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29)
429화. 성녀의 책무 (3)
저릿저릿.
이 느낌….
가브리엘이 속한 온건파의 천사들이 아니다.
상태창에서 능글맞은 살기가 잔뜩 가미되어 있는 마력이 묻어나왔으니까.
[에덴의 신격이 성녀를 살리려면 자신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라 합니다.]역시…. 이럴 줄 알았다.
테레사가 에덴의 사도로 간택돼 넘어갔을 때부터. 놈들은 이러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겉으로는 에덴 특유의 ‘자기 희생’을 위해 테레사를 방치한 것처럼 행동했지만….
실상은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테레사의 희생정신을 이용해 궁지에 몰아넣고, 그걸 구하러 온 나에게 딜을 치려는 계획이겠지.’
하지만 글쎄.
그게 마음처럼 될까?
“말해봐.”
진혁이 모른 척 입을 열었다.
[신격 ‘진리를 세우는 날개’가 ‘아브라함의 순종’을 요구합니다. 그 대가로 테레사의 목숨을 보장한다고 약속합니다.]진리를 세우는 날개는 우리엘의 이명.
그리고 ‘아브라함의 순종’은 과거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듯,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심판대에 올리겠노라 맹세하는 계약이다.
‘내가 계약을 어기거나 에덴의 뜻을 거역할 경우 즉각 그 대상이 불타버리겠지.’
한 마디로 영원한 족쇄를 차라는 뜻.
더불어 가브리엘을 배신하고 자신들에게 붙으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안… 돼요. 괜히 저 때문에….”
테레사가 격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죽는 한이 있어도 짐이 되는 것만큼은 절대로 막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하지만, 진혁은 그런 테레사의 만류를 가볍게 뿌리쳤다.
“걱정 마세요. 테레사 씨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테레사 씨도 반드시 살려낼 겁니다.”
여기서 테레사를 잃는다는 선택지는 없다.
[복사 조건: 테레사는 언제나 타인만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자기 자신 따위는 언제든지 희생해도 된다는 신념. 그런 테레사가 성십자 기사단을 버리고 고인물 코퍼레이션을 선택하게 만든다면 그녀가 가진 고유 성창과 스킬 중 하나를 복사할 수 있게 됩니다.] [단, 타락한 성녀로부터 개인적인 이적 약속을 받아낼 수 있다면 복사한 능력의 효과가 10%만큼 추가로 상승합니다.]테레사는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명예 멤버로 활동하고 있긴 했지만, 그 뿌리는 제국의 신성왕국과 에덴, 그리고 성십자 기사단에 두고 있다.
로젠베르크 가문의 이해관계와 개인의 신념을 저버릴 순 없었기 때문이다.
복사 조건은 그 모든 족쇄를 부수라는 것.
테레사의 2번째 능력을 복사하려면 반드시 이뤄내야 할 목표였다.
거기까지는 좋다.
거기까지는 충분히 해볼 만하긴 한데.
딱 하나, 마지막, 추가 조건이 조금 걸리긴 했다.
‘그 골칫덩어리가 어지간해서는 쉽게 넘어오지 않을 텐데….’
진혁이 쓰디쓴 입맛을 다셨다.
어떤 조건을 내걸지.
솔직히 말해 상상이 가질 않았다.
[신격 ‘진리를 세우는 날개’가 제안을 받아들일 거냐고 다시 한 번 묻습니다.]우선은 목숨을 구해내는 것부터다.
다른 사람이라면 절대 판정 효과를 지니고 있는 이 계약이 최악일 테지만….
‘계약의 허점을 알고 있는 나라면 다르지.’
진혁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갔다.
“받아들일게.”
고개를 끄덕이자 눈앞에 아름다운 천사상이 나타났다.
모든 아이템과 능력들을 구현화해 종속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
공정한 거래를 위해 에덴에서 준비해둔 중급 관리자였다.
우우웅!
[중급 관리자 ‘아카펠’의 중재 하에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플레이어 ‘테레사’의 생명력이 회복됩니다.]천사의 왼쪽에 있던 ‘하얀 불꽃’이 다시 한 번 광휘를 내며 타올랐다.
동시에, 거칠었던 테레사의 호흡이 잦아들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인해 ‘최초로 xx xxxx’를 위한 특전이 심판대에 오릅니다.]천사의 오른쪽에 나타난 보랏빛 문서는 무언가 이상했다.
깨져 있는 텍스트. 왜곡되고 일그러진 외형.
에덴의 권한으로도 파악이 불가능한 종류다.
당연히 우리엘로서는 예상 밖의 일이었다.
어떤 가치가 있는 능력인지 알 수가 없으니, 제물로서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신격 ‘진리를 세우는 날개’가 지금 대체 무슨 장난질을 치고 있느냐고 고함칩니다!]“왜? 가장 소중한 걸 제물로 바치는 거라며? 바로 이게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능력이야.”
진혁이 어깨를 으쓱이며 한 마디 덧붙였다.
“실제로 아카펠 역시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잖아? 내가 사기를 쳤거나 가짜 능력을 올린 거라면 즉각 반응했을 텐데, 그런 것도 아니고.”
[신격 ‘진리를 세우는 날개’가 이런 정체도 모르는 걸 제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외칩니다.]“글쎄, 이게 뭔지 모르는 건 너희 능력 부족인 거 아니야? 얼마나 구름 위에서 탱자탱자 놀고먹었으면 정보력이 그 모양인지…. 아! 뱃대지에 낀 기름기가 안구에까지 올라간 거라면 이해가 되긴 하는데….”
화르륵!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보랏빛 문서가 화염에 휩싸였다.
심판대에 오른 제물을 그대로 소멸시켜버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거센 불길을 보면서도 진혁의 표정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오히려 희미한 미소마저 짓고 있었다.
‘애쓰네.’
파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탑을 최초로 정복한 자’를 위한 특전은 현재 탑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이들의 이치에서 벗어난 것이었기에.
‘거래용으로 쓰려고 하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써먹은 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뭐.’
그래도 테레사를 구할 수 있었으니 마냥 나쁜 건 아니다.
그 어떤 거래를 하든 ‘하얀 불꽃’을 손에 넣는 것보다 더한 효율을 낼 순 없었을 테니까.
결국, 파괴되지 않는 능력은 제물로서 그 가치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신격 ‘진리를 세우는 날개’가 길길이 날뜁니다!]분노에 미쳐버린 호구 천사가 악악거리는 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마음에 상처를 입은 우리엘 따위에게 신경 써줄 여유는 없다.
어느새 화이트펄 호의 옆으로 작은 조각배가 다가왔던 것이다.
그 위에는 금발의 두 남매가 서 있었다.
“안녕 오빠? 잘 지냈어?”
“아까 전에 완전 재밌었는데 어디 갔었어? 갑자기 사라져서 좋은 구경 놓쳐버렸잖아.”
케이시와 주드로.
두 명의 쌍둥이가 헬버드와 전투용 해머를 든 채 히죽 웃었다.
“이래저래 할 일이 좀 있었거든. 그보다 시킨 일은 잘 마무리한 거야?”
“말했던 것처럼, 전부 다 쓸어버렸어.”
“응. 팔다리만 해도 백 개는 넘게 잘랐을걸?”
작은 조각배가 피투성이로 변한 걸 보니, 정말 어지간히도 거세게 날뛰긴 한 모양이다.
간다라 길드의 잔당들이 다시는 덤비지 못할 만큼 지독하게 말이다.
어쨌든 이걸로 첫 번째로 사용할 카드는 준비됐다.
“이번엔 아까보다 조금 더 까다로울 거야. 거대 문어 사냥이거든.”
“그래 보이긴 해. 그래도 벨 곳이 많아서 심심하진 않겠어.”
“킥킥! 문어도 인간만큼 통증을 느꼈으면 좋을 텐데. 그치 오빠?”
“여유부리지 말고 긴장해.”
……간다.
진혁의 양 손에서 거대한 마법진이 나타났다.
동시에.
하늘을 따라 무수히 많은 별들이 그 빛을 쏟아냈다.
우우웅!
밤하늘에 떠 있는 별자리.
[결계 ‘황도십이궁(黃道十二宮)’….]수면을 따라 별빛과 별빛이 이어지는 게 보였다.
아름답다.
포효하는 아포칼립스의 재앙도.
해룡의 피로 짙게 물든 바다도 잊어버릴 만큼.
그리고 그 빛 속에서 마침내 새로운 세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쌍둥이자리’가 펼쳐집니다!]12개의 별자리 중 유일하게 발동 조건이 제한된 별자리가 있다.
쌍둥이자리.
말 그대로 피가 이어진 쌍둥이들에 한해서 극한의 효율을 자랑하는 특수 결계다.
“오오?”
“이야. 이거 신기하네. 오빠 능력이야? 응?
”주드로와 케이시가 전신에 흘러 나오는 푸른 기운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다.
공격력과 방어력은 물론, 이동속도와 보유하고 있던 기존의 고유 능력까지 강화되었다.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워진 몸.
지금이라면 상대가 누구라 해도 즐겁게 싸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 ⁕
“크오오오!”
달라진 시야에 크라켄이 낮게 으르렁댔다.
당장이라도 날벌레들을 쓸어버리고 층계에 있는 생명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어야 하건만.
어째서인지 자꾸 귀찮은 놈들이 방해를 하지 않은가?
그러나, 상관없다
.어차피 아무리 발악해 봐야 먹잇감들일 뿐.
가볍게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핏덩어리로 만들어버릴 수 있으리라.
쿠쿠쿠!
거대한 다리가 수면을 휩쓸었다.
쓰나미가 몰려오듯.
다리가 지나가자 50m 높이의 파도가 몰아쳤다.
“다들 꽉 잡아요!”
이태민이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회피기동을 시전하자 배가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
쓰나미가 끝나는 지점을 향해 고속 항해를 시작한 것이다.
퍼엉!
퍼퍼펑!
측면의 함포에선 대포들이 불을 뿜었다.
고폭탄들이 크라켄의 몸체를 두드렸다.
영화속 한 장면을 연상하게 만들 만큼 무지막지한 폭격이었다.
하지만, 막강한 화력에 비해 실질적인 피해를 입히진 못했다.
크라켄의 몸에 난 자잘한 상처는 너무나 순식간에 회복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쌍둥이자리로 강화된 케이시와 주드로가 움직였다.
20m가 넘는 파도를 뛰어 넘은 두 사람이 크라켄의 몸통을 베어버렸다.
퍼퍽!
육중한 헬버드와 망치가 살 속으로 파고들었다.
-귀찮은 날벌레들.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마냥 멍청하고 성가시다.
크라켄이 가볍게 몸을 뒤틀었다.
콰드득!
빨판들에 휘감긴 두 쌍둥이가 그대로 갈려나갔다.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게 변했으니, 즉사라는 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킥킥!”
“이거 진짜 우리한테 딱 맞는 능력이네.”
당연히 죽었어야 할 케이시와 주드로가 비틀대며 일어났다.
‘부정의 힘’.
죽음마저 부정하는 쌍둥이자리의 가호는 결계가 유지되는 한 영원히 싸울 수 있게 만들었다.
마치, 좀비처럼 말이다.
케이시가 크라켄의 다리를 타고 더욱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콰앙!
콰드득!
“더 해봐. 더 해봐. 더 해봐.”
“꺄하하! 얘도 피가 붉은색이네? 아주 빨갛다아아.”
맞으면서 때린다.
열 번을 죽어도 한 번만 피해를 입힐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끔찍한 고통이 뇌리에 파고들었지만, 두 사람은 이미 그것마저도 즐기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끄는 사이.
쓰나미 파도에서 벗어난 고인물 코퍼레이션 멤버들이 두 번째 공격을 준비했다.
[고유 능력 ‘트리플 매직’이 발동됩니다!]시작은 마법.
배 밖에서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기동성을 확보하는 게 핵심이다.
진혁이 각각의 멤버들에게 마법을 걸자, 다리에 날개 모양의 이펙트가 생겨났다.
다음은 엄호사격이다.
‘빙하조형’으로 만든 얼음 작살들이 일제히 폭사됐다.
콰콰콰쾅! 콰아앙!
어지럽게 흩날리는 얼음 가루.
피해를 입히는 건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시야를 가리기만 해줘도 충분하지.
“이쪽은 수천 번 성공을 해야 하는데, 상대는 한 번만 제대로 물어도 되는 건가. 정말이지. 불합리한 전투가 되겠군.”
천유성이 질렸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여태껏 강력한 네임드 몬스터들은 물론, 보스급들하고도 무수히 많이 싸워 봤으나.
지금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 괴물은 그중에서도 압도적이었다.
선두에 서서 싸운다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일 거다.
“맞아. 솔직히 말해 절망적인 상대지. 마음 같아선 나도 도망치고 싶을 지경이니까.”
“호오. 네놈이 꼬리를 말고 싶다는 거냐?”
“저런 놈을 앞에 두고 누가 함부로 덤빌 수 있겠어? 스스로의 실력에 확신이 있는 랭커가 아니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거야.”
강하고 잘생기고 뛰어나고 멋지고 화려하고.
온갖 수식어구를 덕지덕지 붙인 영웅만이 가능한 일이리라.
“나 같은 소시민은 어림도 없지.”
“훗. 하긴, 네놈이 최강이라는 건 헛소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함께 있는 한은 말이다.”
스릉!
천유성이 검을 뽑은 채 몸을 날렸다.
빠르고….
가볍게.
칼날에서 눈부신 강기가 솟구쳤다.
콰콰콰콰콰!
미친 듯이 몰아치는 검격.
누가 그랬던가?
세상은 머리 좋은 놈들이 움직인다고.
그건 아무리 봐도 개소리다.
‘세상은 악당들이 움직이는 거니까.’
진혁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