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15)
415화. 29층, 대해(大海)를 지배하는 자 (3)
화르륵….
짙은 화염이 솟구치는 용암 지대.
이곳의 한가운덴 마계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대저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바로, 군타페르가 머무는 거처였다.
“그럼, 놈은 현재 신전 외각으로 도망쳤다는 건가?”
군타페르가 테이블 위에 있는 독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러자, 레미아가 곧바로 대답했다.
“예. 적어도 며칠 정도는 그곳에서 전열을 가다듬을 것 같습니다. 일전의 전투로 인해 워낙 피해가 컸을 테니까요.”
“흐음. 정확히 어디로 갔다고 했었지? 놈이 도망쳤다는 곳 말이야.”
“안개 계곡입니다.”
“안개 계곡이라… 하필이면 찾기도 어려운 곳으로 기어들어갔군.”
군타페르가 혀를 끌끌 찼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추격의 고삐를 죄고 있으니, 머지않아 꼬리를 잡아낼 수 있을 겁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한데…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어떤… 걸 말씀입니까?”
우우웅!
허공에 붉은 원이 생겨났다.
원 안에는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안개 계곡에 있다는 놈이 어째서 저 바다에 있는지. 그리고 그토록 치열하게 싸워 부상을 당했다는 놈이 저렇게 쌩쌩하게 돌아다니고 있는지. 그걸 좀 말해줬으면 좋겠구나.”
순식간에 공기가 얼어붙었다.
오싹!
레미아가 자신도 모르게 몇 걸음인가 뒷걸음질 쳤다.
“그, 그게….”
“진심으로 날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이 군타페르를?”
군타페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쿠쿠쿠쿠!
흉흉한 마력이 방 안을 가득 채워나기기 시작했다.
감히,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 만큼.
무시무시한 기운이었다.
“뭐,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정말로 놈이 안개 계곡에 있을 거라 확신했는데….”
“마지막까지 추하게 거짓말을 해대는구나. 어깨에 새겨진 낙인이나 지우고 혓바닥을 놀렸더라면 혹시 속아 넘어갔을지도 모르지.”
“……!!”
레미아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설마, 이 낙인이 보인다는 말인가?
분명, 낙인은 계약을 맺은 당사자들끼리만 볼 수 있다고 했는데?
하지만, 경우의 수를 따지는 건 지금 상황에서 아무 의미가 없었다.
배신은 들통 났고.
이제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사… 살려 주세요. 저는 그저 그놈에게 생명을 담보 잡혀 어쩔 수 없이… 맞습니다. 그저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입니다.”
“시키는 대로만 한 것. 그게 바로 가장 큰 죄악이다.”
군타페르의 손이 레미아의 얼굴에 닿았다.
쿠쿠쿠쿠!
흑염이 순식간에 레미아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아무리 불길이 거세도 생명은 쉽사리 끊어지지 않았다.
“내 밑에 오래 있었으니 잘 알고 있겠지? 지옥 불꽃에 닿는다면, 이 몸의 허락 없이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한다는 걸?”
“으으으…. 끄으아아아!”
“강진혁, 그 녀석이 무얼 하려는지 말해라. 신전의 게이트가 어디로 이어졌는지. 전부 다 실토하란 말이다! 그렇게 한다면 편안한 죽음을 맞게 해주겠다.”
인지를 초월한 고통에 저항할 수 있는 건 없다.
“게 게이트의… 위치는….”
레미아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 * *
29층에 위치한 외딴 군도.
이곳엔 현재 전 세계 길드들의 대표들이 모여 있었다.
층계 공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다는 명목 하에.
회의가 잡힌 것이다.
물론, 진혁을 비롯한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멤버들 역시 초청장을 받아 이 섬까지 오게 되었다.
단순히 대화를 나누는 것 외에도 얻을 수 있는 이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일단은 느긋하게 관망하면서 타이밍을 엿봐 볼까.’
진혁이 가판대에서 파는 해적 용품들을 살폈다.
어깨에 타는 앵무새나 갈고리, 럼주나 각종 옷을 포함해 그야말로 수백 종류의 물건들이 넘쳐났다.
“자자, 마음대로 골라 보십쇼. 오직 ‘세타 아일랜드’에서만 맛볼 수 있는 물고기입니다!”
“30분 전까지만 해도 모 왕국의 귀부인이 걸치고 있던 따끈따끈한 목걸이입니다! 빼앗기 전에 진품이라는 것을 이 귀로 똑똑히 들었습죠!”
“근사한 검과 화약, 대포까지! 뭐니 뭐니 해도 무기가 있어야 약탈질을 해먹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호객 행위를 하는 해적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호오. 이건 짐과 정말 잘 어울리겠구나. 이것도. 저것도! 와아아. 저 진주 목걸이. 그 더러운 손 치우거라. 그건 오직 짐을 위한 것이니라!”
엘리스 역시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쇼핑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지갑이 두둑한 수집광답게, 한 번 마음에 든 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손에 넣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진혁이 천유성에게 물었다.
“네가 보기엔 어때? 이야기가 잘 될 것 같아?”
“이미 이와 비슷한 회의를 한 적이 있다. 29층에 온 지 3일도 되지 않아서 각 길드의 간부들이 이 섬에 모였었지.”
“말하는 걸 보아하니 결과가 좋진 않았나 보네.”
“앞에선 인류의 번영과 평화를 부르짖으면서도 뒤에선 각 길드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게 역겨울 지경이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현재 탑에서 나오는 자원과 아이템들은 기존의 상식을 아득히 넘어서는 것들.
하물며 평소 명예와 권력이라는 맛을 모르고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이 탑이 나타난 이후 온갖 관심을 다 받고 있는 상황 아닌가?
그런 황홀한 사탕을 입에서 뱉고 싶지 않은 게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가진 공통된 생각일 거다.
“목숨이 달려있는 와중에 자기 밥그릇만 챙긴다니. 진짜 돈과 감투가 무섭긴 한가 봐.”
“물론, 정신이 똑바로 박혀 있는 랭커들도 있다. 시온길드나 성십자 기사단 같은 경우는 개개인보다 대의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
성직 계열 플레이어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길드.
그들은 아직 때 묻지 않은 채 정도를 지키고 있었다.
‘흐음…….’
진혁이 턱을 쓰다듬었다.
“일단, 한 번 보자고. 어쨌든 이번 층계에서 부대껴야 할 친구들이니까.”
“그래. 무엇보다 여기엔 테레사 씨도 있을 테니, 좋든 싫든 가긴 가야지.”
흩어졌던 플레이어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이는 만큼, 마지막 멤버인 테레사 또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아얏! 귀… 귀 잡아당기지 말거라! 조금만. 딱 저거까지만 사고 가겠다. 한정판이라고 했단 말이다!”
“조개껍데기에 한정판이 어딨냐? 이 호갱님아. 저거 다 상술이니까 적당히 하고 와. 이러다가 회의에 지각한다.”
진혁이 엘리스의 귀를 잡아당겼다.
늘어져 있는 가판대를 지나 얼마나 걸었을까?
지금까지 봤던 것 중에 가장 번듯해 보이는 선술집이 나타났다.
입구부터 익숙한 얼굴들이 보이는 걸 보니, 여기가 회의 장소인 게 틀림없었다.
“이봐, 저쪽 봐…….”
“강진혁 플레이어야. 천유성이랑 엘리스도 있어.”
“유연화와 이태민 듀오까지 데리고 왔군. 신형 전함으로 침몰시킨 배만 해도 스무 척은 족히 넘는다던데.”
“다들 따로 활동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그거야 선장격인 강진혁 플레이어가 지금까지 없어서 그랬던 거고. 이제 다시 해상전에 합류했으니, 모두가 모인 거겠지.”
웅성웅성.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등장으로 인해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2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회의는 정각에 시작되니 혹시 자리를 비우실 생각이라면 참고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안내에 따라 위로 올라가자 수십 명이 있는 회의장이 보였다.
입구나 1층에 있던 플레이어들과는 다르다.
2층에 올라올 수 있는 건 8대 길드를 대표하는 이들과 그들이 데려온 랭커들뿐이었다.
‘이런 멤버를 동시에 보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네.’
진혁이 앉아 있는 이들의 면면을 훑어봤다.
미국 타이탄 길드의 패트릭.
유럽 올림포스 길드의 마리아.
중화 길드의 몰락 이후 새롭게 급부상한 중국 천혼 길드의 양치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역시나 이 셋이다.
지금까지 굵직한 레이드에서 제법 큰 피해를 입긴 했지만, 그만큼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훈련 과정과 실전 경험을 통해 A급 이상의 랭커들을 다수 보유하게 됐으니까.
‘마스터급들도 확실히 실력이 오르긴 올랐네.’
예전에 만났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강진혁 플레이어님! 이쪽이에요!”
마리아가 반갑게 진혁을 맞아주었다.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네, 덕분에요. 그동안 꽤나 고생하고 있었는데, 이제 강진혁 플레이어님이 오셨으니 한결 편해지겠어요.”
“이 정도 멤버를 데리고도 고전을 했다니. 좀 의외네요.”
“그게….”
마리아가 슬쩍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한 마디 덧붙였다.
“가장 큰 해적단을 소탕하는데, 워낙 의견이 안 맞았거든요. 게다가 마지막 섬으로 가는 지도 조각들은 서로 공개를 안 하고 있고요.”
한 마디로 진퇴양난의 상황이라는 뜻.
이번 회의도 그걸 조율하기 위해서였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일이 쉽게 풀리지 않을 듯싶었다.
“…….”
천혼 길드의 양치안과 그의 측근들이 경계심 가득 한 눈으로 진혁과 마리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단군 길드의 문규호 역시 불편한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고.
확실히.
골치가 아파할 만하다.
서로 협력해도 모자를 판에 자기들만 안전하고 좋은 길로 가려는 게 뻔히 보였으니까.
그렇다면….
이 미묘하고 불편한 공기를 완전히 바꿔버릴 만한 이야기를 꺼내주면 된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제가 제안을 하나 해도 될까요? 모두가 손해 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거든요.”
진혁이 앞으로 나섰다.
* * *
-어떻게든 뒤에서 전력을 보존해야 해. 앞은 다른 길드에서 뚫어주겠지,
-우리만 위험을 무릅쓸 순 없어. 무엇보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번에 찾은 ‘청간 산호’들은 부르는 게 값이라고.
-무리하게 해적 소탕따위 하지 말고 천천히 지도나 모으면 돼.
아직도 80일이 넘게 남았는데 괜히 무리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잖아?
한 곳에 모여 있지만, 서로의 머릿속엔 전부 다른 생각뿐이었다.
바로 그때, 진혁이 모두의 허를 찌른 것이다.
이곳에 있는 전원이 이득 볼 수 있는 길이 있다면서.
만약, 이 말을 다른 사람이 했다면 듣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많은 업적을 달성한 진혁이 한 말이었기에, 지금 당장 반박하는 이는 없었다.
침묵을 깬 건 일본 쪽이었다.
“아무래도 뭔가 생각하고 있는 게 있나 보군요. 어디, 얼마나 대단한 제안인지 들어나 봅시다.”
사무라이 길드의 호사카와 요시오가 어깨를 으쓱였다.
“지금 다들 머뭇거리고 있는 게 하이리스크 로우리턴 때문이지 않나요? 투자하는 거에 비해서 잃는 게 많으니 누군가 대신 해주길 바라는 심정으로 시간을 끌고 있는 거죠.”
“흐음. 그건 좀 비약인 것 같습니다. 우린 어디까지나….”
“제 앞에선 가식 떨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기가 기자회견장도 아니고. 저도 잘 압니다. 톡 까놓고 이야기해서 누가 선두에 서서 독박 쓰고 싶겠습니까?”
“…….”
요시오의 입 꼬리가 미묘하게 비틀렸다.
저건 긍정의 의미리라.
가식 없는 발언에 나머지 랭커들도 조금은 흥미가 동하는 듯 보였다.
좋아.
이 정도면 분위기가 적절하게 무르익었다.
“그 독박 포지션, 저희가 맡겠습니다. 가장 선두에 서서 해적단의 본거지로 갈 수 있는 루트를 안내하죠. 물론, 거기서 나오는 보물들은 공평하게 분배할 것 또한 약속드립니다.”
툭!
테이블 위에 거대한 지도 한 장이 떨어졌다.
“이건 제가 입수한 지도입니다. 진위 여부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지도 조각들을 종합해 보면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거부하려야 거부할 수 없는.
파격적인 제안이 튀어나왔다.
“지, 진짜야.”
“B-12구역. 그래 틀림없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도와 일치해.”
“이런 걸 그냥 내놓겠다니….”
때문에 지도에 정신이 팔려있는 각 길드의 수뇌부들은 보지 못했다.
진혁의 입가에 걸려 있는 사악한 미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