 뒤집어쓴 채 오들오들 떨고 있는 엘리스와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것만 같은 천유성이 한 자리에 모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코코아를 제공해준 건 덤이다.
“에…에 애치! 훌쩍. 배 안이 매우 춥구나. 좀 더 장작을 넣고 따뜻하게 하거라. 이불은 오리털로 된 걸로 다시 가져오고. 코코아는… 호오. 이건 제법 짐의 고상한 취향에 맞는구나. 고급 설탕을 쓴 것이냐?”
“쳇! 이런 수치를….”
고인물 코퍼레이션에 반기를 들었던 두 수괴를 포로로 잡았다.
워낙 압도적인 전력차였기에, 진압했다는 표현을 갖다 붙이기도 민망했지만.
그래도.
보상 내용을 들으니 귀엽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이 녀석들이라면 탑의 어딜 가서도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실력자들인데, 고작 저런 걸 원해서 아등바등 애를 쓰고 있다는 게 딱하기도 했고.
작게 한숨을 내쉰 진혁이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받기로 한 보상. 내가 해줄게.”
“뭐?”
“그게 정말이냐?”
엘리스와 천유성이 둘 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상대전에서 너랑 싸우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엘리스는 그 이상한 섬인지 뭔지에 놀러가고 싶은 거지?”
“그, 그렇다! 가능하면 짐은 그대와 거기서… 과일도 함께 먹었으면 좋겠구나.”
“과일?”
“마, 맛있는 사과를 하나 구해놨는데, 꼭 함께 맛을 보고 싶다. 진짜로 맛있는 사과라고 소문이 잔뜩 나 있는 사과니라.”
엘리스가 눈을 마주치지 못 한 채 우물쭈물거렸다.
뭔가 굉장히 수상한 냄새가 나긴 하지만, 별로 어려운 부탁은 아니다.
“나도… 그 관리자 놈이 한 것과 같은 약속만 해준다면야 함께 해도 상관없다. 그게 더 층계 공략이 빠르기도 할 테고.”
천유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다 같이 힘을 합쳐서 여길 공략해 보자.”
남은 건 테레사 한 명뿐.
그렇게, 한 번 흩어졌던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멤버들이 다시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