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37)
437화. 각자가 휴가를 보내는 방법 (4)
“크윽!”
천유성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바다 위에서 벌어지는 공방전.
두 개의 단창을 바람개비처럼 다루는 프레이는 극도로 까다로웠다.
감정 따윈 완전히 차단해 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매 공격에 낭비 역시 없었다.
카앙! 카카카캉!
결국, 천유성이 뒤로 물러났다.
툭….
프레이가 가볍게 정의구현 팀의 뗏목에 착지했다.
받은 명령은 최대한 시간을 버는 것.
승산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저 하나뿐인 주인이 이곳을 사수하길 바란다는 것뿐이다.
“이… 파란 머리 인형이! 저리 안 비켜!?”
엘리스가 빼액하고 소리를 질렀다.
“……질척이는 여자는 인기 없어.”
“뭐, 뭐라고?”
“미디어 관련 1985건. 영화 256건. 웹소설 335건. 전부 자존감 높은 여자가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통계 자료야.”
“이… 빌어먹을 인형이 지금 누구에게 인기에 대해서 지껄이는 거냐! 나도… 나도 저쪽에서는 인기 많았다고!”
콰아앙!
화를 주체하지 못한 엘리스가 모든 마력을 해방시켰다.
당연히, 그 폭풍을 뗏목 따위가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화르륵!
거칠게 솟구치는 연기.
진혁은 등 뒤에서 뜨거운 열기를 느꼈다.
“프레이가 성공했네.”
[고유 능력 ‘해류(海流)의 의지’가 발동됩니다!]바닷물의 흐름이 부드럽게 이어졌다.
순풍을 타고 배가 미끄러지듯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좋아.
이걸로 적어도 몇 십 분은 앞서 나가게 됐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진혁과 월영이 타고 있던 뗏목이 무인도에 도달했다.
“주군,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글쎄…. 솔직히 말해 나도 여기서부턴 뾰족한 수가 없어.”
워낙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았을뿐더러, 이 무인도 어디에 깃발이 있을지는 오직 릭만이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은 건 확보한 시간을 바탕으로 직접 찾는 것뿐.
“수적으로 우위에 있는 상대가 더 유리하겠군요.”
“그렇지, 그러니 녀석들이 오기 전에 빨리 찾아야 해. 넌 섬의 서쪽을 맡아줘. 난 동쪽에서 시작할게. 시계방향으로 훑으면서 마지막엔 섬의 중앙에서 만나는 걸로.”
“존명. 최대한 높은 지대에서 깃발이 있을 가능성 높은 곳 위주로 찾아보겠습니다.”
두 사람이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계획은 꽤나 완벽했다.
주어진 환경에서 가능성이 높은 선택지만 선별해, 최선의 결과를 만들려고 했으니까.
‘됐어…!’
덕분에 진혁은 단시간에 깃발이 있는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평소 릭의 특성상, ‘가장 찾기 어려운 곳’보다는 ‘설마 저기 있겠어?’ 하는 곳에 깃발을 놓아두었을 거라 예상한 게 주효했다.
붉은색 깃발.
탁!
진혁이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단숨에 계곡 사이를 뛰어넘은 몸이 바람을 타고 앞으로 향했다.
‘역시 행운의 여신은 내 편이라니까.’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마지막에 이기는 건 정해져 있었다.
그래. 지금까진 언제나 그래왔다.
단지….
행운의 여신이 이번만큼은 자신을 향해 웃어주지 않았을 뿐.
타악!
툭!
“찾았다!”
“저도 찾았… 응?”
엘리스와 테레사가 각기 다른 방향에서 튀어나왔다.
이럴 수가.
하필이면 목표를 코앞에 두고 저 둘에게 걸릴 줄이야.
게다가 엘리스는 말랑흑두루미를. 테레사는 5대 속성의 정령수들을 함께 데리고 있었다.
……최악이다.
“마, 막아라!”
“깃발을 뺏기면 안 돼! 청룡아!”
정령수들의 외침에 말랑흑두루미가 여의주의 마력을 해방했다.
“크오오오! 가능하면 죽어다오! 제발 좀…!”
파츠측!
검게 물든 먹구름에서 뇌우(雷雨)가 쏟아졌다.
동시에. 정령수들이 각기 다른 속성 공격을 퍼부었다.
콰콰콰쾅!
퍼어엉!
“젠장.”
진혁이 재빨리 옆으로 몸을 날렸다.
대놓고 한 공격에 당하지는 않겠지만, 저 녀석들….
‘연계가 장난이 아닌데?’
그동안 함께 싸우느라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적으로 만나게 되니 확실히 알겠다.
그동안 혹독하게 굴리고 또 굴린 탓인지. 다섯 정령들의 시너지는 놀랍도록 뛰어났다.
퇴로를 차단하고 이동할 지점을 예측하는 능력 또한 날카로웠고.
‘검마천령보’까지 사용한 진혁이 좌우로 움직였다.
하지만, 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느새 엘리스와 테레사가 깃발이 닿을 거리까지 접근했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진다.
뭔가 수를 내지 않으면….
바로 그때.
“……!?”
진혁의 머릿속에 무언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잠깐, 잠깐만 멈춰 봐! 너희 선장의 모자가 지닌 특성은 제대로 읽어 본 거 맞아?”
“그거야….”
“당연히 읽어봤지. 그것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 건데!”
“그럼, 모자의 소유권을 나눠가지면 효력이 떨어지는 것도 알고 있을 텐데? 너희가 뭘 원하는진 모르겠지만, 구속력이 떨어진 반쪽짜리 보상은 맛이 떨어지지 않겠어?”
“…….”
“…….”
엘리스와 테레사가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당장 매 경기, 경기를 이기는 것만 신경 썼지. 그 이후에 대해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각자가 원하는 소망을 이루려면 결코 모자를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일단, 내가 모자를 갖고 공평하게 권한을 나눠줄게.”
엘리스가 먼저 침묵을 깼다.
“저….”
테레사가 머뭇거렸다.
아직까지 스스로의 주장을 강하게 하지 못했기에, 엘리스가 손을 뻗는 걸 묵묵히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짝!
“아악!”
찰진 소리와 함께 엘리스의 손등에 불벼락이 떨어졌다.
“이 순딩이가 그걸 속으면 어떡해? 딱 봐도 속이려는 거잖아. 그리고 넌 어딜 그 더러운 손으로 깃발을 홀라당 독점하려고 하니?”
테레사의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타락’.
꽁꽁 감추어두었던 어두운 인격이 고개를 들었다.
“이 바보 성녀가…!”
“에휴. 유치하게 바보가 뭐니 바보가. 언어 수준도 꼭 자기한테 맞는 것만 쓰더라.”
“그, 그거 지금 나한테 한 말이야? 나한테?”
“꼬맹이한테 한 말이라면 그래. 맞단다.”
둘 사이에 불꽃이 튀어났다.
앙숙답게 누구 하나가 이기는 건 죽어도 못 볼 것이다.
이걸로 한 숨을 돌릴 수 있게 된 건가….
진혁이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였다.
뾱!
깃발이 그대로 뽑혔다.
엘리스와 테레사가 동시에 깃발을 잡아버린 것이다.
“…응?”
대체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진혁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과에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어째서?”
“어째서긴, 이 멍청한 뱀파이어랑 싸우느라 기회를 아예 놓치는 것보단 효력이 떨어지더라도 보상부터 챙기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을 뿐이야.”
“엣헴! 계약자. 이미 계약자가 그리 나올 거라는 건 우리도 알고 있었다. 마지막에 방심을 유도하게 하려는 우리 작전이 제대로 먹혔구나.”
‘결계’나 ‘빙하조형’을 통한 원거리 견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연극은 반드시 필요했다.
실제로 공을 들인 가치 또한 있었고.
[모든 게임이 종료되었습니다.] [승자는 ‘정의구현’ 팀입니다.] [보상이 정산됩니다.]연이어 나타나는 상태창을 끝으로….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에서의 휴가가 모두 끝났다.
아니, 누군가에게는 이제 시작일 뿐이었지만.
* * *
부드러운 촉감이다. 타이트한 착용감 역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역시, 프랑스제는 프랑스제라 이건가.
어쩌면 묘하게 중독성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진혁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지금까지 세상이 노력하는 자를 비웃고 기만한다고 여겼다.”
천유성이 과거를 곱씹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언제나 네놈 앞에서 좌절과 쓰디쓴 실패만 맛보았던 게 나였으니까. 수백 번을 실망하고 또 발버둥 치던 게 당연한 삶이라고. 그게 나의 운명이라고 받아들였었지.”
하지만.
“역시 하늘도 노력하는 자를 버리지는 않는구나.”
천유성의 입가가 씰룩였다.
마치, 좋아서 죽겠다는 것처럼.
“그만해라. 이미 많이 먹었다. 벌써 열 시간째 같은 말 반복하면 안 지겹냐?”
“적어도 이번 생에는 지겹지 않을 것 같다. 방송 시스템이 활성화되지 않는 게 유일하게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긴 하다만…. 뭐, 그래도 네놈 말대로 이 정도면 아쉬움을 달랠 정도는 됐으니, 나머지 몫은 뒤에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에게 넘기도록 하지.”
게임에서 이긴 정령수들과 말랑흑두루미도 자신이 모자를 사용할 타이밍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비록 권한이 쪼개졌기 때문에 자신들이 원하는 걸 전부 다 할 수 없었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걸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해하는 듯싶었다.
“그럼, 또 보지. 나는 기분 좋게 시험 준비나 해야겠다.”
천유성이 환하게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지, 짐은 이 모습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엘리스가 진혁의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세상을 다 가진 껌딱지마냥 헤실헤실 웃는 걸 보니, 빈말은 아닌 모양이다.
“평화…롭구나. 정말, 이런 걸 원했다. 계약자와 함께 있는 이 시간을.”
석양이 지는 바닷가에서 방금 만든 트로피카 음료수를 마시고 있자니, 세상에 모든 근심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타락시아의 가주 자리를 되찾아야 한다는 중압감도.
탑의 다른 거대 세력들과 그밖의 골치 아픈 일들도.모두 잊어버릴 수 있었다.
“계약자. 선장으로서 명한다. 빨리 거기 음료수를 먹어다오. 짐이 특별히 맛있는 사과를 넣어서 제조한 음료니라.”
“야! 거기! 너무 붙지 마. 잊은 건 아니겠지? 너만 소유권을 가진 게 아니란 걸.”
테레사가 반대쪽에서 진혁을 끌어당겼다.
덕분에 선악과 칵테일을 먹일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뭐 하는 짓이야! 다 된 밥이었…이 아니라, 같이 알콩달콩 목을 축이려 했는데!”
“너 같은 꼬맹이보다는 이몸이랑 함께 하는 편이 훨씬 더 낫다 이런 뜻이지. 봐 봐. 아니라곤 해도 몸은 솔직하잖아? 안 그래?”
테레사의 하얀 손가락이 진혁의 목덜미를 간질였다.
후욱하고.
진혁의 귓가에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
“내 것이 된다고 말만 하렴. 타락한 자들이 노는 방식은 아주 재밌으니까.”
“주, 죽을래! 누가 거기까지 해도 된다고 했어!?”
“어머나. 우리 꼬맹이한테는 너무 진도가 빠른 건가?”
“빠르긴! 나도… 그동안 공부 많이 했거든!”
엘리스가 진혁의 팔을 꼭 끌어안았다.
정말이지… 가지가지 한다.
진혁이 모든 걸 체념한 듯 고개를 떨궜다.
앞으로 10시간만, 딱 10시간만 죽었다고 생각하자 버티자.
이후에 있을 정령수들의 온갖 멸시와 조롱 또한 시간이 지나면 결국엔 끝날 테니까…. 진혁은 그 일념 하나만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그리고 마침내.
[24시간이 모두 종료되었습니다.] [‘선장의 모자’가 가진 효력이 종료됩니다.]파스스….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모자.
“히이익…?”
가장 먼저 단꿈에서 깨어난 건 운디네였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살기에 전신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벌써 24시간이 끝났어?”
“난, 한 5분 정도 지난 줄 알았는데?”
현실을 부정하는 말들이 오고 갔다. 하지만, 아무리 도리질을 쳐봤자 24시간이 모두 지나갔단 사실을 뒤바꿀 순 없었다.
“다들 재밌었지? 그래. 재밌었겠지. 얼마나 짜릿했겠어?”
진혁이 실성한 듯 키득거렸다.
지금까지 당했던 수모….
…뼛속까지 잘 새겨뒀다.
매일 밤 자기 전에 12번씩 되감아볼 만큼 말이다.
이제. 그 모든 걸 되돌려줄 시간이다.
“다들 포지션 잡아라. 최소한 신격이랑 싸운다고 가정하고 레이드를 준비해야…. 아니, 그냥 도망쳐라. 이 섬을… 떠나야 한다! 지금 당장!”
천유성이 목이 터져라 명령을 내렸다.
[황도십이궁(黃道十二宮) ‘사수자리’가 개방됩니다!]하지만, 도망갈 곳 따윈 없다.
“꾸에엑!”
하늘로 승천하려던 말랑흑두루미가 거대한 얼음 조각에 얻어맞고 바닷속으로 추락했다.
“히익. 헤엄쳐. 헤엄쳐! 노를 저으라고!”
“할 수 있다. 살 수 있다!”
“영차, 영차.”
“영차고 나발이고 우리 다 망한 것 같은데?”
허둥지둥 뗏목에 올라타던 정령수들도 비슷한 최후를 맞이했다.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가 배를 통째로 삼켜버린 것이다.
“달그락. 달그락. 뼈… 뼈가 녹는다아아!”
“모오오기이이!”
이곳은 지옥이다.
메이드복을 입고 날뛰는 고인물의 분노는 감히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으니까.