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19)
419화. 페인 해적단 (1)
“죽여!”
“으아아아!”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해적들이 단숨에 달려들었다.
물론, 감정이 실린 공격에 당해줄 정도로 진혁의 몸놀림은 단순하지 않았다.
슬쩍.
왼쪽에서 오는 공격을 가볍게 피한 진혁이 미꾸라지처럼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빠르다.
워낙 절묘하고 엇박자로 틈을 찌르는 탓에, 순간 모습을 놓치고 말았다.
“큭!”
“무슨 놈의 움직임이….”
하지만, 뒤를 잡았음에도 진혁은 해적들을 베어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배의 깊숙한 곳을 향해 도약했다.
“설마…!?”
이변을 가장 먼저 깨달은 건 페인 해적단의 3대대를 이끄는 전투대장이었다.
“마, 막아라!”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무슨 짓을 하려는지 눈치채버렸기에.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콰직!
진혁이 단숨에 돛대를 베어버렸으니까.
끼이이이…!
나무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배의 균형이 크게 무너졌다.
처음부터 노린 건 인명이 아닌 배 그 자체.
‘시간제한이 걸려 있는 이상, 일일이 상대할 생각은 없어.’
도발에 걸려들어 쉽게 포위망을 풀어준 게 패착이라면 패착이다. 덕분에 이쪽은 한결 일을 수월하게 하게 되었지만.
콰콰콰쾅!
정확하게 계산해둔 각도로 돛대를 박살낸 탓에, 배가 오른쪽 방향으로 크게 반원을 그렸다.
당연히 촘촘하게 거리를 둔 페인 해적단의 또 다른 배는 충돌하는 아군의 배를 그대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악!”
“끄아아악!”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게다가 이러한 작전을 사용한 건 진혁만이 아닌, 천유성과 유연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콰아앙!
끼기긱…콰직!
인명 피해 대신 함선에 피해를 극대화해 돌파구를 마련하는 방법은 페인 해적단으로서는 예측하지 못한 돌발상황이었다.
“이런, 더러운 놈들 같으니…! 정정당당하게 싸우란 말이다! 네놈들에게는 긍지니 명예니 하는 것도 없단 말이더냐!”
“응. 없어.”
“뭐?”
“그런 게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그보다 정말 긍지를 걸고 싸울 거였으면 쪽수라도 맞추고 오든가. 말하면서 쪽팔리지도 않아?”
“그, 그건….”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를 해적이 말을 더듬었다.
“뭐, 말은 그럴듯하지. 해적은 낭만에 살고 긍지에 죽는다. 캬. 얼마나 멋있어? 근데 어디 그놈의 잘난 긍지, 우리 전부 놓치고 너네 선장한테 가서 백날 찾아 봐. 목이 남아나 날지 좀 보게.”
아마 콥스 그 미치광이 녀석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칼부터 휘두를 거다.
이제 볼일을 전부 끝낸 진혁이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동시에.
퍼어엉!
작은 불꽃놀이가 허공을 수놓았다.
신호탄…인가?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게나?”
“별건 아니야. 기간트달로스를 꾀어내는 데 썼던 미끼가 마침 좀 남아 있었거든.”
고약한 특유의 향은 물속에 서식하는 몬스터를 자극하는 데 꽤나 효과적이다.
물론, 그때는 기간트달로스라는 최상위 포식자 때문에 다른 놈들이 잠잠했지만….
성질 더러운 왕이 사라진 지금이라면 과연 어떨까?
꿀꺽….
진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은 해적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건 미친 짓이다.
“너희 편도…이곳에 있을 텐데?”
“우리 애들은 자기 목숨 정도는 알아서 잘 챙겨. 나 역시도…마찬가지고.”
난간에 걸터앉았던 진혁이 바다를 향해 그대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크오오오!”
“크아아아!”
바다 속이 또 다시 요동쳤다.
수면 아래에서 거대한 검은 그림자들이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파도가 산산이 부서졌다.
수십 마리의 바다뱀들.
기간트달로스에 비하면 새끼에 불과한 크기지만, 그래도 하나같이 30m가 넘는 대형종이다.
콰직!
콰콰콰콰콰!
“서…서펜트다!”
“으아아아! 뱃머리를 돌려라. 당장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바다 사람들이라면 서펜트의 두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배를 가볍게 뒤집은 뒤, 물 위에 떠다니는 사람들을 통째로 삼켜버리는. 그야말로 바다의 악몽이라 할 수 있는 몬스터들이다.
보통 이 정도 규모의 함대가 있으면 놈들도 함부로 건들진 않았지만, 진혁이 뿌린 미끼로 인해 그야말로 폭주 상태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크아아아!”
서펜트들이 닥치는 대로 해적선을 공격했다.
그 중에는 진혁이 보유한 ‘화이트펄 호’도 있었다.
“미, 미쳤어. 어떻게 제정신으로 저런 짓을 할 수가….”
잔뼈 굵은 해적들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었다.
아군은 물론 자신 스스로까지 지옥구렁텅이에 밀어넣은 모습은 충격을 넘어 경악 그 자체였던 것이다.
하지만, 페인 해적단들이 모르고 있는 점이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진혁이 보유한 ‘멘트라 테이밍’이 사나운 몬스터들에게도 통용이 된다는 것과.
두 번째로 용(龍)족 중에서도 꽤 상위에 속하는 소환수가 진혁의 명령에 따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파도에 휩쓸렸던 진혁이 어느새 거대한 용의 등에 올라타 있었다.
“꽤나 아슬아슬했어. 조금만 늦었으면, 물고기 밥이 될 뻔했네.”
“크…흠. 무사했다니 다행이다.”
말랑흑두루미가 불편한 기침을 내뱉었다.
당장 나오지 않으면 꼬치구이로 만들어버리겠다는 협박에, 어쩔 수 없이 현현하긴 했지만.
그 이유가 서펜트들을 단속하지 위해서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도 내가 동방의 사신수인 청룡인데….”
“인데?”
진혁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아니, 내 말은…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소소한 일에까지 날 끌어들이는 건…그 왜 체면이라는 것도 지켜줘야 하지 않나 싶어서….”
“싶어서?”
가라앉은 목소리에서 서늘한 온도가 느껴졌다.
“불만이라는 건 아니다. 그런 뜻은 아니라….”
“아니라?”
“……아니다. 내가 잘못했다. 암! 버릇없는 지렁이들을 교육하는 거야말로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지.”
[말랑흑두루미가 스킬 ‘기상개변(氣象改變)’을 발동합니다!]여의주를 이용해 파도를 다스리고 더불어 서펜트들에게까지 영향력을 미쳤다.
“그라라라?”
“키이이….”
신비로우면서 강력한 기운에 서펜트들이 함부로 달려들지 못했다.
마치, 기간트달로스와 마주한 것처럼.
저마다 최대한 고개를 낮춘 채 싸울 의사가 없음을 피력했다.
물론, 개중에 몇몇은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했지만….
“모오오기!”
두 눈을 부라리는 고구마의 존재로 인해 반항의 싹은 곧바로 즈려밟혀졌다.
역시, 이래서 든든한 부하들을 곁에 잘 둬야 한다.
그래야 이런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톡톡히 덕을 볼 수 있었으니까.
‘좋아. 이걸로 함대는 무력화시켰고…살아남은 잔당들은 본거지로 돌아가 내가 해룡을 다룰 수 있다는 정보를 전달하겠지.’
바다에서 싸우는 게 더 위험하다는 걸 인지시키게 된 셈이니….
해전을 통해 시간을 버는 건 더 이상 하지 못할 것이다.
왼팔은 잘라냈고….
이제 오른팔을 잘라낼 시간인가.
말랑흑두루미의 등에 탄 진혁이 한층 더 박차를 가했다.
‘서둘러야 해.’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첫 번째 붉은 번개가 도래했으니 머지않아 하늘을 뒤덮는 폭풍이 몰려올 터.
그 전에 만반의 대비를 하지 않는다면 이곳에 있는 플레이어들 중 대부분이 바다 속에 뼈를 묻게 될 거다.
상황이 좋지 않다.
“니알라토텝. 이 미친 놈이 지금 타이밍에 크라켄을 풀어버릴 줄이야.”
진혁의 머릿속이 온갖 경우의 수로 얼룩졌다.
* * *
시나리오 ‘아포칼립스’.
탑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재난 중에 하나가 이 층계에서 발생하려 하고 있었다.
[첫 번째 붉은 번개가 폭풍이 되고 결국엔 서른아홉 번의 번개가 시작과 끝을 고하리라, 바다 위에 떠 있는 모든 것들은 무(無)로 돌아갈 것이고 그와 마주하는 모든 생명체는 한낱 먹잇감에 지나지 않게 될 터이니. 두려워하고 그저 기도하라. 심해의 재앙이 그를 찾지 말게 해달라고.]거대 신격 아스가르드의 몰락과 워그드라실의 붕괴에 ‘계시록의 네 기사’가 있었다면….
이번 일에은 29층 전체를 쓸어버릴 수 있는 최악의 몬스터. ‘크라켄이 개입해 있다.
아포칼립스야 워낙 천재지변과 같은 일이니 어쩔 수 없다곤 치더라도….
‘시기가 너무 안 좋아.’
하필이면 해결해야 할 일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지금 상대 쪽에서 너무나 강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올드 가드를 건드린 데다, 하스팅이 하는 일까지 족족 망쳤으니 당연히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거라곤 생각 ㅏㄴ 했지만….’
이번 건 꽤나 뼈아프다.
다른 건 둘째치고 대비할 시간과 자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나마 ‘전조’를 놓치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진혁이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바로 그때.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는데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구나.”
옆에 있던 엘리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건넸다.
“티를 안 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바로 알아차렸네?
“계약자가 그렇게 고민ㄴ하는 건 짐으로서도 처음 보는 일이니까.”
표정에 다 드러난 모양이다.
오랫동안 같이 다녔더니 쓸데없이 눈치만 빨라져서는….
“골치가 아프긴 해. 해적들이나 기간트달로스 쪽은 각각 대비책을 마련해뒀는데, 마지막 건 솔직해 말해 답이 없는 종류거든.”
“위험하다는 뜻인가?”
“……지금으로선 많이 쳐줘야 승산이 3% 정도 될까 말까야.”
층계 대부분이 ‘바다’라는 최악의 지형조건.
발을 디딜 곳은 함선뿐이지만, 8성급 아니, 설령 10성급에 해당하는 배라 할지라도 크라켄을 상대로 버텨낼 순 없다.
거기에 몇몇 특수 공격이 아닌 한 크라켄에게 피해를 입힐 수 없었기에, 난이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게 될 것이다.
“흐음. 어떠한 괴물이 나오길래 그런 건지 잘 모르겠지만…. 짐은 믿고 있다. 아무리 불가능한 적이라도 그대라면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엘리스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누가 뭐래도. 짐조차 포기했던 뱀파이어 가주들에게 한 방 먹인 자가 바로 그대 아닌가?”
“이야. 너답지 않게 좋은 말도 다 해주네. 모처럼 민트 초코라도 먹고 싶은가 봐?”
“누, 누가 그런 치약을 먹고 싶다고 했느냐? 그리고 감동을 받았으면 좀 맛있는 걸 제시하란 말이다!”
“알았어. 이번에 돌아가면 네가 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
“꼭 얻어먹을 거다. 배가 터질 때까지.”
엘리스가 두 주먹을 꼭 쥐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너무 혼자만 끙끙 앓지 말고 좀 더 주위에 있는 동료들을 믿어보거라. 이러니저러니 해도 다들 너와 함께하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지 않느냐?”
뱃머리에서 묵묵히 칼을 갈고 있는 천유성.
언제나 그림자 속에서 지켜오던 월영.
시련의 탑이 나타나기 이전부터 지금까지 쭉 함께 있어준 유연화와 이태민.
그리고 눈물 많은 우리 꼬마 여왕님까지.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 온다 해도 곁에서 내 편이 되어줄 것이다.
슈브니구라스가 현현했을 당시에도 누구 하나 도망치거나 배신하지 않았으니까.
“그래. 깔끔하게 마무리 짓고 다 같이 제대로 된 곳으로 여행이나 가자.”
해피엔딩으로 가야 할 이유가 또 한 가지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