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18)
418화. 출항 (2)
길드 연합이 기간트달로스를 상대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6시간 남짓.
그 안에 모든 승부를 끝내야 한다.
쿠쿠쿠쿠!
진혁이 최대 속도로 항해를 시작했다.
함선이 파도를 가르며 거침없이 앞으로 뻗어나갔다.
나머지 멤버들은 각자의 무장을 점검하며, 곧 있을 상륙전에 대비했다.
바로 그때.
“주군!”
진혁의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순식간에 푸른 검기가 솟구쳤다.
콰득! 퍼퍽!
녹색 빛이 나는 화살이 허공에서 쪼개졌다.
진혁의 그림자 속에서 호위하던 월영이었다.
“뭐야? 주위에 배는 없는데? 어디서 날아온 거지?”
“레이더에도 탐지되는 움직임은 없어요.”
난데없는 기습에, 유연화와 이태민이 다급히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시야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물 속이야.”
엘리스가 넘실거리는 파도 아래를 내려다봤다.
집중해 보지 않는다면, 절대 알아차리기 힘들었을 거다.
분명, 물속에서는 기묘하게 생긴 무기를 든 무언가가 있었다.
“인어야.”
진혁이 대신 대답했다.
“호오. 그런 놈들이 실존한다는 말이냐? 거 참, 별의별 것들이 다 있구나. 이놈의 탑이란 곳은. 물속에서도 살 수 있는 인간이라니 짐도 처음 봤느니라.”
그럼, 정말 별별 것들이 다 있지.
예를 들어 바보 뱀파이어라든가….
군것질에 환장한 가주라든가….
K드라마에 빠져서 탑 밖에 나가면 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는 집순이라든가 등등.
진혁이 슬쩍 엘리스를 바라봤다.
“왠지 그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계약자.”
“아니,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든든한 동료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뿐이야. 진심으로.”
“……펴, 평생!?”
엘리스가 얼굴이 순간 빨갛게 물들었다.
목소리 또한 가늘게 떨렸다.
“헤헤…가 아니라 크, 크흠! 그래 짐이 원래 좀 든든하긴 하지. 진실을 말하는 걸 보니 뱃멀미는 하지 않는 모양이구나. 우리 계약자는 짐이 평생 지켜주겠다. 그러니까 어디 가버리면 안 되느니라. 계약자? 응? 대답하거라. 야! 대답하라고!”
엘리스가 열심히 옆에서 떠들었지만, 진혁은 바다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주군, 어떻게 할까요? 명령만 내리신다면 감히 주군을 노린 놈을 베어버리겠습니다.”
월영이 당장이라도 바다에 뛰어들 자세를 취했다.
“괜찮아, 내버려 둬. 방금 걸로 자신들 수준에선 어쩔 수 없다는 걸 느꼈을 거야.”
“……알겠습니다. 주군의 뜻이 정 그러시다면야. 한데, 좀 의외로군요. 보통 인어들은 인간들과 거리를 두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호오. 월영이 인어에 대해서 알고 있다니.
의외로 폐쇄적일 줄 알았던 무림의 정보부도 다른 층계에 대해서 속속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긴 한데… 여기 사는 녀석들은 꽤 악에 받쳐 있거든. 인간이라면 보는 족족 죽여 버리고 싶을 거야.”
인어는 특유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으로 인해 꽤나 신성시 되는 종족 중 하나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거주자들은 그걸 존중하지 않은 채 오히려 짓밟았다.
인어를 보기 좋은 애완동물로 여기며 닥치는 대로 포획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 그들이 가지고 있는 보물들을 약탈하기 일쑤였다.
벌써 몇백 년에 걸쳐 이어져온 사냥.
‘그 결과 인어들의 성향이 많이 안 좋아졌지.’
평화로웠던 성격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고.
그 자리엔 노리개로 전락당한 스스로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으로 가득 찼다.
앞으로도 이 층계에는 이런 일이 영원히 계속될 거란 소리다.
진혁이 자신을 노려보는 인어를 바라봤다.
녹색 눈동자가 희미하게 빛나는 게 보였다.
“가자.”
인어들과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푸는 것도 필요하긴 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진혁이 목적지를 향해 재차 박차를 가했다.
⁕ ⁕ ⁕
망망대해에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해골 섬.
이곳엔 29층에 존재하는 가장 큰 해적단이 자리잡고 있었다.
‘페인 해적단’이라 불리는.
돈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하는 쓰레기들의 집단이.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이가 바로 ‘콥스’라는 이름의 사내였다.
“……이거, 엉덩이 무거운 양반께서 우리한텐 무슨 볼일이요?”
콥스가 길게 기른 검은색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그 앞에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햄스터 한 마리가 서 있었다.
29층을 관리하는 중간 관리자 ‘알루티’였다.
웅성웅성!
주위의 해적들이 긴장을 감추지 못 했다.
십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중간 관리자가 나타났으니, 당연히 불편할 수밖에.
“찍찍! 의뢰 한 가지 하려고 한다.”
“의뢰라… 우리는 값이 좀 비싼 건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어떤 종류입니까? 그 의뢰란 건?”
“지금 이곳에 성가신 인간 한 명이 오고 있다. 이름은 강진혁.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플레이어지.”
“호오. 고작 플레이어 한 명 때문에 관리자님께서 나서신 겁니까?”
“고작 플레이어 하나가 아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탑의 거주자들과 보스 몬스터들이 그 놈 하나 때문에 박살났으니까.”
“끌끌끌! 제법 손맛이 있는 놈인가 보군요. 간만에 총열에 슨 녹이나 좀 닦아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콥스가 화려한 문양으로 장식된 화승 권총을 꺼냈다.
“위에서도 관심 있게 지켜볼 정도다. 절대 실패해선 안 된다. 찍.”
“어이구. 예예~.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아무리 날고 기는 놈이라도 그건 육지에서의 이야기. 바다에서라면 결코 내 상대가 아닙니다. 안 그러냐 얘들아?”
“물론입니다. 킬킬.”
“강진혁이란 놈과 그 배에 있는 선원들을 모조리 바닷속에 수장시켜버리겠습니다.”
“감히 우리 페인 해적단의 영역에 오다니. 가죽을 벗겨 돛대에 걸어줍죠.”
해적들이 낄낄대며 각자의 무기를 뽑았다.
“무엇보다 저에겐 ‘바다의 성유물’이 있습니다. 인어 놈들에게서 빼앗은 걸 포함해서 3개의 성유물 전부를 이 콥스가 보유하고 있다 이 말입니다.”
층계 특화형 성유물.
화승권총을 포함해 29층에서 가장 큰 효율을 발휘하는 성유물을 전부 모았다.
괜히, 이 층계에 있는 모든 거주자들이 페인 해적단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게 아니다.
“찍찍. 그래, 든든하군.”
알루티가 해바라기씨를 갉작였다.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 보험을 좀 들어두겠다. 의심병이 도진 건 아니지만, 그만큼 이번 일이 중요하거든.”
“보험이라면, 어떤 걸 말하는 거요?”
“플레이어 중에서 우리 쪽에 넘어온 자가 있다. 찍! 자, 소개하지.”
알루티가 바로 옆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전신이 흠뻑 젖은 남녀가 다가왔다.
니라샤와 간다라 길드의 플레이어들이었다.
알루티의 대규모 공간이동 마법을 통해 섬으로 이동한 니라샤는 분노와 수치심으로 인해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녀석이 해룡을 깨우지만 않았어도….”
“찍찍! 괜찮습니다. 놈이 허를 찌른 건 사실이지만, 덕분에 나머지 플레이어들의 발이 묶인 것도 사실이니까요,”
간다라 길드가 이 싸움에 참전할 거라곤 계산하지 못했을 터.
함정에 빠진 건 고인물 코퍼레이션 쪽이 될 것이다.
알루티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맺혔다.
⁕ ⁕ ⁕
쿠쿠쿠쿠!
화이트 펄 호가 파도를 가르며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저 멀리서 보이기 시작한 섬.이제 목적지까지 머지않았다.
하지만….
역시 세상일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바퀴벌레처럼 몰려왔군.”
천유성이 류화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전방에 보이는 함선만 해도 마흔 척이 가볍게 넘었다.
“저걸 뚫어야 해안가에 상륙할 수 있겠구나.”
엘리스도 적의 전력을 살피며 한 마디 덧붙였다.
우둑!
“뭘 망설이고 있어? 시원하게 한 판 붙어보자고. 어차피 싸움이라는 게 머릿수로 하는 것도 아니잖아?”
유연화는 몸이 근질근질한지, 어느새 건틀릿까지 착용한 상태였다.
‘콥스는 역시나 섬 안쪽에서 대기하고 있는 건가.’
진혁의 동공이 빠르게 움직였다.
선장을 상징하는 깃발도.
움직이는 섬이라 불리는 8성급 함선도 보이지 않았다.
‘보유한 선단도 전부 내보내지 않았네.’
전력의 절반 이상을 아껴두고 있다는 뜻.
본래의 성격대로라면 절대 몸을 사릴 성격이 아니다.
가장 선두에 서서 미친 개처럼 물어뜯는 게 놈이 전투를 하는 방식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이렇게 몸을 사리고 있다는 건….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이다.
중간 관리자. 아니, 그보다 훨씬 윗선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
‘결국엔 타임어택이란 소리지.’
어느 쪽이 준비한 창이 더욱 날카롭고 빠를지.
더 많은 변수를 예측하고 그에 따른 백업 계획을 세워 뒀을지가 이 싸움의 승패를 결정짓게 만들 거다.
우우웅!
진혁의 양손에 두 쌍의 검이 나타났다.
“태민아.”
“예, 형.”
“배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켜야 해. 엘리스도 대공방어를 돕긴 할 테지만, 어쨌든 전체적인 건 너한테 의지할 수밖에 없어.”
아무리 엘리스의 ‘블러드 로드’가 사기적이라 한들, 무수히 쏟아지는 포탄과 수많은 적들과의 난전을 전부 커버할 순 없다.
마력 공급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병력의 차이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형. 나 인대남이에요. 솔플로 미궁 클리어한 인대남.”
인간 대머리 남자.
한때 같이 동고동락했던 고인물의 아이디가 튀어나왔다.
그래.
벌레들을 모조리 불태우며 세스코 코스프레를 하던 난전의 대가.
소수 대 다수의 싸움에서 이태민이라면 든든하게 믿고 일을 맡길 수 있으리라.
피식.
진혁이 따뜻한 미소를 머금었다.
바로 그때.
“온다.”
천유성이 번개처럼 검을 휘둘렀다.
퍼어엉!
콰콰콰쾅!
반으로 잘린 포탄에서 붉은 폭염이 비산했다.
“환영 축포가 화려하네. 그럼, 길을 가로막는 것들부터 좀 정리해볼까.”
전투가 시작되었다.
하늘을 가득 메운 포탄과 각종 마법들이 쉴 새 없이 화이트 펄 호를 노렸다.
하지만, 이태민의 드론들과 배에 설치된 각종 방어장치들은 단 하나의 피격도 허용하지 않았다.
“감히, 더러운 것들을 어디다 대고 쏘아대는 것이냐?”
거기에 엘리스의 피로 만든 꼬챙이들까지 가세하자 바다 위를 떠다니는 이동 요새가 완성되었다.
방어는 이쯤이면 충분하다.
툭.
‘빙하조형’을 이용해 만든 발판을 밟고 도약한 진혁이 단숨에 선두에서 접근하는 해적선에 올라탔다.
갑판 위엔 이미 십여 명의 해적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네놈이 강진혁이냐? 나는 페인 해적단의 제3대대… 크읍!?”
말을 하던 근육질의 남자가 다급히 도끼로 몸을 막았다.
카앙!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온 진혁이 공격을 해버린 탓이다.
“교양이라곤 없는 놈이구나. 통성명을 하는데 기습을 가하다니.”
“음…. 교양을 논할 거면 먼저 그 면상부터 갈아엎는 게 먼저 아닐까?”
“뭐, 뭐라고?”
“지금 지천에 깔린 게 물인데, 세수라는 것부터 좀 해봐. 기왕이면 그 이빨도 솔 같은 걸로 박박 좀 문지르고. 그래야 조금은 문명인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거야.”
해적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겉모습만 보면 이게 인간인지 몬스터인지 구분이 잘 안 간다.
오크에게 인간의 언어와 예법을 잘 가르친 최종체가 어쩌면 눈앞의 이 남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 혹시, 그 얼굴로 상대방의 심장마비를 노리는 거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저 놈. 반드시 산채로 붙잡아라. 혓바닥을 뽑아버릴 테니까.”
“예? …예. 예. 대장. 알겠습니다.”
이쯤 되면 얄팍하게 펼치던 허례허식마저 사라질 수밖에 없다.
해적들이 살기를 줄기줄기 뿜어내며 진혁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