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32)
432화. 크라켄 (3)
수를 읽히다니….
……최악의 상황이다.
진혁이 한참이나 뒤쪽에 있는 로테인을 바라봤다.
미친 듯이 웃고 있는 걸 보니, 그 짧은 사이에 여러 가지 준비를 해둔 모양이다.
저건 ‘카인의 돌칼’.
신격을 훼손할 수 있는 태초의 칼 중 하나다.
로테인 따위가 저 성유물을 제대로 다룰 수는 없겠지만, 발동하는 것만으로도 능히 기대 이상의 위력을 뽑아낼 수 있었다.
어차피 놈이 원하는 건 크라켄을 죽이려는 게 아니라 이곳에서 빠져나갈 계기를 만드는 것일 테니까.
게다가 그 과정을 그럴듯하게 연출할 수만 있다면 이후 대중들로부터 엄청난 관심을 받게 될 게 분명했다.
그래.
그렇겠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그런 놈으로 남아 있어줘서 고맙다.
진혁의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성유물에게서 흘러나온 강한 마력이 포착되었습니다.] [9성급 결계 ‘마력 공유’가 발동됩니다!] [‘아틀란티스의 창(1회용)’과 ‘비마나의 파편’이 융합됩니다!]강력한 마력을 에너지 공급으로 삼아 원류를 재현한다.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꺼내 둔 아틀란티스의 창과 니라샤로부터 얻은 비마나의 파편이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미친 듯이 요동치는 빛.
보라색 등급에 해당하는 성유물을 만든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이었다.
심지어 왕국 대장장이로 이름을 알렸던 오룬 조차도 발뭉을 다루느라 10년은 폭삭 늙어버렸으니까.
그러나 지금 오룬에게 무기를 넘길 만한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내가 해야 해.’
집중하자.
침착하고 차분하게.
진혁이 ‘화룡의 숨결’을 통해 철을 제련했다.
화르륵!
거침없이 뿜어져나오는 붉은 화염이 서로 다른 종류의 마력을 하나로 담금질해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성유물 ‘아틀란티스의 창’이 완성되었습니다!]은은한 보라색으로 빛나는 창이 손에 쥐어졌다.
시간으로 치면 30초 남짓.
하지만, 전신에 흠뻑 젖은 땀과 거친 호흡은 수십 시간의 전투를 치른 것만 같았다.
그래도 다행이다.
로테인이 두 개의 성유물을 사용해주지 않았다면, 일이 몇 배는 더 어렵게 진행되었을 테니.
“고마워요. 테레사 씨. 좋은 정보 알려줘서. 성유물의 존재를 안 덕에 일이 수월하게 풀렸어요.”
“그, 그건 알겠는데, 그보다 먼저 저… 녀석 좀 어떻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테레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손가락을 뻗었다.
쿠쿠쿠쿠쿠!
그곳엔 물살을 가르며 다가오는 크라켄이 있었다.
위치가 바뀐 이상, 최우선 타겟이 될 것은 자명한 일.
하물며 약이 잔뜩 오른 상태라면 더욱더 위험할 수밖에.
“혀, 형!”
“오빠!”
이태민과 유연화의 목소리도 한층 다급해졌다.
주위에 띄워둔 드론들과 함포로도 크라켄을 저지할 순 없었다.
하지만, 진혁의 표정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걱정 마.”
아틀란티스의 창이 완성된 이상, 전황은 한 차례 다시 바뀌게 될 거다.
[인어족이 당신의 부름에 응답합니다!]쏴아아…!
파도가 기묘한 흐름으로 요동쳤다.
* * *
29층을 지배하는 종족.
‘인어’는 신비로우면서도 친화적인 탑의 거주자였다.
비록 지금은 아틀란티스의 성물들을 잃어버린 탓에 해적들에게 밀리긴 했으나, 과거의 영광을 쌓아 올렸던 경험과 기억마저 잃어버린 건 아니었다.
물살을 자유롭게 조정하는 고유능력.
‘해류(海流)의 의지’가 바다를 완전히 장악했다.
휘청하고.
크라켄의 몸이 오른 쪽으로 기울었다.
화이트펄 호에서 멀어져 로테인이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바이바이.”
진혁이 로테인이 있는 함선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으, 으아아아! 이게… 이게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희비가 엇갈린다.
당연히 회심의 일격이 될 거라 생각한 것이 오히려 스스로를 조이는 올가미가 되어버렸다.
이미 두 개의 성유물을 모두 사용해 버린 탓에, 이후에 할 수 있는 것 또한 없었다.
“쏴, 쏴라! 오지 못하게 어떻게든 막으란 말이다!”
퍼퍼펑!
퍼엉!
신성력이 덧씌워진 포탄이 크라켄의 몸체를 두드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코끼리한테 덤비는 개미 같은 꼴밖에 되지 않았다.
결국, 모든 카드를 잃어버린 로테인이 최후의 수단을 선택했다.
“테레사!”
성십자 기사단에 소속된 성녀.
만인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테레사라면 분명 도움을 외면하진 않을 것이다.
“…….”
테레사의 동공이 순간 흔들렸다.
하지만, 몸을 움찔했을 뿐. 앞으로 나서진 않았다.
결심한 것이다.
더 이상 자신을 이용만 하려는 이들을 위해선 움직이지 않겠다고.
“테, 테레사?”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지자, 로테인의 얼굴이 검게 변했다.
“부기사단장님!”
“오, 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비명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콰아아앙!
성십자 기사단의 배가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 * *
‘테레사 씨도 이걸로 한층 더 성장하겠지.’
진혁이 옆에서 가늘게 떨고 있는 테레사를 바라봤다.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앞으로를 생각하면 옳은 결정을 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을 구하고 싶은 그 착한 심성은 알겠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을 테니까.
그보다 지금 당장은 인어들과의 시너지를 살리는 일이 우선이다.
“영웅님!”
물속에 있던 연어 초밥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수많은 인어 전사들이 각자의 무기를 든 채 뒤를 이었다.
“오오오….”
“아틀란티스의 창을 이 눈으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문서에 기록된 영웅이 틀림없어. 정말, 늠름하시군요.”
다들 감격에 빠진 얼굴이다.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아틀란티스의 상징을 눈앞에서 영접하게 됐으니, 가슴이 벅찰 수밖에.
무엇보다 과거 억압받던 동포들을 구해낸 대영웅의 후계자와 함께 싸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사기가 하늘까지 솟구쳤다.
진혁이 배 위에서 모두를 내려다봤다.
선망이 가득 담긴 눈망울.
저 많은 수의 인어들이 나 하나만을 믿고 있다.
그렇다면….
보여주면 된다.
구심점이 되는 인물이 어떤 파급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고유 능력 ‘군단의 핵’이 발동됩니다!]하나의 정점 하에 이루어진 피라미드 구조.
모든 군체들을 통솔하는 능력은 집단전에서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좋아, 밑밥은 적절하게 깔아뒀고….
…크흠!
진혁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어디 보자.
조금 목이 메이는 목소리를 내는 편이 좋겠지?
시선은 허공을 향하고. 가슴은 앞으로 뻗는다. 주먹을 불끈 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위대한 메드레이께서 항상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종족과 종족 간에는 절대 차별과 벽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요.”
낮고 깊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다 위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 차별을 목도하는 이에게 힘이 있다면…. 그 모든 걸 바꿀 수 있는 긍지가 있다면…! 그 불합리함을 결코 외면해선 안 된다는 것 또한 말이죠.”
진혁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그곳엔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멤버들이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여기 있는 제 동료들도 저보다는 한참 못하지만, 약자를 위해 검을 들어왔습니다. 다들 제 말 한 마디면 불길이라도 뛰어들 수 있는 소중한 동반자들이죠. 보십쇼. 자연과 친화적인 이하고만 계약을 하는 정령수들이 제 곁에 있지 않습니까?”
“모오오기?”
“누구 마음대로 내가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희생타란 거냐?”
“주인, 그 입으로 함부로 자연을 입에 담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기저기서 토를 다는 소리가 들렸지만, 진혁은 단칼에 그런 말들을 무시해버렸다.
“저와 함께 이 재앙에 맞서 싸워주세요. 메드레이께서 그랬듯, 저 역시 언제나 여러분 곁에 함께 하겠습니다.”
“와아아!”
“최후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인어 족에게 영광이 있으라! 영웅에게 신의 가호가 함께 하리라!”
[굳건한 믿음에 의해 사기가 100% 만큼 상승합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20%만큼 상승합니다!] [해류에 대한 이해도가 20%만큼 상승합니다!] [인어족의 전사들이 당신과 함께합니다!]쿠쿠쿠쿠쿠!
인어들이 움직였다.
파도가 거세게 요동치며, 크라켄의 주위를 휘몰아쳤다.
정상적인 정면 공격으론 어림도 없지만.
우회로를 통해 새로운 길을 창조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적어도 이 층계의 바다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인어들이 있다면 말이다.
그렇게 전황이 다시 한 차례 뒤바꼈다.
해마를 탄 인어들이 백상아리들과 해파리들을 닥치는 대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퍼퍽! 푹!
물의 기운을 발현시킨 화살들이 해류를 타고 발사됐다.
수중에서 자유자재로 각도를 바꾸는 탓에, 상대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크오오오!”
수족들이 하나둘 쓰러지자, 크라켄이 미친 듯이 발광했다.
한 번만이라도. 그저 스치기만이라도 한다면 전부 다 터뜨려 죽일 수 있을 텐데.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도망 다니는 벌레들은 도무지 잡힐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하필이면 가장 짜증나는 인어들이 인간을 도운 탓이었다.
하지만, 이 분노도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인어들의 체력이 영원하진 않을 테니까.
바로 그때.
크라켄의 몸이 우뚝 멈췄다.
“……그오오오.”
바다 아래.
이곳보다 훨씬 더 아래에서 인어들과 동일한 종류의 마력이 느껴졌다.
워낙 희미하긴 했지만, 틀림없었다.
아틀란티스.
인어들이 사는 도시다.
그래, 그런 곳이 있었구나.
제 몸뚱어리는 도망쳐도 사는 도시는 도망치지 못하겠지.
더욱이 본거지를 잃는다면 기세등등하던 인어들도 더 이상 싸울 의지를 잃게 될 것이다.
크라켄이 곧장 목표를 변경했다.
거대한 몸체가 엄청난 속도로 심해를 향해 내려갔다.
쿠웅!
몇 분 만에 심해 밑바닥에 도달한 크라켄 앞에 웅장한 인어들의 도시가 나타났다.
산산조각으로 만들어야 할 벌레들의 은신처를 마침내 찾아낸 것이다.
그런데.
“……??”
바글바글해야 할 인어들의 모습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전사들이야 밖에서 전투를 치를 테니 없는 게 당연했지만.
나이가 많거나 어린 개체들은 도시 내부에 남아있는 게 정상적인 상황이었다.
이해가 되질 않는다.
지금까지 수많은 해저 도시들을 멸망시켜 오면서 이런 적은 단연 처음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곳이 발견될 거라는 걸 예측하고 있는 것처럼.
크라켄의 시야에 또 다른 게 보였다.
도시 한가운데서 희미한 마력을 방출하는, 처음에 아틀란티스에 숨어 있던 인어들이 뿜어내는 거라고 여겼던 마력의 정체가 말이다.
처음 보는 종류의 육망성.
고대 때부터 내려오던 결계였다.
오랜 세월을 영위한 크라켄으로서도 결계의 정확한 정체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그저 차원을 연결하는 종류라고만 짐작할 뿐.
아직 마력 공급이 완전하지 않아 발동되진 않았지만, 오랜 본능이 경고했다.
이 결계를 구축하는 술식을 가만히 내버려둬선 안 된다고.
크라켄이 천천히 결계를 향해 다리를 뻗었다.
그 순간.
우우우웅!
수면에서 밝은 빛이 점멸했다.
[성유물 ‘아틀란티스의 창’이 해방됩니다!]저 멀리.
그 가증스러운 인간 놈이 공격를 하려는 것이다.
가소롭기는!
아무리 성유물이 강력하다고 한들, 아포칼립스를 상징하는 자신을 죽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타격은 있겠지만, 얼마든지 맞아줄 수 있다.
크라켄이 다가오는 창을 정면으로 마주봤다.
하지만, 이어지는 장면은….
“크오오?”
모든 상식을 완전히 박살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