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17)
417화. 출항 (1)
기간트달로스.
시련의 탑에 서식하는 해왕종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덩치를 지니고 있는 놈이다.
마치, 움직이는 거대한 섬이라고 해야 하나?
놈을 처음 마주한다면, 대체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런 터무니없는 괴물이 출몰하는 구역이….
……바로 해적섬으로 가는 길목에 표시되어 있었다.
[레벨 추정치 170, 크기 72m(대형종), 바다에서 싸울 경우 모든 능력치 20% 상승.]“일부러 이곳으로 가고 있다는 말이냐?”
천유성이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직접 싸워본 적은 없었지만, 지도에 적혀 있는 정보대로라면 절대 마주해서는 안 되는 종류다.
심지어 이번 층계에선 플레이어가 바다에 빠질 경우 모든 능력치가 감소하는 페널티까지 있지 않은가?
상대에게 유리한데, 이쪽에게 불리한 지형조건은 전투에 있어 치명적인 요소였다.
하지만, 진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딴청을 부렸다.
“위험하긴 한데, 잘만 하면 괜찮아. 게다가 뭐가 걱정이야? 우리에겐 든든한 지원군이 있는데?”
지금도 따라오고 있는 함선이 수십 척이다.
몇몇을 제외한다면, 대부분 급조된 4성급 이하 함선이긴 해도 그 숫자가 무시하기 힘든 규모란 뜻이다.
“미끼로… 쓰려는 거군.”
“크흠. 미끼라니. 누가 보면 내가 나쁜 놈인 줄 알겠네. 나는 그냥 응? 우리가 원활하게 섬에 진입하기 위해서 도움을 얻고자 했을 뿐이야.”
“그게 미끼라는 거다. 젠장. 어쩐지 너무 순순히 양보를 하더라니….”
혀를 차던 천유성의 표정이 한 차례 더 어두워졌다.
“설마, 그때 썼던 공증서도 사기인 거냐?”
“에이. 그거 구속력이 얼마나 강한 건데, 내가 어떻게 사기를 쳐?”
“하긴, 아무리 너라도 그런 쓰레기 짓은….”
“계약서에 적혀 있는 내용을 어긴다면 모를까. 그대로 실천만 한다면 약속은 틀림없이 지킬 거야.”
“……!?”
설마,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갔다.
천유성이 다급히 모두에게 배분했던 공증서를 꺼냈다.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함선이 가장 선두에 설 것이며, 모두가 해적섬에 무사히 도착해 해적단을 소탕할 경우 그로 인해 나오는 모든 보상은 참여한 길드의 숫자대로 분배하겠습니다.] [불이행 페널티: 1,000만 코인]말을 듣고 나서야 적혀 있는 내용에 묘한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다.
천유성이 검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다들 분위기에 휩쓸렸다… 그대로 당했군.”
공증서에 적힌 내용은 분명 이렇다.
모두가 ‘무사히’ 해적섬에 도착할 경우 보물을 분배하겠다는 조항이 적혀 있는데.
“이건 다시 말하면 섬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보상을 분배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진혁이 뒷말을 대신 받았다.
애초에 일부러 손해 보는 위치를 자처한 것도 모두 이걸 위한 안배였다.
기간트탈로스로부터 무사히 벗어나 해적섬에 도착해 목적을 이루고….
……마지막에 길드들을 상대하느라 힘이 빠진 기간트탈로스를 처리해 버리면 된다.
아무리 플레이어들이 아등바등 달려들어 봤자 바다에 있는 기간트탈로스를 처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으니, 막타를 빼앗길 걱정 또한 할 필요 없겠지.
천유성이 무언가 말을 꺼내려는 듯 입을 뻐끔거렸다.
하지만, 입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욕을 하든 비난을 하든 어차피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훗. 역시 짐의 계약자답구나. 원래 고귀한 이들은 미천한 것들을 신경 쓰지 않는 법이다.”
엘리스만이 자랑스럽다는 얼굴을 한 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쿠릉… 우르릉!
창문 밖, 저 먼 곳에서 희미하게 천둥과 소리가 들렸다.
폭풍이 몰려오는 건 아니다.
천둥은 단 한 번 몰아치는 것으로 끝났으니까.
게다가 이후에 내려친 번개는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
진혁이 번개가 내려친 방향을 바라보며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 * *
항해를 시작한 지 약 3시간이 흘렀다.
선단의 후미에 자리 잡은 ‘간다라’ 길드는 다른 배들보다 조금 더 바깥으로 항로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그 녀석이 선의를 가지고 이런 일을 했을 리가 없지.”
니라샤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무슨 꿍꿍이를 지녔는지 몰라 당장은 잠자코 있었지만, 이대로 흘러간다면 분명 뒤통수를 맞게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해답을 알기까지는 멀지 않았다.
그때였다.
덜컹!
문을 박차고 두 사람이 선실 내부로 들어왔다.
“니라샤 님!”
이룬과 찬드라.
간다라 길드에 소속된 랭커들이었다.
“성유물을 통해 놈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알아냈습니다!”
‘천세’의 신격들로부터 받은 성유물 ‘빛나는 돌’.
심장을 바치는 제물 의식을 함으로써 미래의 위험 중 하나를 엿볼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제약이 많이 걸려 있어 자주 사용하진 못했지만, 이럴 때 쓰라고 준비해둔 히든 카드 아닌가?
“말해라.”
니라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희가 가는 길에 거대한 해룡이 잠들어 있습니다.”
“해룡이라고?”
“예. 대형종… 그것도 엄청나게 강한 마력을 지닌 놈입니다.”
“신수나 환수급에 해당한다고 봐야 할 것 같더군요.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간 함대 전체가 박살날 뻔했습니다.”
“……하! 이 능구렁이 같은 놈을 봤나.”
니리샤의 안면이 험악하게 씰룩였다.
지금 모든 배들은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배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가고 있었다.
혹시라도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뒤에서 관망하다가 대처를 할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게 바로 놈이 노리는 바였다.
겉으로는 온갖 영웅놀이를 다 하면서 뒤에서는 혼자서만 빠져나갈 계획을 세우둔 거겠지.
“아주, 우리를 병신으로 봤구나.”
당장이라도 이 썩을 놈을 죽여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정보의 출처를 묻는 과정에서 심장을 바치는 제물 의식을 사용한 게 밝혀졌다간, 마인들과 다를 바 없는 비난을 받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놈의 계획대로 따르는 척하다가 역으로 이용하는 편이 좋겠어.’
천천히 뒤를 따라 갈 때가 아니다.
고인물 코퍼레이션이 있는 곳까지 단숨에 따라잡아야 한다.
무슨 장난질을 쳐서 해룡을 깨울지는 몰랐으나, 적어도 바로 근처에 있다면 빠져나갈 길은 있을 테니까.
“지금 당장…!”
니라샤의 명령은 채 끝을 맺지 못했다.
콰아앙!
수면 위로 엄청난 물보라가 솟구쳤다.
“그오오오!”
고막이 찢겨 나갈 것만 같다.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가리며.
상상을 초월하는 신수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해룡 ‘기간트탈로스’.
이것이 바로 대해를 지배하는 주인이다.
* * *
“으아아아!”
“대형 마수입니다!”
“당장 회피해라. 속도를 줄이고 옆으로 방향을 틀란 말이다!”
순식간에 연합 함대는 아비규환의 상황에 빠졌다.
난데없이 대형종이 튀어나왔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특히, 공격을 받더라도 고인물 코퍼레이션이 가장 먼저일 거라는 전제가 흔들린 게 가장 큰 이유가 됐다.
콰콰콰콰콰!
기간트탈로스가 날뛰자 5척의 배들이 산산조각이 났다.
피하거나 막을 엄두조차 나지 않은 일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기간트탈로스는 일정 크기 이상의 물체만 적으로 인식하는 탓에, 사망한 플레이어는 나오지 않았다는 거다.
물론, 바다에 빠진 이들은 더 이상 전투원으로서 활동할 수 없었다.
“크으. 역시, 밤낚시는 위험하단 말이야. 참치나 한 마리 잡으려 했더니 아주 별의별 게 다 튀어나오네.”
진혁이 낚시 줄에 매달린 마정석을 뽑았다.
후욱하고.
고약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마기로 가득찬 물에 8시간 동안 담가둔 탓에 아주 향이 제대로 배어버리고 말았다.
기간트탈로스를 깨우는 데 이것만 한 게 없다.
“모기…! 모기이이!”
심지어 고구마조차 반쯤 녹은 마정석을 보며 진저리를 쳤다.
“시간 벌이는 이 정도면 됐으니, 우리는 빠르게 빠져 나가볼까?”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혼자서라도 섬으로 갔어야 했다…라고 둘러댄다면 나중에 충분한 변명 거리도 될 거다.
적아 길드의 오지원이 뒤에 남아 사망자가 나오지 않게끔 총력을 다하기로 했으니, 최소한의 안전망 역시 마련해 두었고.
그때였다.
부우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콰콰콰앙!
화이트펄 호의 측면이 불길에 휩싸였다.
호위로 붙여둔 드론들까지 모조리 파괴해버릴 만큼 강력한 마법 공격이었다.
“형! 간다라 길드 쪽에서 갑자기 공격을 했어요!”
“크윽. 저놈들이 미쳤나!”
이태민과 유연화가 고함쳤다.
그 말대로 간다라 길드의 배 17척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혀오는 중이었다.
화력을 집중해 온갖 종류의 폭격을 퍼부어 대는 건 덤이다.
‘호오. 이것들 봐라?’
진혁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놈들이 공격을 했다는 건 곧 이번 해룡 미끼 작전을 눈치 챘다는 뜻.
그러나.
‘해룡이 잠들어 있는 곳을 아는 사람은 없을 텐데…?’
이곳을 관리하는 알루티 역시 해룡의 존재에 대해서만 알고 있을 뿐.
정확한 위치는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한데 어떻게…?
“죽여 버리겠다!”
저렇게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고 있으니, 그 이유를 찾는 건 이제 와서 무의미하다.
죽이겠다는 의지가 확고히 느껴졌으니까.
5성급 17척과 8성급 1척.
함선 자체의 성능 차이는 압도적이었으나, 절반 이상을 버릴 각오로 달라붙는다면, 상황은 예측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만약, 이 상태로만 맞붙게 된다면 말이다.
쿠쿠쿠쿠!
니라샤가 코앞까지 다가왔을 무렵.
측면에서 또 다른 배가 쇄도했다.
앞부분을 뾰족하게 깎아, 오롯이 상대를 격침시키기 위해 특화된 배.
작지만, 빠른 돌격함이 그대로 니라샤의 옆구리를 들이박았다.
콰아앙!
날카로운 피격음이 울려 퍼졌다.
“크윽! 뭐냐 이건 또!”
“킥킥킥!”
“전투다. 전투다. 모조리 다 죽여도 돼? 응? 전부 다 죽여도 돼?”
광기에 젖은 목소리가 전신의 솜털을 자극했다.
“네놈들은…?”
니라샤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모를 리가 없지.
어찌 모를 수가 있을까?
탑의 등반보다…. 생명체를 찢고 죽이는 걸 즐기는 랭커.
워낙 한 층계에 오래 머무는 탓에 의외로 일반인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상위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정신 나간 쌍둥이에 대해 들어보지 않은 이는 없었다.
케이시와 주드로.
금발의 쾌락 살인귀다.
“헤헤. 누구 머리가 제일 예쁘려나? 저 아저씨? 아니면 저 오빠?”
케이시가 거대한 헬버드를 든 채 니라샤의 배를 향해 도약했다.
숫자 따위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적진 한복판에 떨어졌다.
콰직!
붉게 펼쳐지는 피 안개.
‘반으로 갈라 죽는다’라는 말은 바로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케이시가 그야말로 갑판 위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끄아아아!”
“미, 미친놈들! 홉고블린 종족을 멸종시킨다고 한동안 안 보이더니.”
“당장 죽여라! 저 남자 놈까지 합류시켜선 안 된다.”
아직 한 명만 왔을 때 어떻게든 끝내야 한다.
둘이 모였을 때의 시너지는 최상위 랭커들도 감당하기 힘들다고 알려졌으니까.
하지만, 이미 늦었다.
주드로의 손엔 어느새 전투용 해머와 방패가 쥐어져 있었다.
콰아앙!
기간트 탈로스로 인한 피해보다 더 커다란 피해가 일어났다.
“빌어먹을!”
사태가 이쯤 되자 니라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거머리 두 마리를 상대하면서 진혁까지 추격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게다가 빠져나갈 타이밍을 놓쳐 기간트 탈로스의 영역에 갇히고 말았다.
“여기서 열심히 치고받고 하고 있어. 너무 늦지 않게 돌아올 테니까.”
진혁이 니라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죽여버리겠다. 반드시 산 채로 씹어서 죽여버리겠단 말이다!”
니라샤의 악에 받친 비명 소리가 바다를 따라 메아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